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4화 (4/224)

004. 헬 프로그 (2)

시작은 일단 꼬였다.

골목길을 조심히 빠져나가는 와중, 다른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던 것이다.

“으아아악!”

“살려 줘!”

얼른 큰 길 쪽으로 나가니 헬 프로그가 사람들을 공격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무슨……!”

헬 프로그는 사람을 혀로 꿰어서 당겼다가 그냥 뱉어 내고 있었다.

먹는 것도 아닌 단순한 살육에 불과했다.

“진짜 뭣 같은 놈이네.”

당장에라도 처리하고 싶었지만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헬 프로그의 집중력이 분산되고 있어 유인이 어려웠다.

“그래, 시발. 계획대로만 될 리가 없지.”

다른 사람들이 희생되는 동안 다리 쪽으로 갈 수 있는지를 살폈다.

하지만 우회하는 도중에 헬 프로그가 저기 있는 사람들을 모두 끝장낸다면 도루묵이었다.

어중간한 상황에서 적을 맞게 되는 것만큼 좋지 못한 일도 없었다.

“야아아아아아!”

그래서 소리쳤다.

골목길 입구 안쪽에서 머리만 밖으로 내민 채로.

“여기다아아아!”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시간 낭비를 하고 있을 틈이 없을 뿐이었다.

키르륵?

다행히도 헬 프로그의 관심을 끌었다.

진짜는 이제부터였다.

“후.”

짧게 숨을 끊어 쉬는 순간, 헬 프로그가 걸음을 옮겼다.

“참자, 참자.”

고천수는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헬 프로그의 혀 길이는 10m. 다른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장면을 통해 시각적으로 그 거리가 어떻게 판단되는지도 확인했다.

가능한 가까이에 끌어들여서 아까 전과 비슷하게 뛰어야 했다.

-얘, 정신병원에서 나왔냐?

-석고상 되어 버렸누.ㅋㅋㅋㅋ

-이걸 버틴다고?

무섭긴 하지만 잘못돼서 죽는 건 더 무서운 일이었다.

고천수는 일의 경중을 따지고 인내심을 발휘할 줄은 아는 인물이었다.

“지금이다!”

이러단 피가 안 통하겠다 싶을 정도로 주먹을 꽉 쥐며 버틴 고천수는 순간 달음박질했다.

뒤통수로 혀가 스쳐 간 싸늘한 느낌이 남았다.

“으아아아악!”

그제야 비명 한번 질러 주고 아까 전에 내달렸던 길을 지나갔다.

여기서 왼쪽, 저기서 오른쪽.

긴장 때문에 조금 헷갈리기는 했지만 문제는 없었다.

남은 것은 자신의 대범함을 한 번 더 믿어 보는 일뿐.

타악!

골목을 돌면서 마침내 점프를 시전했다.

아까 전에 사각지대에 깔아 놨던 쓰레기를 뛰어넘은 것이었다.

그대로 더 달려간 고천수는 바닥에 놓여 있던 화염병에 불을 붙였다.

“간다.”

저 멀리 다가오는 괴성 소리를 듣고 높게 화염병을 투척했다.

중요한 건 타이밍.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원하는 결과 따위는 구경도 할 수 없었다.

파창!

화염병이 조금 일찍 바닥에 닿았다.

“젠장.”

일을 망쳤나 싶을 때, 헬 프로그가 나타나 쓰레기 더미에 몸을 박았다.

화르르륵!

지금 막 일어나고 있던 기름 화염에 놈이 둘러싸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키레에에에엑!

헬 프로그가 고통에 발버둥을 쳤지만 아직이었다.

“그 몸뚱이로 벌써 뒈지진 않겠지……!”

고천수는 나머지 화염병에도 모두 불을 붙였다.

남은 것은 투척하는 일뿐이었다.

파창! 파창!

헬 프로그의 몸에 화염병이 몇 개나 더 직격했다.

키레레렉!

헬 프로그가 몇 걸음 내딛으며 고천수에게 혀를 뻗었다.

“헉!”

순간 배를 뒤로 물렸지만 아슬아슬했다.

조금만 살이 더 쪘어도 찔렸을 터.

“이 새끼가……!”

고천수는 다시 화염병을 집어서 헬 프로그에게 던졌다.

파창!

키레에에엑!

온몸이 쓰레기와 기름 화염에 뒤덮이면서 헬 프로그는 고통에 몸을 떨었다.

그 와중에도 혀를 몇 번 앞으로 쏘긴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그에게 닿진 않았다.

“하아하아.”

화염병의 정확도 때문에 멀리 떨어질 수는 없었다.

그러니 도박수나 다름없었지만 손톱만 한 차이로 잡아내고 말았다.

키에엑…….

헬 프로그가 눈을 뒤집어 까며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게…… 환경 오염의 힘이다.”

불과 함께 뻗어 나가는 유독성 연기에 뒤덮인 헬 프로그는 결국 바닥에 철퍼덕 늘어졌다.

-와 씨, 양철 인간인가.

-이렇게 겁 없는 놈 처음 보는 듯.

-마이 엑시트(My Exit)에 이단아가 나타났다?

인정받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시청자가 하나일 때는 몰랐던 다채로움도 느끼고 있었다.

‘근데 뭐야. 마이 엑시트는.’

물어보지 않아도 답은 돌아왔다.

-이단아 정도냐. 이 게임 이렇게 초반에 잘하는 놈 없었어.

-글쎄. 그렇게까지는……

-재미지기는 한 거 맞음.

게임.

그 단어만큼은 고천수에게도 분명히 들렸다.

‘게임이라.’

갑자기 나타난 괴물들과 변해 버린 주변인들.

원래 세상에 덧입혀진 것인지 아예 현실을 모방한 다른 공간인지는 몰라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은 상상을 초월하기는 했다.

‘남의 목숨 가지고 게임이라고 하는 건가?’

헛웃음이 나왔지만 이러한 불합리에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채팅창은 지들 멋대로라 통제가 불가능했다.

다만 이용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난 멍청하게는 안 죽어.’

백수에 밑바닥에서 방송하던 스트리머라고 해서 머저리는 아니었다.

유일한 시청자였던 누군가도 분명 그로 정했다는 소리를 했다.

버텨 내는 만큼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때까지는 오기로라도 살아남을 것이었다.

덥석.

마지막 남은 화염병을 들고 쓰러진 헬 프로그 쪽으로 갔다.

“왤케 역겹냐, 너…….”

타면서 나는 냄새가 심상치 않았다.

불길이 너무 강해서 근처에 있던 철제 쓰레기통을 밀고 왔다.

바퀴가 달려 있는 덕에 조금씩 움직여서 불길을 밀어낼 수 있었다.

“후.”

그렇게 고천수는 여유롭게 헬 프로그를 지나쳐 걸어가다가 흠칫했다.

“어?”

헬 프로그가 있었다. 분명히 방금 전에 해치운 그 헬 프로그가.

“시발?!”

정면이 아니라 측면에서 마주쳤기에 바로 혀에 꿰뚫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시간문제였다. 헬 프로그가 고개를 돌리기 전, 고천수는 급하게 들고 있던 화염병에 불을 붙였다.

키륵?

그리고 헬 프로그가 입을 벌리자마자 화염병을 던져 넣었다.

콰창!

입 안에서 먼저 터진 화염병 때문에 헬 프로그는 혀도 못 내밀고 포효했다.

키레레레게!

고천수는 재빨리 허리띠를 풀어 손에 쥐며 헬 프로그의 등에 올라탔다.

“아오, 진짜아아아아아!”

헬 프로그의 정면에 서면 언제 혀에 꿰뚫릴지 몰랐다.

헬 프로그의 등은 미끄러웠지만 마침 그의 허리띠는 마찰력이 큰 직조벨트였다.

“크으으으윽!”

양손에 쥐어 잡고 버티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로데오 그 자체였다.

키레에에에엑!

버티고 버티고 버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천수는 결국 나가떨어졌다.

“컥?”

위험했다.

헬 프로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고천수와 눈을 마주쳤다.

“아.”

쉭.

헬 프로그에게서 혀가 뻗어 나왔다.

키륵.

하지만 고천수의 옆에 늘어졌을 뿐이었다.

헬 프로그는 몸을 떨다가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와, 이건 운 아니냐?

-딱 재봤다. 10분 버텼다.

-10분?! 운빨이 아닌데?

고천수는 기진맥진해서 바닥에 늘어졌다.

10분이긴 해도 운이 좋은 것은 맞았다.

이 정도의 덩치를 가진 녀석이 그 정도로 죽은 건, 화염병의 불길이 목구멍의 엄한 데로 흘러들었기 때문이리라.

“죽는 줄 알았네…….”

고천수는 숨을 고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황을 살피니 이 헬 프로그는 먼저 죽였던 그놈과는 다른 녀석이었다.

“여러 마리는 역시 곤란해.”

난리가 있던 만큼 다른 개체가 또 올 수도 있었기에 고천수는 발걸음을 옮겼다.

[띠링! 반복된 도발의 성과! 스킬 ‘어그로와 기록 누적’을 확보했습니다!]

“뭐야.”

그때, 뭔가를 얻었다는 알림이 떠올랐다.

-벌써 이걸 건졌나?

-경력직마냥 속전속결이네.

“경력직……?”

백수가 됐던 그에게는 참으로 아픈 단어가 아닐 수 없었다.

“참나.”

그딴 건 상관없고 스킬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이런 것도 있다면 진짜 게임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으니까.

혼란스러웠지만 다시 걸음을 옮겼다. 뭐가 됐든 얻으면 좋은 거고, 갈 길은 계속 가야만 했다.

“스킬창.”

물론 그냥 모른 척할 수는 없어 말을 꺼내 보려니, 네모난 창이 하나 나타났다.

거기에는 방금 획득했다던 스킬이 적혀 있었다.

“허어, 이것 참.”

손으로 만져서 창의 스크롤을 내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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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ill

* 어그로(10분) : 자신을 노리는 몬스터가 많을수록 강해집니다. 마릿수마다 본래의 자신을 기준으로 신체 능력이 10% 추가 상승. 발동하고 나서 종료 시점까지 마릿수는 누적으로 계산됩니다.

* 기록 누적 : 종료된 최고 어그로 기록에서 해당 상승분의 10%는 기본 신체 능력으로 합산됩니다. 즉, 본래의 자신이 강화되며, 이 수치는 기록이 바뀔 때마다 경신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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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장난치는 건가……?”

호랑이굴로 들어가라는 식의 스킬이었다.

관종 스트리머에게 딱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보니까 괜히 진땀만 날 수밖에 없었다.

“흐음.”

일단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스킬창’을 외쳐 꺼 버리고 다리로 향했다.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괜히 지금 활용성을 따질 필요는 없었다.

코앞에 다다르자 처참한 광경을 마주칠 수 있었다.

“사람……. 다 죽었네.”

아까 전에 목격했던 사람들 중 살아 있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걸 보자 상황이 더욱 실감됐다.

‘어떤 세계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야.’

이게 이토록 실감이 난다는 게 문제였다. 부모님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고천수는 바로 다리 위에 올랐다.

다행히도 가는 도중에 새로운 괴물을 만날 일은 없었다.

“젠장.”

피로가 몰려왔다. 쉴 곳이 좀 필요했다.

다리를 건너면서 지도를 펼쳐 보았다.

파출소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여기다.”

공권력이 살아 있다면 여기만큼 증거가 남아 있을 곳이 없었다.

몸이 힘든 김에 겸사겸사 뭐라도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생존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좀 을씨년스러운데?”

그렇게 막상 도착한 파출소는 썩 분위기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경찰차도 없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전부 출동을 나갔다면 이해는 됐다.

고천수는 조심스럽게 파출소의 문 앞으로 향했다.

여기도 전등은 켜져 있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 안을 살폈다.

예상대로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시청에서처럼 뭔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컸다.

책상을 뒤지고 다니던 고천수는 뭔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음?”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자니 기척이 더 커졌다.

-존나 불안한데.

-모 아니면 도여.

우려는 좀 있었지만 파출소에서는 챙길 게 많았다. 무기고도 살펴야 하는 만큼 이대로 그냥 나갈 수는 없었다.

“뭐야.”

그리고 맞닥뜨린 건 전혀 예상외의 상황이었다.

“사람?”

웬 남자 하나가 목격된 것이다.

“엇.”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외쳤다.

“사, 사람이다!”

이쪽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그는 ‘철창’을 손으로 잡은 채 순간 환한 표정을 지었다.

“살았다! 살았다아!”

“닥쳐요!”

고천수는 유치장 앞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다시 낮추며 윽박질렀다.

“지금 여기가 어떤지도 모르는데 소리 지르고 지랄이에요, 지랄이. 죽고 싶어요?”

“죽어? 아 진짜 뒈질 뻔했지.”

남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겨우 지갑에 손 좀 댔다고 날 여기에다 가두고 말이야.”

“갇힐 만했네.”

고천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잘 들어요. 괜히 엄한 거 끌어들여서 죽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있어요, 알겠어요?”

“뭔데. 밖에 진짜 뭔 일 있는 거야?”

남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이었다.

고천수는 그를 놔두고 유치장 앞에 있는 책상 서랍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이, 이봐. 뒤지는 김에 여기 열쇠도 찾아 주는 게 어때. 뭐, 재난이라도 난 거면 서로 돕자고.”

나름 괜찮은 제안이라도 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고천수는 헛웃음을 흘리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신분증 줘 보세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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