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재 영입 (2)
김소윤은 아직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말씀하시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2의 인생을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말 그대로입니다. 애써 연기자로 본업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그, 그럼 혹시 가수 활동을 더 하라는 말씀이신지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정확히는 그룹 활동을 하셔야 합니다.”
“네? 그룹 활동이요?”
김소윤은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윤 씨는 다솜, 윤하영 씨와 함께 그룹으로 활동하게 될 겁니다.”
“다솜, 윤하영 씨라면 러브원으로 나오고 있지 않나요?”
“네. 정확히 말하면 프로젝트 그룹이죠. 솔직히 그 두 명은 그렇게 프로젝트 그룹으로 활동하기엔 음악적 역량이 아까워요. 이번 컴백에서도 딱 2주밖에 활동을 못 했으니까요.”
“그럼 두 분을 아예 빼서 다른 그룹으로 데뷔를 시키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블랙소울 혜수나 식스엔젤 윤지 씨는 스케줄을 맞추기 힘들더군요. 특히 혜수는 촬영할 시간조차 부족한 게 현실이라 점점 더 곤란해지고 있습니다.”
“저야 너무 좋지만···. 제가 그룹에 잘 어울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룹 이야기를 꺼내면 그녀가 당장 수락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약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뭐 문제 있습니까? 소윤 씨라면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데요. 혹시 다솜이와 하영이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하영이는 걸그룹 명가 JB 엔터테인먼트에서 메인 보컬로 데뷔할 뻔한 인재였고 다솜은 아시다시피 전 프렐류드의 메인 보컬입니다.”
“그,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정말 어울리는 사람인지 몰라서요.”
김소윤은 고개를 떨구었고 그녀의 시선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자신감이 뚝 떨어진 모습이랄까?
‘허허···. 미치겠네. 하긴 7년간 주구장창 망하기만 했으니 있던 자신감도 바닥을 뚫고 들어가 지하실, 아니 하수도까지 처박혔을 수도···.’
불안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살짝 한숨이 나왔지만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자존감을 되찾는 게 먼저인가?’
“소윤 씨. 제가 사람을 보는 눈이 범상치 않다는 소리는 들어보셨죠?”
“네. 방송에서 몇 번 봤습니다.”
“일단 7년 전 방송에서 이미 스타성을 입증해서 제 까다로운 눈을 통과하셨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얼마나 더 발전했을까요? 아! 물론 부담을 주려는 건 아닙니다. 괜한 걱정 하지 마세요.”
“······.”
“보자···. 일단 드라마에서 가수 겸 연기자 ‘한서연’ 역할을 맡으셨으니 춤과 노래는 기본이겠죠? 그냥 점검차 가볍게 한번 테스트해 볼게요. 괜찮죠?”
“···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병춘이(DJ. Nec)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DJ. Nec입니다.]
“어. 그래 병춘아. 너 지금 어디냐? 회사 앞 편의점? 그래? 그럼 얼른 좀 들어와 봐.”
[예. 대표님. 바로 뛰어가겠습니다.]
잠시 기다렸더니 문을 노크하고 병춘이가 들어왔다. 그는 사무실에 웬 여자가 있자 흠칫 놀라더니 비적비적 걸어와 꾸벅 인사를 했다.
“대표님. 저 왔습니다. 부르셨습니까?”
병춘이는 여전히 네크로맨서처럼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키는 엄청 크고 마른 모습에 얼굴은 창백하다. 해골이 그려진 검은 후드티를 입고 있어서 정말 밤에 보면 깜짝 놀랄 수도 있는 그런 인상이었다.
“그래. 이리 와 봐. 너 인사 좀 해라. 여기 이번 드라마에 출연할 김소윤 씨야.”
“어어?”
병춘이는 김소윤을 알아봤는지 살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J&J와 새로 계약할 김소윤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호, 혹시 케이팝 지니어스?”
“네. 케이팝 지니어스 김소윤입니다.”
병춘이는 확실히 업계 종사자라 그런지 그녀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DJ. Nec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팬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윤 씨. 여기 병춘이는 꽤 뛰어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입니다. 마침 소윤 씨 팬인가 보네요.”
“대, 대표님. 예명으로 좀 불러 주시죠.”
“아무튼, 최근까지 ‘인피니티 드림즈’ 아티스트와 곡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테리우스라든가···. 엔샵이라든가···.”
“와! 인피니티 드림즈요?”
“부끄럽습니다. 혹시 테리우스의 ‘Fantasia’라는 곡을 아시는지요?”
“앗! 제가 좋아하는 곡인데 그걸 쓰셨어요?”
“하하···. 뭐···. 그거 말고 여러 곡이 있죠.”
병춘이는 모쏠처럼 생긴 주제에 여자와 아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해 나가고 있었다.
“병춘아. 너 숨겨 둔 곡 있지? 그냥 짬 시켜 둔 곡 말고 아껴 놓은 곡!”
“예? 지금요?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라, 소윤 씨가 곧 출연할 드라마에 가수 겸 연기자로 출연하는데 거기서 부를 곡이야. OST로 들어갈 거야.”
나는 드라마에서 아예 곡을 부르게 할 작정이었다. 그러면 사람들의 관심을 단번에 끌어올 수 있지 않을까?
최정상 솔로 여가수로 나오는데 어설픈 실력을 드러낼 순 없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서 김소윤은 배역에 딱 맞는 배우였다. 사실 노래를 부르는 신은 없었는데 그녀를 위해 일부러 추가할 생각이었다.
“숨겨 놓은 거 없어? 없으면 카이시브 녀석들한테 말해 봐야지.”
“이, 있어요.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내가 카이시브를 언급하자 그는 황급히 휴대전화를 들어 사운드 클라우드 앱을 클릭했다.
음···. 내가 너무 치사하게 경쟁심을 유발시키고 있나? 아니다. 적당한 긴장감도 필요한 법!
“그럴 게 아니라 녹음실 가서 한번 들어 보자.”
“그러시죠. 대표님. 소윤 씨도 따라오세요.”
병춘이는 숨겨 둔 곡이 있는지 결연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녹음실로 이동해 보니 케이가 늘어지는 자세로 커피를 빨며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어? 뭐야? 왜 갑자기 녹음실로 다 모여드는 건데?”
“케이 너 인마, 출근했으면 형한테 좀 들러서 얼굴 좀 비추고 그래라.”
“언젠 아티스트는 자유가 중요하다며? 근데 Nec 피디 옆은 누구세요?”
“형님. 아시죠? 김소윤 씨입니다.”
병춘이가 웃는 얼굴로 소윤 씨를 소개했다.
“어? 진짜?”
“역시 형님도 아시는군요. 맞습니다. 케이팝 지니어스요.”
“와우! 반갑습니다. 프로듀서 케이입니다.”
“안녕하세요. 프로듀서님.”
케이도 그녀를 알아보는 거로 봐서는 확실히 케이팝 지니어스 때의 충격이 크긴 컸나 보다.
“보세요. 소윤 씨. 프로듀서들은 소윤 씨를 다들 알고 있잖아요.”
“제가 쓸데없이 인지도만 높아서···.”
“···아니라니까 그러네.”
이 정도면 중증이다.
나는 케이한테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케이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터져 나왔다.
“그렇다면 나도 소윤 씨한테 곡을 줘 보고 싶은데···.”
“엑···. 안 됩니다. 형님. 소윤 씨는 제 곡으로 드라마에 나올 예정이에요!”
“그런 게 어디 있냐? 너 인마 프로듀서본부 이사가 까라면 까야지. 넌 프로듀서본부 소속 아냐?”
“······.”
병춘이는 상사의 명령에 살짝 주눅이 든 것 같았다.
“농담이야. Nec 피디. 사실 나 만들어 놓은 곡이 하나도 없어.”
“휴우···. 다행이다.”
“하여간 놀려먹기 딱 좋다니깐?”
케이의 말에 한숨을 내쉰 병춘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자신의 곡을 내려받기 시작했다.
“병···. 아니 DJ. Nec이 EDM 전문가예요. 곡을 아주 트랜디하게 잘 뽑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실제로 병춘이는 EDM 쪽에 특화된 작곡가이기도 하고 히트곡도 많이 쓴 편이었다.
최근 여성 솔로곡이라면 EDM이 대세니 병춘이가 쓴 곡이 잘 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소윤 씨가 부를 곡을 같이 점검했다. 역시 꼭꼭 숨겨 놓았던 곡이라 그런지 세련되고 중독성이 있었다.
“괜찮은데? 넌 어때?”
나는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케이에게 느낌을 물어보았다.
“좋은데? 확실히 EDM은 진짜 끝내주게 뽑네.”
“가, 감사합니다. 형님.”
까다로운 케이의 심사를 통과한 곡이라면 믿을 만했다.
“소윤 씨. 어때요? 응?”
그녀는 소파에 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왜 울어요?”
나는 화들짝 놀라 그녀에게 다가갔다.
“흑···. 아니요. 대표님. 곡이 너무 좋아서요. 정말 이게 제 곡인지 가슴이 너무 벅차올라서···. 저도 모르게 곡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케이가 옆으로 다가와 티슈 한 장을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아니 지금까지 얼마나 후진 곡만 받았길래···.’
김소윤은 갑자기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나와 병춘이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대표님, 피디님!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다시 한번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음···.”
워낙 아우라가 살벌해서 사실 열심히 할 것까지는 없는 것 같은데···.
알아서 열심히 하겠다는데 뭐 상관없나?
“그래요. 제가 이 곡에 가사를 적어서 보내 줄 테니까 연습 좀 해 오세요. 녹음도 해야 하니까. 아! 생각해 보니 안무 시안도 만들어야겠네.”
“이거 혹시 제가 안무를 짜 보면 안 될까요?”
“그러실래요?”
이미 7년 전에 댄스에 천부적인 자질이 있다며 3대 기획사 사장들 앞에서 극찬을 받은 터라 나는 그냥 그녀를 믿고 맡기기로 했다.
케이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김소윤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이 녀석도 내가 하는 일에 절대 토를 달지 않게 되었다.
“그럼 드라마 촬영 전에 한번 점검을 해 보고 다른 멤버들도 만나 봅시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소윤은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녹음실을 나갔다.
“형! 진짜로 걸그룹을 하나 더 만들 거야? 실력파 걸그룹 같은 컨셉인가?”
“어. 맞아. 보컬로 세계에서 극찬받는 팀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
“그렇다고 댄스를 아예 안 하겠다는 건 아니지?”
“당연하지 인마. 넌 케이팝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뭐래? 그게 작가가 프로듀서한테 할 말이야?”
“그냥 그렇다고! 그리고 병춘이! 너 소윤 씨 멘탈 잘 챙겨 드려라.”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소윤 씨 자존감이 많이 깎여 있더라. 옆에서 계속 잘한다 잘한다 해 줘야 해. 그래야 본실력이 돌아올 거야.”
“그건 제 전문이죠. 제 성격 아시잖아요. 누구랑 달리 모진 소리 못 하는 거···.”
“Nec 피디야. 왠지 살짝 귀가 간지러운 것 같다? 지금 그거 나한테 하는 소리는 아니지?”
“당연하죠. 제가 어떻게 대선배이신 케이 형님께 그런 불손한 마음을 품고 있겠습니까?”
“정말 놀고들 있다. 난 이만 간다. 악보나 좀 줘 봐. 가사 써 줄 테니까.”
* * *
‘동시에 드라마 세 개를 찍는 건 힘들겠군.’
얼마 전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과 ‘흑백 로맨스’가 촬영에 들어갔다.
사실 ‘나만 아는 세계멸망’ 시즌 4도 촬영에 들어가야 하는데, 2년 반 동안 달려왔던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피로감을 호소해 넷플릭과 협의 후 휴가를 주기로 했다.
엄청난 성과를 냈으니 그 정도 대우는 충분히 받을 만했다.
나는 일을 하다가 머리도 식힐 겸 넷플릭에 들어갔다.
‘오늘도 한국 넷플릭 TOP 10중 1위는 나세멸 시즌3이구만.’
“이건 뭐 넷플릭의 제왕도 아니고···.”
팔짱을 낀 상태로 푹신한 의자에 등을 붙이고 거만한 자세로 희희낙락거리고 있으니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 조아린입니다.”
“예. 조 실장님. 들어오세요.”
“네. 보고할 게 있어서요.”
“뭡니까? 요즘 너무 회사 분위기 너무 좋지 않습니까? 웹툰도 잘되고, 소속 작가들도 다들 잘나가고···. 드라마 성적은 말할 것도 없고···. 차기작이 동시에 두 개나 제작되고요.”
“거기다 남자, 여자 아이돌 모두 1티어에 진입했죠.”
“하하···. 아우라는 몰라도 남돌들이 1티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제 예상으로는 곧 아우라의 수익을 가뿐히 넘을 겁니다.”
“쩝···. 그 정도입니까?”
“네. 아마도요. 그런데 대표님. 너무 걸그룹만 편애하시는 거 아닌지요?”
“그게 아니고 갑자기 씁쓸해지네요. 잘 키운 남돌 하나 열 걸그룹 안 부럽다더니···. 그게 진짜인가 싶어서요.”
“그 정도는 아닙니다만 수익률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흠···.”
“아! 대표님. 그건 그렇고 넷플릭 측에서 방영이 끝난 귀환소녀 시즌 1에 대한 방영권을 왜 넘겨주지 않는지 계속 문의가 오고 있습니다.”
“구두로만 살짝 이야기한 건에 무슨 계약을 한 것처럼 말을 하네요?”
“대표님께서 귀환소녀를 넷플릭에 공급해 주기로 했다면서 일정을 문의하고 있습니다. 저희를 거의 자회사로 생각하나 봅니다. 계약서와 조건을 싸 들고 와서 하자고 해도 모자랄 판에···.”
조아린 실장도 회사가 잘나가자 살짝 갑의 마인드로 바뀐 것 같았다.
“일단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혹시 그것 말고 다른 보고할 사항이 있나요?”
“네. 저번에 연락이 왔었던 마블링 스튜디오에서 또 컨택이 왔습니다. 중요한 사항이라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 하던데요?”
“후후··· 드디어 왔군요.”
“네?”
“아닙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마블링 스튜디오가 디플러스와 모회사가 같습니다.”
“디플러스요?”
드디어 해외에서 넷플릭과 치열하게 경쟁 중인 디플러스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조아린 실장은 아직도 내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