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6화 (6/224)

006. 지나가는 경찰

-나 말이야?

스위치는 켜졌다.

고천수가 부탁으로 특정 대상을 호출하자, 하나의 채팅로그가 올라왔다.

-나랑 얘기하고 싶다고?

대화명이 없는 채팅방.

하지만 고천수는 지금 대꾸를 한 이가 누구인지를 단박에 눈치 챘다.

“네, 형님. 제 유일한 시청자였던 분 말입니다.”

지금 정상적인 세계에 있지 않다는 건 확실히 깨달았다.

그렇다면 좀 더 확실하게 상황을 납득하고 갈 필요가 있었다.

-다른 시청자 무시하냐!

-우리도 권리가 있다!

-잠깐 진정해 봐.

유일했던 시청자, ‘온리원’은 다른 존재들을 토닥였다.

-알고 싶다잖아.

-알기는 개뿔.

-이미 대충 설명 받았을 거 아냐.

설명. 그딴 건 듣지도 못했다. 고천수는 어느 순간 이런 상황에 내던져졌을 뿐이었다.

-뭐야, 설마 아무 말도 없이 네가 집어 처넣은 거야?

-미친.

-그냥 어벙했던 게 아니라 진짜 안 알려 준 거라고?

존재들은 갑자기 서로 충격과 혼란에 휩싸였다.

-약간도? A little?

-그럼 이 새끼는 여태 어떻게 움직인 거냐?

그야 방송인 본능이었다. 고천수가 멀뚱히 서 있자니 존재들은 헛웃음을 써 내렸다.

-ㅋㅋㅋㅋ 야, 잠만. 이거 대박인데.

-아, 시발. 존나 재밌는 상태였는데 제대로 몰랐어.

-야, 얼간이. 너 진짜 몰랐어?

그렇게 물어 봤자 의미 불명이었다.

-진짜인가 보네. 개쩜.

-우리 놀이터에서 날뛰면서도 그걸 몰랐다고?

-클리어하면 뭐 주는지 알고는 있을라나.

그런 것도 알 리가 없었다.

-그냥 모르게 놔둘까? 얼굴이 존나 웃김.ㅋㅋ

-클리어하면 네가 원하는 대로 세계 재편해 줌.

-아, 이 망할 새끼. 고새 말해 버리네.

잠시 동안 소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온리원이 갑자기 다시 말했다.

-보상은 지금 다른 시청자들이 말한 대로야. 하지만 네가 지금 당장 궁금한 건, 이 세계가 뭐냐는 거겠지.

“……네.”

-실제 네가 살던 세계야. 현실이지. 다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게임 시스템 중 하나인 ‘마이 엑시트(My Exit)’를 적용해서 개변시켰을 뿐이야.

“게임 시스템?”

-그래. 하지만 명심할 게 있어. 이 게임의 플레이어는 너뿐이야. 우린 한 명만 관전하는 걸 좋아하거든. 넌 선택된 주인공이고, 지금 유일하게 우리를 직접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거야.

플레이어는 하나뿐. 고천수가 숨을 삼키며 그 말을 곱씹는 사이 온리원이 설명을 이었다.

-너 외의 사람들은 이 세계의 진실을 몰라. 심지어 다들 게임 설정에 맞게 다시 조형된 NPC가 되었어. 대부분 엑스트라지만, 너에게 도움이나 위협이 될 네임드도 잔뜩 있지.

“NPC라니…….”

-그래도 네가 미리 알고 있던 사람들의 정보는 웬만하면 그대로 유지시켰어. 눈치껏 판단 재료로 써. 그리고 플레이어가 겪는 시련 자체가 재미라 다들 스포일러를 좀 꺼리긴 하지만, 네가 잘 구슬리면 순간순간 시청자들도 진행을 도울 거야.

안심하는 용도로 삼기에는 온리원이 던지는 멘트 하나하나가 너무나 묵직하게 어깨를 짓눌렀다.

-아, 근데 너도 잘 알지? 시청자는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거.

게임 방송을 할 때 들어오는 시청자 중에는 게임 스토리를 잘 꿰고 있는 사람, 어설프게 알고 있는 사람, 아예 모르는데 훈수만 두는 사람, 진짜 모르는 사람, 그 밖에도 아주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긴장하진 말고. 우리도 네가 아는 시청자와 그렇게 다를 건 없으니까.

그 말에 고천수가 마른침을 삼켰다. 하는 짓은 비슷할지 몰라도, 확신하건대 존재의 규격이 달랐다.

‘신 같은…… 존재들인 건가?’

혼란스러운 마음에 고천수가 물으려고 했지만, 온리원은 잔인하게도 게임 클리어를 실패했을 시 따라오는 고통에 대해서 알렸다.

-근데 게임 못 깨면 이 세계는 이대로 흘러가는 거야.

세계는 이미 비틀렸다.

끝내지 못하는 이상, 이게 현실이었던 것이다.

“형님, 대체 정체가 뭐죠.”

-약간 웃기는 질문이네.

온리원은 자애로우면서도 소름끼치는 말을 했다.

-네가 했던 게임에서도, 캐릭터가 그렇게 물었나?

순간 고천수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뭐, 이것만 알아 둬. 난 네 근본 없는 쇼맨십이 좋아.

“그럼…….”

-그래, 마음에 드니까 이렇게 오래 응해 준 거지.

고천수가 1인 방송을 할 때부터 확실히 위압감은 있었다.

보통의 시청자라고 하기에, 온리원은 남달랐다.

항상 고천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천수는 그에게 악의가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온리원은 보상을 주는 것에 철저한 시청자였다.

적든 많든 고천수를 공짜로 다루려고 하지는 않았다.

-너도 잘 알 거야. 나 뒤통수치지는 않는 거.

믿기 힘든 얘기들뿐이라고 하더라도 신뢰를 가질 수 있는 내용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니까 한번 깨 봐. 우리들이 건 약속만큼은, 반드시 지킨다.

최악과 최선의 약속이 동시에 맺어졌다.

고천수는 이 존재들에게 유희를 제공하기 위한 플레이어로 선택된 것이었다.

“백수한테 참 과분한 미션을 주셨네요.”

달리 고를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은 잘 알았다.

종료 불가인 방송에서 스트리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힘껏 발버둥 치길 바랄게. 그게 네 매력이니까.

따릉!

온리원이 대화를 정리하기 시작하자마자 들린 소리가 있었다.

고천수가 고개를 돌리자 멀리서 웬 자전거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한시도 쉴 틈이 없는 걸? 뭐, 죽지는 않겠지.

순간 온리원이 그대로 물러났다. 갑작스러운 끝맺음이었다.

찝찝한 형태였지만 다른 존재들은 도리어 기다렸다는 듯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존나 지루했네. 훈화 말씀인 줄.

-편애가 심한 거 아니냐. 앞으론 적당히 하자.

-야, 근데 저거 아까 그놈인데?

숨을 고르며 서 있는 고천수의 눈에 보이는 건 자전거에 타 있는 순경이었다.

“타이밍 죽이네…….”

기껏 불러내서 애기를 하고 있었는데 방해당한 느낌이었다.

‘뭐, 됐어.’

어차피 이런 불합리에 대한 하소연이나 하자고 호기롭게 말을 건 게 아니었다.

떼써서 되는 게 없는 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충분히 경험했다.

이럴 땐 주먹부터 꽉 쥐고 즉각 현실과 대면해야 하는 법.

따릉따릉!

자전거가 어느새 코앞까지 다다라 있었다.

“저, 저기!”

익숙한 얼굴. 분명 파출소에서 마주쳤던 그 순경, 허영웅은 자전거를 멈춰 세우자마자 입을 열었다.

“쪽지 남기신 분 맞죠?”

“네, 맞는데요.”

그다지 적의는 보이지 않아 고천수가 즉답하자니 오히려 허영웅이 당황했다.

“호, 혹시 어디로 가시나요?”

시작부터 어설픈 질문이었다. 보통 처음 만나면 서로 통성명부터 하는 게 정석이지 않은가.

고천수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모님 집이요.”

“부모님 집이라면 어디…….”

“저기, 잠시만요.”

고천수는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쪽지에는 분명히 안전한 곳으로 가라고 적어 두었다.

쫓아오라고 한 적은 없었다.

만약 같이 가려고 하는 거면 곤란했다. 고천수는 지금 파티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무슨 생각으로 따라오신 건지 먼저 물어봐도 될까요?”

“아, 그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고천수의 반응에 허영웅은 얼굴을 긁적거렸다.

“유치장에 갇혀 있는 사람 때문에 어디 못 가고 있었거든요. 출동한 분들은 돌아오지도 않고…….”

“그래서요?”

“덕분에 이젠 저도 피난해도 될 듯해서요. 근데 갈 곳이 마땅치 않거든요. 통신도 안 터지고.”

그런 걸 일반 시민한테 물어보다니 답도 없었다.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명서 초등학교로 가 보세요.”

“명서 초등학교요?”

“저도 자세히는 못 들었는데 그쪽으로 경찰들이 간다는 것 같았거든요.”

“정말요?”

순수하게 해 주는 말을 다 믿는 걸 보고 고천수는 눈썹을 살짝 움찔거렸다.

“허 순경님, 초면에 좀 그렇지만 충고 하나 할게요.”

“네? 어떤…….”

“너무 다 믿지 마세요.”

유치장에 있는 놈을 버리지 못하고 온 것도 아직 너무 때가 묻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컸다.

고천수는 물건으로 따지면 빈티지인 단계도 오래 전에 지나쳐 있었다.

그냥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악독한 사람들을 많이 경험해 봤던 것이다.

“제가 해 준 말도 곱씹어서 필요하다 싶으시면 소화하세요.”

때 묻지 않은 인간을 보면 고천수는 왠지 억울해졌다.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허영웅은 난감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도 친절하게 쪽지까지 남기고 가셔서…….”

“뭐, 알겠습니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고천수는 명서 초등학교 방향으로 손가락을 뻗었다.

“알겠으니 먼저 가세요. 저는 부모님을 찾고 갈 테니까.”

“제가 도울 일은…….”

“없습니다.”

“타실래요?”

허영웅이 자전거를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일반 자전거도 아니었다.

바퀴에 끼워져 있는 탈부착식 기기를 보니, 전기 자전거였던 것이다.

“네, 그럼 내리세요.”

“아, 아뇨. 아뇨! 뒷자리에 타시라는 거였어요!”

허영웅은 손사래를 쳤다.

“이건 싫으신가요?”

“괜찮긴 한데, 어디까지 같이 가려고요.”

부모님 집은 명서 초등학교와는 거리가 있었다.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제 발로 호구 되려고 왔네.

-이게 바로 그 청. 년. 경찰인가.

-야야, 얘 허리에 권총 찼다.

고천수는 허영웅의 허리춤을 살폈다.

‘음?’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 이거 좀 위험한가?’

서늘함을 느낀 그는 뒤늦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혼자 갈 테니 괜히 저 따라오지 마세요.”

“태워다 드릴 수 있는데요?”

“됐습니다.”

고천수는 매몰차게 돌아서서 혼자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허영웅이 자전거를 타고 슬슬 따라왔다.

“혼자 가시면 위험해요.”

“그럼 내려서 자전거라도 주세요.”

같이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고천수의 요구에 허영웅은 낮게 침음했다.

“도와드린다고 하는데도 그러시니…….”

“도와주고 싶으면 자전거만 달라고요.”

잠시간의 대치가 계속됐다. 허영웅은 말없이 고천수와 시선을 마주보다가 결국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요.”

허영웅은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고천수에게 밀어 주었다.

“타고 가세요.”

“정말로요?”

자전거를 받고도 고천수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허영웅은 주춤거리면서 고천수에게 손짓했다.

“네, 정말 드릴 테니까 타고 가세요.”

“…….”

“안 가시나요?”

“갈 건데, 순경님 먼저 가세요.”

고천수는 결코 먼저 발을 떼지 않았다.

허영웅은 이유를 모르겠는지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천천히 움직였다.

“아, 네……. 그럼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네, 몸조심하시고요.”

“그쪽도요.”

겨우 인사를 나눈 허영웅은 고천수를 남기고 떠나갔다.

고천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뒤늦게 한숨을 쉬었다.

-진짜 쌉호구 같은데 왜 총은 그대로 들려 보내냐?

-도와줄 거면 총도 주세요! 라고 해야지 새꺄!

-허 순경, 10분 안에 뒈지겠네.

“형님들, 진짜 그렇게 생각합니까?”

허영웅의 허리춤을 잘 봤다면 그딴 소리는 하지 못할 것이었다.

“저 놈, 바지가 안 맞았다고요.”

허리춤이 안 맞아서 억지로 벨트로 조인 흔적이 역력했다.

파출소에서 허영웅의 사진도 확인하지 않았으니…….

-아, 슈바, 소름!

-왜왜, 진짜가 아니야? 어?

확답은 할 수 없었다. 자전거를 주고 간 걸 보면 진짜 호구일 가능성도 있었다.

“모르겠네요. 괜히 신경 안 쓰렵니다.”

시야에서 벗어났으니 뭐가 됐든 지금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아, 시바.”

그런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은 고천수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 잡을 수밖에 없었다.

“명서 초등학교로 보내 버렸네…….”

어떤 놈인지도 모르는데 장소를 잘못 추천했다.

“내가 미친다, 진짜.”

고천수는 허영웅이 향한 곳을 다시 쳐다보았다.

지금이라면 쫓아가서 정체를 파헤쳐 볼 수 있었다.

아직은 서로간의 거리가 멀지 않았다.

“잡아? 말아?”

상대는 총을 가지고 있었다.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장난감이 아니라면 지금으로서는 상대하기 어려웠다.

꾹.

팔을 힘을 좀 줘 봤다.

애초의 고천수의 신체 능력을 1이라고 정해 두면 기록 누적 스킬 효과로 강화된 지금의 수치는 1.01이었다.

이런 완력으로는 아무것도 무리할 수 없었다.

“에라이,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자.”

명서 초등학교에는 신분이 확실한 경찰들이 있을 터였다.

부모님을 찾고 그 경찰들과 빠르게 합류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허영웅은 탈것 없이 걷고 있으니, 그다지 조급해 할 필요는 없었다.

“다들 기다리세요.”

고천수는 곧장 자전거를 몰았다.

***

“뭐야.”

하지만 고천수를 기다리고 있던 건 기대하던 광경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부모님이 사는 단독주택에는 도착했다.

하지만 바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 집 과자로 만듦?

-근처에 도로시 있었냐. 회오리 처 맞은 거 보니까.

-ㄴㄴ 상어임. 샤크 스톰.

거대한 무언가가 뜯어먹은 듯, 이빨 자국과 함께 반쯤 사라진 단독주택.

고천수는 잠시 굳어 있다가 재빠르게 뛰어 들어갔다.

“어머니? 아버지?! 천수 왔어요!”

남아 있는 장소를 뒤지며 고천수는 크게 소리쳤다.

“다들 어디에 있어요!”

불행히도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뭐야, 시발……!”

기껏 찾으러 왔더니 두 분 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혹시 몬스터가 잡아갔다고 하면 빨리 쫓아가야 했다.

-이미 먹힌 거 아냐?

-선 넘네. 그냥 미국 갔다고 하자.

잠시 열불이 났지만 화난다고 해서 어찌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고천수는 흔적부터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평소 부모님은 기록을 잘 남기는 편이었다.

TV나 냉장고에 아무 말이나 적어서 남기고는 했으니까.

“없나……!”

평소 포스트잇을 붙이던 장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집이 반파됐을지언정 사람이 당한 흔적도 없었다.

“내 방?”

고천수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떠난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잘 정리돼 있었다.

“찾았다!”

방 안의 책상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 적혀 있는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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