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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2화 (12/224)

012. 240%

-미션?

-A or B라니?

시청자들은 즉각적으로 의문을 표시했다.

하지만 실제로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닐 터였다.

“형님들, 순진하게 이러지들 맙시다.”

방송에서 시청자가 스트리머에게 미션을 주는 일은 흔했다.

그리고 미션에는 당연히 보상을 걸게 되어 있었다.

“이 고천수, 형님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가 드리겠다는 겁니다.”

여기까지의 흔적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경찰서장을 찾으라는 신호였다.

다만 그 신호가 이렇게 티 나게 끊겨 있는 것은 함정일 가능성이 컸다.

“일단 어느 곳을 원하십니까? A or B.”

그리고 이렇게 시청자의 반응을 유도하면 어느 쪽이 함정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우리 천수, 장난질 치네. ^^

-이렇게 해도 우린 어디 가라고밖에 안 할 건데?ㅋㅋ

-투표로 하자, 투표.

“에이.”

맥 빠지는 반응에 고천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미없게 됐네.”

그러고는 아무 생각 없이 B 쪽으로 걸음을 옮길 때였다.

-A.

누군가 끼어들었다.

[띠링! 한도초과 님이 1젠 후원! - 기왕 후원 튼 거, 재미라도 좀 봐야지.]

묵직한 보상심리가 느껴지는 알림이었다.

고천수는 ‘대놓고 함정으로 밀어 넣잖아.’라고 도배되는 채팅창을 무시하고 양손으로 A를 만들어 보였다.

“A, 받았습니다.”

하지만 미션에는 내용과 보상이 있어야 했다.

“구체적인 지시나 보상은?”

-후원은 이미 했으니까 보급함에 관련된 정보 하나 더 푼다. A로 가서 경찰서장 구할 때까지 생존.

땡잡았다.

“좋습니다!”

원래는 본격적으로 후원을 받기 위해 물꼬만 틀 생각이었다.

일이 이렇게 된다면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가시죠, 형님들!”

“저기, 고천수 씨?”

뒤에 있던 허영웅이 다가오며 식은땀을 흘렸다.

“왜 굳은 것처럼 쭉 가만히 서 계시는지…….”

“예? 가만히 서 있어요?”

중얼대는 것까진 알 테니 뭐라 하면 기도라도 한다고 하려고 했건만.

-네가 우리한테 말할 땐,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자동으로 보정돼.

친절한 시청자의 설명 덕분에 어떻게 됐는지 알았다.

우연히 득한 정보에 고천수는 환한 웃음을 그리며 몸을 돌렸다.

***

루트 A.

당연한 얘기지만 이 길은 함정이었다.

“허 순경님.”

입구부터 대나무가 자라 있는 스산한 풍경을 보며, 고천수가 허영웅에게 물었다.

“무전기들 챙겨 왔다고 그랬죠?”

“무전기요?”

허영웅이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허리를 내려다보았다.

“네, 있어요.”

“무전기‘들’이라고 한 걸 보니까 세트인가요?”

“아, 네.”

허영웅은 허리춤에서 두 개의 소형 무전기를 들어 보였다.

“2명이서 근거리 통신할 때 쓰는 무전기예요. 제 개인 물품이었는데, 이것밖에 없어서 챙겼죠.”

“하나 저 주세요.”

고천수가 손을 내밀었다.

“지금 써야 할 것 같거든요.”

“저랑 따로 가시려고 하나요?”

허영웅의 얼굴에 불안감이 깃들었다.

“네. 허 순경님 먼저 이쪽으로 가세요.”

고천수는 그런 그에게 A 루트를 가리켰다.

-아, 이 새끼!ㅋㅋㅋㅋㅋ

-당했다. 허 순경만 보내려고 한다!

-야 이, 갸놈아!

시청자들이 난리를 쳤지만 전부 다 오해였다.

고천수는 해명하지 않고 허 순경에게 설명했다.

“사실 경찰서장님을 위험에 빠뜨린 사람들이 오고 있거든요.”

“예? 그게 무슨 말…….”

“그 사람들이 쫓아오면 저희 그대로 당할 수도 있어요.”

그렇기에 망을 볼 사람이 필요했다.

“저는 여기서 그 사람들을 막을 테니까, 허 순경님은 경찰서장님을 찾아보세요.”

“하지만……!”

“허 순경님.”

고천수는 허영웅의 어깨를 붙잡았다.

“경찰서장님은 친척이시잖아요. 아직 살아 있을 테니 빨리 찾아보세요. 뒤는 제가 맡겠습니다.”

“고천수 씨……!”

허영웅의 잠깐의 의문을 접고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염병하네ㅋㅋ

-야, 미션 건 놈 어디 갔냐.

-난데. 나 설마 이용당한 거?

허영웅은 무전기를 하나 고천수에게 건넸다.

“이게 통화 버튼이에요. 주파수는 맞춰 놨으니까 그냥 누르고 얘기하시면 돼요.”

“거리는?”

“5km밖에 안 돼요.”

아주 길지는 않지만 그렇게 짧지도 않았다.

고천수는 무전기를 받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가면서 무슨 일이 있으면 브리핑해 주세요.”

“네네.”

순진하게 대답한 허영웅은 그 길로 A 루트에 발을 올렸다.

“고천수 씨도 무슨 일이 있으면 무전해 주세요!”

그런 그에게 고천수가 해 줄 일이라고는 손을 흔드는 것뿐이었다.

“자, 갔네요. 형님들.”

고천수는 무전기를 쥐어 잡고 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야, 완전 악마 아니냐?

-미션도 어기고 대박이네 진짜ㅋㅋ

“형님들, 저는 미션을 어긴 일이 없습니다.”

A 루트로 가겠다고 했지 가장 먼저 발을 들이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정보를 모으고 움직이려는 것뿐입니다. 어차피 나중에 가도 위험한 건 매한가지잖아요?”

다만 어떤 몬스터가 나오고 수가 얼마나 될지가 중요했다.

도심지에 대나무들이 있는 건 뜬금없었다. 확실하게 그쪽에서 몬스터들이 출현할 것이었다.

『고천수 씨?』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무전이 왔다.

“네, 허 순경님. 거기 어떤가요.”

『잘 모르겠는데 근처에 괴성이 몇 들려요. 고천수 씨는 괜찮은가 해서요.』

“저는 아직 괜찮습니다. 다만 조심하긴 해야겠네요.”

고천수는 고개를 돌려봤지만 아직 근처로 모이는 몬스터들은 없었다.

“괴성을 뭐가 지르는지는 확인하셨습니까?”

『아뇨. 근데 좀비 같긴 해요. 좀 빨리 이동해야겠어요.』

무전기로 허영웅이 헉헉대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따라붙고 있어요!』

“좀비가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저, 저 앞에 다른 컨테이너 박스들이 보여요! 경찰서장님은 아마 저기에……!』

치이이익.

통신음이 안 좋아졌다. 고천수는 무전기를 얼굴 가까이 하며 물었다.

“허 순경님? 허 순경님?”

『지금…… 잘…… 통신이…….』

“몇 마립니까? 거기 좀비 얼마나 있어요?”

무전기는 계속 깨진 전파음을 내보냈다. 고천수가 낭패라고 생각하며 인상을 구기는 사이에 다시금 말이 들렸다.

『……2, 30마리!』

거기까지였다. 이후로 무전은 더 없었다.

“형님들, 돌아가죠.”

고천수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채팅창이 다시 어지러워졌다.

-A.

-A.

-A.

대학교 시험도 이렇게 올 A는 못 맞아 봤다. A로 가라는 수많은 채팅을 살펴보며 고천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사지로 보내고 싶으십니까?”

-사지. 그곳은 어디인가.

-한도초과 : A 가라거! 미친놈아!

-근데 한도초과 이대로 먹히는 것도 꿀잼일 듯.ㅋㅋㅋ

중간에 한도초과가 자신의 닉을 적고 말했다.

물론 후원을 하지 않는 이상 저 인물이 진짜 한도초과인지 알 길은 없었다.

“진짜 한도초과 님 맞나요? 뭔가 이상한데.”

[띠링! 한도초과 님이 1젠 후원! - 가라거! 미친놈아!]

참지 못한 한도초과가 또다시 후원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고천수는 웃음을 흘렸다.

‘아, 적당히 해야지.’

보급함에 필요한 자금이 모이는 것은 좋았지만, 이대로 시청자를 농락하기만 하면 다음 후원이 없을 수도 있었다.

고천수는 가방에서 망치를 꺼내며 목을 풀었다.

“걱정 마세요. A 갈 거니까.”

허영웅의 말만 들었을 때는 역시 좀비만 있는 게 틀림없었다.

무전기 너머로 들린 괴성 또한 다른 몬스터의 것이 섞여 있지 않았다.

허영웅이 그 좀비들까지 싹 다 도발해서 어디 컨테이너 박스에라도 들어갔다면 상황은 더 좋았다.

고천수는 몹몰이가 된 좀비들을 상대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자, 출발.”

잠시 B로 향하고픈 마음도 들었지만, 오히려 그쪽은 검증되지 않은 길이었다.

고천수가 갈 길은 이제 A뿐이었다.

“확실히.”

스산하다고 했던 허영웅의 말대로 길 자체가 함정이나 다름없었다.

주변에 있는 대나무 숲은 많은 좀비들이 몰려오는 것을 감췄을 터.

“형님들, 조금 천천히 이동하겠습니다.”

소리에 좀 더 의지할 필요가 있었다. 고천수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그러던 중 근처에서 대나무가 떨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 시발. 깜짝이야.”

고천수가 움찔거리며 멈추는 것을 보고 채팅창이 비웃음으로 가득 찼다.

-난 천수 이러는 재미로 봄ㅋㅋ

-뭘 그렇게 놀라냐, 별것도 아니고만.

-그러게. 귀엽지 않냐?

몬스터를 대하는 반응이 아니었다. 고천수는 대나무 옆에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빤히 쳐다보았다.

“뭐야, 저건.”

곰 인형이었다.

정말 뭐라 표현할 것도 없는, 30cm 정도 될 만한 곰 인형 하나가 그곳에 있던 것이다.

“함정인가?”

고천수는 몸을 돌려세우며 주변을 확인했다.

허영웅이 전해 준 말에는 저런 곰 인형 따위 있지도 않았다.

누군가 미끼로 갖다 놓은 것이라면 곤란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바스락.

순간 곰 인형이 스스로 움직였다. 고천수가 또 한 번 움찔거리는 사이, 곰 인형은 어딘가로 뒤뚱뒤뚱 걸었다.

“와 씨, 세상에…….”

고천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형님들, 저거 뭡니까? 저런 몬스터도 있는 겁니까? 대체 뭐예요? 빨리 대답햇!”

-미쳤나ㅋㅋㅋㅋㅋㅋ

-그라데이션 분노ㅋㅋㅋ

-미션에 관련된 거라 지금 답변 못 함.

미션.

그 말에 고천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 저거. 한도초과 님이 알려 줄 정보에 포함돼 있는 겁니까?”

그렇다면 보급함과 관련된 것이었다.

‘약간 감이 오긴 하는데…….’

괜히 지금 얘기해서 김을 뺄 필요는 없었다. 미션을 수행하고 시청자들을 매료시키는 것 또한 고천수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그는 다시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가던 대로 갈게요.”

그렇게 몇 걸음 움직이자 이젠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나무 숲도 끝나고, 고천수의 시야에는 이제 컨테이너 하우스들이 즐비한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다.

“오호라.”

좀비들은 죄다 그곳에 몰려 있었다.

허영웅이 대나무 숲의 좀비들을 죄다 몰고 간 것이었다.

“저거인가.”

유독 한 컨테이너 하우스에 좀비들이 잔뜩 달라붙어 있는 상태였다.

창문이 커튼으로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안에 허영웅이 있을 거라고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경찰서장도 저 안에 있는 거 아냐?

-아닐걸.

-있으면 어쩔?

있거나 없거나 확실하지 않다면 고천수가 선택할 길은 두 개였다.

‘확인할까 말까.’

허영웅이 좀비를 다 몰고 갔기 때문에 굳이 이곳을 확인할 게 아니면 그대로 두고 가도 무방했다.

고천수는 멀리서 컨테이너 하우스에 몰려 있는 좀비의 수를 세어 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허영웅이 말했던 대로 수는 제법 되어 보였다.

하지만 아주 많지도 않았다. 대략 스무 마리 정도였다.

‘1.2인가.’

전부 도발해서 잡으면 고천수가 도달할 수 있는 성장치였다.

나쁘지 않았다.

다만 한 번에 도달할 필요는 없었다.

고천수는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꺼내들어 1분 후를 알람을 맞췄다. 이걸 던져두고 사각에서 접근해 한 마리씩 꿰어 낼 참이었다.

그때였다.

부아아아앙!

지프차였다. 갑자기 나타난 차에 당황한 고천수가 움찔하며 물러났다.

콰앙!

지프차는 좀비들을 몇 치며 멈춰 섰다.

크아아아.

놀란 좀비들이 고개를 돌리며 괴성을 질렀다.

“저건…….”

운전자가 보였다.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경찰이었다.

“진경호.”

허영웅이 근무했던 곳의 파출소장이었다.

부아아아앙.

도우려고 나타난 게 아닌지 지프차는 금세 장소를 빠져나갔다.

크아아아.

차가 빠져나가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 좀비들은 뒤에 있던 고천수를 발견했다.

[어그로 14 - 09:59]

“아, 시발.”

이로써 진경호는 미친 경찰 중 하나로 확정이었다.

“일 좀 망쳤나, 이거.”

실수였다. 장소를 특정한 걸 보니 무전기를 도청한 게 틀림없었다.

“서로 돕자고 하는 일인데 손발이 안 맞아버렸네, 허영웅.”

도청 방지가 안 되어 있던 사실을 둘 다 몰랐다. 고천수는 쓴웃음을 한 번 짓고는 얼른 대나무 숲으로 달렸다. 좀비들은 그런 고천수를 차례대로 따라 들어왔다.

“드루와, 드루와!”

고천수는 다가오는 좀비들에게 망치를 휘둘렀다. 머리를 맞은 좀비들이 하나둘씩 옆으로 쓰러졌다.

“몰려들면 너희만 유리한 줄 알아?”

고천수는 뒷걸음질로 달렸다. 원래대로라면 불가능하겠지만, 근력뿐 아니라 감각까지 예민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너희 사람 잘못 골랐다.”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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