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최단 시간
“신분증?”
남자는 당황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뭐 하려고?”
“그냥 보고 확인이나 해 두려고요. 이름이나 주소 같은 거 보면 좀 믿음이 갈 테니까.”
“아, 그런 거면.”
남자는 자신의 품에서 신분증을 꺼내 고천수에게 건네주었다.
“어디 한번 확인해 봐. 확실히 이 지역 사람이니까.”
“네, 뭐. 그렇네요.”
이름은 유영재. 나이는 서른둘.
대충 내용을 확인한 고천수는 신분증을 다시 돌려주었다.
“찾다가 열쇠 같은 거 나오면 도와드릴게요.”
“아, 진짜? 고마워. 그, 허영웅 순경인가 하는 놈 자리에 가면 있을지 몰라.”
“허영웅 순경?”
“마지막에 여기 남아 있었던 경찰이야.”
그 말에 고천수는 사무 데스크가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유영재라는 이름으로 컴퓨터 파일 검색부터 해 보자니 금방 조서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캬. 그놈 정체 금방 들통 나는 거 보소.
-존나 허술해ㅋㅋㅋㅋ
컴퓨터에서 얻을 건 얻었으니 다시 서랍을 뒤질 때였다.
눈에 보이는 곳은 다 열어 봤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유일하게 허영웅이라는 경찰의 서랍에만 열쇠 꾸러미가 들어 있었다.
“이봐! 찾았어?!”
유치장 쪽에서 외침이 들렸다. 분명 소리치지 말라고 했을 텐데도 사람을 열 받게 하는 걸 보니 어떤 성격인지 알 만했다.
열쇠 꾸러미에는 친절하게 유치장이라고 붙어 있는 열쇠 하나가 포함돼 있었다.
일단 그것만 빼서 따로 뒷주머니에 넣은 채 꾸러미를 가지고 유치장 앞으로 돌아갔다.
“엇! 이봐! 찾은 거야?”
“네. 유치장 표식이 있었으니 이 중에 여기서 내보내 드릴 열쇠가 분명히 있겠죠.”
“줘 봐!”
유영재는 철창 밖으로 손을 내밀며 열쇠 꾸러미를 낚아채려고 했다.
“아, 근데요.”
고천수는 열쇠 꾸러미를 잡지 못하게 하며 물었다.
“제가 함부로 드리면 안 되지 않을까요? 경찰도 아닌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유영재는 황당한 표정으로 손을 휘적거렸다.
“그 녀석들은 다 다른 데로 가 버렸어. 집결지가 생겼다면서 날 버려 두고 갔다니깐.”
“집결지?”
“그, 그래. 명서 초등학교인가. 거기로 갔다고.”
쓸데없이 잘 알고 있었다. 밖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는 것치고는 말이다.
“예, 아무튼 좀 돌아다니다가 도와드릴 테니까, 조용히 하고 계세요.”
“이, 이봐!”
“조용히 하시지 않으면 도움은 없습니다.”
경고를 한 번 해 준 뒤 고천수는 무기고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열쇠 꾸러미의 열쇠를 사용해 보려고 했으나, 맞는 게 없었다.
“하긴 쉬울 리가 없지.”
유치장과 마찬가지로 철창에 가로막혀 있는 무기고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다.
-개가 사료통 보는 것 같음.ㅋㅋㅋ
-보급함이라도 좀 찾아봐. 이런 데 하나씩 있잖아.
그냥 넘길 수 없는 충고였다. 고천수는 바로 쭈그려 앉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게임에서는 대개 시야를 얼마나 넓히느냐가 승패를 갈랐다.
“그렇지.”
그 방식은 여기서도 적용됐다. 시선을 내려 다른 사각지대를 살피니 근처 벽에 구멍이 하나 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손으로 대충 크기를 가늠한 뒤 몸을 집어넣었다.
포복으로 몇 번 기어서 가자니 무기고와 통하는 곳이 보였다.
“예스!”
쾌재를 불렀지만 절망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무기고로 난 구멍은 고작해야 팔만 통과할 수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쾅! 쾅!
주먹으로 조금 쳐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고천수는 쓰라린 고통을 맞보며 손을 털어야 했다.
“후. 기껏 왔는데 아무것도 못 가져가나…….”
애초에 무기만 건져 가려고 이곳에 온 건 아니었지만 아쉽긴 했다.
고천수는 구멍에 눈을 가져가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팔을 안으로 쑥 뻗었다.
달그락.
손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와라…… 좀!”
달그락. 다글다닥.
마침내 끌려온 것의 정체는 바로 곤봉이었다.
“슈밤…….”
기껏 손에 넣은 게 곤봉이라니 실망스러웠지만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곤봉을 사용해 늘어난 리치로 바닥에 또 떨어져 있던 방검복을 손에 넣었다.
괴물들한테 큰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방어력은 손에 넣었다.
“이거면 됐어.”
무기고 바닥에 물건들이 떨어져 있다는 게 심상치 않았다.
이 파출소에서는 분명 무슨 일이 있었다.
방검복을 입고 곤봉을 든 채 유치장으로 돌아가자 유영재가 또 호들갑을 떨었다.
“이봐! 이제 열어 줄 때도 되지 않았어?”
“당신은 이제 슬 눈치 챌 때가 되지 않았어?”
긴급 재난이 발생하면 경범죄자 정도는 진즉에 풀어 줄 수 있다.
게임 말고 이런 잡다한 정보를 공유하는 스트리머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덕분에 고천수는 유영재가 일반 범죄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진즉에 눈치 챘다.
“조서를 보니까 무려 살인미수 혐의로 잡혀 왔던데, 아니라면 아니라고 해 보든가.”
고천수의 말에 유영재는 잠시 시선을 피했다.
그러더니 가쁜 숨을 내쉬며 철창을 세게 쥐어 잡았다.
“아, 아니야! 그냥 겁만 주려고 했을 뿐이야!”
“겁만?”
“나랑 사업 끊으려고 하기에 그냥 겁만 주려고 칼 좀 가져갔을 뿐이라고!”
“그걸 왜 가져가.”
본인이 찔릴 일도 없었다면 진즉에 다 털어놨을 것이었다.
고천수는 한숨을 쉬며 발걸음을 뗐다.
뒤에서는 유영재의 외침이 계속 들렸다.
그건 마치 괴물들을 끌어들이는 경보음과 같았다.
크아아아아아!
뭣도 말하면 온다더니, 돌연 좀비 한 마리가 고천수가 있는 곳까지 달려왔다.
[어그로 1 - 09:59]
갑작스러운 공격에 고천수는 유치장이 있는 곳까지 밀려나 몸을 박았다.
짤랑.
열쇠 꾸러미가 유치장 앞에 떨어졌다.
“이 자식이……!”
고천수는 좀비를 붙잡고 엎치락뒤치락했다.
어그로 발동으로 신체가 아주 약간 더 강해졌지만, 당장 그걸 세세하게 따져 볼 여력은 없었다.
그사이에 유영재는 철창 사이로 손을 뻗어 열쇠 꾸러미를 유치장 안에 끌고 들어갔다.
“유치장……! 열어!”
고천수가 피신처를 확보하기 위해 외쳤으나 유영재는 묘한 쾌감이 깃든 얼굴로 말했다.
“내가, 왜?”
“이 새끼가……!”
고천수는 좀비를 발로 세게 걷어찼다.
그렇게 좀비가 화분에 부딪혀 발버둥 치는 사이 유치장으로 달려갔다.
유영재는 유치장 문에서 떨어지며 미소를 그렸다.
“열어!”
그는 고천수의 외침을 철저하게 즐기고 있었다.
“열어 봐. 어디 열어 보라고.”
그가 조롱의 수위를 높여 가는 동안 고천수는 유치장 문만 붙잡고 얼굴이 사색이 되어 갔다.
그때, 화분에 처박혀 있던 좀비가 일어나 유치장으로 달려왔다.
고천수는 유치장 문을 붙잡고 비명을 지르다가,
덜컹.
순간 열어젖혔다.
“어……?”
유치장 문이 열리자 유영재의 표정이 달라졌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다음 상황이었다.
크아아아아!
“으아아악!”
뛰어들던 좀비가 그대로 유치장 안으로 쏙 들어갔다.
“으악! 으아악!”
유영재는 좀비의 팔에 붙잡혀 벽으로 밀려났다.
고천수는 유치장의 문을 닫아서 잠그며 말했다.
“휴. 열었다. 봤지?”
“이 새끼!”
유영재는 유치장 구석으로 밀리면서 소리쳤다.
“어떻게 한 거야! 이 시발 새끼야!”
빼돌리고 있던 열쇠로 진즉에 문은 땄다.
연기를 조금 했을 뿐이었다.
“사, 살려 줘! 잘못했어! 살려 줘!”
힘이 달리는지 유영재는 비명과 함께 소리쳤다.
“싫어.”
고천수는 담담하게 대꾸하고는 파출소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명은 그를 잠깐도 망설이게 하지 못했다.
-인. 과. 응. 보.
-상. 남. 자.
-(대충 폭발을 등 뒤에 둔 짤)
부스럭.
하지만 나오자마자 들린 소리에 고천수는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니, 쫄보여 강심장이여.ㅋㅋㅋ
-ㅋㅋ 예측이 안 되냐, 이놈은.
빠르게 주위를 살피자 푸른색 제복을 입고 있는 이가 눈에 띄었다.
“……경찰?”
둥근 안경을 쓰고 있는 어리바리한 느낌의 남자로, 딱 봐도 혼자 남겨져 있던 인상이 강했다.
“저기…….”
부르려고 하자 남자는 놀란 표정으로 이내 달아나 버렸다.
“뭐야.”
경찰이 시민을 보고 달아나다니 우스운 일이었다.
유영재가 언급했던 순경이었던 것 같지만 더 이상 확인은 불가능했다.
주변이나 더 둘러보자니 파출소 옆에 자전거 한 대가 보였다.
타고 갈까 했지만 아무래도 쫄보 순경의 것인 듯해서 양심상 끌고 갈 수가 없었다.
다시 경찰서 안에 들어가서 포스트잇에 문구 하나를 적어서 자전거에 붙이고 왔다.
내용은 ‘제가 대신 처리했으니 안전한 곳으로 가세요.’였다.
유영재가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면 더 이상 그럴 일은 없으리라.
[어그로 1 - 종료.]
덕분에 스킬 체험도 끝냈다.
약간이나마 도움이 됐던 힘이 아주 일부만 남기고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고천수가 중얼거렸다.
“찝찝하구먼.”
다른 게 아니었다. 물을 짜내긴 했어도 옷이 아직 젖어 있던 것이다.
마침 근처에 옷가게가 보여서 쇼핑을 하기로 했다.
느긋하게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으니 마네킹이 입고 있던 아웃도어룩으로 바로 갈아입었다. 방검복을 다시 덧입고 곤봉을 든 채 거리를 걸었다.
희한한 일이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하나쯤 있으면 좋으련만.’
이미 갈 사람은 다 어디론가 가 버린 모양새였다.
폰을 열어서 부모님에게 한 번 더 연락을 시도해 보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연락은 닿지 않았다.
“음?”
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앞을 봤을 때였다.
바닥에 초록색 선 하나가 횡으로 그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뭐야, 이건.”
밟게 빛나고 있는 것이 마치 방사선이라도 보는 느낌이었다.
“아 씨.”
정체를 모르니 지나가도 될지 아닐지를 알 수 없었다.
약간 눈치를 보고 있으려니 답답함이 깃든 시청자들로부터 답이 돌아왔다.
-이런 건 또 겁나 조심스럽네.
-쫄보 확정임.
반응을 보니 대충 답은 알 수 있었다.
침을 꼴깍 삼키고 고천수는 발을 뻗어 초록색 선을 넘어갔다.
[튜토리얼 구간을 벗어납니다.]
‘튜토리얼 구간?’
고천수는 놀라며 자신이 지나온 길을 돌아봤다.
‘튜토리얼이라고?’
[지금부터 정보창을 활용하여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최후의 1인까지, 건투를 빕니다.]
문구는 금방 눈앞에서 사라졌다. 고천수는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좆됐네.’
뭔지는 아직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런 패턴은 극단적인 생존 게임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 번의 미션 성공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끝까지 모든 단계를 돌파하는 방식이었다.
‘뭐냐고 대체.’
일단 입으로 발음해 보았다.
“정보창.”
그러자 앞에 스킬창과는 다른 것이 하나 나타났다.
[정보 1 : 명서 초등학교에 있는 경찰서장 보호 필요. 오늘 밤 위기에서 사망 시 도시 치안이 급격히 악화.]
마치 퀘스트와 같은 것이 나타나 있었다.
“하…….”
무시가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랬다간 자신에게 돌아올 후폭풍이 예상이 된다는 게 문제일 뿐.
‘정보 1’이라고 한 것을 봤을 때, 나중에는 더 다양한 정보도 동시에 획득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이제 튜토리얼을 벗어났다니.”
이 세상이 어떤 식으로든 게임일 거라고는 이미 추측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이제 튜토리얼을 통과했다는 말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뚜벅뚜벅.
물론 그게 충격인 것은 그렇다 치고, 고천수는 일단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튜토리얼을 통과했다면 이제부터는 더욱 힘든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지부진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와, 씨바. 나 방금 소름 돋음.
-뭐야, 뭐야. 뭔데.
-얘, 최단 시간 튜토리얼 통과임.
스트리머가 어떤 상황이든 뭐든 기록 갱신에나 신경 쓰는 시청자들은, 웃기지만 지나치게 그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었다.
“후. 형님들.”
이런 불합리는 익숙하다 못해 친근했다.
피할 수 없다면 노답 백수답게 즐긴다. 결심이 선 고천수는 손목으로 코밑을 슥 닦고 말했다.
“지금부터 부탁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밑바닥 스트리머, 고천수.
이제부터 제대로 On Air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