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53화 (253/263)

왜 혼자 사니? 촬영 (3)

“무슨 사연이길래 벌써부터 운다고 그래?”

유정 씨는 아무렴 자기보다 더 안 좋은 스토리가 있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

“저기요. 유정 씨. 감동 파괴하시지 마시구요.”

“으음···. 맛있어. 예원아. 넌 나중에 식당 해도 되겠다. 진짜 요리 잘하네. 음. 그건 그렇고, 어디 한번 그 캐스팅 스토리나 들어 보자.”

그녀는 내 말은 들은 척하지도 않고 손을 들어 얼른 말 좀 해 보라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도 약간 궁금하긴 했다. 예원이를 캐스팅할 당시에는 창업에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예원이의 전후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집에 일이 생겨서 회사를 관두고 고향으로 내려갔었거든요.”

예원이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크게 다치신 일, 어쩔 수 없이 연습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 갔다가 집에 와 보니 대표님이 저희 집에 와 계신 거예요.”

“집이 군산이라고 했었나?”

“맞아요. 이사님. 어떻게 아세요?”

“그때 누구 캐스팅하러 간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나서···.”

“그러면 그 당시도 다 이야기하고 내려오신 거예요?”

나는 예원이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아무튼, 진짜 일면식도 없던 실장님···. 아! 그때는 실장님이셨어요. 대표님이 집에 있는데 진짜 깜짝 놀랐거든요.”

“일면식이 없는 건 아니고 회사에서 몇 번 마주쳤잖아.”

“그렇긴 한데 따로 이야기 같은 것도 해 본 적도 없었으니 거의 모르는 사이였다고 해야죠. 그때가 언제였냐면 대표님이 드라마 두 개를 연달아 히트시키신 후였어요. 그래서 저는 대표님을 아주 잘 알고 있었죠.”

“이 사람이 가서 뭐라고 하든?”

“그냥 별말씀 안 하셨어요. 저한테 뭘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다짜고짜 아이돌 그룹을 만들건데 제가 필요하다고 계약하자고 하셨어요. 제가 집안 사정 때문에 못 올라갈 것 같다고 하니 저희 아빠 치료비하고 간병인 비용도 대신 내 주시고···. 숙소하고 다 준비되어 있으니 몸만 올라오면 된다고 하셨어요.”

“예원이가 J&J 장학생이었네. 장학생.”

“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대표님이 서울 올라가시고 아빠랑 진짜 엄청 울었어요.”

유정 씨는 훌쩍거리며 살짝 눈물을 흘리는 예원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나도 티슈를 몇 장 뽑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래. 힘들었을 텐데 잘 견뎠네. 그런데 신생 회사인데 불안하진 않았어? 전 회사도 대형 기획사가 아니어서 가수들이 힘들어했잖아?”

“솔직히 불안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하지만 그때 대표님이 해 주신 이야기를 듣고 바로 결심했었죠.”

“무슨 이야기?”

“그때 대표님이 이사님하고 같이 회사를 만들고 연기도 가르쳐 준다고 하셔서···. 그 당시 제 롤모델이 이사님이었거든요.”

“정말? 내가 롤모델?”

자신이 롤모델이었다는 뜻밖의 고백에 유정 씨의 얼굴이 배시시 풀어졌다. 생각해 보니 분명 유정 씨 이름이 나올 때마다 예원이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던 게 생각났다.

“네. 꼭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연기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XM에서도 처음에는 배우로 뽑혔거든요.”

“그랬구나.”

“영화를 찍는다고 이사님께 연기 수업을 들었으니 꿈이 정말 이루어진 거죠. 정말 고맙습니다.”

사람의 인연은 우연인 것 같지만 모두 필연인 모양이었다.

“고맙긴···. 네가 열심히 노력하고 꿈을 포기하지 않은 결과지.”

“아니에요. 두 분이 없었으면 정말 이렇게까지 하지 못했을 거예요. 두 분은 정말 저에게 제2의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원이가 아무래도 너무 감정이 앞선 것 같았다. 제2의 부모라니···. 그건 좀 너무 간 게 아닌가 싶었는데···.

“예원이 너 이제 내 딸 하자. 이제 좁은 숙소에서 나와서 나랑 살자. 여기 보면 남는 게 방이야.”

“헤헤···.”

유정 씨는 손으로 예원이의 양 볼을 쓰다듬더니 엉덩이를 툭툭 쳤다.

“뭔가 불순한 의도가 보이는데···.”

“부, 불순한 의도라뇨?”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내 말에 꽥하고 놀라는 유정 씨였다.

“솔직히 맛있는 음식 얻어먹으려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한 거 아니에요? 천재 요리사랑 같이 살려고···.”

“뭐래! 아니거든요?”

“너무 강한 부정은 긍정 아닙니까?”

“휴···. 준형 씨, 사람이 그렇게 너무 부정적인 것도 안 좋아요.”

“······.”

솔직히 속이 뻔히 보였지만 더 했다가는 또 시어머니 어쩌고 할 테니 입 다물기로 했다.

그리고 그녀도 가벼운 농담처럼 하는 말일 것이다. 내가 그것을 절대 허용할 리 없기 때문이다. 지금 숙소도 다섯 명이 살기에 충분히 크니까···.

“뭐···. 숙소 생활은 1~2년만 더 하고 5년 차부터는 필요하면 독립해서 살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니 그때 한번 꼬셔 보시든가요. 그건 안 말려요.”

“그래요? 그럼 예원이 우리 집 예약!”

“저는 좋은데요. 그때쯤 제가 들어갈 공간이 있을까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예원이는 우리를 보며 말없이 웃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 날 우리는 컴백을 위해 노래를 녹음하고 있는 아우라를 급습했다.

컴백에 대한 소감을 묻는 등 방송에서 깨알 홍보를 한 뒤, 아우라와 유정 씨를 데리고 단골 한정식집에 들러 푸짐한 식사를 하고 오후에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아무래도 야외 촬영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둥 혼잡스러운 상황이 연출됐다.

“죄송합니다. 사람이 많이 몰려들어서 더는 촬영이 힘들 것 같습니다.”

MBS의 조연출이 땀을 뻘뻘 흘려 가며 상황을 수습해 보려고 했지만 힘든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죠. 아까 한정식집 근처에서 휴식을 취했으니 한강에서 노는 것은 이만 접을까요?”

유정 씨는 내심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많이 내색하진 않았다.

‘이제 내일부터 다시 회사 홍보 타임이구만!’

다음 날은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을 집필한 김시후, 최하나 작가를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

아무래도 MBS 작품이라 그런지 예능본부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게 가능했다.

‘오케이. 드라마 홍보 좋고!’

김시후는 드라마를 집필하고 소설도 두 권 정도 발표를 했는데, 그중 한 권은 영화 판권으로 팔리는 등 꽤 괜찮은 작가 커리어를 쌓아 나가고 있었다.

시후는 자신의 모습이 화면에 잡히자 그게 상당히 어색한지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은근히 시후도 화면발이 잘 받는데?’

“자···. 김시후라고 우리 회사가 자랑하는 작가 중 한 명인데요. 이번 드라마를 쓴 메인 작가이자 J&J 스토리의 F4 중 한 명입니다.”

“F4요?”

“네. 케이 프로듀서, 김시후, 이준형 작가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한 명은 조금 있다가 직접 공개할 예정입니다.”

“악···.”

아무래도 예능이라 재미를 위해 헛소리도 좀 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드립을 쳤더니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와···. F4라니? 오랜만에 들어 보네. 그거 요즘 케이블에서 재방송했어요? 제목이 ‘꽃보다 보이’였나? 그게 언제 적 드라마인데···.”

최하나 작가는 내 농담이 웃기지 않은지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역시 마이 페이스로 직설적인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간 나에게 맺힌 게 많았던 모양이다.

“이 대표! 다음번 작품은 이렇게 미적거리지 말고 나랑 꼭 같이해요. 알았죠? 그냥 대놓고 막장 드라마 어때요?”

“선배님! 단어 선택이 좀 그렇습니다.”

“이상해? 막장인데 고급스러운 막장도 좋잖아. 시청자분들이 그런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래. 나의 경험과 이 대표의 참신함이 만나면 명품 막장 드라마가 탄생하지 않겠어?”

“······.”

막장에 명품이 어디 있다고···.

최하나 작가까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방송 출연이신가? 아무튼···.

“막장 드라마의 마스터 어때? 주인공은 유정이 네가 할래?”

“선생님. 제발 꼭 좀 써 주세요. 저도 이제 나이가 있다 보니 그런 작품도 한번 해 보고 싶거든요.”

이제는 유정 씨까지 거들고 나섰다.

“알겠습니다. 작가님. 저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럼 하는 거지? 언제쯤 시간 돼?”

“네. 한 십 년만 기다려 주세요.”

“큭큭···.”

그렇게 차기작에 대한 홍보가 끝나고 우리는 J&J 스토리의 작가 사무실로 이동했다.

방송한다고 막 나설 것 같던 작가들이 막상 카메라가 돌아가자 의외로 조용히 자리에서 글만 쓰고 있었다.

‘하여간 이론은 빠삭한데 정작 실전엔 못 써먹는 타입들이지.’

카메라가 지나가면 어색하게 웃기만 할 뿐 다들 한마디도 못 하고 있었다.

유정 씨는 내 시나리오대로 작가들을 지나쳐 창가 구석 자리로 곧장 걸어갔다.

그곳에는 웹툰 작가인 최영규와 엑스크루의 센터 김형준이 나란히 앉아 뭔가를 하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영규 씨. 그리고 형준 씨도 오랜만이네요.”

“네. 이사님. 안녕하셨어요?”

크···. 이 장면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놀랄까? 아이돌 비주얼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김형준이 웹툰을 그리고 있다니···.

그것도 외모가 너무 대비되는 최영규 작가와 딱 붙어서 말이다.

‘영규가 살을 빼고 외모가 살아난 건 사실이지만···. 흠! 이거 너무 비교되잖아?’

“익숙하신 얼굴이죠? 아시는 분은 아실 텐데요. 전 엑스크루의 멤버였던 김형준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전 엑스크루이자 현재는 웹툰 예비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형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형준아. 이거 음악 방송 아니거든? 그냥 자연스럽게 해.”

“네. 그간 언론에 나오질 않아서 궁금해하시는 팬분들이 많이 계셨는데요. 저 아주 잘 지내고 있고 조만간 웹툰과 드라마로 찾아뵐 예정입니다.”

“웹툰과 드라마요?”

“네. 원래 그림 그리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여기 계신 최영규 작가님께 열심히 배우고 있고 조만간 드라마에도 출연할 예정입니다.”

“자···. 이 정도까지만 하시죠. 나중에 세부적인 정보는 기사로 나갈 테니 참고해 주세요.”

아마 방송을 보고 형준이 팬들은 엄청나게 좋아할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날 유정 씨와 나는 계룡시로 내려가 둘레길과 좀비 테마파크에서 한가롭게 관광을 즐겼다. 회사 홍보가 없으니 진짜 뭔가 데이트를 하는 기분이었다.

스페셜 게스트로 아우라에서 야구를 담당(?)하고 있는 리리를 초대해 대전 하나 파이어버드 구장에서 야구까지 체험하는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은 거의 데이트 분위기로 촬영을 하다 보니 살짝 민망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건 뭐 ‘왜 혼자 사니?’를 찍는 건지 ‘우리 결혼할까요?’를 찍는 건지 모를 정도였으니 말을 다 한 셈이다.

‘뭐···. 처음 장면부터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로 연출했으니까···.’

이미 SNS상에서는 나와 나유정이 한강 둔치에서 뭔가 찍고 있다는 게시물들이 여럿 올라왔고 인터넷 포털에 기사까지 뜬 상태였다.

[단독! ‘왜 혼자 사니?’에 대세 배우 나유정 출연!]

최근 시청률에서 고전하고 있는 MBS의 간판 예능 ‘왜 혼자 사니?’에 특급 구원 투수가 등장한다. 바로 방어율 0에 빛나는 최강의 배우 나유정이다.

그녀는 자택에서의 자연스럽고 털털한 모습과 더불어, 그녀의 전 매니저이자 사업 파트너인 이준형 대표와의 재미있는 모습을 선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중략>

드디어 MBS 측에서 홍보를 시작하자 세간의 관심이 ‘왜 혼자 사니?’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첫 방송이 있던 날, 또다시 SNS와 커뮤니티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