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52화 (252/263)

왜 혼자 사니? 촬영 (2)

‘왜 혼자 사니?’ 촬영은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예전 매니저 모드를 가동해서 유정 씨와 찰떡같은 티키타카를 이어 갔다. 그녀도 예전 생각이 났는지 그때 자신이 했던 행동들을 기꺼이 보여 주었다.

물론 그게 퇴행적이어서 문제였지만···.

처음엔 얼마나 불친절했던가?

그녀도 예전엔 자신이 너무 작은 세계에 갇혀 있었다고 고백했다. 스스로 세계관을 넓히지 못한 채 내면의 고통에 침착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매니저로 들어왔을 때 깜짝 놀랐다고 했다. 자신의 무신경함을 잘 견디다 못해 즐기는 듯한 표정이었다고···.

내가 정말 그랬었나?

솔직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테리우스 매니저를 하면서 쓴 웹소설이 성공해서 한창 자존감이 상승할 때였으니까.

지금의 유정 씨는 그때와는 거의 180도 달라졌다.

물론 지금까지는 본모습을 잘 숨기며 대한민국 톱배우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제는 대중들에게 과감히 소박한 본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이미 수백억? 아니 그 이상의 자산가가 소박하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실제로 그녀는 재테크에 재미를 붙였을 뿐 과도한 소비는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리모컨으로 콘서트 동영상을 끄니 그녀가 시청하고 있는 넷플릭 영상들이 떠 있었다.

‘역시···.’

진성 건어물녀답게 최근 나온 드라마나 영화는 모조리 섭렵한 것 같았다. 최근에는 나세멸 4시즌 촬영 때문에 시즌 1, 2를 정주행한 것 같았다.

곧 방영될 시즌 3 막판에 유정 씨가 나오는 장면도 이미 촬영을 마친 상태로, ‘코퍼레이션’에 잠입해서 동료들을 구해 간 남주인공(정주빈)을 처리하라는 임무를 부여받는 장면이었다.

“뭐 해요?”

“아···. 별거 아니에요. 나갈 준비 다 했어요?”

“네. 이제 나가도 돼요.”

그녀는 완벽하게 출근 복장을 차려입은 상태로 확실히 커리어 우먼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가시죠.”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 보니 제작진들이 이미 내 차에 카메라를 다 설치해 놓은 상태였다.

“카메라가 많네. 뭘 그렇게 자세히 찍으시려고···.”

“이런 예능 처음이죠?”

“그렇죠. 거의 스튜디오에서 찍거나 했으니까요. 물론 매니저 때는 옆에서 보긴 했죠.”

“예능 초보를 내가 많이 가르쳐 줘야겠네.”

“가르치긴 뭘 가르칩니까? 그냥 있는 대로 하면 되지.”

“과연 그럴까요? 후후···.”

“벨트나 매요. 출발합니다.”

나는 기분 좋은 배기음을 들으며 능숙하게 차를 운전했다. 그녀는 항상 하던 대로 아이돌 음악을 작게 틀어 놓았다.

“열심히 연구하시네요. 나 이사님. 존경스럽습니다.”

“당연하죠. 이제 J&J도 남자 아이돌이 두 팀이나 되잖아요. 이제 대형 기획사 못지않죠.”

“후후···. 내일 두 팀 모두 MBS 음악 방송에 나가잖아요. 기쁘시겠네요. 이제야 정식 데뷔를 하는 거니···.”

“당연히 기쁘죠. 그런데···.”

대답하다 말고 갑자기 유정 씨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차 안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런데 차 안 바꿔요? 이거 예전부터 타던 건데···. 돈도 많이 버신 분이 너무 짠돌이 아니에요?”

“짠돌이라뇨? 말이 심하시네. 이제 4년밖에 안 된 겁니다. 그리고 이거 뭔지 몰라요?”

“뭐가요?”

“이거 나만의 세계 작품 계약할 때 유정 씨가 본인 출연료 깎아서 제 원고료 올려 준 거로 산 거잖아요.”

“아···. 그랬었나?”

“그랬었냐뇨. 그걸 기억 못 하네.”

“뭐야. 그럼 그것 때문에 바꾸지도 못하고 소중하게 타고 다니는 건가요?”

“또 실없는 소리 하시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없는 것뿐이다.

솔직히 돈은 너무 많아 탈이었다. 아직 회사가 커 나가고 있어서 배당을 받진 못했지만, 드라마 원고료와 영화 수익을 기점으로 자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더니 감당하기 힘든 지경까지 불어났다.

책에 대한 인세는 이제 많이 줄었지만, 웹툰 수익은 꾸준히 들어오고 있었다. 또한, 미련하게 한 계좌에 수백억을 보유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유정 씨에게 자문을 구했고, 소개받은 전문가를 통해 자산 관리를 하고 있었다.

‘역시 돈이 돈을 버는 걸 실감했지.’

원래 총 300억 정도의 순자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가장 큰 포지션인 주식(ETF)에서 큰 수익이 나서 현재는 총자산이 500억에 근접하고 있었다.

순전히 운으로 내가 들어간 타이밍이 상당히 좋았던 것 같았다. 물론 경이적인 1,000%의 수익률을 기록한 유정 씨한테는 아직 못 미치겠지만 말이다.

이제는 비현실적인 금액이라 그런지 별다른 감흥이 없는 상태였다. 이 돈은 결정적인 투자를 진행할 때 사용할 금액으로 내 든든한 자금줄이기도 했다.

경제적 자유(?)를 진즉에 얻었지만, 이제 나에게 그런 금전적인 것은 크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돈만 많이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가 먼저였고 어떤 좋은 작품을 남기는지가 훨씬 더 중요해졌다.

물론 이 말을 유정 씨가 듣는다면 분명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하겠지.

재신(財神)인 그녀는 아직도 배가 고픈 모양이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우리는 출발한 지 얼마 안 돼서 회사에 도착했다. 확실히 출퇴근 시간이 짧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다 왔네요. 내립시다.”

내 차를 뒤따라 몇 대의 자동차가 꼬리를 물고 회사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차 문이 열리며 스태프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몇 명 안 보이더니 밖으로 나오니 사람이 많긴 많구나.’

아무래도 야외 촬영에는 스태프들이 많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일행이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전 촬영이 시작됐다.

유정 씨는 층을 오가며 회사를 소개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자신의 사무실도 보여 줬다.

물론 곁다리로 내 사무실까지 촬영을 하게 되었지만···.

저번에 인터뷰하면서 언론에 공개가 되긴 했는데 유정 씨 사무실과 다이렉트로 뚫려 있는 문까지 공개가 되어 약간 민망하긴 했다.

“자! 이렇게 들어가면 바로 대표님 사무실이 나옵니다. 짜잔···.”

“크흠··· 제가 저 문 때문에 수명이 단축되고 있습니다만···.”

“후후··· 서프라이즈라고 생각하세요. 이제 그만하고 애들이나 보러 갈까요?”

나는 그녀와 함께 두 팀이 있는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에는 JJ 보이즈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고 우리엘이 잠시 쉬면서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우리엘의 권진현이 우리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어, 그래. 다들 열심히 하고 있구나.”

나는 연습 중인 멤버들을 격려하며, JJ 보이즈가 땀을 닦고 곁으로 다가오자 손을 들어 유정 씨를 가리켰다.

“나 이사님이 너희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시네.”

내 말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일행의 시선이 유정 씨에게로 쏠리게 되었다.

“여러분이 기뻐할 아주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어요.”

우리엘과 JJ 보이즈는 긴장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가 음악 방송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우와!”

발표하자마자 멤버들이 서로 껴안고 난리가 났다.

‘그렇게 기쁜가?’

아직까진 TV라는 매체를 통해 인기 콘텐츠가 제작되고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얻는 경향이 강하니, 멤버들의 머릿속엔 음악 방송에 나가서 다른 가수들과 같은 무대에 서는 것이 항상 그리던 꿈이었을 거다.

그리고 음악방송에 못 나가는 것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거기서 보이콧된다면 다른 프로그램도 사실상 출연이 불가능했다.

비록 며칠이었지만 차트 1, 2위를 했는데 공중파부터 케이블까지 출연할 수 없다고 하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우리에게 내색은 안 했어도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좋아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유정 씨는 멤버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흐뭇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진짜 슬기로운 덕질생활의 나혜리가 됐네요?”

다른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나도 모르게 전작을 언급해 버리는 실수를 했다.

고개를 돌려 PD를 보니 그 정도는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자자! 음악 방송이 바로 내일이니 실전처럼 연습해 보자.”

유정 씨의 말에 쉬고 있던 우리엘부터 퍼포먼스를 시작했고 그녀는 그 모습을 매의 눈으로 꼼꼼하게 지켜보았다.

* * *

저녁에는 아우라의 장예원을 집으로 초대해 촬영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집으로 들어온 예원이가 우리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그래. 어서 와. 그런데 뭘 그렇게 싸 들고 왔어? 얼마나 맛있는 것을 해 주려고 그래?”

“헤헤···. 제가 요즘 빠져 있는 요리를 좀 해 드리려고요.”

“뭔데 그래?”

“수비드 스테이크예요.”

“아하! 그래서 이렇게 뭘 많이 들고 왔구나?”

“헤헤···.”

예원이는 아우라 채널의 주력 콘텐츠인 ‘예원이의 ASMR 먹방 요리’의 미튜버답게 능숙한 솜씨로 주방을 장악해 나갔다.

이것저것 열어 보고 쓱 훑어보더니 다 파악이 됐다는 듯 가져온 장비들을 좌르륵 펼쳐 놓았다.

‘헉···. 저건 협찬 들어왔던 수비드 머신!!’

내 놀라는 모습을 본 예원이는 씨익 웃고 있었다. 참 예원이는 가만 보면 공주 같은 얼굴에 저런 억척스러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저런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등장시켜 주는 섬세함이랄까? 그래서 그런지 예원이의 동영상은 광고주들에게 최고의 인기였다.

아우라 채널에서 발생한 영상의 수익은 스태프 인건비를 빼고 70% 이상 아우라에게 주고 있었는데 그중 60% 이상을 예원이가 독점하고 있었다.

‘정산금과 함께 영상 수익을 꼬박꼬박 모아서 서울 인근에 집을 사서 아버지를 데려온다는 계획이었지, 아마?’

장갑을 낀 예원이는 무슨 프로 요리사 같았다. 이러니 동영상 뷰가 몇백만을 넘어가지.

“도와줄까?”

유정 씨가 카메라를 의식하는 듯 뭔가 도와줄 게 없는지 묻고 있었다.

“이사님! 괜찮아요. 오늘 피곤하실 텐데 좀 쉬세요. 여긴 이제 제 영역이거든요.”

“그래? 알았어, 그럼.”

“그런데 이사님. 주방이 진짜 깨끗하시네요.”

“으응? 그, 그러니?”

예원이의 질문을 받은 유정 씨의 동공이 잠깐 흔들리는 게 포착됐다.

후후···. 깨끗하긴?

내가 알기론 유정 씨는 요리보다는 배달 앱 사용에 아주 능숙했다. 그 의미는 주방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음식을 준비하는 사이 우리는 예전에 유정 씨와 예원이가 출연했던 귀환소녀를 보고 있었다. 영상에는 예원이가 좀비를 때려잡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하하하···. 예원아, 넌 저런 발차기를 어디서 배웠어?”

“어렸을 때 태권도를 오래 배웠어요. 설마 그게 도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거 내가 일부러 네 특기에 맞게 집어넣은 거야. 아직도 몰랐니?”

“정말이요?”

“그럼, 인마. 다 너희한테 맞춰서 캐릭터를 설정한 거야. 잘 생각해 보라고.”

“앗! 정말이네요. 전 그런 것도 모르고···.”

예원이는 말을 하면서 먹음직하게 구워진 스테이크를 접시에 담고 있었다.

“요리 다 됐습니다.”

“오! 이게 그 수비드 스테이크야?”

“네. 숙성을 좀 더 시키면 좋은데 배가 고프다고 하시니 좀 빨리했어요.”

“머, 먹자.”

유정 씨가 바람처럼 달려와 식탁에 착석했다.

“으흠···. 이 맛있는 냄새···. 와···. 못 참겠다. 준형 씨! 빨리 와요! 어서요.”

그녀는 나이프와 포크를 쥐고 식탁을 두들길 기세였다.

“어이구···. 갑니다. 가요.”

“이제 드시면 돼요.”

“와!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플레이트에 담긴 비주얼도 엄청났다. 데코레이션된 소스와 고기 옆에 구워놓은 가니시까지 일품이었다.

나는 그 환상적인 모양을 보고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예원이를 칭찬했다.

“헤헤···. 어서 드세요. 대표님.”

‘씁···. 이거 뭔가 딸한테 음식 시중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인데···.’

고개를 갸웃하며 앞을 보니 이미 고기를 썰고 포크로 찍어 입으로 가져가는 유정 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흥···. 우와! 너무 맛있어!!”

유정 씨는 마치 요리왕 잠룡에 나오는 식객처럼 우주의 맛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눈을 번쩍 뜨고 엄청난 리액션을 하고 있었다.

‘후후···. 재밌네. 어디 나도 먹어 볼까? 응?’

나는 왜 그렇게 유정 씨가 호들갑을 떠는지 알 수 있었다. 크···. 이 겉은 바삭, 속은 촉촉···. 풍부한 육즙이 입을 행복하게 해 주고 있었다.

“와! 진짜 맛있어!”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준형 씨. 호들갑 좀 떨지 마세요.”

유정 씨에게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을 스틸당하고 말았다.

“쩝···. 왜 멤버들이 너를 식모처럼 부려 먹는지 알겠다.”

“식모는 아니고···. 보모? 요리하는 게 너무 재밌어요.”

“응···. 그래그래.”

우리는 먹는 데 정신이 팔려서 한동안 스테이크를 폭풍 흡입했다. 그리고 예원이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예원아. 그나저나 넌 어떻게 대표님한테 캐스팅된 거야?”

“저요?”

유정 씨가 스테이크를 먹다 말고 갑자기 궁금한 게 생긴 모양이었다.

“그거야···. 으음···.”

예원이가 당황하는 것 같더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응? 왜?”

“대표님, 이거 방송에서 말해도 돼요? 저 말하다가 울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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