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플(?) 사기단 (1)>
무대 위에 나타난 상남자조 우리엘의 모습을 본 멘토들과 스태프들이 모두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다섯 명 전부 가죽 느낌이 나는 검은색 롱코트를 입고 있었다. 게임에서나 볼 법한 사각형 체인이 달린 슬림한 롱코트였는데 발목 근처까지 내려왔다.
이 무대 의상은 김규빈 스타일리스트 팀장이 며칠간 공을 들인 작품이었다.
각 멤버들에게 딱 맞아떨어지는 핏이었고 춤을 출 때 불편하지 않은 재질로 만들어졌다.
허리 부근의 벨트를 묶으면 날렵하게 조여지는데 오히려 가슴은 벌어졌다. 벌어진 가슴은 망사 형태로 속살을 언뜻 비추고 있었고 그 위로 엑스 반도가 지나갔다.
그리고 어깨에는 견갑을 착용하고 손에는 검은색 장갑까지 끼고 있었다.
하의는 검은색 군용 팬츠와 고급스러운 부츠로 마무리했는데 상남자조가 모두 키가 크고 피지컬이 좋다 보니,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그래도 서지훈은 살을 좀 더 빼야겠네.’
권태현, 성우진, 이도영, 강노아는 내가 생각한 이미지에 거의 근접했는데 서지훈은 아직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았다.
“와! 이거 매트릭스에 나오는 네오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무슨 게임 캐릭터 같은데요?”
멘토들이 무대 위에 등장한 상남자조를 가리키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어? 그런데 옷이 뭔가 빈티지 느낌이 나요. 자고로 무대 의상이라면 번쩍번쩍한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확실히 신인개발팀 유상준 팀장이 눈썰미가 있었다. 그들이 입고 나온 옷은 ‘나만 아는 세계멸망’ 시즌4에 사용될 의상이었다. 극의 분위기에 맞게 약간 낡은 느낌을 줘야 했다.
의상에서 가슴팍이 훤히 드러나 망사가 보이는 건 그냥 이번 무대의 설정일 뿐 실제 드라마에서는 약간 있어 보이는 군복처럼 나올 예정이었다.
그리고 멤버별로 디자인이 약간씩 달랐다. 현재 머리가 가장 길고 은발로 염색한 권태현은 견갑을 찬 모습이지만 옆에 이도영의 옷은 서바이벌 게임에 나오는 후드 롱코트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서지훈의 경우는 안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매트릭스 네오 느낌이 강했다.
“와! 102호 상남자조, 등장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팀 소개부터 해 주시죠.”
“둘셋!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불꽃 상남자 우리엘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소개가 짧고 정말 시원시원하네요. 팀명 우리엘이 무슨 뜻인가요?”
나유정 MC가 리더 성우진을 보면서 질문을 했다.
“네. 우리엘은 전설에 나오는 4대 천사 중 한 명으로 신의 불꽃이라는 의미입니다.”
“와! 신의 불꽃이라! 혹시 남신인가요?”
“남신이요?”
“아름다운 여자 연예인을 보면 여신이라고 하고 반면에 남성적인 매력이 강한 사람들을 남신이라고 하잖아요.”
“아! 그 남신이군요. 그럼 나유정 선배님은 여신이시겠네요.”
“호호···. 그, 그렇게 되나요?”
성우진의 너스레를 듣고 얼굴이 활짝 핀 나유정이었다.
“팀명은 누가 지은 건가요?”
“네. 저희가 이름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이 대표님께서 멘토링을 해 주실 때 의견을 주신 팀명입니다. 멤버 전원이 마음에 들어서 만장일치로 결정된 이름입니다.”
“혹시 강권한 건 아니죠?”
“아닙니다.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실제로 ‘우리엘’은 내가 제안한 팀명이었다. 우리엘이란 유대교 전설에 나오는 천사로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과 함께 4대 천사로 일컬어진다.
하지만 카톨릭과 개신교에서는 우리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반쪽짜리 천사였다.
나세멸 시즌4에 나오는 나유정의 캐릭터인 레이첼이 완전무결한 생체 병기라면 우리엘은 어딘가 하나씩 흠이 있는 실패작이었다. 예를 들면, 말을 어눌하게 한다거나 너무 난폭하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그래서 팀명을 우리엘로 추천한 것이다. 물론 녀석들은 의미를 오해한 모양이지만···.
“자! 그러면 상남자조 우리엘의 무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화면이 바뀌며 상남자조가 치열하게 무대를 준비하는 영상이 송출되기 시작했다.
상남자조는 꽁냥조와는 달리 차분하고 묵직한 모습이었다. 뭔가 JJ 보이즈와 비교하면 분위기가 안 좋은가 싶기도 했지만, 실상은 말없이 서로를 돕고 신뢰를 하고 있었고 영상으로도 그 모습이 느껴지고 있었다.
악마 같은 케이의 프로듀싱을 받고 힘들어하는 멤버들을 말없이 어깨를 다독이는 모습도 나왔다.
‘이런 게 남자들의 세계지. 암···.’
드디어 케이가 작곡한 웅장한 댄스곡이 흘러나오며 우리엘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JJ 보이즈가 블링블링하고 심쿵한 무대를 보여 줬다면 우리엘은 개개인의 연기력과 스타성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전원이 조금이라도 노란색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확실히 표정 연기가 남달랐다.
타이틀곡 ‘Guardian Angel’의 가사처럼 너를 지키겠다는 그 마음가짐이 눈빛으로 전해져 왔다.
“와! 눈빛 연기 좋다!”
김형탁 멘토가 무릎을 ‘탁’ 치면서 놀라고 있었다.
확실히 우리엘은 뭔가 하나라는 느낌보다는 개개인의 스타성이 돋보이는 개성 만점의 팀이었다.
‘한명 한명이 다 보이는 특이한 팀이야. 그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스타성이 충분한 녀석들이라는 소리겠지.’
더군다나 메이크업도 살짝 강렬하게 해서 그런지 스포트라이트가 비치자 얼굴에서 빛이 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아주 좋아.’
앞에 나를 찍고 있는 카메라가 신경 쓰였지만, 나는 케이의 댄스곡에 맞춰 리듬을 타고 있었다.
갑자기 우리엘의 포메이션이 변하며 은발의 권태현이 앞으로 튀어나와 1절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불렀다.
그는 엄청난 성량과 단단하고 힘 있는 보컬로 멘토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몇 번 본 나조차 그 모습에 압도되어 한숨을 몰아쉴 정도였다.
권태현의 강렬한 보컬에 화음을 넣어서 소리를 풍성하게 해 주는 서지훈의 멋진 음색도 돋보였다. 물론 그는 춤이 뛰어나다고 할 수 없었지만 빠른 습득력으로 그럭저럭 동작을 맞추는 정도까지는 올라왔다.
‘기적이었지. 물론 지금도 되게 못 추는 거긴 해.’
하지만 서지훈은 근성이 있고 아우라가 충분했으니 잘 따라올 것 같았다.
반면, 춤에 있어서 유독 눈이 가는 멤버가 바로 이도영이었다. 역시 일류 기획사 출신이라 다른 걸까? 아니면 매력적인 피지컬 때문이었을까?
그는 강노아, 성우진과 함께 안무를 멋지게 이끌어 가는 일등공신이었다. 비주얼 센터지만 춤이 부족한 권태현을 대신해 가운데서 맹활약하고 있었다.
빠르게 몰아치던 곡이 잠잠해지며 끝나 가고 있었다. 살짝 삐걱거리는 모습도 보여 줄 법한데 실수 없이 잘 넘긴 것 같았다.
노래가 끝나고 카메라가 다섯 명의 상남자를 하나하나 비췄다.
“우와!!”
멘토들과 스태프들 사이에서 엄청난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와···. 우리엘은 진짜 한명 한명이 개성이 강하네요. 방금 카메라를 잡아먹는 줄 알았어요.”
김형탁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엄지를 내밀고 있었다.
“라이브도 좋았어요. 권태현은 진짜 물건이네요. 프레디 머큐리가 다시 돌아온 줄 알았어요.”
“서지훈의 리드 보컬도 좋았죠. 확실히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친구예요. 권태현의 부족한 부분을 아주 잘 채워 줬습니다.”
“맞습니다. 그걸 누가 가르쳤을까요?”
“재훈 씨? 너무 그러는 거 아닙니다.”
“제 자랑이 좀 심했나요?”
“뭐···. 거슬릴 정도는 아니고요. 그나저나 우리 회사로 오실 생각 없으십니까?”
“글쎄요? 투잡을 인정해 준다면?”
그도 뭔가 대박의 징조를 느낀 모양이었다. 얼마 전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듯 행동했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생각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중에 한번 따로 보시죠.”
“그러시죠.”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무대 위에서는 나유정이 숨을 고르고 있는 우리엘 멤버들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멋진 무대 감사합니다. 뭔가 남성적인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그런 무대였어요. 자! 컨셉 평가를 마친 소감을 한번 들어 볼까요? 가장 연장자인 서지훈 씨?”
“아···. 저요? 네···. 하아···. 솔직히 노래만 할 줄 알았던 저를 이렇게까지 끌고 온 우리 102호실 우리엘 멤버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능성이 있다고 계속 응원을 해 주신 이준형 대표님, 정재훈 멘토님, 김형탁 멘토님 너무 감사드리고 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채찍질을 해 주신 유상준 멘토님과 정혜성 사범님에게도 감사드리겠습니다.”
서지훈은 멘트를 마치고 갑자기 무대에서 큰절을 했다.
“우리 지훈 씨가 무대를 잘 마치고 감정이 북받쳤나 봅니다.”
성우진이 손을 올려 어깨동무를 하며 살짝 눈시울이 붉어진 서지훈을 위로해 주고 있었다.
“자···. 이렇게 두 팀의 무대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막상막하였던 것 같은데요.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곧 이준형 대표님의 우승팀 발표가 있을 예정이니 JJ 보이즈 여러분들도 무대로 올라오시기 바랍니다.”
나유정의 말을 듣고 JJ 보이즈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들은 우리엘과 포옹을 하고 서로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고 있었다.
갑자기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하지만···.
“곧 승자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내가 마이크를 잡자 무대 위에 있는 멤버들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빨리 발표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두 팀 다 짧은 기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기에서의 경험은 어딜 가더라도 인생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내 발언은 한 팀은 무조건 떨어진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꿀꺽···.
참가자들은 긴장이 됐는지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고 멘토들도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두 팀 다 정말 잘하셨지만, 이번 경연에는 승자와 패자가 존재합니다. 이제 최종 데뷔조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수민 PD는 분위기에 맞게 긴박한 배경 음악을 깔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무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카리스마 있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진짜 아이돌 최종 데뷔조는···.”
강한 드럼 사운드가 공개홀을 가득 메웠다.
“우리엘입니다. 축하합니다.”
내 말이 떨어지자 우리엘 멤버들은 서로를 얼싸안았고 JJ 보이즈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우리엘은 겉으로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비록 다른 조였지만 한 달 동안 같이 고생한 동료들이 떨어지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JJ 보이즈는 그간의 고생이 생각났는지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누구는 얼굴을 감싸 쥐고 누구는 고개를 쳐들고 천장을 바라봤다.
“···비록 떨어졌지만, JJ 보이즈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가 덕담을 건넸지만 어떤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허 참···. 이거야 원. 더는 못 보겠네.”
김형탁은 이런 서바이벌이 익숙하지 않은지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무대는 우리엘과 JJ 보이즈가 서로를 격려하고 안아 주고 있었다. 데이브와 토시노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메이크업이 지워질 정도로 울고 있었다.
“잠시만요!”
갑자기 누군가 마이크를 잡고 크게 소리를 쳤다. 나는 살짝 웃음이 나왔지만, 표정을 바꾸지 않고 무대 위를 쳐다보았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다름 아닌 MC 나유정이었다.
“왜 그러시죠?”
나는 시치미를 떼고 나유정 이사에게 반문했다.
모든 이의 시선이 나와 나유정을 향했다. 한수민 PD도 화들짝 놀라서 스태프들에게 다시 긴급하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다들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제 마음이 바뀌었어요.’
솔직히 JJ 보이즈가 이렇게까지 잘하고 반응이 좋을지 몰랐다. 예전엔 세모인 애들이었지만 지금은 동그라미를 받을 만한 인재들로 거듭났다.
하지만 중소 기획사가 동시에 두 팀을 데뷔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무조건 데뷔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는 팀이 생기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우리엘은 이미 글로벌 히트 드라마 ‘나세멸’에 출연이 확정돼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JJ 보이즈가 동시에 데뷔하기 위해서는 좀 더 강렬하고 절박한 스토리 부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까 유정 씨와 이런 상황을 연출하기로 이야기가 된 상태였다.
“저는 이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정 씨가 연기 모드에 돌입해서 나를 매섭게 쳐다보고 있었다.
“문제라니요?”
“제 생각엔 JJ 보이즈도 우리엘 못지않게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 이사님 말씀은 우리엘이 아니라 JJ 보이즈를 데뷔시켜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 말에 무대에 있는 참가자들이 깜짝 놀라고 있었다. 펑펑 울고 있던 JJ 보이즈 멤버들이 울음을 그치고 멍하니 우리를 바라볼 정도였다.
“PD님 잠시 끊어 주세요. 대표님, 잠시 이야기 좀 해요.”
“그럽시다.”
나유정은 손으로 촬영을 중단하자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나는 한수민 PD를 바라보며 한쪽 눈을 감았다. 그냥 마이크만 끄라는 신호였다.
그러자 그녀는 이해했다는 투로 한 대의 카메라를 출동시켰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아래로 이동해 나유정과 격론을 벌였다. 그 모습을 카메라가 멀리서 찍고 있었다.
“준형 씨.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민망해요.”
“말은 그렇게 하시면서 화난 연기 잘하시네요.”
“사돈 남 말 하시네요. 준형 씨는 근엄한 거 안 어울려요.”
“아무튼, 이런 기획도 좀 필요합니다. 어그로죠. 어그로!”
“나야 상관없는데 준형 씨 욕먹을까 봐 그렇죠.”
“유정 씨가 뭘 몰라서 그런 거 같은데, 대표들은 원래 욕먹는 자리입니다. 좋은 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요.”
“잘해 봐야 본전이라는 건가요? 우리 준형 씨. 이제 진짜 대표답네요.”
“이 한 몸 희생하는 거죠.”
“이 정도면 되지 않았어요. 다들 걱정스럽게 보는데···.”
“이제 슬슬 가 볼까요?”
나는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심사위원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한 가지 공지사항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