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아돌 오디션 (1)>
“여보세요. 이 전무님?”
[···대표님. 이기훈입니다.]
이기훈 전무의 음성이 낮게 깔리고 있었다.
“아! 안 그래도 전화 한번 하려고 했는데···.”
[이 대표님. 실망입니다. 어떻게 저한테 말도 안 하고 카오스랑 그렇게 합작하실 수 있습니까?]
이럴 줄 알았다. 딱 내 예측대로였다.
현재 CA 미디어는 게임 회사와 합작해서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코스모스를 론칭한 상태였다.
“네? 아···. 일이 그렇게 됐습니다. 코스모스였던가요? CA도 잘 만드셨던데요? 저희야 어디든 좋은 제안이 들어오면 고민을 해 봐야죠.”
[전 당연히 저희와 같이할 줄 알고 있었습니다.]
‘무슨 소리야. 우리한테 아무런 이야기도 안 해 놓고···.’
가만히 듣다 보니 짜증이 났다.
내가 아직도 XM Ent.의 이 실장인 줄 아나?
“전무님. 전 CA 쪽에서 어떤 제안도 받지 못했습니다만?”
[그건 당연히 저희 산하 기획사들 위주로 먼저 하고 차후에 입점을 시키려고 한 거 아니겠습니까?]
“흐음···.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시기가 좀 안 맞은 거 같네요. 저희도 드라마 때문에 아이돌 배우를 구하고 있었는데 마침 카오스에서 좋은 협력 제의가 와서요.”
[그래도 이해가 안 가네요. 그 플랫폼에 무슨 장점이 있습니까? 전 솔직히 대표님이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아직 모르죠. 지금은 보잘것없지만, 차후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그리고 그쪽에서 제시한 조건이 파격적이기도 했습니다.”
[혹시 저번에 제가 거절한 배우 협조 때문에 그러신 겁니까?]
“뭐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결정을 내리는 데 영향을 준 건 사실이죠. 하지만 그것보다도 중요한 건 전무님 쪽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는 겁니다. CA한테는 우리가 그다지 중요한 파트너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중요하지 않다니요. 저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뭔가 담당자 선에서 오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네. 타이밍이 안 좋았던 거 같아요. 그래도 저희는 CA와 아주 밀접한 사이입니다. 귀환소녀 시즌2도 방영해야 하고요. 아! 시즌2도 TVM에서 방영해 주실 거죠?”
[다, 당연하죠. 그거 아직도 미계약 상태입니까? 내 이 사람들을 그냥···.]
이기훈 전무는 임원진들의 깔끔하지 못한 일 처리에 신경질을 내고 있었다.
“전무님. 방영만 해 주신다면 상관없습니다. 시즌2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당장 계약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아직 촬영도 안 했으니까요.”
[이 대표님. 앞으로 다른 작품이 있다면 꼭 저희와 먼저 상의했으면 합니다.]
“네. 되도록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저희도 사정이 있다 보니 모든 걸 제가 이래라저래라 하긴 힘드네요. 저번에 보니까 전무님도 비슷하신 것 같던데요? 회사 결정에 다 관여하시는 건 아니라고 하셨죠? 그래서 배우 협조가 불발된 거 아닙니까?”
[···크흠···. 뭐 그런 편이죠.]
유치하지만 얼마 전 그에게 들었던 말을 똑같이 되풀이해 줬다.
아마도 담당 임원들이 오늘 큰 고초를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무님. 제가 좀 바빠서요. 시즌2 촬영 시작하면 그때 연락 한번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이기훈 전무와 통화를 종료하고 기지개를 쭉 켰다.
“아우···. 뻑적지근해. 그래도 한 가지는 해결했다.”
나는 어디 한 곳에 종속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최대한 다양한 곳과 거래를 하며 몸값을 높일 생각이었다.
물론 르네상스인 지금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 * *
드디어 진아돌에 출연할 30명의 지원자가 결정됐다.
능력자들이 많아 신인개발팀이 인재들을 추리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한다.
나는 방송용으로 옷을 차려입고 녹화장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30명에서 10명으로 출연자를 좁히는 오디션이 있는 날이었다.
촬영 장소는 바로 우리 회사의 연습실이었고, 방송을 찍기 위해 어느 정도 세트 비슷하게 꾸며져 있었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현장 스태프들이 내 얼굴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수고 많으시네요.”
그들은 크리에이티브 본부 콘텐츠 제작팀 직원들로 진아돌 제작을 맡고 있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저번 아우라 팬 미팅 라이브 생중계를 담당했던 한수민 PD였다. 그동안 한가했던 콘텐츠 제작팀은 요즘 들어 상당히 바빠 보였다.
그게 얼굴에서 표시가 난다고 할까? 그녀는 약간 피곤한 얼굴로 나에게 인사를 했다.
“한 PD님, 고생 많으십니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립니다.”
“아무런 문제 없이 매끄럽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으니 심사위원(멘토)들이 하나둘씩 입장하고 있었다.
“이 대표님! 머리는 괜찮으시죠?”
드라마에서 내 뚝배기를 깼던 연기 부문 멘토인 배우 김형탁이 웃으며 연습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이번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제가 대표님 때문에 번 돈이 얼마인데요.”
“시즌3 촬영은 잘 끝나셨어요?”
“네. 제 분량이 조금 늘어나서 만족스럽습니다.”
리더십, 협동, 체력 단련 멘토 정혜성, 댄스 멘토 유상준, 보컬 멘토 정재훈이 차례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정재훈입니다.”
“재훈 씨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준형입니다.”
“아이고···. 드라마 너무 잘 보고 있습니다. 팬입니다. 대표님.”
“저도 재훈 씨 노래 좋아합니다. 노래방에 가면 자주 부르거든요.”
“네? 설마요. 예전에 투데이아이돌에 출연하셔서 삑사리 엄청 심하게 내지 않으셨어요? 그거 레전드였잖아요. 조회수 한 천만 넘었을걸요? 제가 미튜버라 그런 건 또 빠삭하죠.”
“아···. 그건 웃기라고 한 겁니다.”
“대표님. 전문가의 입장으로 봤을 때 그건 절대 일부러 할 수 없는 삑사리입니다.”
“···그때는 좀 긴장해서···. 갑자기 예정에 없는 상황이어서 상당히 곤란했습니다. 그래서 음 이탈도 나온 거고요”
“대표님! 관심 있으시면 제 방송 한번 나오시죠. 음치 탈출 넘버원이라는 코너가 아주 핫하거든요.”
“크흠···. 저 음치 아닙니다. 재훈 씨는 방송하고 정말 똑같으신 것 같습니다. 아무튼, 개인 방송에서 보여 주셨던 것처럼 신들린 보컬 트레이닝 부탁드립니다.”
“암요! 당연합니다. 이번 기회에 2백만 뚫어야죠.”
“······.”
갑자기 문이 열리며 화려한 차림새로 변신한 나유정 이사가 연습실로 입장했다.
캐주얼 정장이었지만 튀는 블라우스로 확실히 포인트를 준 멋진 의상이었다.
“오오!”
옆에서 정재훈이 눈을 크게 뜨고 박수를 치는 게 아닌가?
“다들 안녕하세요?”
그녀는 상큼한 표정으로 모든 이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내 옆자리에 착석했다.
“지금 찍고 있는 건가요?”
유정 씨는 카메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확실히 프로페셔널한 모습이랄까?
“네! 이사님. 아까부터 촬영 중입니다.”
‘헉!’
아까 정재훈 씨와 나누었던 대화도 다 찍혔나? 생각해 보니 아까 연습실로 들어오기 전에 마이크를 찼었는데 이미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나 보다.
‘젠장···. 흑역사 또 언급되겠네. 편집하라고 압력이라도 넣어야 하나?’
“오늘 촬영하는 것은 다 짧게 편집될 거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다들 방송 경험이 많으셔서 상관없는데 혜성 씨가 살짝 걱정되네요.”
유정 씨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정혜성을 쳐다보았다.
“하하···. 전 그냥 조용히 무게 잡고 있겠습니다. 아까 대표님이 어차피 공중파 방송이 아니라 살짝 과묵한 컨셉으로 가도 된다고 하셔서요. 예전 액션 스쿨 교관 때처럼 무게 좀 잡으려고 합니다.”
정혜성 사범은 유정 씨의 걱정에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오케이! 좋습니다. 사범님.”
나유정은 정혜성에게 엄지 척을 날리며 미소를 지었다.
“나 이사님 오늘 너무 기합 들어간 거 아닙니까?”
“평소답게 하고 있습니다만···.”
“이제부터 오디션을 시작할까요?”
“그러시죠.”
멘토들이 모든 준비를 끝내자 첫 번째 참가자가 곧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편안하게 앉아 있던 멘토들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
‘어우···. 처음부터 뭐야?’
연습실로 들어온 청년은 누가 보더라도 서양인이었다.
키는 170cm 후반으로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서양 쪽에서 보기 드문 꽃미남이었다.
댄스 연습을 했는지 하얀 얼굴에 홍조가 피어 있었고 옅은 갈색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서양에서는 게이라고 오해를 살 그런 깔끔하게 관리된 외모였다.
“어···. 음···. 처음부터 상식을 깨는 등장이네요. 제작진들이 초반부터 작정했군요.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나유정은 MC와 같은 능숙한 진행 솜씨로 오디션을 이끌어 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미국 유타에서 온 데이브라고 합니다.”
“어우! 깜짝이야. 한국말을 왜 이렇게 잘합니까?”
“아···. 제가 혼혈입니다. 어머님이 한국인이세요.”
“아! 그렇습니까? 어떻게 보면 선이 얇은 게 확실히 일반 서양인하고 다르게 생겼어요.”
“어떻게 보면 한국 사람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에이···. 그건 아니다!”
나유정은 첫 번째부터 대박이라고 생각했는지 손뼉을 치면서 기뻐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해 보니 케이팝을 좋아해서 미국에서 개인적으로 관련 미튜브를 운영하고 있으며, 별생각 없이 지원했다가 합격 소식을 듣고 급히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 지금은 어디에 있어요?”
“친척 집에 살고 있습니다. 이모 집이 서울입니다. ”
“데뷔에 대한 열정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나유정이 인터뷰를 이끌어 가는 동안 나는 그의 아우라를 살펴보고 있었다.
‘음··· 괜찮은 붉은색 아우라네. 연기 쪽 자질은 안 보이지만 노래 쪽에 포텐이 있구만?’
“그럼 데이브! 자신이 있는 것부터 볼까요? 준비되셨습니까?”
“넵! 준비됐습니다.”
그는 일어서서 옆에 준비된 스탠드 마이크를 손으로 잡았다. 멘토들의 시선이 그에게 꽂힌 가운데 스태프가 음악을 틀었다.
연습실 스피커로 리드미컬한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 마이클 잭슨!’
Love Never Felt So Good이라는 곡이었다.
“와우!”
전주가 흘러나오고 그의 보컬이 시작됐다. 마치 전성기 마이클 잭슨을 연상시키는 얇은 미성이었다.
‘와! 그루브 감 뭐야. 대박이네.’
아우라를 봐야 알아차릴 수 있는 잠재력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본인도 노래를 꽤 잘하는 걸 아는 모양. 원곡 가수처럼 목에 강하게 힘을 주는 창법을 꽤 자유롭게 사용했다.
멘토들은 첫 참가자의 뛰어난 노래 실력에 빠져들었다. 심지어 유상준 팀장은 몸이 근질거리는지 리듬에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와!!”
데이브의 노래가 끝내고 엄청난 박수가 이어졌다. 그는 잘해 냈다는 성취감으로 표정이 환해졌다.
‘매력적인 캐릭터네. 하지만 사천왕에 끼기엔 피지컬이 약해.’
나는 사천왕, 혹은 오천왕으로 상남자들을 포진시킬 예정이었다.
공교롭게도 J&J의 남자 연습생 3명은 키가 다들 컸다. 가장 큰 막내 이도영은 키가 187cm였다.
가장 먼저 심사평을 말한 사람은 보컬 트레이너 정재훈이였다.
“노래 잘 들었습니다. 진짜 부르기 어려운 노래인데 정말 잘하셨어요.”
“감사합니다.”
“마이클 잭슨 노래가 진짜 맛깔나게 부르기 힘들거든요? 그런데 데이브 씨는 중음이 진짜 트렌디하게 들리네요. 그게 바로 데이브 씨의 강점이에요. 물론 전문적인 트레이닝이 안 돼 있다 보니 고칠 점은 몇 가지 눈에 띄는군요. 하지만 어쨌건 아주 훌륭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정재훈의 심사평에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하지만 심사표에 세모를 그려 넣었다.
그 표시를 보고 나유정이 눈을 흘기고 있었다.
‘왜 세모냐고요? 그거야 이미지에 안 맞으니까.’
나는 멤버로 뽑을 사람은 동그라미, 진아돌에 출연만 시킬 멤버는 세모, 아웃은 엑스 표시를 할 예정이었다.
데이브는 연기에 대해선 아무 준비가 안 돼서 완벽한 발연기를 선보였고, 그나마 춤은 어설프게라도 추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케이팝 마니아라 커버 댄스는 조금 춰 본 모양이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심사가 끝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무리 혼혈이라도 한국어가 저렇게 능숙하기 힘든데 어렸을 적부터 꾸준히 한국말을 해 온 모양이었다.
“뭐예요? 저런 인재가 왜 세모예요?”
첫 번째 참가자가 나가자 나유정 이사가 나를 보고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훔쳐보지 말아요. 그냥 자기 생각대로 평가합시다.”
“칫···.”
“자! 다음 참가자 들어오세요.”
우리가 티격태격하고 있는 사이 다른 참가자가 쭈뼛거리며 연습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으음···. 이번에는 한국인인가?’
170대 초반으로 보이는 꽃미남이 이런 상황이 머쓱한지 긴장한 표정으로 멘토들을 쓱 훑어보는 중이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나유정의 사회로 두 번째 참가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일본에서 온 시즈 토시노리라고 하무니다. 노리라고 불러 주세요.”
’응? 한국인 아니었어?”
심사위원들도 의외였는지 옆을 쳐다보며 웅성대고 있었다.
몇 년 전보다 외국인 연습생이 열 배로 늘었다더니 정말 전 세계적으로 케이팝이 대세긴 대세인 모양이었다.
‘글로벌이네. 글로벌···.’
내 눈에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처럼 생긴 일본인인 노리의 아우라가 심하게 일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