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34화 (234/263)

< 플랫폼 전쟁 (1)>

“지금 보고 계신 것은 저희 카오스 게임즈에서 개발하고 있는 MMORPG입니다. 캐릭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우라의 장예원 양과 저희 타니아의 센터인 유림입니다.”

“그래픽이 상당하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네. 갑자기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일단 협의는 안 됐지만, 저희 기술력을 보여 드리는 차원에서 아우라를 게임에 마음대로 등장시킨 점 양해 바랍니다.”

“뭐···. 괜찮습니다. 그래도 놀랍긴 하네요. 갑자기 게임이라니···. 잠시 제가 좀 해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 가능합니다. 자리를 비켜 드리겠습니다.”

게임 하면 또 나 아니던가! 소싯적에 집필이 끝나면 게임으로 직행하곤 했으니까. 한 15분여를 만지작거리며 게임을 플레이해 봤다. 유정 씨는 내 모습을 보며 살짝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참는 모습이었다. 어제 조아린 팀장과 늦게까지 기획 회의를 한 모양이었다.

캐릭터를 조작하던 것을 멈춘 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턱을 쓰다듬었다.

“어떻습니까?”

김 대표는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내 의사를 타진했다.

“으음···.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괜찮습니다. 느끼신 대로 솔직히 말씀해 주시죠.”

“귀엽고 발랄한 그래픽이 정말 뛰어나고요. 특히 이 배경···. 그러니까 세계관이 특히 마음에 드는군요. 이건 뭐···. 완전히···.”

나는 귀환소녀의 배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세계관에 깊은 감명을 받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문득 이런 느낌으로 영화를 찍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표님 마음에 드신다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캐릭터 디자인이 정말 세밀하네요. 코스튬이나 액세서리도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포탈에서 튀어나온 괴물로 도시가 쑥대밭이 되고 던전이 되었다는 것도 웹소설 감성이고요.”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그런데···.”

탁!

나는 말을 하다 말고 손을 테이블에 소리 나게 올려놓은 뒤, 얼굴의 미소를 지우고 김진원 대표를 응시했다.

“무슨 문제라도?”

“그게 다입니다.”

“네?”

“이 게임은 캐릭터성만 업그레이드시킨 블레이드 헌터하고 다를 게 없어 보이는군요.”

나는 이 게임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시장에서 잘나가고 있는 모 게임의 특성을 많이 채용한 것 같았다. 나도 블레이드 헌터에 빠져 산 적이 있었기 때문에 비슷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말씀은 참신함이 없다는 겁니까?”

“일단···. 제가 느낀 소감은 그렇습니다.”

내가 다소 심한 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김 대표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흠···. 아무래도 뭔가 숨겨 놓은 카드가 있는 것 같은데? 표정 뭐야?’

내가 자주 하는 짓이 남 뒤통수 치기라 이런 느낌이 아주 익숙했다.

“우리 이 대표님 소싯적에 게임 좀 해 보셨나 보네요.”

“제가 게임 때문에 학점을 거나하게 말아 먹었죠. 그거 때우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하하···. 저랑 똑같으시네요. 전 예전에 혈맹을 했었는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하하···.”

우리는 별로 재미도 없는 말에 같이 웃고 있었다. 뭔가 같은 게임을 했다는 거 자체가 동질감을 불러일으켰다.

“뭐 어쨌건 블레이드 헌터의 아류작 혹은 그걸 더 캐주얼하게 바꾼 느낌이랄까요?”

다시금 게임에 대해 웃음을 지운 무미건조한 평가가 반복됐다. 이런 자리에서 사람은 솔직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자 김 대표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닌가!

“맞습니다. 내부 평가도 그렇게 나와서 발매가 뒷선으로 밀린 게임이지요. 평들도 이 대표님 말씀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는 건데 저희 카오스X는 카오스 게임즈와 함께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게임까지 관여를 하는 상황입니다.”

“그게 무슨 프로젝트인가요?”

“카오스X의 자체 플랫폼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 난 또 뭐라고···.’

요즘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지고 있는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다. 여러 가지로 분산된 팬덤을 하나로 모으는 통합 서비스랄까? 아티스트와 팬이 모인 플랫폼의 일종이다. 공식 카페, 소셜 네트워크, 스케줄, 음반 구매, 음원 스트리밍, 굿즈 판매, 오프라인 행사, 콘서트 등 분산된 기능을 한데 모아 각종 수수료를 줄이고 시너지를 일으키려는 메가 트렌드였다.

기존의 단순 기획사별 어플리케이션이 아니라, 점차 그 기능이 강화되고 대규모 플랫폼으로 변모하면서 선두 주자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빅샷 엔터가 슈퍼노바를 앞세워 글로벌하게 서비스를 확대해 나가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플랫폼은 한국이 가장 먼저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후발 주자들도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업체들뿐이다.

3대 기획사를 필두로 나이스, 카오스, CA 미디어 등이 진출하고 있으며 블루 오션이나 다름이 없는 시장이었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플랫폼을 선정하고 하나둘씩 입점을 하는 상황이다.

“아···. 자체 플랫폼이요. 카오스도 하는군요. 하긴 블루 오션이긴 하죠.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케이팝 시장에만 있는···.”

“아시는군요. 지금이야 케이팝 스타들뿐이지만 언제 전 세계 아티스트로 확대가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네. 그런데 왜 갑자기 게임인지 의아하네요. 이걸 저희에게 보여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사실 이 게임은 저희 회사가 개발한 것은 아닙니다. 퍼블리싱을 하려다가 반려한 게임인데요. 내부 회의 중에 한 직원이 이 게임의 분위기가 현재 방영 중인 귀환소녀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한 겁니다.”

완전 같진 않지만, 현대가 배경이고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나온다. 그리고 몬스터를 잡으면 코어나 아이템이 드롭된다. 아마도 김진원 대표는 웹소설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더도 덜도 말고 딱 헌터물의 기본 배경인데 말이다.

“음···. 완전 똑같진 않지만 뭐 그렇다고 해 두죠.”

“평소에 저도 귀환소녀 팬이라 그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게임을 해 보니 영감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비록 게임성은 모 게임과 비슷하지만, 이걸 캐릭터 중심의 게임으로 만들어 자사 플랫폼에서 서비스한다면?”

“오!”

갑자기 소름이 쫙 돋아났다.

게임 자체로만 보자면 아류지만, 개발 중인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에 붙여서 스타와 팬들이 함께 게임을 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평소에 게임을 하지 않는 유저들이 많기 때문에 검증된 게임 방식으로 플레이하는 게 낫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게임도 캐주얼하게 개조를 한 거고, 어차피 아이돌의 주 소비층은 10대에서 20대니까···.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이들이 30대가 되고 구매력이 있는 계층으로 올라서게 되니 성장성도 충분한 것이다.

더군다나 귀환소녀 스타일로 그래픽을 수정한 이 게임은 내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하고 말았다.

블레이드 헌터 아류니 하는 생각은 이미 싹 날아간 지 오래였다. 이 완벽한 캐릭터성과 엄청나게 섬세한 커스터마이징!

그야말로 덕질을 위한 덕후의 게임 아니던가? 와! 액세서리 종류 보소? 그룹별 댄스 동작 뭐야? 팬들의 지갑을 털기로 작정을 한 끝판왕이었다.

“이거 먹히겠는데···.”

나도 모르게 무심코 본심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아무래도 대표님께서 이쪽으로 공부를 많이 하신 거 같군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대충 눈치채신 걸 보면···.”

“으음···. 그러니까 귀환소녀 IP로 게임을 플랫폼에 연동시켜서 서비스하겠다는 거네요. 그럴 거면 귀환소녀가 아니라 귀환 아이돌로 바꿔야겠습니다. 남자 아이돌 팬들이 더 많으니까···.”

“맞습니다. 그것도 고려 중입니다.”

완벽하게 흥미가 생겼다. 솔직히 이 정도면 내 IP를 빌릴 필요도 없어 보였다. 웹소설을 본 사람이라면 이게 표절의 형태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화제성과 이 게임에 들어갈 아이돌들을 확보하기 위해서겠지. 마침 귀환소녀라는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히트할 조짐을 보이자 거기에 탑승하려는 거고···.

우리가 참여하면 귀환소녀에 출연하는 아우라, 러브원, 네미시스가 자동으로 추가된다. 생각해보니 귀환소녀에 출연하고 있는 타사 아이돌의 경우 전부 다 아직 이 플랫폼에 뛰어들지 않고 있는 회사였다.

협의만 잘 되면 그들까지 끌어들일 기회가 되는 셈이다.

‘아마 이것까지 고려했겠지? 치밀하구만!’

현재 이런 플랫폼의 성패는 어떤 아이돌이 입점하느냐에 따라 실적이 극명하다. 아우라는 세계적으로 팬덤이 거대하게 형성된 아이돌이고, J&J 스튜디오는 글로벌하게 통하는 작품을 연달아 히트시키고 있는 제작사이며 그 대표인 나도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들고 있다. 물론 뇌피셜이다.

“흠···. 나쁘지 않네요.”

“역시 대표님이 젊으셔서 그런지 편하네요. 다른 회사들 같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장황하게 설명을 해야 했을 텐데 말이죠.”

“이런 트렌드를 모르는 회사 대표들도 많은가 보죠?”

“당연하죠.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하는 건 처음입니다. 어쨌거나 J&J는 이 사업에 긍정적이시라고 보면 될까요?”

“긍정적이긴 한데···. 흠흠···.”

나는 살짝 머쓱해져서 유정 씨의 얼굴을 보며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었다. 내 입으로 계약과 수익 배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좀 애매하긴 했다.

“조건을 말씀해 보시죠. 경청하겠습니다.”

김진원 대표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했는지 조건을 언급하며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허···. 역시 강호에는 고수들이 즐비하구나. 이런 인재들이 얼마나 많을는지···.’

나는 득도한 고승처럼 김 대표를 담담히 쳐다보았다.

“솔직히 카오스가 이 플랫폼으로 확실히 승부를 걸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부문에서는 빅샷의 K-유니버스가 선두 주자 아니겠습니까? 더군다나 저희와 드라마로 엮여 있는 CA 미디어도 모 게임 회사와 함께 이런 플랫폼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던데요? 물론 게임까지 연동해서 서비스하는 형태로는 카오스가 제일 앞선 거 같은데, 그래도 굳이 제가 카오스 측에 합류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이미 언급하신 플랫폼은 전 세계적인 플랫폼으로 진화 중이니까요.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에 지금 들어가 봐야 들러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들러리라···.”

“저희는 J&J를 전략적 동반자로 우대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업도 같이 통합해서 진행할 예정이고요. 그 시발점이 되는 게 바로 진아돌 선독점 방영입니다. 물론 그건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는 거죠. 제한적이겠지만 경영에 참여하실 수 있고 수익 배분도 상당할 겁니다. 대표로써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김진원 대표는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가 느끼는 위기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빠른 시간 안에 선두 업체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순식간에 패배할 수도 있다는 그런 절박함 말이다.

‘솔직히 카오스TV의 실적도 별 볼 일 없고 말이지.’

국내 동영상 플랫폼들은 미튜브나 넷플릭 같은 OTT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곧 디플러스라든지 다른 공룡 OTT 사업자들이 속속 한국에 서비스할 거라고 발표하는 상황.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긴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아마도 내 모습을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겠지. 솔직히 나는 이런 IT 기업들이나 하는 사업은 일찍이 포기한 지 오래다.

경쟁을 통해 특정 플랫폼이 시장을 지배할 테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것은 콘텐츠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플랫폼이 명멸을 거듭했던가?

역사에 영원한 일등은 없었다. 하지만 스토리는 영원했다. 나는 플랫폼의 피 터지는 싸움을 지켜보며 재미있는 스토리를 창작하고 꾸준히 모으기로 했다.

그래서 J&J의 비전을 하드코어 콘텐츠 기업으로 설정한 것이다.

내가 회귀라도 했다면 모를까···. 잘 모르는 분야는 발을 담그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아···. 생각해 보니 카이스트에서 창업한 VR 랩에 투자한 게 있었지.’

하지만 그것은 아이돌 사업을 보조하기 위한 부수적인 굿즈에 가까웠다.

‘일단 철저하게 기본을 다지자.’

솔직히 이 게임이 아니었다면 아마 카오스는 머리에서 지워 버렸을 거다. 하지만 이 정도 퀄리티의 게임을 벌써 만들어 놨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J&J를 생각해 주신다니 마음이 살짝 동하긴 하는군요.”

“가, 감사합니다.”

김진환 대표는 내가 다른 서비스를 제쳐 두고 카오스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하자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아무리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무의식중에 생각이 드러나는 법이다.

“저희도 안정적인 다른 쪽 서비스를 내팽개쳐 두고 카오스에 합류한다는 건 상당한 리스크입니다. 더군다나 비슷한 서비스를 기획 중인 CA 쪽에서 알면 상당히 곤란해질 수도 있고요.”

“대표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특단의 조치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드라마는 CA 미디어, 웹툰은 나이스, 아이돌 플랫폼은 카오스로 리스크가 분산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내 사업에 있어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약 충분한 이권을 보장한다면 공평한 파트너로 카오스에 도움을 주고 3대 플랫폼이 되도록 힘을 써 볼 작정이었다.

‘갑자기 아이디어가 막 넘치는데? 후후···.’

“특단의 조치요? 그게 뭔가요? 세부적인 건 나중에 문서로 보내 주시고 큰 것만 말씀해 주십시오.”

“그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