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랫폼 전쟁 (2)>
“그 특단의 조치라는 제안을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정말 저희 회사에 도움이 된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는 귀환소녀의 게임화로 이미 상당 부분 마음이 넘어간 상태였지만, 티를 내지 않고 물어보았다.
“우선 카오스TV 선공개로 진행되는 진짜 아이돌의 제작비는 저희가 다 내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얼마 안 드는데요?”
“네? 그게 무슨 소린지요? 멘토로 나오는 분들이 쟁쟁하신 분들 아닙니까?”
“아···.”
나는 멘토들에게 출연료를 많이 줄 생각이 없었는데 카오스는 출연진 때문에 제작비를 오버해서 산정하고 있는 듯했다.
‘많이 준다면 좋지 뭐···.’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김 대표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며 얼른 넘어가자는 손짓을 했다.
“두 번째는 귀환소녀를 게임화해서 나오는 수익의 15%를 원 IP인 J&J에 드리겠습니다.”
“크흠···. 깔끔하게 20%로 하시죠. 추가 콘텐츠도 전부 제 이름을 걸고 기획해 드리겠습니다. 고객들이 질리지 않도록 퀘스트를 잘 만들겠습니다.”
“20%···. 크흠···. 좀 많긴 한데···.”
“어차피 카오스도 자체 개발한 게임이 아니라면서요. 싸게 샀을 거 아닙니까? 서버 운영이야 원래 카오스 게임즈에서 하면 되고요. 틀립니까?”
“까짓거 뭐 그러시죠. 제가 한 가지 양보해 드리는 겁니다.”
김 대표는 내 의견을 빠르게 수용했다. 시원시원한 건지 아니면 절박한 건지 모르겠지만···.
“세 번째는 뭔가요?”
“다음은 카오스TV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의뢰입니다. 넷플릭보다 더 높은 마진율을 보장하겠습니다.”
뭐? 더 높은 마진율이라고? 도대체 얼마나 돈을 쓰려고···. 그런데 오리지널 콘텐츠라니 넷플릭도, 미튜브도 아닌 카오스TV가?
“잠시만요. 지금 농담이시죠?”
헛웃음이 터지는 걸 가까스로 참고 김 대표를 쳐다보았다.
“대표님은 잘 모르실 테지만 저희 회사에서 제작사를 공격적으로 인수해서 오리지널 시리즈를 만들고 최근에 성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사는 법’이라든지···.”
“아···. 그 작품이 여기에서 만든 거였어요? 그거 넷플릭에 있던데요?”
“맞습니다. 저희도 TVM처럼 먼저 카오스에 공개 후 넷플릭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니 걱정하실 필요가 없으세요.”
“그건 다행이군요. 혹시나 독점일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러니까 카오스가 일종의 1차 방영권을 가진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을 대체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정확합니다. 사람들이 점점 TV를 안 보고 있는 게 현실이니까요.”
“그렇다면 거의 OTT를 선언하시는 거와 다름없는데 다른 업체들과 경쟁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이 대표님과 J&J가 필요한 거죠.”
그는 나를 뭔가 확실한 지원군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으음···. 뭔가 말도 안 되는데 계속 듣고 있네.’
그는 내가 합류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는 걸까? 솔직히 시장을 선도하는 플랫폼으로 들어가기엔 먹을 게 많이 없고 이미 늦은 게 사실이었다.
차라리 3위 업체인 카오스와 손을 잡고 경쟁할 수 있는 신규 플랫폼을 만들어 보는 쪽이 흥미가 당겼다.
“솔직히 J&J도 넷플릭의 수익 배분이 마음에 들진 않으시죠? 아무리 히트 쳐 봐야 추가 수익이 없지 않습니까? 저희와 차기작을 하시면 더 높은 마진율과 더불어 조회수에 따른 성과급까지 지원하겠습니다.”
성과급까지? 카오스가 제대로 이를 악물었는데? 이건 뭐 벼랑 끝 전술 아닌가? 아무래도 콘텐츠에 밀리면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절박하게 가지고 있는 듯한 제안이었다.
이 마진율이라는 건 총제작비에 몇 퍼센트를 더 얹어 주느냐에 대한 비율이다. 넷플릭의 경우 10% 정도라고 알려져 있고 모 제작 회사의 경우는 좀 더 후하다고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급 같은 건 없었는데···.
우리 회사가 단순히 제작만 한다고 봤을 때 판매야 카오스가 책임지는 거니, 마진이 높을수록 제일 좋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차기작이라···.”
“제가 듣기론 지금 차기작을 준비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응? 이게 무슨 소리야? 차기작이라니?
“그게 무슨···.”
“지상파인 SBC와 차기작에 대해서 논의를 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만···. 제목이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라고 했던가요?”
음! 이거야 원! 최하나 작가가 살짝 흘렸나 보네. 이런 정보를 흘릴 사람은 최 작가님밖에 없다. 내가 제작 일을 계속 지연시키자 사람들을 만나며 살짝 정보를 흘리는 것 같았다.
“그, 그건 아직 기획 단계라 들으신 정보는 그냥 단순 루머일 뿐입니다.”
“하하···. 그렇다면 저희야 다행이고요.”
기뻐하는 김 대표의 표정을 살피며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쳐 가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랄까? 아마도 생각의 스피드가 빨라진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 해야 더 좋은 결과가 나올지 하나씩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김 대표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파격적인 제안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 보시겠습니까? 만약 저희가 협업을 한다면 꼭 반영시켜 주셔야 할 것들입니다.”
나는 차분히 내 의견을 말하며 테이블 위로 손을 올려 깍지를 꼈다. 그리곤 옆에 앉아 있는 나유정 이사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녀는 내 행동에 줄곧 관심을 기울이며 경청하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서로 도움이 되는 거라면 얼마든지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김진원 대표도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공손하게 말을 이어 갔다.
“첫 번째 진아돌 관련 사항은 카오스 측 의견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작비를 지원해 주시면 선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플랫폼과 게임에 대해 제 의견도 반영됐으면 합니다. 추가할 게 몇 가지 보이는 것 같습니다. 플랫폼을 사용하는 유저들의 등급 혹은 레벨이라든지···. 그게 높을수록 게임에서 참여하는 퀘스트가 달라지는 거죠. 열성 팬들은 기꺼이 그렇게 할 겁니다.”
“플랫폼에 레벨이라고요? 이용 실적이나 구매 실적에 따라 게임에서도 능력치가 달라진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됩니까?”
“비슷합니다. 꼭 구매 실적이 아니더라도···. 글을 열심히 올리거나 혹은 바이럴 마케팅을 효과적으로 하거나 해당 아티스트에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는 것도 반영시키는 거죠. 아니면 팬픽을 쓴다거나 영상을 제작하는 것도 다 포함하는 겁니다. 추천 수에 따라서 포인트를 얻고 그게 레벨로 치환되는 시스템이죠. 전 팬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세계관을 가진 아이돌이 롱런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 좋은 의견입니다. 이용자 스스로 마케팅팀이 되는 거군요. 사실 저희도 내부적으로 비슷한 개념을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표님 아이디어가 더 좋은 거 같네요.”
그는 내 의견에 깜짝 놀라는 것 같더니 펜을 들고 다이어리에 메모를 해 나갔다.
“그리고 게임도 구색 맞추기처럼 형식적인 콘텐츠가 아닌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해야 할 겁니다. 그렇다고 사행성 게임이 되면 곤란합니다. 모든 것은 적당해야 합니다. 사회에서 지탄을 받거나 팬들이 다른 생활을 못 할 정도로 빠지게 하면 안 됩니다. 즉, 욕망을 이용하되 적당히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공감합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말씀하신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는 드라마 스타일상 카오스에서 공개하기 곤란합니다. 단!”
“단?”
김진원 대표가 내 말을 듣고 목을 쭉 빼 밀었다.
“다른 작품은 가능합니다. 카오스TV에는 지금 만드시는 아이돌 플랫폼과 결이 맞는 작품을 공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으음···.”
내가 다른 작품을 언급하자 긴장했던 얼굴이 다소 풀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아! 혹시 그 플랫폼 이름은 정해졌습니까?”
“네. 일단 가제인데요. 블랙홀이라고 명명됐습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 카오스와 잘 어울리는군요.”
“감사합니다. 네이밍은 그걸로 거의 결정됐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빅샷의 ‘K-유니버스’와 나이스, SG 연합의 ‘My star Live’와 자웅을 겨루는 ‘블랙홀’이라···.
“블랙홀은 일반 명사라 좀 애매한데 끝에 J를 붙이는 게 어떨까요?”
마지막 나의 꼬장이 시작됐다.
“아아···. 끝에···. 블랙홀J?”
김진원 대표는 내 말에 한숨을 내쉬더니 난감해하는 것 같았다.
“카오스X나 블랙홀J나 뭔가 통일성이 느껴지는데요? 아니면 제이 블랙홀로 하든지요?”
“어이쿠···. 그건 더 곤란합니다. 일단 내부적으로 회의를 한번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이마에 솟아난 땀을 손수건으로 닦고 있었다. 이 양반은 이게 내 장난이라는 것을 알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다른 차기작이 궁금하시진 않으신가요?”
“아! 궁금합니다. 계속해서 전 세계적으로 히트작을 내놓으시는 우리 이준형 작가님의 신작이면 두 팔 벌려 환영하지요.”
“하하···. 그렇게 치켜세워 주실 필요 없으십니다. 아까 하나 언급하지 않은 게 있는데, SBC와 함께하려는 작품은 제가 쓴 게 아닙니다. 저희 회사의 유망주와 최하나 작가님이 공동으로 집필한 작품입니다.”
“아! 정말이요? 그건 몰랐네요. 혹시 그럼 이 작품도?”
“아, 그건 아닙니다. 저와 저희 회사 소속의 젊은 작가가 함께 공동 집필한 작품입니다.”
“오호!”
김 대표는 내가 작가로 참여했다는 말에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모교에서 뽑은 작가가 쓴 글을 읽어 보고 힘들게 다시 쓴 작품이었다.
자질은 충분한데 고리타분한 감성이 들어 있어서 소재를 살짝 바꾸게 했더니 괜찮은 작품이 나왔다.
“제목이 ‘흑백 로맨스’라는 작품입니다.”
“흑백 로맨스요? 혹시 좌파, 우파는 아니겠죠? 아하하···. 물론 농담입니다.”
김진원 대표는 썰렁한 농담을 하다가 미간이 심각하게 구겨지는 내 얼굴을 보고 급히 입을 다물었다.
“···기본적으로 하이틴 로맨스물인데 바둑을 소재로 한 드라마입니다. 물론 바둑은 전문적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아주 살짝만 나옵니다.”
“바둑 말입니까? 그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취미인 줄 어떻게 아시고···.”
“대표님 취미는 관심이 없습니다만···.”
“농담입니다.”
“······.”
이 아재···.
자꾸 썰렁하게 만드는데 판을 그냥 뒤엎고 나갈까 하다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줄거리는 천재 여기사의 좌충우돌 로맨스입니다. 하이틴 드라마라 당연히 주인공은 미성년자고요. 동년배인 최강자이자 바둑계의 초신성이라고 불리는 남주인공에게 도전하는 스토리입니다. 한 가지 판타지다운 설정이 있는데요. 남자 주인공은 사람의 생각을 읽는 능력자라는 설정입니다. 무의식중에 사람의 생각을 읽어 버려서 크게 상처받고 마음의 문을 닫은 바둑 천재입니다.”
“와우···. 흥미롭습니다. 상처 입은 천재와 그에 도전하는 주인공! 그리고 그들의 로맨스라···. 아 참···. 남주인공은 엄청난 미남이겠지요?”
“당연한 소릴 하시네요. 남자 아이돌 중에서도 소문난 미남을 캐스팅할 겁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스타일로 말이죠.”
“한번 보면 그 마성의 매력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런?”
“···김 대표님 너무 몰입하신 거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바둑 드라마라길래 너무 흥분해버려서···.”
나는 이 작품에 쓰면서 출연할 배우를 고려해서 캐릭터를 빌드 업 했다.
그 여배우는 다름 아닌 다솜이었다.
전 프렐류드의 메인 보컬이자 최근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고 연기돌로 거듭난 다솜! 그녀는 눈웃음이 매력적인 동안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고등학생 연기도 가능했다.
초미남 아이돌을 캐스팅할 텐데 괜히 어린 아이돌 배우를 썼다가 팬들의 질투심을 사면 안 되기도 했고 말이다.
“마지막 제 제안은 간단합니다. 카오스TV는 앞으로 저희와 이런 류의 드라마로 계약을 하시게 될 겁니다.”
“네? 이런 류라니요?”
김진원 대표는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차피 동영상도 카오스의 플랫폼인 블랙홀J와 연계시키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당연히 아이돌 위주의 하이틴 드라마여야 하는 거죠. 그래야 매출을 극대화할 것 아닙니까?”
“아···. 플랫폼과 연계한 드라마구나.”
“블랙홀J는 굿즈로 영상도 판매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독점 드라마죠. 웹소설, 웹툰처럼 선공개 영상으로 플랫폼에서 판매하고 나중에 OTT에 공급하는 겁니다. 대여로 구매를 하면 한 편에 500원 정도 하고···. 소장하면 몇천 원 정도 해서 파는 거죠. 이런 구매 지수가 플랫폼 유저의 레벨로 치환되기도 하니 괜찮지 않겠습니까?”
“······!!!”
내 의견은 솔직히 파격적이었다. OTT에 공개해서 광고 이익을 얻거나 플랫폼에서 일정 부분의 마진을 받는 게 아니라 굿즈처럼 파는 방식이라니···.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일 수도 있었다.
“아! 물론 처음 1, 2화 정도는 무료로 풀어야겠죠. 뒤가 궁금하도록···. 그리고 전 그 뒤편을 구매하게 할 자신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