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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0화 (10/224)

010. 머리 쓰게 하지 마

무작정 들어온 남자를 보고 고천수는 얼굴을 찌푸렸다.

“당신은…….”

남자는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경위 계급의 경찰이었다.

“진짜 누구죠?”

그 질문에 남자는 살짝 웃어 보였다.

“파출소장입니다.”

“……파출소장?”

“영웅이가 있던 남부 파출소장이요.”

그 말에 고천수는 손뼉을 탁 쳤다.

“아! 파출소장님.”

늦었지만 허영웅의 관계자가 나타났다. 몬스터에게 다 당하지 않고 살아 있었던 것이다.

“진짜 파출소장님이세요? 만나서 반갑기는 한데.”

“네, 진짜입니다. 뭔가 경계심이 많은 분이군요.”

그야 순경 한 명만 거기에 버리고 이곳에 온 파출소장이라고 하면 의심부터 하는 게 정상이지 않은가.

“네, 뭐. 근데 허영웅 씨를 언급하는 거 보니까 다른 분께 얘기 좀 듣고 오셨나 보네요?”

“네, 과장님한테 들었습니다.”

남자는 대답하며 고천수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그보다 먼저 인사부터 제대로 하죠. 진경호입니다.”

“아, 예. 고천숩니다.”

맞잡고 나니 남자, 진경호는 갑자기 손에 힘을 빡 주었다.

“그래서, 영웅이는 어디서 보신 거죠?”

-힘겨루기 하면 우리 고천수가 빠지지 않지!

-역관광 가즈아!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강한 상대였다.

“크윽!”

고천수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진경호를 쏘아봤다.

“손 박살 낼 거 아니면 놓으시죠.”

1.07의 신체로는 그의 근력에 당해 낼 수 없었다.

“놓아 드릴 테니 잘 알려 주시겠습니까?”

“네, 기꺼이.”

만약에 놓지 않는다면 지금 책상에서 집어 든 볼펜을 목에다 쑤셔 박아 줄지도 몰랐다.

“자.”

그러자 진경호는 손을 풀어 주고 다시 물었다.

“영웅이, 어디서 보셨습니까?”

“어디서 보긴요. 파출소에서 봤지.”

물론 그 이후에도 본 적이 있긴 하지만 그것까지 가르쳐 주고 싶진 않았다.

“혼자만 거기서 떠돌고 있던데, 혹시 두고 가신 거 아닙니까?”

날 서게 묻자니 진경호가 살짝 흠칫했다.

“두고 가긴요. 그 친구가 거기에 남겠다고 자원한 거지.”

“자원?”

“거기 있는 범죄자 하나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다고 남았던 놈입니다. 연락도 안 되고 해서 어떻게 됐나 했더니 아직도 거기 있었나 보네요.”

한숨을 짓는 진경호를 보며 고천수는 의문을 표했다.

“혹시 다시 데려올 생각입니까?”

“예, 뭐. 여유가 되면 다시 데려와야죠. 다만 이쪽 일이 해결되면요.”

쉽게 순경 하나 찾으러 갈 수는 없다는 뉘앙스였다.

하긴 경찰서장과 순경을 저울에 달자면, 어느 쪽이 기울어지는지는 뻔할 것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당장이라도 구할 것처럼 힘 빡 주시던데요.”

“제가 약간 과했네요. 그래도 역시 신경은 쓰여서 말이죠.”

사과의 의미인지 진경호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제가 좀 무례했습니다. 이해해 주시면 좋겠군요.”

“예, 뭐.”

“저희를 도와 경찰서장님을 찾는 걸 도와주시기로 하셨다는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진경호는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이거, 또 힘겨루기하자는 건 아니죠?”

고천수가 게시판에서 압정을 하나 떼어내 손에 올렸다.

“손이 아파서 살짝만 부탁드립니다.”

“하하, 이것 참.”

진경호는 멋쩍은 웃음을 뱉었다.

“기분이 안 풀리셨나 보군요.”

“아뇨, 풀리긴 했는데 혹시나 해서요.”

고천수는 압정을 내려놓고 다시 손을 내밀었다.

“압정 하나 더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니 주의하세요.”

“네, 그러겠습니다.”

물론 압정이 없는 것을 확인한 진경호는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그럼 저는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좀 이따 소집 때 뵙죠.”

“그러죠.”

고천수는 나지막이 답했다. 진경호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좀 거슬리는 놈이네.

-없애 버릴까?

-어이, 참아. 또 하나의 나.

“형님들, 진정하십쇼.”

파출소장에 투자할 시간은 없었다.

“남부 파출소에서 온 사람이 더 있는지부터 찾아보죠.”

***

밖으로 나간 고천수는 본관 앞에 서 있는 문지기 경찰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아, 깜짝이야.”

문지기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답했다.

“뭡니까. 뒤에서 오셔서 놀랐잖아요.”

“뭣 좀 물어보려고요.”

“뭔데요.”

고천수는 운동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저 멀리의 진경호를 가리키며 질문했다.

“혹시 남부 파출소에서 온 다른 인원이 있습니까? 파출소장님 말고요.”

“그건 왜요?”

“제가 그쪽 방향에서 와서요. 얼마나 왔나 궁금해서.”

그러자 문지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거라면 어디 가서 또 묻지 마세요. 거기 몰살당했어요.”

“몰살?”

“초등학교까지 오면서 다 사망했다고 하더라고요. 거리에서.”

“거리라…….”

오면서 그런 흔적은 본 적이 없었다.

고천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덕분에 도움이 됐네요.”

“그럼 다행이고요. 가서 이제 저녁이나 드세요. 시간 끝나 가요.”

중국집 직원이었던 정민규가 만들어 줬던 식사가 아직 고천수의 배 속에 남아 있었다.

‘존나 양심 찔리네.’

하지만 그가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이 지옥도 종료되지 않았다.

반대로 클리어만 할 수 있으면 모든 걸 뒤집어놓을 수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은 생존해야 했다.

“꺄아아아악!”

갑작스러운 비명에 고천수가 운동장으로 시선을 던졌다.

식사를 받고 있던 한 남자가 온몸을 뒤틀며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괴, 괴물이야!”

“도망쳐!”

“으아아아악!”

사람들은 남자에게서 급하게 달아났다.

“저, 저거!”

문지기도 총을 빼어 들고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뭐야.”

고천수는 비어 버린 본관의 정문을 보며 헛웃음을 뱉었다.

“이렇게 쉽게 비워 두고 가도 되는 거야?”

문지기가 당황한 건 이해가 갔다. 안쪽에서 몬스터들이 생겼다간 걷잡을 수 없어질 테니까.

“에휴.”

고천수는 망치를 꺼내들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도와야지 어쩌겠냐.”

크아아아아!

그사이 좀비들의 수는 족히 열이 넘게 늘어나 있었다.

주변에 비명도 늘어났다.

“살려 줘! 끄아아악!”

희생자가 발생한 상황에 경찰들도 우왕좌왕했다.

“다, 다들 물러서요! 총을 쏠 수가 없잖아!”

“비키라고!”

“총 대신 곤봉 들어요!”

그때, 고천수가 망치로 좀비 한 마리의 머리를 때리며 외쳤다.

“못 쏘겠으면 곤봉이라도 들라고!”

-뭔 놈의 어리바리밖에 없냐.

-천수, 소지품 검사에서 망치 안 뺏긴 거 실화임?

-사냥꾼이니까 놔둔 거지.

그 말대로 고천수는 경찰들이 곤봉을 빼어 들기도 전에 빠르게 좀비를 사냥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던 주방장 장만철도 튀어나왔다.

“이보게, 친구! 우리도 도움세!”

그의 종용에, 옆에 있던 명서 중국집의 주인은 겁먹고 물러섰다.

“아, 안 돼! 괴물들이잖아!”

“저 새끼들이 우리 민규를 죽인 거라고!”

엄밀히 말하면 다르긴 했지만 장만철에겐 그 사실이 무의미했다.

일단 저게 사람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게 중요했다.

“죽어라, 이 괴물들아!”

장만철은 땅에 떨어져 있는 프라이팬 하나를 들고 고천수의 곁으로 달려갔다.

까앙!

그렇게 좀비 한 마리의 머리를 치자 고천수가 이쪽을 돌아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고천수는 다시 좀비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망치를 고쳐 잡은 그는 좀비를 한 마리씩 끝까지 족치지 않고, 모조리 머리를 한 대씩 치고 돌아다녔다.

“뭐, 뭘 하는 거지?”

장만철은 의문을 표하다가 곧 깨달았다.

머리를 조금이라도 얻어맞은 좀비들은 타격을 입은 채 오랜 시간 뒤뚱거렸다.

그랬다. 고천수는 지금 사냥보다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벌어 주는 것이었다.

“아.”

장만철이 탄식하는 순간, 경찰들이 일반인들과 좀비들 사이에 성공적으로 끼어들었다.

퍽!

누군가 울린 곤봉의 타격음을 시작으로,

퍽퍽퍽퍽!

그야말로 난타전이 시작됐다. 좀비들이 경찰들의 곤봉에 하나둘씩 넝마가 되어갔다.

“여, 여기도……!”

그럼에도 안심하지 못한 사람들이 곳곳에서 소리쳤다.

“여기도 괴물들이 들어오잖아!”

몇몇이 탈출하기 위해 달려갔다.

그러자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그 뒤를 쫓았다.

입구에는 이서준 과장이 서 있었지만 제 발로 나가는 이들을 막지는 못했다.

“아, 시발.”

그 광경을 보며 고천수는 이를 갈았다.

“이거 어떤 새끼냐.”

좀비는 지금 밖에서 밀고 들어온 게 아니라 이곳에서 발생했다.

물린 이가 입구에서부터 걸러지지 않은 탓에 이런 사태가 생긴 것이었다.

‘좆같네, 진짜.’

물증은 없지만 심증만은 확실해졌다.

이곳에 몰려 있는 경찰들 중에 미친 새끼들이 섞여 있었다.

-이번에도 그놈이 빌런?

-그런 건 랜덤 아님? 수상한 놈이 한둘이 아닌데.

-그냥 이 참에 탈출하라니까??

할 때 하더라도 이렇게 소득 없이 물러설 수는 없었다.

적어도 정보 2 정도는 오픈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야 다음 행선지로 방향을 잡을 수 있었으니까.

“형님들, 저 머리 아픈 거 못하겠습니다.”

이젠 누가 어떤 역할인지 찾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선역으로 확정돼 있는 사람만 데리고 오면 그만 아닌가.

“저기, 아저씨!”

다들 혼란에 빠져 있을 때, 고천수는 장만철을 부르며 곁에 다가갔다.

“나, 나 말인가?”

“그럼 누가 있겠나요.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고천수의 말에 장만철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뭘 말인가?”

“저 없는 동안 여기 순찰 좀 해 주세요.”

경찰들에게는 아무것도 부탁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마파두부의 인연을 믿는 편이 나았다.

“경찰들 중에 수상한 짓하는 사람 있으면 살펴봐 달라는 거예요.”

“가, 갑자기 무슨. 내가 그런 걸 왜…….”

“설득할 시간 없어요. 경찰서장님 구하러 가는 파티에는 절대 참가하지 마시고요. 알았어요? 정민규 씨 은혜 갚을 테니까.”

고천수는 장만철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살고 싶으면 제 말대로 하세요.”

그러자 장만철의 두 눈이 크게 커졌다.

고천수는 그의 눈빛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발걸음을 뗐다.

좀비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누구도 고천수를 신경 쓰지는 못했다.

“고천수 씨! 어디 갑니까!”

입구 쪽에 다다르니 그제야 고천수를 붙잡는 소리가 있었다.

“같이 하기로 한 게 있는데 도망치는 겁니까!?”

진경호였다. 고천수는 헛웃음과 함께 그 외침을 무시했다.

“고천수 씨!”

입구를 빠져나가려니 이서준도 고천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가지 마세요!”

“내부나 더 신경 쓰시죠!”

고천수는 그 손을 치워내며 오토바이로 향했다.

다행히 아직까지 그곳에 세워져 있었다.

부릉.

시동이 걸렸다.

오토바이는 시원스레 달려 나갔다.

***

목적지는 지도로 확인한 곳이었다.

고천수는 경로를 떠올리며 오토바이의 핸들을 꺾었다.

“이미 죽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좀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난이도 조절이 망가졌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야, 방금 뭐 스쳐지나가지 않았냐?

-안경 쓴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천수야, 채팅 좀 보자ㅋㅋ

뭐가 됐든 간에 경찰서장을 구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지도에 표시된 지역을 돌면 대충 답이 나올 것이었다.

-뒤! 뒤!

뒤늦게야 채팅을 본 고천수가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저 멀리서 누군가 손을 들고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누구?”

잠시 오토바이를 멈춰 세운 고천수는 그 사람이 올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그렇게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에야 고천수는 눈을 크게 뜨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허영웅?!”

둥근 안경을 쓴, 바보같이 생긴 그 순경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헉헉! 저기요!”

허영웅은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그, 그분 맞죠! 전기 자전거!”

“뭐야, 대체.”

고천수는 황당함을 금할 수 없었다.

어디서 길을 잃고 헤맨 것인지 허영웅의 몸은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었다.

“자전거 주고 가서 엄청 고생했어요! 도와주세요!”

잡힐 것 같았기에 고천수는 오토바이를 약간 앞으로 이동했다.

“가, 가지 마세요!”

가까이 올 때마다 조금씩 더,

“기다려 달라니까요!”

핸들의 스로틀을 당겨서 계속 거리를 벌렸다.

-아니, 인성 미쳤나.ㅋㅋㅋㅋ

-표정은 심각한데 하는 짓이…….

인성이고 뭐고 고천수는 허영웅의 허리를 보며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바지부터 해명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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