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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3화 (3/224)

003. 헬 프로그 (1)

문을 걸어 잠그자 그 앞으로 좀비들이 달려들었다.

크어아!

크아아아!

여기도 유리문이었기 때문에 그리 안전해 보이지는 않았다.

-시장님! 문 열어 주세요!

-만날 이렇게 걸어 잠그실 겁니까!

이 정도는 아직 걸어 잠근 것도 아니었다.

고천수는 비상 레버를 찾아 문 안쪽의 방화벽을 내려 버렸다.

“후.”

시야가 가려져 좀비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위험이 사라졌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고천수는 천천히 걸어가 벽에 걸려 있는 시청의 내부 안내도를 살폈다.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만들어진 건물이었다.

‘왜 없지?’

피신할 수 있는 곳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각 부서가 어디에 위치한다는 정도의 정보밖에 없었다.

바스락.

조금 걸어가자 잔해들이 발에 걸렸다. 난리가 났던 흔적이었다.

‘뭔가 있나?’

중앙 문만 걸어 잠근 것이기 때문에 어딘가로 좀비가 들어올 수도 있었다.

고천수는 천천히 1층을 살폈다.

“음…….”

전등이 전부 들어와 있어서 어둡지는 않지만, 창문은 전부 닫혀 있었다.

사람들이 나가기 직전까지 시청의 모든 곳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럼…….”

잔해는 모두가 이곳에서 도망치면서 남긴 흔적.

애초에 여기엔 피신할 곳 따윈 없었다.

“젠장.”

머리가 아팠다. 그렇다고 주저앉지는 않았다.

전등이 들어온다는 건 아직 전기가 끊기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고천수는 지역 예비군으로서 유사 시 근처 변전소를 지키는 임무가 있었다. 동지들이 현역 부대와 함께 거기로 이동했을 테니 갈 곳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청에 있는 건설도시국 부서로 향해서 자료를 뒤적거렸다.

평소에 말만 들었지 변전소가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멀잖아.”

지도를 확인해 보니 지금 상황에서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한 곳은 아니었다.

‘어차피 나만 갈 수도 없다지만…….’

여기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부모님의 집을 찾아가야 했다.

문제는 거기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냐는 것이었다.

-레알 영혼 나간 표정.

-휴강인지 모르고 학교 나간 아싸 같자너. ㅜㅜ

제대로 된 위로는 없었지만 주목할 만한 점은 있었다.

-근데 이놈은 왜 시장실은 안 가냐?

-그러게. 시장이 여기서 보고 받았겠냐?

번뜩 정신을 차린 고천수는 그 길로 시장실로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시장의 업무 책상에는 여러 가지 자료가 올라와 있었다.

“이건…….”

그중에서 가장 시선이 쏠린 것은 조금 전에 보았던 것과 같은 지도.

다만 ×와 화살표가 가득 그려져 있었다.

딱 봐도 가도 되는 곳과 안 되는 곳을 구분지어 놓은 것이었다.

‘좋아, 챙겨 가…….’

띠디디디딕!

순간 들린 소리에 고천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각 기관에서 지정한 대피 공간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장실에 걸려 있던 TV였다. 책상 위를 만지다가 리모컨을 눌러 버린 것일 터.

심장이 떨어질 뻔했기에 고천수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전 세계에 동시 다발적으로 재난이 속출하고 있으며, 돌발 상황이 많아 향후를 예측하기 힘든 상태입니다. 정부는 최선을 다해 국민을 보호할 것만은 약속드립니다.』

비상 방송이었다. 사람도 없이 목소리만 새어나오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도처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종류의 괴물들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관계 기관의 지시에 따라…….』

고천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존을 위해서는 꾸물대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지도를 챙기고 나가 다른 방에서 백팩 하나를 획득했다.

지하실로 내려가니 구내식당이 있었다.

주로 자판기에 있던 과자나 음료를 챙겨서 가방에 넣고 다시 1층으로 향했다.

창문을 몇 개 살피자니 좀비들이 몰려 있지 않은 곳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빨리빨리.’

조용한 움직임이었지만 걸음만은 서둘렀다.

주차장에 있는 차가 아직도 경보음을 울리고 있으니, 좀비들이 더 몰려들기 전에 빠져나가야 했다.

시청 아래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려니 아파트 단지를 맞닥뜨릴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악!

뭔가가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긴 아냐.’

고천수는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이 많은 쪽이 오히려 눈에 띄기 쉬웠다.

“후욱, 후욱.”

달리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애초에 백수기는 해도 체력 하나는 나쁘지 않았다.

“저건……?”

가다 보니 자동차 판매 지점이 보였다.

일단은 무작정 그 안으로 들어가 봤다.

‘혹시 키만 있으면……!’

서랍이 있을 만한 곳이면 다 뒤지고 다녔다.

하나쯤은 발견될 만하거늘,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덜커덩!

그 와중에 빼 놓았던 서랍이 떨어지는 소리에 고천수는 감전된 것처럼 몸을 움찔했다.

-번개 맞은 줄.

-아, 아까부터 진짜ㅋㅋㅋㅋ

-놀라는 거 귀엽네.

고천수는 채팅창을 보며 중얼거렸다.

“뭔지 모르겠다, 진짜.”

처음 말 걸었을 때 놀려 대기만 하기에 애써 무시하고 있었지만, 역시 신경이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었다.

-뭐, 우리?

-ㅜㅜ 슬프다. 시청자 모르는 척.

-익명성을 훼손하지 마라! 방송이나 잘해라! 우우!

역시 답을 얻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고천수는 혀를 찬 뒤 사무실을 뒤져 진귀한 물건을 하나 찾아냈다.

“이건…….”

전동 킥보드였다. 왜 여기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출퇴근용으로 쓰던 것이라면 납득이 됐다.

바로 나가 킥보드를 타고 이동을 시작했다.

소음도 별로 없는 것이어서 이동용으로 완전히 안성맞춤이었다.

“이쪽으로 가서 다리를 건너면 된다는 거지……?”

지도에서 봤던 길을 기억하고 그쪽으로 킥보드를 몰았다.

지금 부모님 집으로 가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음?”

다리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 몇몇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여기야, 여기!”

“이쪽으로 가자고!”

“서둘러!”

멀쩡한 사람들을 보니 반갑기도 했지만 동시에 불안감이 솟구쳤다.

고천수는 등골이 서늘한 것을 느끼고 서둘러 킥보드를 멈췄다.

그리고 근처에 숨어서 사람들을 바라봤다.

“다들 빨리…… 컥?”

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다. 고천수는 눈을 크게 뜨고 상황을 살폈다.

“뭐, 뭐야. 앞에 방금…… 끄아아악!”

“괴물이다! 도망쳐!”

“꺄아아아악!”

사람들은 무언가에 꽂혀 하나씩 사라져 버렸다.

고천수는 주먹으로 벽을 팍 쳤다. 여기도 안전하지는 않았다.

‘진짜 되는 일이 없네.’

봤던 것부터 떠올렸다. 사람들을 끌고 간 것은 기다란 창 같은 것이었다.

-방금 그거 혀 아니었냐?

-아, 나 뭔지 알겠다.

‘혀? 꼬챙이 같았는데?’

고천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좀 더 살펴보기 위해 고천수가 얼굴을 앞으로 내밀자 반응이 더 쏟아졌다.

-야, 병신아. 그거면 혀 길이만 10m니까 고개 처넣어.

-갑자기 다 아는 척 오지죠. ㅋㅋ

-뭔 다 아는 척이야, 개새꺄.

-저 혀는 회전 잘 안 된다고. 줄자나 다름없어서 정면으로 마주치지만 않으면 된다고. ㅇㅋ?

저들끼리 싸우는 꼴을 보고 고천수는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여기 있으면 안전하다고?’

말만 들어보면 자신이 모습을 보이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 머물러있을 수는 없었다.

고천수는 킥보드를 밀면서 조심스럽게 앞으로 전진했다.

‘약점이…… 있는 거면…….’

반드시 여기를 통과해야 했다. 다른 길로 우회할 수 있지만 시간이 너무 걸렸다.

그렇게 되면 어차피 안전한 곳은 없어질 터.

휘릭!

혀, 라고 한 분홍색 꼬챙이가 순간 앞에서 무언가를 꿰뚫고 가져갔다.

고천수가 멈칫하고 잠시 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괴물이 하나 있었다.

“개구…… 리?”

길이가 3m는 될 법한 이족보행 개구리였다.

눈알이 기괴하게 돌아가고 있는 그 개구리는 곧장 시선을 고천수에게 향했다.

타악!

혀가 날아오는 찰나, 고천수는 바닥을 박차고 골목 사이로 몸을 날렸다.

“크으으윽!”

킥보드가 고천수 대신 박살 났다. 그도 몇 번 구르게 되면서 충격이 가해졌지만 바로 일어나 달렸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다시 마주치면 이쪽이 꼬챙이에 꿰이게 될 수도 있었다.

‘일직선을 피하라는 거지?’

고천수는 한 길로만 달리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다.

키레레레렉!

쫓아오는 괴성을 듣고 새롭게 방향을 잡기를 수 번, 커다란 철제 쓰레기통을 발견하고 고천수는 그 안에 몸을 숨겼다.

키레렉!

근처로 놈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상대할 엄두는 안 나지만 여기까지 유인하기는 했다.

틈을 봐서 좀 이따 다리 앞으로 먼저 가면 분명히 통과할 수 있을 터.

키레레렉!

하지만 어째서인지 놈이 완전히 멀어지질 않았다.

‘설마…….’

일정 범위 이상 움직이지 않는 거면 곤란했다.

여기서 쓰레기통을 열고 나가면 다시 따돌리기는 어려울 게 뻔했다.

탁.

고천수는 품안에 있는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담배는 끊었어도 비상용으로 항시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순순히는 안 죽는다.’

쓰레기통 안에는 가연성 물질이 잔뜩 들어 있었다.

무기가 없는 만큼 화상이나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이 안에서 농성을 해야 했다.

키륵.

놈은 마침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만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왔던 길을 향했다.

고천수에게는 정말이지 짜증 나는 일이었다.

“후.”

일정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개구락지.

상대하기 어려운 것은 맞지만 고천수도 배운 것이 있었다.

“일단 여기까진 온다는 거지.”

한 번 뛴 것으로 길도 외웠다. 맵을 스캔하는 것은 게임 방송인의 기본.

똑같은 시도를 반복하며 이기는 것에도 자신이 있었다.

고천수는 안전을 확인한 뒤 밖으로 나와 쓰레기통의 쓰레기봉투들을 근처 골목의 사각에 몰아놓았다.

기름이 좀 필요했는데 그렇게 멀리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작은 철물점이 보이기에 펌프 기름통과 도구 몇 개를 구한 뒤에 버려진 차 밑에 들어갔다.

연료 게이지 센서를 뜯어내고 그 구멍으로 펌프를 이용해 기름을 쉽게 뽑아냈다.

-뭐 하는 거야?

-얘, 설마……. 진짜 대단한 놈이네.

뽑은 기름은 가져가서 쓰레기봉투와 바닥에 많이 뿌리고, 나머지는 분리수거 쓰레기통에 있던 소주병들에 넣었다.

거기에 심지를 만들어 화염병을 생산하자니 다들 감탄했다.

-그사이에 타개책 찾은 거 아냐.

-헬 프로그 약점까지 파악한 거면 너는 내가 인정한다.

잠시 본 개구리, 헬 프로그는 꼬챙이처럼 펴지는 혀와 달리 피부는 점액질로 야들야들했다.

그건 분명 피부 호흡의 증거. 숨구멍을 막아 버리는 데 이것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덕분이다.’

시끄럽게 떠드는 이놈의 시청자들이 힌트를 준 덕분에 일단 피하고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네.’

관객이 많다는 건 머리가 많다는 것이었다.

걸러 들을 수만 있다면, 이만한 정보 창구도 없었다.

“준비는 마쳤고.”

고천수는 천천히 몸을 풀었다. 긴장한 상태로 달리느라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었다.

최상으로 달리기 위해서는 약간의 스트레칭이 필요했다.

좌우 무릎을 한 번씩 쫙 펴고 일어난 고천수는 다시금 다리 앞으로 향했다.

“어디 한번,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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