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8화 (8/224)

008. 빅 헤드

“그러니까…… 명서 초등학교까지 빠르게 돌아갈 수 있다고요?”

끝내주는 마파두부 식사를 마친 고천수는, 참치 캔들을 가방에 챙기면서 물었다.

“네, 길은 빠삭하게 알고 있으니까요.”

“오토바이를 타고 갈 때 말이겠죠?”

“네네.”

그 오토바이가 문제였다.

“오토바이는 어디에 뒀는데요?”

“그게…….”

정민규는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쉬었다.

“여기 근처 세탁방 아시죠? 그쪽 도로 달리다가 넘어졌는데, 괴물들이 달려들어서 버리고 왔어요.”

“하아.”

고장 났을지도 모르는 물건이었다. 고천수는 빠르게 포기하기로 했다.

“저한테 자전거 있으니까 뒤에 타기나 하세요.”

“그걸로 될까요?”

이상한 질문이었다. 고천수는 여기까지 자전거를 타고도 잘만 들어왔으니까.

“별문제는 없겠죠. 왜요. 뭐라도 있습니까?”

“그게…….”

정민규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전 봤거든요. 그거요.”

“네? 뭘요.”

“머리가 엄청 큰 괴물이요.”

그 말에 고천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리 큰 괴물?”

“네. 제가 나가려고 하니까 그 괴물이 미친 듯이 쫓아왔었어요.”

정민규는 소름이 끼치는지 양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 쥐며 부르르 떨었다.

“크으윽! 얼마나 끔찍하게 생겼던지……!”

“으음.”

그건 아직 고천수가 발견하지 못한 몬스터였다.

“어쨌든 피할 수는 있던 거 아닌가요? 살아계신 걸 보면.”

“운이 좋았어요. 그 녀석, 도중에 보이는 다른 괴물들도 집어 먹더라고요. 덕분에 피할 수 있었어요.”

“엄청나게 신경 쓰이네요, 그거.”

고천수는 거실로 나가 집의 부서진 부분들을 가리켰다.

“설마 이것도 그 녀석이 먹은 거려나요?”

“아, 아마도요?”

그것 참 비보가 아닐 수 없었다.

“근데 정민규 씨는 왜 여기로 온 거죠? 그게 여기에 아직 있을지도 모르는데.”

“한바탕 먹고 간 곳이면 없을 테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고천수는 가방끈을 꽉 붙잡았다.

“아무튼 한번 노려지면 피하기 쉽지 않은 녀석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네네. 그래서 제 오토바이가 필요해요.”

있으면 좋겠지만 괜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정민규 씨가 미끼라도 되면 생각해 보죠.”

“네에?! 그, 그건……!”

“그럴 생각 없으면 그만두라고요.”

조용히 빠져나가면 그만이었다. 속도가 얼마나 빠르든지 간에 들키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빅 헤드면 그 대가리 큰 놈 말하는 건가?

-초반부터 겁나 성가신 녀석 나왔네.

튜토리얼이 끝나고 나서부터는 난이도 조절이 정확히 되어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다.

고천수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것 없이 밖으로 나왔다.

“정보창.”

[정보 1 : 명서 초등학교에 있는 경찰서장 보호 필요. 오늘 밤 위기에서 사망 시 도시 치안이 급격히 악화.]

아직 별다른 내용이 추가된 것은 없었다.

명서 초등학교로 가야 하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뭐 해요, 안 오고.”

정보창을 끄고 뒤를 돌아보자 정민규가 부리나케 뛰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네네! 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만 오고 있는 게 아니란 데 있었다.

땡그랑! 땡땡그랑!

-좆됨.

그거야말로 고천수의 심경을 대변해 주는 채팅이었다.

“이런 시발!”

고천수는 자전거에 올라타 바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살려 줘요!”

뒤에서 정민규의 외침이 들렸다. 하지만 고천수는 그를 구하러 가지 않았다.

이미 늦었던 것이다.

“끄아악! 끄아아악!”

정민규를 집어 든 것은 다름 아닌 머리가 집체만 한 인간 형태의 괴물이었다.

“안 돼에에!”

빅 헤드.

총 크기가 6m는 되어 보이는 그 뒤틀린 거인은 정민규를 붙잡고 입에 넣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아악!”

하지만 머리가 커서 결국 정민규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그냥 입을 들이밀었다.

“살려줘!”

그 입에서 도망치며 정민규가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무시무시.

-도와주면 같이 좆된다.

그딴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고천수는 자전거 페달을 빠르게 돌렸다.

시속 25km로 제한된 이 전기 자전거의 자체 동력으로는 도망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런 판단이었다.

쿵쿵.

정민규의 비명이 사그라졌다. 대신 땅을 울리는 진동이 고천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어그로 1 - 09:58]

“망할……!”

페달을 미친 듯이 밟았지만 뒤로 쫓아오는 빅 헤드의 속도도 어마어마했다.

“왜 이렇게 빨라 저거!”

뒤를 살짝 돌아보자 빅 헤드가 거대한 머리를 흔들며 풀어진 눈으로 이쪽을 쫓고 있었다.

“생긴 것도 뭣 같이 생겨가지고는!”

자동차 대시보드에 올려놓는 스프링 인형같이 생긴 게, 빠르기는 정말 빨랐다.

쿵쿵쿵쿵.

진동이 가까워질수록 고천수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

“헉헉.”

현재 기록 누적 효과로 강화된 신체의 수치는 1.07.

어그로 효과로 지금 그 신체의 10%가 추가로 강해져 도합 110%의 출력을 내게 되었다고 해도, 고작일 뿐이었다.

“저딴 걸, 어떻게 상대해!”

헬 프로그 때와는 달랐다. 이번 녀석은 기지로 상대할 수가 없었다.

-뭐 여기까지였던 거지~.

-빅 헤드 식사 장면까진 보고 가자.ㅋㅋㅋ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하지만 이런 얘기를 듣고도 가만히 있을 사람은 없었다.

“시바! 형님들, 판돈 올리십쇼.”

고천수는 빅 헤드를 힐끗거리며 이를 악물었다.

“저 고천수, 쉽게 안 죽습니다.”

이대로 죽을 거면 정민규를 구하는 척이라도 하다가 뒈졌을 것이다.

그를 놔두고 여기까지 온 건,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어떻게…….’

빅 헤드는 크기도 큰 주제에 속도도 빨랐다.

약점이라고 해 봤자 불균형해 보이는 저 몸뿐-.

“-아!”

고천수는 일단 자전거를 골목으로 끌고 들어갔다.

콰아아앙!

빅 헤드가 뒤를 무식하게 따라왔다.

어딘가에 부딪힐 걸 피하지도 않고 꼿꼿하게.

“그래, 새끼야. 어디 한번 해보자!”

고천수는 의도적으로 구조물이 많은 곳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빅 헤드는 머리를 이곳저곳에 살짝 부딪치면서 뒤뚱거렸다.

그때마다 목이 위태위태하게 꺾였다.

“찾았다!”

세탁방 앞. 정민규가 말했던 오토바이가 한 대 넘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어그로 3 - 05:58]

주변에 좀비 두 마리가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미끄러지듯 멈추고 자전거를 버린 뒤,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타다가 넘어졌다고 했으니 키는 확실히 꽂혀 있었다.

“제발……!”

멀쩡해야 도망칠 수 있었다. 시동을 다시 켜고 스로틀을 당겼다.

바퀴가 빠르게 돌아갔다.

부아아아아!

오토바이가 달리기 시작하자 좀비 두 마리가 그대로 쫓아왔다.

크아아아, 커!

하지만 금방 빅 헤드에 짓밟혀서 토마토처럼 터져 버렸다.

빅 헤드는 관심 없다는 듯 계속 고천수만 노렸다.

부우우아아앙!

오토바이의 속도는 점점 높아졌다.

빅 헤드의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직선 구간에 들어서자 완전히 레이싱이 되어 버렸다.

쿵쿵쿵쿵쿵.

진동이 점점 멀어졌다.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오토바이가 속도에서는 더 우위에 있었다.

슥.

그래서 고천수는 스로틀을 살짝 풀어 주었다.

-뭐 하는?

-설마 속도 낮추는 거?

그 말대로 오토바이는 점점 느려졌다.

쿵쿵쿵!

빅 헤드가 손을 뻗을 때 고천수는 다시 스로틀을 확 당겼다.

부아아앙!

빅 헤드의 손이 아슬아슬하게 고천수를 놓쳤다.

다시금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가 반복됐다.

-뭐 하는 겨. 식은땀 흘리면서.

-이 새끼 쫄보면서 하는 짓은 쌉고인물.ㅋㅋㅋㅋ

고천수는 완전히 사색이 된 표정으로, 하지만 빅 헤드와의 술래잡기는 끝내지 않고 계속 도발했다.

‘여기서 끝내면 어차피 또 오는 거잖아……!’

당장 도망만 가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신의 집을 뜯어먹은 저 괴물에게 인과응보를 가르쳐 줘야만 했다.

쿵쿵쿵쿵쿵!

준비는 다 됐다. 고천수는 빅 헤드를 데리고 계속해서 도로를 달렸다.

목적지는-.

“-따라와! 이 새끼야!”

앞에는 암벽을 통과하는 터널이 있었다.

통과 높이는 분명, 5m 미만.

꾸우우우.

여태까지 괴성을 내뱉지 않던 빅 헤드가 몸을 뒤틀며 속도를 더 높였다.

빅 헤드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상관하지 않았다.

고천수는 바로 그 지능을 이미 확인했다.

부우우웅!

고천수의 오토바이가 먼저 터널로 들어갔다.

빅 헤드는 엄청난 속도를 줄이지도 않은 채 그대로 꼿꼿이 터널의 입구로 발을 옮겼다.

터엉!

콰자작!

그다음으로 일어난 건, 충돌음과 함께 빅 헤드의 약한 목이 바스러지는 일이었다.

***

명서 초등학교 앞.

동명의 이름을 쓰고 있는 중국집에서는 돌아오지 않는 직원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민규, 안 오는데?”

“뭔 일 난 거 아닐지 모르겠어.”

주인과 주방장이 서로를 돌아보며 한숨을 쉬었다.

바로 앞 도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다들 초등학교 안으로 들어오세요!”

경찰들이 피난 온 사람들을 초등학교 안으로 들이는 중이었다.

딸랑딸랑.

중국집 안으로 들어선 경찰 한 명이 심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주인과 주방장에게 말했다.

“다들 이제 그만 나오세요. 초등학교 근처로 방호벽을 세울 겁니다.”

“아직 직원 한 명이 오질 않아서요.”

주인이 난감한 표정으로 대꾸하자 경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미 죽은 겁니다. 그만 가시죠.”

“뭐라고?!”

주인은 경찰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떻게 알아! 여기서 오래 일했던 놈이라고!”

“아니, 그건 아는데……!”

“코앞인데 뭐 어때! 좀만 더 기다리다가 가겠다는데!”

그러자 경찰도 이마를 눈썹을 움찔거리며 소리쳤다.

“아니, 그럼 여기 오면 알아서 초등학교로 오겠죠! 예? 방호벽 바깥에 있다가 공격당하셔도 책임 안 집니다!”

“자자.”

주방장이 둘을 말리며 주인에게 말했다

“일단 넘어가자고.”

“뭐?!”

“자네도 알잖아. 그 친구 살 길은 잘 찾아서 오는 거.”

주방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잖아. 초등학교 입구에 서 있으면 우리 보일 테니까, 가자고.”

“……후우.”

너무 흥분한 건 맞았다. 주인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경찰에게 말했다.

“그럼 좋아. 대신 그럼 부탁 좀 하지.”

“뭡니까?”

“올 때 오토바이 타고 올 테니까 오면 말이나 해 주쇼.”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듯 경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좋습니다. 그럼 이제 가시는 거죠?”

“알겠네.”

주인이 경찰을 놓아 주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주방장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경찰에게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이해해 주쇼. 우리끼리는 워낙 친하게 지내서.”

“아, 예.”

“나는 주방에서 음식 좀 챙겨 나가도록 할 테니까, 먼저 가 계시겠소?”

“도중에 다른 데로 빠지거나 그러시진 않겠죠?”

경찰의 우려에 주방장은 헛웃음을 뱉었다.

“뭐, 그럴 이유가 있나. 근데 피난민 모으는 데 엄청 열심인 것 같은데, 윗사람이 신경 쓰시나?”

“말도 마세요.”

이번엔 경찰이 한숨을 쉬었다.

“서장님이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최대한 구하라고 해 놓은 상태여서요. 다들 애쓰고 있습니다.”

“좋은 분이구먼.”

“뭐, 좀 불안하긴 하지만요.”

그 말에 주방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불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알아서 좀 이따 오세요.”

경찰은 그렇게 밖으로 나갔다. 주방장은 잠시 의문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다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가져갈 것은 잔뜩 있었다.

다 팔기도 전에 이런 사태가 일어났으니까.

“말세야, 말세.”

뭐만 일어나면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했지만 진짜 말세가 올 줄은 몰랐다.

수레에 대강 식료품을 싣고 바깥으로 나갔다.

와글와글.

사람들이 경찰의 검문을 받으면서 하나둘씩 초등학교 입구를 통과하고 있었다.

“아, 이쪽으로 오세요!”

아까 보았던 경찰이 손짓했다.

“식료품입니다! 더 빨리 들어갈 수 있게 다들 협조해 주세요!”

그가 다른 사람들을 물려준 덕에 주방장은 더 빠르게 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아, 고맙소.”

주방장은 안내받은 대로 식당을 향해 이동했다.

그러다가 들었다.

“어?”

낯설지 않은 소음을.

부아아아아.

어디선가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그다지 크지는 않았지만 확실했다.

“설마……!”

주방장은 수레를 내팽개치고 다시 입구로 향했다.

거기에는 이제 막 오토바이를 멈춰 세우는 한 명의 남자가 있었다.

“민규야! 살아 있었…….”

하지만 주방장은 그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