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데드 보어
“으아악!”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
“시발!”
불행히도 고천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말이었다.
3마리의 좀비에 둘러싸인 고천수는 당장이라도 케밥이 될 처지였다.
방망이를 휘두르며 겨우 좀비들을 떼어낸 고천수는 길 잃은 얼간이마냥 엉거주춤 움직였다.
“이이이익!”
달라붙은 한 마리와 힘겨루기를 하려니 나머지 두 마리가 달려들었다.
순간 몸을 날려 옆으로 피한 고천수는 실수로 방망이를 놓쳐버렸다.
“안 돼!”
잘 쓰지는 못해도 무기는 무기였다.
얼른 기어가 다시 손에 쥐고 일어나 달려드는 좀비들에게 휘적거렸다.
-애쓴다, 시바. ㅋㅋㅋㅋ
-누가 번트라도 가르쳐줘라.(왈칵)
타격으로 상대하는 것은 어려웠다.
생각을 바꾼 고천수는 바로 야구 방망이를 바닥에 내리쳤다.
콰자작!
거칠게 쪼개진 방망이가 고천수의 손에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자해용이 아니었다.
크아아아아!
좀비들이 차례 없이 한 번에 몰려든다는 점을 이용, 고천수는 쪼개진 방망이로 좀비들의 목을 한 번에 꿰뚫었다.
크욱. 크르루륵.
서로 몸이 꿰인 좀비들이 어정쩡하게 비틀거리다가 넘어졌다.
-이걸 이렇게?
-이 새끼 생각보다 대담한데?
-설렜다, 방금.
좀비들이 서로 엉켜서 움찔대는 동안, 고천수는 옥상 출구로 달려갔다.
계단에서 언제 또 다른 좀비들이 올라올지 몰랐다.
도망쳐야 했다. 고천수는 자취방이 있는 곳을 향해 서둘러 뛰었다.
“제발, 제발.”
3층에 내려와 복도를 살피자 다행히도 좀비가 보이지는 않았다.
고천수는 얼른 도어락을 열고 자신의 자취방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환경을 보자 절로 한숨부터 나왔다.
“하아, 제기랄.”
하지만 금세 정신을 차렸다.
상의부터 새로 찾아 입고 방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상황 때문인지 키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어디 있냐고, 좀!”
늘 두던 데가 있는데 보이질 않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한참을 찾다가 주머니에서 갑자기 묵직한 느낌을 받았다.
“어?”
키가 주머니에 있었다. 휴대폰만 있는 줄 알았더니 착각했던 것이다.
-가스불도 끄고 나가라.
-걱정 마. 형도 요새 건망증 심해. 흑흑.
한숨을 쉰 고천수는 현관으로 가 문구멍으로 밖을 살폈다.
복도에 좀비의 유입은 없었다.
고천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갔다.
건물 밖으로 향하자 그는 자연스럽게 탄식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존나 많네…….”
좀비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살아남으려면 이곳에서 벗어나야 했다.
몸을 낮추고 천천히 건물 뒤편에 있는 주차장으로 가서 스쿠터 한 대를 찾았다.
고천수는 곧장 키를 꽂고 시동을 켰다.
부다다다.
낡은 스쿠터에서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르륵?!
소리에 반응한 좀비들도 몰려 있었다.
고천수는 지체할 것 없이 스로틀을 돌렸다.
스쿠터는 시원하게 앞으로 달려 나갔고-
-쿠당탕!
좀비 한 마리와 부딪친 뒤, 바닥에 쓰러졌다.
“아아아아아!”
고천수는 비명과도 같은 탄식과 함께 스쿠터를 일으켜 세웠다.
물론 그사이에 좀비들도 가까이 몰려왔다.
이대로는 빠져나가는 게 불가능했다.
고천수는 자신의 스쿠터를 버리고 다른 쪽으로 달려 나갔다.
주차장의 구석까지 간 고천수는 다른 오토바이를 찾았다.
물론 찾아봤자 키가 없을 거라는 점에서 절망적이었다.
“아니지……!”
옆에 작은 창고가 있었다. 집주인이 쓰던 곳이었다.
안에 집주인의 오토바이와 키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다행히 가벽으로 된 창고 문은 헐거웠다.
몸으로 들이받고 안으로 들어간 고철수는 곧장 키부터 찾았다.
“키……! 키!”
175cm로 성장이 멈췄을 때도 이렇게 키를 외치진 않았다.
절박함에 하늘이 응답했는지 벽에 있는 선반에서 키를 찾아낼 수 있었다.
고천수는 그 키를 가지고 창고 안에 세워져 있던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이거 튜닝돼있는데?
-폭주족이었냐.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하고 달라서 약간 낯설었지만, 어차피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키로 꽂고 시동을 켠 뒤 부서진 문으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그사이에 이쪽까지 좀비들이 몰려와 있었다.
고천수는 주차장 출구가 아니라 옆에 있던 시민 산책길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부아아앙!
오토바이가 산길을 달리며 마구 튀어 올랐다.
“크윽, 시바.”
산악용 오토바이가 아니라 몰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산책로로 조성되어 있어서 도망칠 만은 했다는 게 다행이었다.
언제 어느 때에 좀비가 나타날지 모르기에 오토바이를 미친 듯이 몰고 가자 어느 순간 산등성에 있는 동네 체육시설에 다다랐다.
크아아아아.
좀비 소리가 들렸다. 긴장하며 주위를 살펴보자 몇 마리의 좀비가 느릿느릿 다가서고 있었다.
-아이고, 어르신들이네.
-효도 한번 해라!
노인 좀비들이었다. 미안한 일이지만 고천수는 누군가에게 효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다면 백수 스트리머로 살지는 않았을 터.
부아아아앙!
다가서는 노인 좀비를 오토바이로 밀어버리며 고천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캬. 망설임 없이 화끈한 거 보소.
-ㅋㅋㅋㅋ 이 새끼 GTA 좀 한 것 같은데?
-존나 무서워 ㅋㅋ
좀비 앞에 양심의 가책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오토바이로 체육시설들 사이를 통과한 고천수는 시청 쪽으로 향하는 내리막길로 향했다.
덜커덩덜커덩.
금방이라도 오토바이가 넘어질 것 같았지만 더욱 불안한 건 그의 심리 상태였다.
‘부모님은……!’
노인들을 보니 나이 든 부모님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여기서는 좀 떨어진 곳에 살고 있기에 당장 실체를 확인하기는 어렵고, 연락이라도 해보아야 했다.
크아아아아.
질리지도 않는지 눈앞에 좀비가 또 출현했다.
하지만 이곳은 내리막길.
밀어서 뛰어넘기에는 아까 전보다 좋은 환경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고천수는 스로틀을 당겼다.
부웅.
그 결과, 실수로 바위를 밟고 높게 뛰어올랐다.
“어?”
방향이 틀어진 오토바이는 길이 아니라 가파른 측면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자, 잠깐! 끄아아악!”
절벽은 아니었지만 오토바이에 맞는 길이 아니었다.
결국 오토바이는 옆으로 굴러버렸고, 고천수는 땅에 쌓여 있던 잎사귀를 씹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덜컥.
어딘가에 오토바이가 걸렸다. 고천수는 홀로 튕겨 나가 작은 계곡 옆에 떨어졌다.
“컥?”
엄청난 충격에 고천수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잠시 동안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몇 분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 숨을 들이 내쉬며 겨우 정신을 차렸을 뿐이었다.
“……망할.”
비틀비틀 걸어가며 상태를 확인했다.
무기가 없었기에 주변에 있던 큰 나뭇가지를 손에 쥔 고천수는 계곡을 따라 걸었다.
부스럭.
예민해진 감각에 고천수는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새가 날아간 것뿐인지 당장 보이는 것은 없었다.
조심스레 폰을 꺼내서 상황을 확인하려고 해봤다.
“아무것도 안 되잖아……”
전화가 걸리질 않았다. 문자 전송 실패란 말은 처음 봤다.
SNS 메신저를 활용해 봤지만 기존에 많이들 쓰던 것은 사용이 되지 않았다.
놀랍게도 되는 게 딱 하나 있었는데, 라인이라는 메신저였다.
“뭐야……. 어떻게 되는 거야, 이건.”
인터넷 포탈도 접속불량이 뜨는 마당에 라인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의 부모님은 그 메신저를 쓰지 않았다.
“아씨, 그러게 진즉에 이거 쓰라니까. 왜 다 안 쓰냐고!”
답답함에 머리를 쥐어짰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메시지는 보내진다고 해도 상대 쪽에서 수신이 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부스럭.
다시 한번 들린 소리에 고천수는 고개를 돌렸다.
멧돼지였다.
“아, 난 또…….”
좀비보단 낫다며 안심하던 고천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쪽을 보고 있는 멧돼지의 눈이 유달리 붉게 충혈되어 있던 것이다.
“설마…….”
-데드 보어 떴다!
-로드킬하더니 로드킬 당하게 생겼네.ㅋㅋㅋㅋ
-뛰어, 얼간아! 뛰어!
주춤대던 고천수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데드 보어를 보며 빠르게 돌아섰다.
“으어아아아아!”
꾸에에에에엑!
데드 보어가 폭주 기관차처럼 뛰어왔다.
고천수는 공기 풍선처럼 휘적거리며 계곡 길을 따라 뛰었다.
첨벙첨벙!
도중에 물에 뛰어들어 데드 보어의 속도를 늦추려고 했지만, 오산이었다.
“아나, 시발!”
데드 보어에게 그런 낮은 책략은 전혀 유효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천수만 속도가 느려졌던 것이다.
-옘병. ㅋㅋㅋ
-산짐승 출신한테 그딴 게 통하겠냐, 인간아.
판단미스였지만 만회할 기회는 있었다.
하류 구간에 갑자기 물이 깊어지는 출입 금지 지역이 있었다.
“따라와! 따라오라고!”
일부러 데드 보어를 도발하며 금지 구역까지 들어갔다.
그리고 근처에 말뚝으로 박혀 있던 비상용 밧줄을 풀어서 몸에 메고, 튜브를 찾아 품에 낀 채 일부러 깊은 곳에 뛰어들었다.
스르륵.
소용돌이 같은 물살이 몸을 휘감는 게 느껴졌다.
공포심이 심장을 옥죄었지만 지금은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꾸에에에에엑!
멍청한 데드 보어는 그대로 고천수가 있는 쪽으로 뛰어들었다.
“제발…… 제발……!”
데드 보어는 물살을 이기고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 남은 거리는 고작 1m 남짓이었다.
“으아아아아악!”
버둥거리며 데드 보어에게 물장구 공격을 먹이는 순간이었다.
데드 보어가 갑자기 밑으로 끌려들어갔다.
꾸억…….
발버둥 치던 데드 보어의 몸이 소용돌이에 올라탔다.
꾸르르.
물속에서도 미쳐버린 식탐에 고천수의 발목을 물어버리려고 했다.
그때마다 고천수는 발을 들어 올려 어떻게든 공격을 피해냈다.
꾸르르륵…….
결국 데드 보어는 깊은 수심 속으로 끌려들어가 버렸다.
“하, 하아아.”
고천수는 그제야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야, 이거…….
-좀 감탄했다.
-판단력 오졌다.
고천수는 밧줄을 천천히 끌어당겨 물 위로 올라왔다.
“하아하아.”
온몸이 물에 젖었더니 더 힘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천수는 튜브를 벗고 밧줄을 푼 뒤, 옷의 물을 짜내서 다시 입고 고목 옆에 몸을 눕혔다.
크아아아아…….
“아, 망할. 진짜 돌아버리겠네.”
산 위에서 만났던 좀비들이 내려오는 소리였다.
할 수 없이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그가 알기로 시청에 재난 시 피난구역이 마련되어 있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 기억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곳으로 향해야 했다.
몸을 피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공공장소가 거기뿐이었다.
“응?”
내려가다가 공기 펌프기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노즐의 끝에 있는 손잡이형 밸브가 주유기처럼 생긴 물건으로,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몸에 붙은 것을 털어내라고 설치해둔 것이었다.
크아아아아!
“으악!”
갑자기 나타난 좀비에 고천수는 펌프기의 공기를 바로 쏴버렸다.
치익!!!
순간 얼굴 피부가 일렁인 좀비가 잠시 주춤거렸지만, 그뿐이었다.
크아아아아아!
“쫌!”
달려드는 좀비의 입에 밸브를 쑤셔 넣고 공기를 미친 듯이 쏘아댔다.
치익! 치이이익!
밸브와 함께 그의 손을 씹으려는 좀비가 압축되어 있던 공기에 밀려 번번이 공격에 실패했다.
“꺼지라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뒤, 고천수는 바닥에서 일어나려는 좀비의 입에 밸브를 끼워 넣었다.
치이이이익!
크륵, 크르우으으윽!
열어서 고정해둔 상태의 밸브 때문에 좀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발버둥 쳤다.
-번지점프 간접 체험. ㅋㅋㅋㅋ
-이 집 공기 맛집이네.
좀비가 공기나 처먹고 있을 때가 기회였다. 고천수는 빠르게 장소를 벗어났다.
“헉, 헉…….”
군대에서도 이렇게 많이 뛰어본 적은 없었다.
여러모로 한계가 찾아올 때쯤, 아래에 있는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청, 시청이다……!”
산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괜찮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뭔가 이거…….”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지키고 있으면 누군가 있어야 할 텐데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왜 아무도 없는 거야.”
시청 주차장까지 다다랐지만 몇몇 개의 차들만 보일 뿐이었다.
심지어 남아 있는 차들은 문이 대부분 열려 있었다.
피가 흩뿌려져 있는 것이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쾅!
순간 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웬 좀비 하나가 차에 몸을 처박고 쓰러진 상태였다.
아무래도 고천수를 보고 달려오다가 흥분해서 저런 모양새가 된 듯했다.
문제는,
이잉이잉이잉이잉!
부딪친 차에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는 것.
“나한테 왜 이러냐, 진짜!”
고천수는 절망에 빠져 소리치며 시청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