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51화 (251/263)

< 왜 혼자 사니? 촬영 (1)>

“아이디어요? 어떤 아이디어 말씀이십니까?”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인지 김광석 부장이 제일 먼저 반응했다.

“저랑 준형 씨가 MBS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돼 있잖아요.”

“그, 그렇죠.”

김 부장은 아무래도 아직까진 언급된 적 없는 정보라 그런지 조심스러운 듯 말을 더듬고 있었다.

“거기서 주연 배우 오디션을 하는 게 어때요? 어떻게 하냐면 수인 씨하고 하영 씨가 치열한 연기 배틀을 벌이는 거죠. 개별 연기라든가, 아니면 같은 대본을 주고 연기를 시켜도 좋고요. 심사위원은 저랑 준형 씨, 그리고 작가, MBS PD님, 기타 다른 분들도 데려오셔도 되구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오디션을 하는 장면을 찍어서 방송하자는 거죠?”

“네. 맞아요. 부장님. 제가 명색이 엔터 회사 임원이잖아요. 자체 제작하는 드라마니까 제 업무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죠. 이렇게 일하는 모습을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요?”

탁!

김광석 부장도 일리가 있는지 손뼉을 치며 눈을 크게 치켜떴다.

“그렇습니다! 이거 좋은 아이디어인데요?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드라마 홍보도 되고 일거양득이겠네요. 예능에서는 아무래도 오디션 같은 게 자극적이긴 하죠”

김 부장은 외모는 저래도 나름대로 MBS에서 산전수전을 겪어서 그런지 감각은 뛰어난 것 같았다. 그러니까 기획제작부 부장을 하는 거 아니겠는가?

“음···. 유정 씨가 갑자기 아이디어를 냈는데 수인 씨나 실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나는 터지려 하는 웃음을 참으며 침묵하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정수인은 입을 꽉 다물고 있지만 자신은 없어도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인 것 같았고, 반면에 최영기 실장은 똥 씹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소속 배우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잘 판단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윤하영은 차세대 CF 퀸으로 최근 끝난 장편 퓨전 사극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천만이 넘는 영화의 주연으로 그 스타성을 입증한 배우였으니, 최 실장은 분명 자신의 배우가 열세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저, 저는 그래도 한번···.”

“잠시만···.”

최영기 실장이 정수인의 말을 급히 제지했다.

“아니···. 왜?”

“제가 대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오디션 출연은 저희도 내부적으로 토론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전례가 없는 일이라 여기서 섣불리 결정할 순 없는 문제입니다.”

“흠···. 아무래도 그렇겠죠.”

만약 예능 시청률 1위의 프로그램에 나와서 지기라도 하는 날엔 개망신도 그런 개망신이 없다. 어찌 됐든 오디션이라는 게 워낙 임팩트가 강한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아! ‘왜 혼자 사니?’ 오디션에서 떨어진 배우? 이러면서 이미지가 추락할 수도 있었다.

물론 연기력이 뛰어나고 이길 자신이 있다면 좋겠지만, 상대는 제2의 나유정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존예 보스, 최강의 신예다.

최 실장의 찌푸려진 얼굴만 봐도 현 상황을 어둡게 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 문제는 추후에 저희가 연락을 드리는 거로 하시고···.”

“에이···. 그러지 마시고 까짓거 시원하게 출연해서 스포트라이트도 받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상황을 봐서 이제 그만하려는데 오히려 김 부장이 더 흥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드라마 홍보와 더불어 화제성을 감지한 모양.

“크흠···. 부장님! 일에도 내부 절차가 있다 보니···.”

“아니! 단번에 수인 씨의 인지도가 팍 하고 올라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왜 혼자 사니?’ 시청률 아시죠? 지금 위기다 뭐다 해도 예능에서는 톱입니다. 톱.”

허허···. 이거야 원.

그냥 내 밥상에 숟가락을 올려놓으려는 사람들을 털어내려고 했는데 오히려 김 부장이 더 열을 내는 희한한 상황이었다.

그는 정말로 그게 괜찮은 기획이라고 생각하고 밀어붙일 기세였다.

“저기···. 부장님. 최 실장님이 상당히 곤란해하시는 것 같은데 최종 결정은 골든벨 쪽 회의가 끝나고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김 부장이 입을 다물었다. 입맛을 다시는 것으로 봐선 아직도 미련이 많이 남은 듯 보였다.

“꼭···. 협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영기 실장은 정수인을 데리고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갔다.

가만 보니 부잣집 외동딸 정수인은 내 생각처럼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으니 살짝 무모하다고 해야 하나?

“부장님. 일단 오디션은 골든벨 측 이야기를 들어 보고 진행하시죠. 아마 힘들 것 같긴 하지만···.”

“네. 일단 알겠습니다. 제 생각은 오디션을 하는 게 최선이지만, 못 한다고 해도 국장님한테 명분은 줄 수 있는 거라 괜찮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는 말을 하면서 유정 씨를 바라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방송에 나오면 엄청난 화제가 될 것임을 직감하는 미소였다.

“저도 이만 회사에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김광석 부장도 휴대전화 시계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방에 나와 나유정, 윤하영 셋만 남게 되었다.

“대표님. 저는 뭐 한 게 없고 그냥 병풍처럼 앉아만 있었네요.”

윤하영은 허탈한지 차가운 맹물만 들이켰다.

“하영아. 넌 그냥 앉아 있기만 해도 존재감이 뿜뿜이야. 아까 매니저 얼굴 봤니? 완전 죽상이더라.”

“혹시 오디션을 하겠다고 하면 어쩌죠?”

“무슨 걱정이냐. 가볍게 이겨 주고 다시 한번 떡상하면 되는 거지.”

“그걸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세요?”

윤하영은 아직도 자신의 잠재력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그 대답을 하려는데 유정 씨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영이 넌 아직도 준형 씨를 모르니? 이 사람이 얼마나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한데. 그건 일종의 초능력 같은 거야.”

“초능력이요?”

“그래. 물론 초능력은 아니고···. 뭔가 초월적 직감 같은 거지.”

얼씨구. 그냥 막 갖다 붙이네?

나유정은 후배에게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한 수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대표님이 그런 감각이 뛰어나시다는 소문은 들어 본 적 있어요.”

“솔직히 너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이분한테 캐스팅 당했다며?”

“그, 그렇죠.”

“거 봐. 너 이렇게 될 줄 상상이나 했어?”

“아니요. 전혀요. 그땐 정말 장래에 대해 고민이 많았었죠.”

나유정은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고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커흠···. 낯 뜨거워서 원. 이제 그만 좀 해요.”

“쑥스러워하기는···. 아무튼 오늘 제 연기 어땠나요?”

“아주 좋았습니다. 역시 톱배우다웠습니다.”

“에? 연기요? 이게 다 연기였다고요?”

옆에 있던 윤하영이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하영이한테 말 안 했어요?”

“뭐 곧 알게 될 건데 굳이···.”

“음···.”

나는 어쩔 수 없이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하영이에게 설명하고, 시켰던 음식을 먹으며 앞으로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정보를 공유했다.

같이 식사하는 김에 회사에 있다는 권진현도 불러냈다.

그는 방에 두 명의 연예인이 있자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내가 손짓을 하자 고개를 꾸벅 숙이고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권진현은 마지막으로 윤하영과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앉았다.

“그래. 식사는 했고?”

“네. 저는 매니저님하고 같이 먹었습니다.”

오우···. 확실히 그는 언제 들어도 마음이 안정되는 차분한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동생도 그룹에서 센터 겸 메인 보컬을 맡고 있는데 아무래도 좋은 목소리를 내는 유전자를 타고난 듯했다.

“제가 진현 씨한테 오라고 한 이유는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예요. 며칠 전 메일로 보내 준 대본은 읽어 봤어요?”

“네. 대표님. 지금도 계속 반복해서 보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나는 그에게 차기작에 대한 설명을 차근차근 해 줬다. 거기에다 남자 주인공으로 들어갈 거라고 하자 엄청나게 놀란 눈치였다.

“제가 주연이라고요? 아직 데뷔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괜찮을까요?”

갑작스러운 주연 배역 제안에 살짝 부담이 된 걸까?

“어때요? 혹시 자신 없어요?”

“절대 그런 건 아닙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었고 연극영화과까지 나왔으니 연기 경력이 길면 길지 짧지 않습니다.”

‘역시···. 이래야지.’

권진현은 신인이지만 나름 자신의 연기력에 자부심과 철학이 있는 배우였다. 그리고 객관적인 아우라가 출중했으니 나는 그것을 믿고 있었다.

“진현 씨 말고 최근에 계약한 동기들도 출연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  *  *

드디어 ‘왜 혼자 사니?’의 촬영 날이 다가왔다.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안진우 책임 PD가 그간 시청률 하락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솔직히 내가 적어 준 리스트 내용이 너무 많아서 약간 걱정되긴 했는데, 우리가 제시한 스케줄이나 콘텐츠가 거의 제한 없이 수용되었다.

우리야 그냥 나가서 하던 대로 하면 되지만, 제작진들은 여러 가지를 동시에 준비하느라 상당히 바쁜 모양이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서 유정 씨의 집으로 올라갔다.

띠띠띠띡···.

나는 도어 록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유정 씨의 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현관 앞에 트레이닝복을 입은 유정 씨가 뒷짐을 지고 있었다.

‘어우···. 깜짝이야.’

슬쩍 안을 보니 그녀의 뒤에서 여성 VJ 한 분이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집안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이제 방송 짬이 조금은 있는지라 나름대로 태연한 표정으로 현관으로 들어왔다.

“주세요. 떡볶이.”

그녀는 내 왼손에 들고 있는 검은 봉지를 가리키며 씩 웃고 있었다.

“자. 여기요.”

그녀는 냅다 봉지를 채 가더니 희희낙락거리며 거실로 들어갔다.

“엑! 또 거실에서 먹으려고요?”

“지금 슈퍼노바 온라인 콘서트 보고 있어요. 좀 지난 거긴 하지만···.”

그녀는 내 말에 설득을 당했는지 덕질···. 아니 아이돌 연구(?)를 하는 모습을 당당하게 방송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거실의 스마트 TV에서는 빅샷이 만든 TV 앱이 띄워져 있었고 슈퍼노바 콘서트 동영상이 잠시 멈춰 있었다.

“으음···.”

안방에 있던 굿즈들도 공포스러웠던 포스터나 쿠션을 제외하고 모두 거실로 나와 있는 상태였다. 이제는 당당하게 장식장에 앨범이나 굿즈들이 장식돼 있었다.

“아이돌 덕···. 아니 연구를 열심히 하고 계셨군요.”

“그럼요. 오로지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하는 거죠.”

유정 씨의 뻔뻔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입술을 꽉 깨물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거실 소파 테이블에 떡볶이와 튀김을 올려놓고 포장을 뜯고 있었다.

“좀 줄까요?”

“아뇨. 전 집에서 아침 먹었어요. 그런데 아침부터 이런 거 먹어도 돼요? 이거 영양학적으로 최악의 음식이에요. 나트륨도 엄청나고 칼로리 폭탄에···.”

“어휴. 이 잔소리···. 시어머니 노릇 좀 그만해요. 맨날 먹는 것도 아닌데 너무 그러지 마세요. 오랜만에 매니저 한다고 예전 버릇 또 나오시네.”

“내가 무슨 시어머니예요. 다 유정 씨를 위해서···.”

“네네···.”

그녀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포크로 떡볶이를 찍으며 리모컨으로 슈퍼노바의 영상을 재생시켰다.

“으흠···. 바로 이 맛이죠. 역시 황 씨 아줌마네 떡볶이야.”

‘엄청 매운 데다 단짠의 극치던데···.’

나는 그녀가 떡볶이를 폭풍 흡입하는 것을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녀는 내가 사 준 연노랑 캐릭터 트레이닝복에 떡볶이 국물을 흘리고 말았다.

“쯧쯧···. 하여간···.”

나는 옆에 있는 물티슈를 쓱쓱 꺼내서 고개를 살짝 숙이고 그녀의 턱에 묻은 국물을 닦아 주었다.

그녀는 그러거나 말거나 고개를 이리저리 피하며 콘서트 영상을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이···. 많이도 흘렸네. 얼른 위에 벗어 봐요. 얼룩져요.”

나는 그녀가 벗어 준 집업 후드를 집어 들고 다용도실로 걸어갔다.

‘윽···. 빨래가 산더미···.’

그래도 내가 미리 한번 와서 체크를 해야 했는데 매니저에게 맡겨 놓은 게 실수라면 실수였다.

‘아차···. 나 말고는 집으로 잘 안 들어오지?’

그녀는 나에게 굿즈를 들킨 이후로 집안에 사람들을 더욱더 들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별다른 동요 없이 능숙하게 통에 담긴 옷들을 분류하고 세탁기에 넣은 뒤 세제를 넣고 돌리기 시작했다.

“유정 씨! 얼른 대충 씻어요. 출근해야 할 거 아녜요.”

세탁기를 돌리고 난 후 여기저기 어질러져 있는 것들을 기계적으로 치우기 시작했다.

‘오케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겠어.’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샌가 카메라가 나를 찍고 있었다.

‘오케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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