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불청객
“-군 부대하고 떠났다고?”
쪽지에는 부모님이 이곳에 들른 부대와 함께 떠났다고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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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들.
우리는 이곳에 들른 군인들과 함께 떠난다.
부디 무사히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마.
ps. 이 부대는 7.5사단 직할대라고 하더구나. 더 많은 걸 적지 못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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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손에 힘이 들어간 고천수는 쪽지를 살짝 구겨 버렸다.
‘7.5사단?’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아들 두고 떠난 거 실화?
-버려졌네.
-7.5사단은 어디여.
필체는 분명 아버지의 것이었지만 내용에는 위화감이 있었다.
고천수는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했다.
‘벌써 떠나셨을 리 없어.’
부모님의 성격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들이 올까 봐 자리를 뜨지 못할 것을 알기에 더 서둘러 온 것이었다.
‘설마 후순위로 밀린 건가?’
키드냅, 즉 납치 이야기 구조와 비슷했다.
중요 인물을 맨 뒤에 구하거나 찾게 하는 루틴인 셈.
이런 식으로 판이 깔린 게임에서는 마냥 조급하게 굴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제기랄.”
고천수는 쪽지를 접어서 품에 넣고 자신의 서랍을 뒤졌다.
“형님들, 보셨죠? 당장은 영문 모를 소리밖에 없어요.”
기껏 여기까지 왔으니 파밍이나 하는 게 나았다.
첫 번째 서랍에서는 손목시계가 나왔다.
톡톡.
건드려도 초침이 움직이지 않았다. 두 번째 서랍에서 나온 약을 갈아 끼워 줬지만 소용이 없어서 다시 내려놓았다.
“다른 건…….”
잡동사니 상자에서 망치를 찾아냈다.
얼른 챙기고 고천수는 부엌으로 향했다.
“배고프니까 뭐라도 먹고 가야겠어요.”
이곳저곳 소리를 치긴 했지만 아직 괴물, 즉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가도 될 것이었다.
-야, 너무 여유 부리는 거 아냐?
-부모님 사라졌는데?
-7.5사단 분명 실험 단체일 듯.
존재들이 하는 소리에 고천수는 헛웃음이 나왔다.
‘선 넘는 놈들 제재할 수도 없고.’
7.5사단이 이 근처에 있는 부대가 아니란 것도 알고, 부모님이 사라진 게 결코 가볍게 치부할 만한 일이 아니란 것도 알았다.
다만 고천수는 어린아이처럼 질질 짜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만난다.’
그렇게 짜여 있기만 하다면 문제는 없었다.
“좋아, 참치는 다 두고 갔어.”
찬장을 열고 찾은 통조림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있을 때였다.
땡그랑!
어디선가 난 소리에 고천수의 고개가 돌아갔다.
“뭐야?”
살짝 중얼거린 고천수는 칼집에 꽂혀 있던 식칼 하나를 빼어 들었다.
분명히 아까 살펴볼 때는 집에 아무도 없었다.
“설마…….”
고천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부엌에서 거실 쪽을 내다봤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땡그랑!
“헉?”
똑같은 소리가 또 들렸다. 고천수는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어디서 나는 거야……!”
땡그랑!
밖이었다. 바깥에서 소리가 나고 있었다.
“망할!”
방으로 다시 돌아가 창문부터 열어젖혔다.
크아아아아!
순간 좀비 한 마리가 팔을 내밀었다.
찌익!
옷소매가 붙잡혀 찢어졌다.
[어그로 1 - 09:58]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고천수는 급하게 창문을 닫고 숨을 골랐다.
“아직은 한 마리인가?”
땡그랑! 땡그랑!
밖에 있는 깡통들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소리가 반복됐다.
한 마리는 아니었다.
-딱 봐도 웨딩카네.
-신혼인데 문 열고 축하나 해 주라고~!
고천수는 거실로 가 창문에 쳐져 있던 커튼 사이를 살폈다.
“하나…… 둘…… 셋.”
일단 보이는 건 다섯이었다. 추가적으로 몇 마리가 더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상대할 수 있나?’
미약하지만 본래 신체가 강화돼 있기도 하고, 열만 어그로를 끌어도 이 몸을 총 출력 200%까지 또 끌어올릴 수 있었다.
“아냐.”
애써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어중간한 능력을 믿을 수는 없었다.
몬스터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열이나 되는 좀비들에게 둘러싸이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무기가 더 필요해……!”
창고 방으로 들어가 공구 상자를 꺼냈다.
거기에는 못 총이 들어 있었다.
-존나 강력한! 대화의 수단!
-이런 거 두고 뭐 했냐.
미안하지만 평소엔 아버지 물건에 손대는 일이 없어 잊었던 것뿐이다.
고천수는 못 총을 들고 안에 들어 있는 못의 개수를 확인했다.
“10개 정도인가…….”
이런 걸로 머리를 정확히 맞추기는 어려웠다.
크아아아!
좀비가 거실로 들어선 소리가 들렸다.
고천수는 일어나 방 문을 닫았다.
쾅쾅쾅!
좀비가 미친 듯이 문을 두드려 댔다.
“왜 여기 와서 지랄이야!”
좀비들이야 언제 어느 때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긴 했지만, 갑자기 여기에 이렇게 몰려드는 건 예상외였다.
“제기랄!”
어쨌거나 일단은 좀비를 상대해야만 했다.
덜컹!
문을 열자 좀비가 달려 들어왔다.
“어딜!”
옆으로 물러서며 고천수는 좀비의 엉덩이를 차 버렸다.
콰당탕!
구석에 처박히는 좀비를 보고 고천수는 다시 문을 닫았다.
“스파링 한판 뜨자 새끼야.”
못 총은 잠시 내려놓았다. 대신 들고 있는 것은 가방에서 꺼낸 망치였다.
-어이! 상대는 맨. 손. 이라구!
-링 위에서 무기를 꺼내들다니, 네 녀석!
저런 게 맨손이면 지뢰밭도 맨땅이다.
고천수는 망치를 높게 치켜세웠다.
크아아아!
좀비가 일어나 달려들자 고천수는 그 망치를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뚝배기!”
크아악!
옆머리를 얻어맞은 좀비가 휘청거렸다.
“더 있어, 인마!”
고천수는 전진하며 망치로 좀비의 이마를 때렸다.
콰직!
좀비는 휘청거리더니 뒤로 나자빠졌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콰직! 콰작!
좀비 한 마리를 끝장내느라 방 안이 온통 지저분해졌다.
고천수는 숨을 크게 내쉰 뒤,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래, 다 박살 내면 되지.”
여기까지 오면서 경험도 쌓였다. 지금은 무기도 있겠다, 겁먹을 게 전혀 없었다.
“하나씩 끌어들여서…….”
그렇게 여유로운 생각을 한 게 화근이었다.
문을 다시 열자 좀비 수마리가 밀고 들어왔다.
[어그로 4 - 06:45]
“이그그극?!”
좀비들에게 밀려서 뒷걸음질 치던 고천수는 순간 움찔하고 이를 악물었다.
140%.
콰작!
“이 집에서!”
콰직!
“나가란!”
꾸적!
“말이야아아!”
각기 머리를 한 대씩 얻어맞은 좀비들이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못 총……!”
고천수는 몸을 날려 못 총을 다시 집어 들었다.
크아아아아!
“뒈져!”
푸슛!
달려오다 대못에 머리가 뚫린 좀비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크어아아!
크아아아!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나머지 두 마리도 고천수에게 달라붙었다.
“으아아아아!”
푸슛! 푸슛! 푸슛!
누워서 몇 발이나 쏘았지만 제대로 적중하지 않았다.
“좀!”
결국 좀비 두 마리가 한 번에 이빨을 들이밀 때, 팔뚝을 얼른 횡으로 세웠다.
목을 팔뚝으로 밀어내는데도 두 마리는 신경도 안 쓰고 고천수의 얼굴을 뜯어먹으려고 했다.
“이제 좀, 저승으로 가자!”
푸슛! 푸슛!
이번엔 단 두 발이면 충분했다.
머리에 아예 들이밀고 쏜 대못에, 두 마리의 좀비가 축 늘어졌다.
-잘 거 아니면 얼른 일어나자.
-또 온다!
고천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망치를 들고 거실로 향했다.
좀비 세 마리가 더 들어와 있었다.
[어그로 7 - 04:52]
“너넨 다 뒈졌다.”
장전된 걸 다 써 버린 못 총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170%의 인간이 든 망치 하나면 충분했다.
“으아아아아아!”
크아아아!
고천수는 가장 먼저 다가온 좀비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크륵?!
강력해진 타격에 좀비의 머리통이 찌그러졌다.
콰당탕!
“자, 다음!”
그러자 차례대로 달려온 나머지 좀비들도 각자 두개골 함몰 진단을 받게 되었다.
크아아악!
바닥에 쓰러져 단말마처럼 괴성을 내지르는 환자를 보며 고천수는 망치를 다시 고쳐 잡았다.
“조용히! 하세요!”
퍽! 퍽! 퍼억!
소란스럽던 거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고천수는 망치를 든 손을 늘어뜨리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후우, 빨리 움직여야겠네.”
반파된 집이다 보니 몬스터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부엌으로 다시 향하던 고천수는 순간 멈칫했다.
덜컹.
그쪽에서 다시금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테이블에서 식사 기다리고 있나 봄.
-ㅋㅋㅋ 혹시 통조림 참치 아니냐?
-과연 누가 식사가 될 것인가…….
고천수는 조심스럽게 부엌으로 접근했다.
망치를 쥔 손에 자연스럽게 힘이 더 들어갔다.
[어그로 7 - 02:13]
어그로가 끌린 숫자가 8로 바뀌는 순간 적이 달려들 것이었다.
‘2분 내로 끝장낸다.’
효과가 남아 있을 때 속전속결로 마무리 지어야 했다.
움찔.
그렇게 부엌에 뛰어든 고천수는 망치를 휘두르지 못하고 멈칫했다.
‘뭐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떨어져 있는 참치 캔 하나가 보이긴 했다.
“뭐……?”
하지만 부엌에 숨을 공간은 없었다.
굳이 찾자면 테이블 밑이 있긴 한데, 거기에 좀비가 들어갈 일은…….
“흐악!”
짧은 비명. 고천수 또한 놀라 물러섰다.
“뭐, 뭐야.”
방금 그건 분명 좀비가 낸 소리가 아니었다.
고천수는 다시 조심스레 테이블 밑으로 시선을 향했다.
거기에는 웬 젊은 남자가 겁을 집어먹은 채 웅크려 있었다.
***
“누구?”
남자는 ‘명서 중국집’이라고 쓰인 티를 입고 있었다.
장갑까지 끼고 있는 것으로 봤을 때 배달원처럼 보였지만, 그건 고천수가 알 바 아니었다.
“누굽니까, 당신?”
고천수가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남자는 마른침을 삼키고 답했다.
“저, 저 밖에서 들어온…….”
-이 새끼였네.
-좀비 몰고 라이딩했나.
고천수는 테이블 다리를 붙잡고 고개를 안으로 들이밀었다.
“정말입니까?”
“예, 예?”
“좀비들 몰고 들어왔냐고요.”
그 말에 남자는 제대로 대꾸하지 못했다.
고천수는 눈썹을 움찔거렸다.
“덕분에 뒈질 뻔했습니다. 똑바로 대답 안 하면 케이블 타이로 깡통 묶어서 내보낼 테니까 입 좀 뻥긋하세요.”
“저, 저저저저 너무 무서워서 그만!”
남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외쳤다.
“그릇 수거하러 왔다가 괴물들이 몰려 와서요! 내내 계속 도망치다가 여기가 보여서……!”
“여기가 왜 보입니까.”
“보, 보인다기보다는 누가 소리치는 게 들렸어요! 그쪽 소리가!”
고천수는 잠시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들렸을 정도면 굳이 이 남자가 아니었더라도 좀비가 몰려들긴 했을 것이다.
-ㅋㅋ 양심에 찔리는 듯.
-그냥 몰아세워. 어차피 어리바리구만ㅋㅋ.
“어쨌든!”
고천수는 남자의 멱살을 붙잡아 끌어냈다.
“여기는 저희 부모님 집이고, 그쪽은 불청객입니다. 나가 주시죠.”
“예?!”
남자는 고천수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아, 안 돼요! 안 돼요!”
“안 되긴 뭐가 안 돼요.”
“밖에는 괴물들이 돌아다닌다고요!”
남자는 고천수에게 호소했다.
“그쪽 실력은 조금 전에 봤어요! 저 좀 도와주시면……!”
“도와주긴 뭘 도와줍니까.”
그러자 남자가 고천수의 손에 뭔가를 쑤셔 넣었다.
“뭐죠, 이건?”
“저희 자장면 집 탕수육 쿠폰인데, 선물이에요. 나중에 주문하실 때 쓰시면…….”
“골 때리네.”
고천수는 쿠폰을 구겨 버리면서 소리쳤다.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쿠폰을 어디다 써요? 예?”
“그, 그러지 말고요.”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 다니는 것도 귀찮은데 혹까지 매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살려 준 거로 만족하고 가시죠. 비켜요.”
남자를 밀어낸 고천수는 다시 부엌 찬장을 열고 뒤적거렸다.
부모님이 남기고 간 게 많았다. 자취방에서 챙기지 못한 것들을 이곳에서 차례차례 가방에 넣었다.
달그락.
그때, 남자가 가스레인지 위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불을 켰다.
“뭐야.”
고천수는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뭐 하는 겁니까?”
“제, 제가 해 드릴게요.”
“예?”
“저 요리할 줄 알거든요.”
남자는 고천수를 쳐다보며 절박한 표정을 지었다.
“저 원래 주방 인원이에요. 배달은 갑자기 인원이 빠져서…….”
“누가 이력 알고 싶대요?”
“배고프시죠?”
남자가 고천수의 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태 많이 싸우면서 오신 거잖아요. 꼬르륵 소리 나요!”
“…….”
“해 드릴 테니 데려가 주세요! 혼자서는 안전한 곳으로 못 갈 것 같아요!”
그러더니 남자는 찬장과 냉장고에서 재료를 끌어 모아 마파두부를 만들기 시작했다.
“……뭐.”
일반적인 마파두부는 아니었다. 프라이팬에 불이 타오르는 장관을 보고 고천수는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았다.
“음.”
-이 새끼 뭐 하냐?
-여태 제대로 못 먹어서 좀 기대하는 듯.
-아니, 진짜 쌍으로 돌았나.ㅋㅋㅋㅋ
“저기, 이름은 뭐죠?”
부드러워진 고천수의 물음에 남자가 화색이 돌며 대답했다.
“정민규요! 명서 초등학교 앞 중국집에서 일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