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명서 초등학교
“이, 이봐, 저거 뭐야?”
“사체?”
“괴, 괴물의 손가락이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우르르 뒤로 물러섰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고천수는 뒤에 줄로 매달려 있던 빅 헤드의 손가락에 살짝 시선을 던졌다.
-이놈 이거 완전 관종이네.
-손가락이 무슨 전리품이냐?
-사람들 눈깔 튀어나오려는 거 보소.ㅋㅋㅋ
정답이 있었다.
전리품이었다. 다만 의도는 있었다.
“미, 민규는?”
입구를 지키는 경찰과 제일 먼저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웬 중년 남자가 고천수에게 먼저 다가섰다.
“민규?”
듣자마자 누군지 바로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게 꽤나 강렬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던가.
‘아는 사람인가.’
한숨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굳이 숨길 것도 없었다.
“죽었습니다.”
“주, 죽어?”
“네.”
“주, 죽다니 무슨 말인가?”
“말 그대로입니다. 지금은 바빠서 실례하겠습니다.”
고천수는 남자 뒤에 있는 경찰관에게 다가갔다.
“여기, 책임자 계신가요.”
“책임자?”
서로를 돌아보던 경찰들 중에, 한 명이 나와서 고천수 앞에 섰다.
“총책임자라면 따로 있지만, 입구만이라면 접니다.”
무궁화 세 개, 계급은 경정이었다.
“경비교통과 과장 이서준입니다.”
“고천수라고 합니다.”
바로 통성명을 해 오기에 응해 줬다.
이서준은 고천수의 뒤를 흘낏 보며 말했다.
“깜짝 놀랐습니다. 저 사체 부분은 설마 머리 큰 그 녀석 겁니까?”
“네, 알고 계십니까?”
“알다마다요.”
이서준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 때문에 동료들이 몇 죽었습니다.”
“과장님도 마주친 적이 있는 겁니까?”
“마주쳤다기보다는 멀리서 봤죠. 도와주러 가지도 못했습니다.”
이서준이 고천수에게 바로 관심을 보인 건 다름이 아니라,
“그런데…… 어떻게 죽인 겁니까, 저 괴물은?”
그런 무지막지한 녀석을 어떻게 없앴는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역시.’
고천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역시 가져오길 잘했네.’
말로만 전해 봤자 믿지 않을 사람이 있을 것이기에 챙겨 온 것이었다.
“제가 해치웠습니다.”
“예?”
이서준은 바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해치웠…… 다고요?”
“말도 안 돼.”
“그런 괴물을?”
줄 서 있던 사람들도 놀라서 함께 반응했다.
“본 분들이 좀 있나 보네요.”
고천수는 그렇게 말하며 오토바이에 매달려 있는 손가락으로 다가갔다.
“이거.”
고천수가 쭈그려 앉으며 그걸 만지자 사람들이 기겁하며 움찔했다.
“걱정 마세요. 죽은 거니까. 다만 제가 직접 죽이진 않았습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이서준이 다가와 묻는 말에 고천수는 이번엔 자기 머리를 가리켰다.
“스스로 처박고 죽었어요.”
“네? 스, 스스로 처박다니.”
“자세한 건 조금 이따가 얘기해도 되겠습니까?”
고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여태 옷에 묻어 있던 먼지를 뒤늦게 털어냈다.
“저도 여기 들어오려고 온 거라.”
“아.”
이서준은 흠칫하며 줄을 돌아보았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검문을 받고 있었다.
“머, 먼저 하라고 해요.”
“네, 그 괴물을 죽였다잖아!”
“사냥꾼 같은 사람이네! 얼른 넣어요!”
눈치를 보던 시민들이 서둘러 절차를 양보했다.
-이야, 영웅 납셨네.
-솔직히 빅 헤드 자연사한 거 아님?
-맞아, 런닝하다가 죽으면 자연사지.
웃기는 채팅에 웃어 줄 틈도 없었다.
고천수는 경찰의 소지품 검사에 응하다가 순간, 그 이름을 떠올렸다.
‘영웅?’
그러고 보니 먼저 그놈이 여기에 왔을 것이었다.
“저, 과장님.”
“네?”
“혹시 여기 허영웅이라는 경찰 있습니까?”
그러자 이서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허영웅?”
“도중에 만난 파출소 순경인데, 이쪽으로 온다고 했습니다.”
“음…….”
이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곧장 그쪽으로 발령 난 순경인 것 같은데, 그럼 모릅니다. 전산을 살펴보면 정보는 알 수 있겠지만요.”
“지금은 불가능하겠네요. 알겠습니다.”
확인 절차를 마친 고천수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여태 멍하게 있던 중년 남자가 순간 달라붙었다.
“이, 이봐, 잠깐만. 민규는 진짜 죽었나?”
“……죽었다고 했을 텐데요. 혹시 아시는 분인가요?”
반문하자 중년 남자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난 민규가 일하던 중국집의 주방장이네…….”
“아아.”
고천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만나서 같이 오려고 했는데, 저 괴물 때문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랬나. 그럼 오토바이는…….”
“예, 그분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줘서 타고 온 겁니다. 절대 뺏어 타고 온 건 아니니 걱정 마세요.”
증거라면 이게 확실할 것이었다.
“그 분이 마지막으로 해 준 마파두부, 기억에서 잊지 못할 겁니다.”
“아…….”
-이 새끼, 협박으로 얻어먹은 거나 다름없으면서.ㅋㅋㅋㅋ
-민규 지옥 문 박차고 나올 듯.
-진짜 인성ㅋㅋ 오지네.
기억에서 잊지 않는다는 건 진심이었다.
생전 그렇게 맛있는 마파두부는 먹어 본 적이 없으니까.
“민규 씨 덕에 살아 나온 거니 아시는 분이 있다면 대신 감사를 표하고 싶었습니다.”
고천수는 남자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크윽.”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고천수가 손을 떼고 가려고 하자 남자는 그제야 입을 다시 열었다.
“장만철. 난 장만철이네.”
“예?”
“그 녀석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인데, 이름은 서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
“그렇군요.”
고천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전 고천수입니다.”
“고천수…….”
“그럼.”
대화를 끝마치고 고천수는 바로 학교의 본관으로 향했다.
‘허영웅, 여기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더욱 수상해졌다.
“정보창.”
[정보 1 : 명서 초등학교에 있는 경찰서장 보호 필요. 오늘 밤 위기에서 사망 시 도시 치안이 급격히 악화.]
경찰서장의 보호가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오늘밤이었다.
‘벌써 해질 시간이 다 됐는데…….’
그놈이 진짜 빌런이면 곤란했다. 이곳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뭐라도 몰고 오면 큰일이었으니까.
“형님들, 일단 경찰서장부터 만나겠습니다.”
고천수는 운동장에 있는 이들을 헤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근데 그냥 여기서 도망치는 게 더 낫지 않냐?
-그러게. 괜히 꼬리 잡히는 거 아니냐.
그렇지 않았다. 이런 류의 게임에서 도시 치안이 약해진다는 건, 인간 빌런들이 늘어남을 의미했다.
잘못하면 도시를 빠져나가는 데 심각한 장애를 얻을 수도 있었다.
“형님들 함정 장인들이네요.”
이미 이 게임을 자주 봐 왔다는 존재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걱정 마십시오, 재미없지는 않을 테니까.”
“여러분! 식사 제공할 테니 모이세요!”
운동장의 단상에 올라 소리치는 경찰이 있었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대략 150명쯤 될라나…….”
인원을 파악한 고천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정도로 많은 인원을 무력화시키고 경찰서장을 공격할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아, 거기!”
단상에 올라가 있던 경찰이 고천수를 보고 외쳤다.
“식사 드릴 테니까 이쪽으로 오세요! 거기는 본관이에요!”
“됐어요.”
고천수는 손을 살짝 흔들었다. 지금 식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본관 앞으로 걸어가니 이번엔 그 입구를 지키고 있는 문지기 경찰이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시죠?”
“경찰서장을 만나러 왔습니다.”
고천수의 말에 문지기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경찰서장님이요?”
“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게…….”
문지기는 한숨을 쉬었다.
“답변 드리기 곤란합니다.”
“왜죠?”
“답변 드리기…… 곤란하니까요?”
딱 봐도 중요한 정보가 이곳에 있었다. 고천수는 문지기의 허리춤에 있는 무전기를 가리켰다.
“저한테 알려 주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경비교통과 과장님한테 무전해 보세요.”
“네?”
“고천수가 경찰서장님 찾는데, 말해 줘도 되냐고 물어보십시오.”
안 알려 주면 안 알려 주는 대로 정보를 캘 생각이었다.
문지기는 떨떠름한 얼굴로 무전을 걸었다.
“예, 과장님. 아, 알려 주라고요?”
그리고 문지기는 사정을 설명하고 고천수가 원하는 답을 받아왔다.
“과장님이 알려 주라고 하시던데…… 혹시 괴물이라도 잡고 오셨나요?”
“예.”
“아, 어쩐지…….”
문지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능력이 좀 있으신 분은 채용하려고 그랬거든요.”
“무슨 일이 있는데요?”
“경찰서장님이 실종되셨어요.”
실종. 그 단어에 고천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밖에 나가셨다가 없어지셨어요. 돌아온 인원들하고 수색을 계획 중이에요.”
“그랬군요. 수색은 언제 나갈 예정인가요?”
“도와줄 인원 몇 명을 추린 뒤에 갈 거라, 저녁 이후가 될 것 같아요.”
이미 경찰서장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었다.
고천수는 문지기에게 추가로 더 물었다.
“지금 당장 수색을 하지 않는 이유는 뭐죠?”
“그게…… 경찰서장님만 없어지신 상태에서 어느 정도의 인원을 수색에 투입해야 할지 정할 수가 없어서요.”
현재 이 초등학교에 몰려 있는 일반인들의 수는 경찰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문지기는 고천수에게 그러한 사실을 설명했다.
“저희 경찰 인원은 지금 30명이에요. 어중간하죠.”
-엄살은.
-30명이면 충분하지.
-무기도 들고 있을 거 아냐?
그렇지 않았다.
‘30명이라…….’
고천수는 운동장 쪽을 돌아보았다.
총을 든 인원 몇이 많은 수의 일반인을 통제하는 건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권총 외에 전문적인 무기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부족했다. 30명은 수색을 하는 인원과 통제하는 인원으로 나누기에 명백히 모자란 수였다.
“괜찮다면 경찰서장님이 원래 계셨던 장소를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임시 집무실 말입니까? 하지만 들어가셔도…….”
“이제 저한텐 숨길 것 없지 않습니까. 같이 수색을 나갈 건데.”
“그, 그런가.”
또다시 당황한 표정을 짓는 문지기를 고천수가 몰아붙였다.
“시간이 없습니다. 혼자 있을 때 어떻게 움직이실지 알려면 저도 정보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렇네요.”
문지기는 슬쩍 자리를 비켜주며 말했다.
“하긴 사실을 모르는 사람만 막으라고 했으니까요. 올라가서 교장실이라고 적힌 곳에 가 보세요.”
“감사합니다.”
고천수는 그 길로 곧장 본관 안에 발을 옮겼다.
-어리바리하네.
-이렇게 쉽게 열어 줘도 되나?
어차피 임시 집무실이라고 그랬다.
흔적이라고 해 봤자 별로 있는 것도 없을 테고, 뭣보다 수장이 없는 상태니 얼이 빠질 수밖에 없는 거야 당연했다.
“속이 타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적극적인 사람을 말릴 여유가 없을 만큼, 정신이 없는 것이었다.
“솔직히 영혼 없이 매뉴얼대로만 행동하고 있을 걸요?”
머리가 없는 상태에서 핀치에 몰리면 결과야 뻔했다.
“잠깐.”
고천수는 경찰서장 집무실이라고 조악하게 적혀 있는 문 앞에 도착했다.
“집무실이에요. 형님들도 뭐 볼 거 있으면 잘 봐 두세요. 제가 도움 좀 받게.”
채팅창이 ‘싫어ㅋㅋㅋ’으로 가득 찼지만 고천수는 신경 쓰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 거라고는 테이블과 소파 세트랑 집무실 책상뿐이었다. 굳이 더 추가하자면 벽의 게시판 정도.
“그래도…….”
책상 위에는 지도가 한 장 있었다.
빨간색으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는 지역을 보니, 고천수가 집 때문에 다녀왔던 곳 근처였다.
“단서가 있긴 있네.”
왜 거기에 갔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빅 헤드를 해치우고 왔으니 이제 수색에 별 탈은 없을 터.
‘어딘가에 살아 있는 경찰서장만 데려오면…….’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천수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똑똑똑.
“누구십니까?”
고천수는 천천히 걸어가 문 앞에 섰다.
경찰서장이 없는 걸 아는 경찰이라면 문을 두드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 올 수 있는 사람은 자신 외에 경찰밖에 없을 것이었다.
“누구시냐니까.”
『허영웅 순경 찾으셨다면서요?』
문의 불투명하고 작은 창을 통해 경찰복이 흐릿하게 비쳤다.
『답 없으시면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