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37화 (237/263)

< 하이틴 드라마 캐스팅 (2)>

“남주인공이 남의 생각을 읽는 동년배 최강의 바둑 기사라고요? 완전 치트키네요?”

유정 씨가 차기작에 대한 내용에 대해 묻고 있었다.

“그게 과연 치트키일까요? 누군가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은 불행일 수도 있습니다. 아는 게 병이요,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죠.”

“아···.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정확히 말하면 생각을 언제나 읽는다는 게 아니고 상대방의 염원이 가끔 들리는 컨셉입니다. 염원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잘 전달되죠. 특히 욕망 같은···.”

“음···. 그러면 남주인공이 미남이니까···.”

“맞아요. 여자들의 욕망이 남주인공에게 생생히 들리는 거죠. 그래서 여자에게 마음을 닫고 있는 캐릭터예요. 물론 여자들 말고 다른 사람들의 추악한 욕망도 듣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 불신에 빠져 있죠.”

“흐음···.”

나유정은 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왜 냉미남을 캐스팅해야 하는지 알겠죠?”

“네. 상당히 흥미로운 캐릭터네요. 아이돌 플랫폼과 연동하는 오리지널 시리즈라면 당연히 주연 배우가 아이돌이어야 할 텐데 딱 떠오르는 사람이 몇 명 안 되는데요?”

“그렇죠. 얼굴 천재라고 불리는 슈퍼노바의 김우주나 테리우스의 한연준 정도는 되어야 하겠죠.”

“그럼 힘들지 않을까요? CA 미디어도 모 게임 회사랑 그런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면서요. 그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 엄연히 카오스는 경쟁사인데···.”

“하하···. 제가 두 사람을 언급한 건 바로 그걸 노린 겁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노리다니요?”

“우리가 카오스 플랫폼에 들어간다고 하면 CA 미디어에서 가만히 있을까요? 이기훈 전무가 뭐라고 할 거 아닙니까?”

“그렇죠. 아무래도 지금까지는 CA 쪽이랑 밀접한 관계였으니까요.”

“만약 제가 이기훈 전무에게 김우주나 한연준에 대해 드라마 출연 요청을 한다면 거절할 확률이 높잖아요. 걔들이 지금 얼마나 바쁩니까? 그걸 구실 삼아서 카오스와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하는 거죠.”

“와···. 잔머리.”

유정 씨는 질렸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잔머리라뇨? 사업하면 이런 것도 다 고려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명분이 중요하거든요.”

“복잡하네요. 적은 만들지 않는다! 뭐 이런 건가?”

“후후···. 비슷합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연락해 볼까요?”

“지금요? 누구한테요?”

“누구긴요. 이기훈 전무죠. 어차피 할 일도 없잖아요. 길도 이렇게 막히는데···.”

나는 핸즈프리 버튼을 눌러 이기훈 전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이기훈 전무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차분한 톤의 목소리였다. 뭔가 친근한 것 같은데 은근히 거리감이 느껴진달까?

“전무님 별일 없으시죠?”

[그럼요. 요즘 드라마 시청률이 잘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내부에서 새로운 시청자층을 공략했다고 평이 아주 좋습니다.]

“하하···. 결과가 좋으니 다행이네요.”

[이렇게 갑자기 전화하시는 분이 아니신데, 우리 이 대표님께서 무슨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아닌가요?]

“예. 사실 이런 사소한 걸 전무님께 말씀드리는 게 우습긴 하지만 상황이 급해서 염치없이 전화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네. 그게 뭔지 궁금하군요.]

“다름이 아니라 저희 회사에서 차기작으로 하이틴 드라마를 만드는데 슈퍼노바의 김우주나 테리우스의 한연준급의 멤버가 필요합니다. 혹시 협조 가능할까요?”

[···무슨 드라마를 제작하시길래 그러십니까? 제가 결정할 사항은 아니지만 아마 힘들지 않을까요? 최근 개인 활동은 잘 안 시키겠다고 보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오죽 급했으면 제가 전무님께 전화해서 하소연하겠습니까?”

나는 급한 게 전혀 없었지만 초조한 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혹시 덥석 무는 거 아닌가 싶어서 살짝 걱정됐지만, 그는 나름의 생각이 있는지 일단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룹으로 최고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그룹의 장기간 개인 활동은 좀처럼 내리기 힘든 결정이기 때문이다.

[흐음···. 모처럼 우리 이 대표님이 전화를 주셨는데 그냥 안 된다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겠죠. 제가 관련 담당자와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무님”

관련 담당자란 산하 기획사의 대표나 임원 정도일 거다. 이기훈 전무는 어차피 미디어 제국을 이끌어갈 차기 선장 아니겠는가? 전화 한 통이면 곧바로 연결될 확률이 높았다.

나는 일단 전화를 끊고 유정 씨를 쳐다보았다.

“제 초조한 연기 어때요?”

“그러다 출연시켜 준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후후···. 얼마 내기할래요? 분명히 이 전무는 대충 전화 한 통 해 보고 바로 연락이 올 겁니다. 안 된다고요. 아마 그냥 알아보지도 않고 잠깐 기다렸다가 다시 전화 줄지도 몰라요.”

“설마요.”

유정 씨는 설마 아니겠지 하는 표정이었지만 정말 내 말대로 10분도 안 돼서 전화가 왔다. 당연히 대답은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대신 다른 배우를 소개해 준다고 했지만, 이번엔 내 쪽에서 거절했다.

“아쉽습니다. 전무님. 더도 말고 딱 3개월만 하면 되는데요.”

[하하···. 솔직히 제 소관도 아니고 제가 계열사에 이래라저래라 할 순 없으니까요. 대표님도 잘 아시잖아요.]

“하아···. 큰일이네. 일단 알겠습니다.”

나는 이기훈 대표 들으라고 한숨을 푹 내쉬고 전화를 끊었다.

“이래도요?”

“···맞네요. 출연시킬 생각이 아예 없구나.”

“그럴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변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치···.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그냥 나중에 변명으로 쓰기엔 그럴싸하지 않나요? 물론 그런 변명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아니지만···.”

“아무튼, 설계해 놨으니 우리는 얼른 일을 진행하면 되겠네요.”

“할 거 많네요. 신규 드라마도 제작해야 하고 진아돌도 해야 하고··· 아차! 게임 스토리도 써야겠네.”

그리고 막히는 길 운전까지···. 그렇게 피곤한 하루가 가고 있었다.

*  *  *

“대표님, 보고드렸던 대로 지난주 ‘진아돌’ 접수가 마감되었습니다.”

조아린 팀장이 주간 업무 보고 회의 때 관련 내용을 보고하고 있었다. 2주간 접수를 했는데 지원자가 자그마치 1,000명이 넘었고, 예상대로 다른 회사 연습생을 관두고 오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신인개발팀과 저희가 동영상을 아직 다 살펴본 건 아니지만 꽤 좋은 지원자들이 많았습니다.”

“네. 최대한 30명까지 잘 걸러 주세요. 그 사람들부터는 면접을 봐야 하니까요. 나 이사님. 믿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치열하게 논의하고 뽑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우리 회사 연습생이 이미 3명이니 최소한 1명만 더 뽑으면 되는 일이다.

‘아우라가 검증된 3명은 촬영 도중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합격이라고 봐야지. 아우라는 절대 거짓말을 안 하거든.’

지금까지 몸소 체험한 사실이랄까? 아우라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결국에 돋보이기 마련이었다.

‘낭중지추야. 결국, 이쪽 바닥은 매력이 우선이니까.’

물론 능력이 있는 인재가 있다면 추가로 더 뽑아도 상관없었다. ‘나세멸’에 출연하는 건 원래 사천왕이었지만 숫자는 내 맘대로 변경할 수 있었으니까.

“대표님. 특이한 게 해외에서 지원이 참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저번 헬게이트와 함께한 팬 미팅 공연이 화제가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J&J는 쓸데없는 연습생을 안 뽑는다는 소문도 영향을 준 모양입니다.”

“뭐···. 그건 팩트긴 하죠. 어쨌거나 수고 좀 해 주시고···. 다른 회사 연습생이었던 지원자들은 계약 관계를 철저히 파악해 주세요. 분명히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주간 업무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게임 스토리 관련 업무는 진즉 끝냈고 ‘흑백 로맨스’에 대한 캐스팅 작업을 하고 있었다.

차기작은 하이틴 드라마답게 조연들도 아이돌로 채울 예정이었다. 중요한 배역은 내 아우라 스카우터를 통해 뽑았기 때문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제작3팀도 신규로 만들어졌다. 기존 ‘나세멸’ 팀과 ‘귀환소녀’ 팀에 배속되어 교육을 받았던 신입 사원들이 주축이었다.

그들은 인디 영화제에서 수상한 신인들로 제작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으니 이제는 젊은 감각을 뽐낼 타이밍이었다.

‘아무래도 나이들이 젊다 보니 하이틴 드라마를 누구보다 잘 만들겠지.’

그들은 벌써 드라마를 맡게 되었다며 흥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게 잠시 상념에 빠져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여보세요? 이준형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대표님. 저 김형준이라고 합니다. 저번 카오스X 사옥에서 뵌···.]

“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나요?”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기억하시는군요.]

“그럼요. 형준 씨 같은 사람을 어떻게 잊어먹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대표님. 혹시 오늘 좀 찾아뵐 수 있을까요?]

“아···. 물론이죠. 저희 회사 위치는 아세요? 네네···. 그쪽으로 오시면 로비에 말을 해 놓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남주인공 싱크로율이 100%인 배우가 제 발로 걸어오다니···.

‘2주가 흘렀으니 계약도 만료됐을 거고···. 혹시 지금 회사도 없는 거 아냐?’

2시간 후 로비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곧장 내 사무실로 안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김형준은 안내를 받고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는 심플하고 깔끔한 옷차림에 백팩을 매고 있었다. 역시 패션의 완성은 얼굴일까? 별다른 멋을 내지 않았는데도 뭔가 차려입은 듯한 느낌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대표님.”

“네. 형준 씨. 어서 오세요. 앉으시죠.”

그는 넓은 내 사무실 크기에 놀란 듯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와···. 여긴 진짜 무슨 작가 사무실이네요.”

“당연하죠. 제가 여기서 집필합니다. 그러니 작가 사무실이 맞죠.”

“이런 곳에서 글을 쓰면 정말 아이디어가 팍팍 나올 것 같아요.”

“요즘은 머리가 굳어서 잘 안 나옵니다.”

“에이···. 농담도 잘하시네요.”

김형준이 나를 보고 웃자 주변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크···. 무표정일 땐 차갑고 도도하지만 웃을 땐 아이 같네. 같은 남자가 봐도 이렇게 잘생겼는데 여자들은 오죽할까?’

나는 김준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를 마셨다.

“엑스크루 전체가 회사와 계약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다들 각자 갈 길을 찾아가기로 했나 보네요.”

“후. 네. 맞습니다. 그렇게 됐네요. 저는 그냥 더 해도 상관없었는데 워낙 견해차가 컸어요. 주축 멤버들이 다 빠지는 바람에···.”

“어쩌다 그렇게 된 건가요?”

“뭐···. 뻔한 이야기죠. 억눌러 왔던 불만이 터져서···.”

“그렇군요. 참 아이돌이란 게 어려워요. 길게 가는 그룹들이 거의 없잖아요. 저도 아이돌을 제작하지만, 한마음으로 가는 게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진짜 별의별 일이 다 있었죠. 말은 못 하지만···.”

김형준이 씁쓸하게 웃고 있었다.

“SG 같은 곳을 보면 누가 하나 빠져도 무너지지 않는 그런 그룹을 추구하잖아요. 길게 활동하는 아이돌이 드문 현실을 보면 왜 그런 그룹을 고집하는지 알 것도 같아요.”

“뭐···. 장단점이 있는 거죠.”

“그나저나 카오스X는 난리 났겠네요. 엑스크루가 거의 소년 가장 아니었나요?”

“소년 가장이라···. 뭐 사실 저희 회사는 아이돌 사업이 메인이 아니어서···.”

“하긴···. 혹시 실례지만 다른 회사와 계약하셨나요?”

나는 계약 여부에 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직입니다. 딱히 연예계 생활을 더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멤버들이 따로 뭉친다면 모를까 다 각자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뿔뿔이 흩어져서 말이죠. 그렇다고 멤버들끼리 사이가 나쁜 건 아닙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한데 절 보자고 하신 이유가···.”

나는 우물쭈물 말을 돌리고 있는 그를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호, 혹시 J&J는 문하생 같은 거 안 받나요?”

“네? 문하생요?”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웹툰 보면 보조 작가들 있잖아요. 저 월급 안 주셔도 좋으니 최영규 작가님 밑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으음···. 웹툰?’

지난번 카오스X에 방문했을 때 회의실에서 태블릿으로 뭔가를 그리고 있었는데 그게 아마 웹툰이었나 보다. 설마 했는데···.

“대표님? 안 되겠습니까?”

잘생긴 청년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으니 은근히 부담됐다.

솔직히 김형준 정도면 웹툰을 그리는 것보다 연예계 생활을 하는 게 나을 텐데···. 아우라도 충분하고···.

“웹툰이라면 굳이 우리 회사와 계약을 안 해도···.”

“아닙니다. 여러 번 생각을 해봐도 J&J가 딱 맞아요. 웹소설 작가님들도 많고 제가 좋아하는 최영규 작가님도 계시잖아요. 제가 최 작가님의 그림체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우리야 좋긴 한데···. 에라 모르겠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최 작가가 요즘 바쁜데 말이죠.”

“그럼 옆에서 어깨너머라도 안될까요?”

김형준의 간절한 표정을 보니 마음이 약해진다.

“그럴 게 아니라 저희랑 배우 계약을 하시면 제가 최 작가를 시키든 해서 체계적으로 웹툰에 대한 노하우를 가르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배우 계약이요?”

반문하는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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