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62화 (262/263)

< 출연할까요? (3)>

[디플러스, 한국 진출 선언! J&J와 전략적 파트너 맺어···.]

글로벌 OTT 서비스인 넷플릭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디플러스가 드디어 한국에 상륙한다. 차후 국내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고 있다. 항간에 국내의 협력사가 없어서 한국의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가 힘들다는 것이 디플러스의 약점으로 지적되었으나, J&J 스튜디오와 첫 번째 협력을 맺은 것으로 밝혀졌다. J&J는 몇 년간 드라마와 영화를 공급한다는 계획으로···. <중략>

[나유정, 마블링 시네마틱 무비에 히어로로 캐스팅!]

배우 나유정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블링 시네마틱 무비에 캐스팅되었다. 그녀가 연기할 캐릭터는 최근 코믹스에 등장한 케이팝 걸그룹 히어로인 ‘루시드 파이어’다. 나유정은 네미시스의 정유나 캐릭터로 ‘루시드 파이어’를 연기할 예정이라고 전해졌다. <중략>

[나유정이 연기할 마블링 코믹스의 ‘루시드 파이어’는 어떤 캐릭터?]

[아시아 넘버 원 여배우 나유정! 드디어 할리우드 진출!]

[J&J의 귀환소녀 시리즈가 마블링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포함된다. 한국형 판타지 웹소설 히어로의 등장?]

“휴···. 난리네 난리야.”

디플러스의 한국 진출 선언 이후 우리 회사와 협력 소식은 커다란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인터넷에는 키워 준 TVM과 넷플릭을 배신했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등장했다.

“키워 주긴 누가 키워 줘? 도움을 주면 줬지. 내 참 어이가 없어서···.”

그 기사를 봤는지 화들짝 놀란 넷플릭의 이민영 총괄 디렉터의 전화가 이어졌다. 하지만 넷플릭에도 그 정도의 콘텐츠를 공급할 거라는 내 답변에 쥐죽은 듯 아무런 소리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언론에 우리와 드라마 장기 공급 계약을 맺었다는 기사를 배포하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었다.

[J&J 스튜디오 넷플릭에도 드라마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

확실히 국내에 라이벌이 생기니 넷플릭도 조심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제작팀도 빨리 충원해야 하고···. 여기서 내가 외교를 잘 해야 하는데···. 꼼짝없이 매니저를 하게 생겼으니···.’

나는 지금 유정 씨를 데리러 그녀의 마포 집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지하에 주차하려는데 유정 씨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덜컥···.

그녀가 차 안으로 들어와 한마디를 했다.

“이 매니저? 늦었네요. 오늘 촬영 첫날인데 이럴 거예요?”

“아···. 죄송. 회사에서 일 좀 보느라···. 지금 가도 시간이 많으니 괜찮습니다.”

“얼른 가요.”

오랜만에 밴을 운전하려니 영 어색했다.

“어휴···. 이놈의 밴···.”

차에 괜한 화풀이를 하고 계룡 세트장으로 출발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신나게 밟고 있었는데···.

“이 매니저? 가만 생각해 보니 커피를 놓고 왔네요. 근처 휴게소에 들러서 커피 좀 사죠.”

“거참···. 자꾸 매니저! 매니저! 그럴 거예요?”

“이 매니저. 자꾸 선 넘을 거예요? 나는 배우, 당신은 매니저예요. 명심하세요.”

미치겠네. 아무래도 그녀는 어제부터 이 역할 놀이에 재미를 들린 것 같았다.

“그럼 나 배우님은 남자 친구도 없습니까?”

“지금 빙하기예요.”

“냉각기겠죠.”

“어머. 말이 잘못 나왔어요. 설마 못 배운 여자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설마요. 나 배우님은 영어도 잘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요. ‘어메리카’에서 유학했습니다.”

“아주 잘나셨고요.”

“아무렴요.”

“큭···.”

“어머? 저기 앞에 휴게소가 보이네요. 들르는 김에 군것질도 좀 할까요?”

“촬영장 근처에 식당 예약해 놨는데 군것질은 좀 참으시죠.”

“여기 소떡소떡인가? 그게 유명하다던데 얼른 가서 사 오세요.”

나유정은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자기 말만 하고 있었다.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차에서 내려 아메리카노 두 잔과 소떡소떡을 사 들고 돌아왔다. 평일이라 그런지 휴게소에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상당히 한가했다.

나는 차 문을 열고 유정 씨에게 커피를 건네주었다.

“잠시 바람 좀 쐴래요? 사람도 별로 없고 날씨도 좋네요.”

그녀는 피식 웃더니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여기요. 별로 맛도 없게 생겼는데···.”

“이 매니저가 뭘 모르시네. 저번에 TV를 보니까 연자 씨가 엄청 맛있게 드시더라고요. 소스도 그렇고 떡볶이랑 비슷하니까 한번 먹어 보고 싶었어요.”

“두 개 사 왔으니 많이 드세요.”

나는 소떡을 그녀에게 건넨 후 탁 트인 휴게소를 보며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빨았다.

“오늘은 덥지도 않고 날씨가 좋네요.”

“어? 아니, 이 작가! 이게 무슨 일이야.”

“응?”

누군가 우리를 알아본 것인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고개를 돌려보니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김지섭이 반가운 얼굴로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김지섭은 얼마 전 예능에서 인터뷰를 해 줬고 내 드라마에 카메오로 출연까지 해서 인연이 있는 몇 안 되는 연예인이자 최고의 예능인이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이게 무슨 우연이야.”

“아, 안녕하세요. 여긴 어쩐 일로···.”

“딱 봐도 ‘뛰는 녀석들’ 방송 촬영 중이잖아요.”

“아···.”

옷을 보니 주말마다 방송되는 예능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오빠. 안녕하세요.”

“아이고···. 유정 씨도 같이 계셨네.”

차 반대편에 있던 유정 씨가 얼굴을 내밀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어떻게 휴게소에서 이렇게 만날 수가 있죠? 진짜 우연이네.”

유정 씨도 예능 출연을 많이 했었고 저번에는 같이 드라마도 찍어서 그런지 지섭 씨를 만나 반가운 심정인 듯했다.

김지섭은 뒤를 돌아보고 우리를 찍고 있는 카메라맨들에게 촬영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두 분 데이트하는데 말도 하지 않고 영상을 찍고 있었네요.”

“괜찮아요. 오빠. 뭐···. 저희가 몰래 사귀는 것도 아니고요.”

“아, 유정아! 정말이야? 이거 방송에 나가도 되겠어?”

‘방송?’

김지섭은 원래 유정 씨와 친한지 카메라가 꺼지자 말을 편하게 하고 있었다.

“저번에 드라마도 출연해 주셨는데 당연하죠.”

나는 살짝 어색한 느낌이 들었지만, 유정 씨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쿨한 모습을 보여 줬다.

“이 매니저! 괜찮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리며 나유정과 김지섭을 쳐다보았다. 잘못하면 내가 이러고 다니는 게 전국에 소문이 쫙 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무, 물론 괜찮죠. 괜찮고 말고요.”

“역시! 우리 이 작가님이 의리가 있으셔.”

김지섭도 꽤 괜찮은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지 표정이 아주 밝아졌다.

그렇게 우리는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동안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다. 촬영 스태프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마이크를 채워 주는 사이 MBS의 인기 예능 ‘뛰는 녀석들’ 멤버들이 우리 주위로 모여들었다.

“이 작가님. 긴장하지 마세요. 방송에도 많이 나오신 분이 왜 그렇게 얼굴이 굳으셨어요.”

“아니···. 좀 황당해서요.”

“세상일이란 게 다 그런 거죠. 어차피 두 분은 이제 국민 커플 아닙니까?”

“국민 커플요? 말도 안 돼.”

“맞아요. 그동안 기사가 얼마나 많이 나왔습니까!”

‘뛰는 녀석들’ 패널들도 김지섭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자! 촬영 들어갑니다.”

조감독의 외침에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아니! 두 분은 지금 이 시간에 어딜 가시는 겁니까? 혹시 회사를 땡땡이치고 평일 데이트를 즐기시는 거 아닙니까?”

“그게 아니고요. 오늘 유정 씨가 계룡시에 있는 세트장에서 드라마 촬영이 있는데 그쪽으로 가는 길입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 어쩐지···. 그 요즘 장안의 화제인 시즌 4 말씀이시죠? 거기 유정 씨가 출연하신다고···.”

“네. 맞습니다.”

“그런데 왜 이 작가님이 직접 데려다주시는 거죠? 매니저는 어쩌구요?”

“···으음···. 그게 말이죠.”

김지섭이 송곳처럼 아픈 곳을 찌르고 들어오자 말문이 살짝 막혔다.

“그건 제가 말씀드릴게요. 앞으로 이준형 작가가 제 전담 매니저를 해 주기로 했습니다.”

‘크흑···. 기어이···.’

유정 씨가 바로 끼어들어 사실을 폭로하고 말았다.

“아니! 회사의 대표님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사귄다고 발표하고 여자 친구 수발을 들러 다니시네.”

“스위트 가이네요. 스위트 가이.”

‘뛰는 녀석들’의 여성 멤버가 적절하게 대화에 끼어들어 다행이었다.

그나마 노예급 매니저에서 스위트 가이로 격상되었으니까···.

“이 작가님. 옆에서 스위트 가이라고 하는데 이거 인정하십니까?”

“아···. 그게···.”

“스위트 가이가 아니라 스위트포테이토 가이겠지.”

멤버 중 누군가가 개그랍시고 상당히 거슬리는 발언을 했다.

“야! 스위트포테이토라니···. 실례잖아.”

“아니 솔직히 ‘스위트포테이토 가이’ = ‘고구마남’ 맞잖아요.”

“아하하···.”

“그렇게 설명해 주니까 이해가 가네. 맞네. 고구마남. 하하···.”

나만 빼고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왜 고구마남입니까?”

“유정 씨···. 이 작가님이 이렇게 묻는데 고구마남이 아닙니까? 그간 해 왔던 걸 전 국민이 아는데 말이죠.”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이러는 거야!

나는 난감하기 그지없었지만 유정 씨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제발 좋은 말 좀 해 주길···.

“스위트 가이도 맞고 고구마남도 맞아요.”

“뭔가 애매한 답변인데요. 그래도 남자 친구 이미지도 생각해서 적절하게 말씀하신 것 같네요.”

우리는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분은 연애 초기인데 이렇게 일만 해서 어떻게 합니까? 듣자 하니 할리우드 영화에도 진출하신다고···.”

“아! 그거 때문에 준형 씨가 당분간 제 전담 매니저를 해 준다고 하셨어요.”

“너무 바빠서 데이트할 시간이 없어서 그러는 거예요?”

“네. 맞아요.”

“뭐야. 스위트 가이 맞네.”

유정 씨의 말에 겨우 고구마남 이미지를 벗어나는 모양이었다.

‘휴···.’

“제가 예전에 매니저를 할 때 정말로 유정 씨를 업어 키우지 않았습니까?”

이제 살짝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내 입에서도 농담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하하···. 본인이 직접 업어 키운 배우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럼요. 제가 작품에서 유정 씨 캐릭터를 얼마나 공들여서 설정했는데요.”

“뭐야. 일편단심이네. 짝사랑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나 보죠?”

“에?”

왜 이렇게 대화가 진행되는 걸까?

모두가 내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유정 씨까지도···.

후···.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사실은 그 전에···.”

“와! 잠깐만! 이거 뭐야. 유정 씨, 이거 알고 있었어요? 매니저가 되기 전부터 좋아했다잖아요.”

김지섭이 절묘한 타이밍에 내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유정 씨는 카메라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와! 완전 성공한 오덕후네.”

뒤에 있는 멤버들까지 신나게 거들고 있었다.

어이어이! 왜 그게 그렇게 말이 되는 거야? 사실은 그 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같이 지내면서 호감을 느꼈다고 말하려 했단 말이다!

나는 급격히 진행되는 아무 말 배틀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었다. 사실 매니저를 하기 전에는 유정 씨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그냥 연기 잘하는 예쁜 배우였을 뿐. 그녀의 매니저를 담당하게 되었을 때도 그냥 일처럼 대했으니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아마 그녀의 본모습을 보고 호감을 느끼게 된 게 아니었을까?

“지금, 이 작가님이 정신이 나갔네. 나갔어.”

“아, 아니···. 이런 촬영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하하···. 이 작가님이 핑계를 너무 못 대시네요. 속마음이 막 들켜 버렸잖아요. 원래부터 나유정 씨의 팬이었는데 결국은 성공했으니까요. 이거 스토리가 좋아서 영화로 만들어도 되겠는데요?”

나를 도와주던 여성 멤버조차 나에게 등을 돌린 것 같았다. 아니 애초부터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지금 J&J에서 이런 비슷한 스토리로 드라마를 찍고 있지 않나요?”

역시 연예계 사정에 정통한 김지섭 씨였다.

“아···. 예. 맞습니다.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이라고···.”

“뭐야. 제목부터 두 분 스토리를 드라마로 쓴 거 아니에요?”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우연히···.”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MBS 드라마입니다. 언제부터 방영 예정이죠?”

“가, 가을 정도에 방송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당황스러웠지만 나도 드라마 홍보를 잊지 않았다. 다행히 ‘뛰는 녀석들’이 MBS의 예능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방송국 프로그램이었다면 홍보도 못 했을 것이다.

“뭐야. 얼마 안 남았네.”

멤버들이 흥미로운 듯 뒤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자! 시청자 여러분. 가을···. 그러니까 9월쯤 방송이 된다는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 꼭 시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우연히 만난 나유정, 이준형 커플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렇게 졸지에 회사도 내팽개치고 여자 친구 매니저를 자처하는 성공한 오덕후가 되어 버렸다.

씁쓸하게 웃은 뒤 고개를 돌려 보니 유정 씨가 눈을 가늘게 뜨고 사악하게 웃고 있었다.

‘하아···. 못 말려 진짜···.’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안 돼! 민주야! 이리 와! 얼른!”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세 살쯤 된 귀여운 어린아이가 아장아장 걸으며 유정 씨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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