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48화 (248/263)

< 공중파 드라마 (1)>

마포구 상암동 MBS 사옥 경영센터 지하 주차장에 주차한 후 로비에서 방문 신청서를 끊고 5층으로 올라갔다.

“휴···. 여긴 또 오랜만이네. 예전엔 여기 미디어센터 공개홀에 자주 왔었는데···.”

XM Ent. 시절 테리우스 녀석들을 데리고 자주 왔던 곳이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니 TV에서 보던 얼굴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그래도 방송국이라고 유명한 연예인하고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네.’

“어? 안녕하세요?”

“네? 저요?”

나랑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던 일행 중에서 최근 꽤 인기가 있는 젊은 여자 연기자가 인사를 해 왔다. 이름이 뭐였더라?

“이준형 작가님 아니세요?”

“아···. 네. 맞습니다.”

띵···.

엘리베이터는 5층에서 문이 열렸다.

“어? 실례합니다.”

찾아가려는 드라마본부가 바로 경영센터 5층이었기 때문에 나는 급히 실례한다고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자, 잠시만요. 작가님.”

“저 부르셨어요?”

“네. 작가님이요.”

“무슨 일이시죠?”

“제가 작가님 팬이라 그냥 인사 좀 하고 싶어서요.”

“아···. 성함이···.”

내가 이름을 물어보자 그녀의 옆에 있던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명함을 꺼내 들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골든벨 엔터테인먼트 최영기 실장입니다. 정수인 씨 매니저입니다.”

골든벨 엔터테인먼트라···. 배우 소속사라고 알려졌는데 썩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네! 제가 정수인입니다. 작가님이 제 이름을 모르시는 걸 보니 좀 더 분발해야겠는데요.”

그녀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싱그럽게 웃고 있었다.

‘뭐···. 당돌하긴 한데 신선한 마스크네. 스타일도 좋고···.’

“아···. 제가 얼굴은 아는데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나서요.”

“그럴 수 있죠. 아무럼요.”

“혹시 5층에서 내리는 거 맞으세요?”

“아니요. 오늘 라디오 방송 때문에 더 올라가야 하는데 작가님 때문에 일부러 내렸습니다.”

“아. 그러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제가 약속 시간이 다 돼서···.”

“아! 죄송해요. 작가님. 혹시 드라마본부 가시는 거 맞으세요?”

“······.”

“시간 되시면 작가님하고 대화라도 좀 하고 싶었는데 안타깝네요. 제가 엄청난 팬이거든요.”

뭔가 기분은 좋은데 부담스러운 자리긴 했다.

“관심 감사합니다.”

“혹시 명함이라도···.”

“아! 드려야죠. 잠시만요.”

나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매니저에게 건네주었다.

“작가님! 감사합니다. 이제 얼른 가 보셔야죠.”

“네. 그럼 라디오 잘하시고요.”

나는 정수인과 헤어지고 몸을 돌려 드라마본부가 있는 사무실로 걸어갔다.

‘인기에 비해서 연기력이 너무 부족한데? 그래도 뭐···. 아우라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습관이 돼서 그런지 스타를 보면 자연스럽게 아우라 스카우터를 켜 보고 있다. 내심 당황하는 척했지만 그것은 연기였을 뿐, 스카우터로 살핀 아우라가 너무 보잘것없었다.

‘잠깐! 정수인이 어디 나왔더라? 연기 잘하는 신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복도를 걷다가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휴대전화를 꺼내 그녀의 이름을 검색했다. 정수인은 드라마 한 편, 영화 한 편을 찍었는데 드라마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였다.

‘음···. 희한하네. 내 아우라 스카우터가 고장 난 것도 아니고···. 모르지 뭐. 자기와 완전 똑같은 배역을 연기해서 로또를 맞은 걸지도···. 어디 보자. 큭···.’

나는 그녀가 출연했던 드라마의 정보를 찾다가 정수인이 연기했던 캐릭터 설명을 보고 빵 터지고 말았다.

[정수인, 이유진 역. 철딱서니 없는 부잣집 막내딸로···.]

‘그럼 그렇지. 역시 내 아우라 스카우터가 틀릴 리가 있나?’

나는 이내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찔러넣고 콧노래를 부르며 드라마본부의 기획제작부를 방문했다.

“어떻게 오셨나요?”

안경을 쓴 부스스한 머리의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이준형이라고 합니다. 기획제작부 부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10시에 미팅을 하시자고···.”

“아! J&J 엔터테인먼트에서 오신 이준형 작가님이시군요.”

내 소개를 들은 그녀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감돌았다.

“네. 그렇습니다.”

“반갑습니다. 작가님. 전 김수정 PD라고 합니다. 안 그래도 부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 안녕하세요! 이준형 대표님!”

김수정 PD와 그 이야기를 하자마자 근처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볼록하니 나온 배와 벗어진 머리가 인상적인 중년의 사내였다. 아무래도 그가 오늘 만나기로 한 김 부장인 것 같았다.

“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김광석 부장님. 이것 받으시죠.”

나는 선물로 사 온 음료수 세트를 김 부장에게 건넸다.

“아이고! 우리 대표님께서 친히 이런 것까지···.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시게 하다니 제가 죄인이네요. 이쪽 회의실로 들어가실까요?”

“그러시죠.”

나는 김 부장을 따라서 회의실로 들어갔다. 잠시 앉아서 MBS에 관해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하면서 음료수를 마셨다.

“요즘 방송국 힘드시죠?”

“저희 근황 다 아시죠? 어차피 대표님 사옥이 이 근처이시잖아요?”

“네. 멀지 않습니다.”

“뭐 다 아시겠지만, MBS 사정이 좀 그렇잖습니까. 적자도 어마어마하고···.”

“재작년에 900억인가 적자였고 작년은 소폭 흑자 아니었습니까?”

“그건 예능본부에서 히트작을 많이 내놔서 그렇게 된 거죠.”

“아! 드라마 쪽은···. 으음···.”

생각해 보니 MBS 드라마본부는 올해를 거하게 말아 드신 해였다. 자체 제작 하나를 제외하고 대다수를 차지하는 외주 제작 드라마들도 줄줄이 망해 버렸으니까.

“말해서 뭐 합니까. 정말 힘들어 죽겠습니다. 그거 아시죠? 거기 대표님 드라마도 일조하신 거요. 방송되는 작품마다 1위를 하셨으니···.”

나는 없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김광석 부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서 제가 찾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전화로 말씀드렸다시피···.”

“네. 대표님. 말씀하시죠. 경청하겠습니다.”

일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을 고쳐 먹는 김 부장이었다.

“저희가 차기 드라마를 하나 제작하려고 하는데 말이죠.”

“그 SBC랑 이야기하던 드라마 맞으시죠?”

“그렇습니다. 정확히 아시는군요.”

“그럼요. 이 바닥이 그렇죠. 뭐.”

“MBS와도 협상의 여지가 있습니다.”

“저희야 당연히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바죠. 한데 조건이 문제입니다.”

“조건이요?”

“아시다시피 저희 쪽 사정이 별로 좋지 않다 보니 제작비를 많이 못 드리거든요. SBC보다 더 드리긴 힘들 겁니다.”

김광석 부장은 자꾸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우린 당연히 가능합니다. 그런데 돈이 없어요’라며 배를 째는 표정이다.

“어차피 사정은 다 알고 있습니다. 회당 2억 정도만 주시면 됩니다. 그 외의 것들은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네? 정말이요. 2억이면 되겠습니까?”

“어차피 MBS가 줄 수 있는 최대 금액 아닌가요?”

“에이···. 작가님 작품이면 더 드릴 수도 있죠.”

“정말요?”

“아하하···. 농담입니다. 현재는 딱 그게 한계입니다.”

그렇겠지. 다 사정을 알고 온 나다. MBS 드라마는 SBC에 치이고 TVM에 치이고 JTVC에 치이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간 적자도 심해서 여력도 별로 없을 터. 최근 과도하게 투자한 대작 드라마가 쫄딱 망하는 바람에 내부적으로 큰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어차피 우리 미니시리즈는 16부작에 추정 제작비가 50억 정도니 MBS에서 회당 2억 정도 받으면 총제작비의 64%는 충당할 수 있었다.

거기에 PPL이나 OST, 기타 수익을 더하고 넷플릭에 판권을 팔고 국내 VOD까지 더하면 100억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넷플릭에 판권은 25억 정도로 논의가 되고 있으며 어차피 스타가 등장하는 로맨스 연예계 드라마니, PPL을 있는 대로 팍팍 넣을 예정이었다. 거기다 우리 천재 프로듀서들을 동원한 OST 수익까지···.

아무튼, 이번에 드라마에서 최대 수익을 경신해 볼 작정이었다.

나는 우물쭈물하며 내 눈치를 살피는 김광석 부장을 보고 씩 미소를 지었다.

“부장님.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정말입니까? 그럼 다행이군요. 휴···.”

김 부장은 한숨을 내쉬면서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고 있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부장님.”

“네. 말씀하세요.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역시 그냥 부장이 아니었다. 딱지치기로 딴 직급이 아닌지 당연히 요구 조건을 염두에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괜히 SBC를 마다하고 MBS로 왔겠는가?

“일단 조건은 시놉시스라도 보시고 이야기를 하시죠.”

“아···. 그렇네요. 워낙 대박을 낸 회사라 그런지 내용도 안 보고 계약할 뻔했습니다.”

“하하하···.”

나는 가져온 시놉시스와 대본을 김광석 부장에게 넘겨주었다. 그는 시놉시스를 잠시 훑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몇 장을 더 넘겨보고 다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 이건??”

동태 눈알 같던 김 부장의 눈이 번쩍 떠지며 초롱초롱 빛을 내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호오!”

그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손바닥에 자신의 오른손 주먹을 내리쳤다.

“이건 무조건 됩니다.”

김 부장의 눈빛이 한층 더 강렬해졌다. 이 드라마의 특이한 점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런데 오해하시면 곤란한 게 저랑 나유정 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나는 김 부장에게 오해하지 말라며 구차한 설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네네. 그러시겠죠. 상관없습니다. 내용이 흥미롭네요. 뭔가 마케팅하기도 쉽고요.”

김광석 부장은 시놉시스를 확인하자 적극적인 자세로 협상을 해 왔다.

“당연히 조건이 있으시겠죠? 돈을 더 준다는 SBC를 마다하고 오셨으니···.”

“조건이 2개가 있습니다. 그것만 들어주시면 MBS와 계약하겠습니다.”

“말씀해 보시죠. 제가 들어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질질 끌지 않고 곧바로 요구 조건을 설명해 나갔다.

“우선 첫 번째로 주연 배우 2명을 저희가 캐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SBC와 협상이 안 된 게 바로···. 음···. 혹시 어떤 배우를 쓸 작정이신지요?”

“여주인공은 윤하영을 쓸 작정이고요.”

“오! 윤하영 좋네요. 연기력도 출중한 CF 프린세스!”

“남주인공은 신인이긴 한데 권진현이라고···.”

“누, 누구라고요?”

“아마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조연으로 몇 번 나온 게 전부라···. 잠시만요. 제가 영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권진현의 프로필 사진과 영상을 보여 줬다. 권태현이 상남자조에서 빡세게 훈련을 받는 동안 형인 권진현은 드라마 조연으로 활동을 시작한 상태였다.

김 부장은 영상을 보고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스크는 좋은데···. 너무 모험 아닌가요?”

“MBS에서 미래 스타를 발굴하는 거죠. 비중 있는 배우를 쓰려면 제작비가···.”

“크음···. 자질은 괜찮습니까? 대표님의 사람 보는 눈이 아주 정확하다고 이 바닥에서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제작비 이야기를 꺼내니 김 부장이 급히 말을 바꿨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날까요? 사람 보는 눈 하면 저죠.”

나는 김 부장을 바라보며 능청스럽게 썩소를 날려 줬다. 어차피 그런 캐릭터로 이미지를 구축하기로 마음을 먹은 터였다.

“흐음···. 뭐 이 대표님이 그렇게 자신하신다니 한번 만나 보고 결정하도록 하지요. 두 번째 조건은요?”

“두 번째는 저희가 최근에 기획한 남자 아이돌이 있는데 MBS 음악 방송에 출연 좀 시켜 주십시오.”

“응? 대표님. 여긴 드라마본부입니다. 저희가 예능본부에 이래라저래라 할···.”

김 부장이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내가 오른손을 들어 그의 말을 제지했기 때문이다.

“잠시만요. 부장님. 예능본부 국장님하고 형, 동생 하시는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흠흠···. 제가 정 국장님하고 호형호제하는 사이는 맞죠.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셨죠?”

“이 바닥이 다 그렇죠. 뭐···.”

아까 들었던 말을 고대로 김 부장에게 돌려줬다.

“요즘 그 핫하다는 진짜 아이돌에 나온 애들이죠? 아···. 곤란하네요. 형진이 형하고는 친하긴 한데 이런 부탁은 거의 하지 않는지라···.”

김 부장은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 눈을 슬쩍 쳐다보더니 테이블을 손으로 톡톡 치고 있었다.

딱 봐도 뭔가 다른 카드가 있지 않냐는 그런 표정이었다.

“제가 맨입으로 부장님께 그런 수고를 끼치겠습니까?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죠.”

“허허···. 역시 이 대표님은 정말 수완이 탁월하시네요. 이렇게 젊으신데···.”

“혹시 솔깃한 제안이면 힘을 써 주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물론이죠. 말씀해 보시죠.”

“‘왜 혼자 사니?’에 나유정 씨를 출연시켜 드리겠습니다.”

“네?”

김 부장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왜 혼자 사니?’는 최근 시청률에 빨간불이 들어온 MBS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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