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아이돌 (1)>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관객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흑백 화면에 땀을 흘리며 춤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3명의 J&J 연습생의 모습이 느린 화면으로 흘러나왔다.
“뭐야? 남자 아이돌 뽑나 봐.”
“응? J&J가 남돌까지 준비하는 거 같은데?”
“제2의 아우라? 뭘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지?”
관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세한 사항은 J&J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에 공지를 올릴 예정입니다.]
홍보도 적당히 해야지. 아우라의 팬 미팅에서 너무 자세히 설명해 봐야 역효과만 날 수 있으니 살짝 궁금증이 일어날 정도로만 하기로 했다.
“서프라이즈 어떻습니까?”
“뭐, 뭐예요. 말도 안 하고···.”
유정 씨가 스크린에 영상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엄지를 내밀고 있는 내가 웃긴 모양인지 입꼬리가 살살 올라갔다.
“이제 슬슬 준비해야죠. 저건 연습생들 댄스 동영상을 크리에이티브 팀이 간단하게 편집한 거예요. 미튜브로 수십만 명의 사람이 봤으니 아무래도 홍보가 잘 됐겠죠?”
“와···. 잔머리의 끝은 어디인가.”
“잔머리 아니래도요. 이런 게 바로 홍보! 마케팅이죠. 아시겠습니까? 나 이사님!”
“칫···. 알았어요. 한 수 배우고 갑니다.”
“선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이사님하고 논의할 겁니다. 서프라이즈를 하려고 급하게 편집해서 올린 거라···.”
“알았어요. 내일 회사에서 이야기해 봐요.”
그렇게 많은 이벤트가 있었던 아우라의 팬 미팅이 끝났다.
나는 유정 씨를 차에 태우고 서울로 출발했다. 짧게 대화를 나누었지만, 몸이 피곤했는지 유정 씨가 대화하다 말고 헤드뱅잉을 하기 시작했다.
‘연습한다고 피곤했나 보네. 나름 신경 써서 준비한 서프라이즈였는데 맘에 들었으려나?’
* * *
[신인 걸그룹 팬 미팅 라이브 방송에 시청자 50만 명 이상 몰려···.]
[아우라×헬게이트, 야외 공연장에서 환상의 콜라보를 선보이다! 팬들 열광!]
[정이든, 정유리 정 남매로 데뷔하다! 음원 기습 발매!]
테리우스의 멤버이자 프로듀서인 정이든과 아우라의 정유리가 기습적으로 음원을 발매했다. 발표 장소는 아우라의 팬 미팅 현장이었다. 그들은 아우라의 게스트로 출연해 본인들의 자작곡을 열창했다. 특히 한 곡은 천재 작곡가로 뜨고 있는 아우라의 이지령이 만든 곡으로···. <중략>
[아우라 팬 미팅에 뜬 네미시스와 러브원의 자태!]
[계속해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J&J 엔터! 드디어 남자 아이돌을 제작하나? 과연 이번에도 성공할까?]
[나세멸의 ‘슈퍼 셸터’ 이제는 좀비 테마파크로 문을 열어···.]
계룡시 ‘나세멸’의 세트장에서 펼쳐진 아우라의 팬 미팅에 2,000여 명이 참여하고 미튜브 라이브로는 약 50만 명의 시청자가 몰려들었다. 하지만 정작 SNS에서 화제가 된 것은 세계 최초로 문을 연 좀비 테마파크였다. 이곳은 드라마에서 생존자들이 머물던 곳으로 계룡산 둘레길과 함께 관광 명소로 자리를 잡을···. <중략>
나는 다른 기사엔 무덤덤하게 반응했지만, 테마파크의 기사를 읽어 내려가며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르려다가 이빨을 꽉 깨물었다.
“크흐흐···. 대박! 역시 이거지!”
대표가 돼서 주책없이 소리나 지를 순 없는 일 아닌가?
지이잉···.
“응? 아침부터 누구지?”
휴대전화의 발신자를 보니 내 영원한 사수 조형택이었다. 요즘 인피니티 드림즈에서 왕실장으로 등극했다는 소리를 얼핏 들은 기억이 났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친히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오···. 이 대표님. 제가 친히 안부 전화를 드려야죠. 사회적 지위가 엄연히 다른데요.]
“에이···. 형님. 또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이렇게 밑밥을 까십니까? 전 사회적 지위 같은 건 없습니다.”
[참···. 너는 일만 하느라 아직도 정신이 없구나? 저렇게 자기 위치를 몰라요.]
“아니···. 그런 건 모르겠고요.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뭐. 그냥 애들 관리하고 편하게 있지.]
“이제 왕실장이 되셨다면서요?”
[흐흐···. 이제 내가 필드에서 뛸 나이는 아니지 않냐?]
“누가 들으면 한 마흔 정도 된 줄 알겠습니다. 하도 헬스를 하셔서 몸이 그냥 이십 대잖아요.”
[넌 운동 좀 해야겠더라. 예전 이준형이가 아냐. 체력이 왜 그 모양이냐? 어떻게 산행 꼴찌를 해?]
“뭐야···. 언제 적 프로그램을 보고 그래.”
[바빠서 이제 봤다. 넌 방송 나가면 항상 그 모양이냐?]
“그 이야기는 하기 싫으니까 어서 본론이나 꺼내슈.”
[다름이 아니라···. J&J에서 남돌 제작한다며?]
“어···. 형도 아는구나? 그렇게 됐어.”
[그거 때문에 회사에서 시끄럽더라. 그래서 전화 한번 해 봤어.]
“응? 시끄러울 일이 뭐가 있어, 우린 하꼬 기획사인데?”
[웃기고 있네. 너 인마 너희 회사 채널에 올라간 그 남돌 홍보 동영상 있잖아. 거기 나온 멤버 중 한 명이 우리 회사 연습생이라며?]
“응? 그쪽? 아···. 도영이 말하는구나? 도영이가 왜 그쪽 연습생이야? 진즉 그만뒀다고 하던데? 병춘이가 데려온 거야. 자질이 아깝다면서···.”
[그래? 난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어서···. 여긴 연습생 관리가 철저해서 말이지. 난 또 네가 연습생 빼간 줄 알았어.]
“내가 무슨 양아치에요? 전 상도덕을 지킵니다. CA 계열하고 합작한 회사에 제가 무슨 스카우트를 합니까? 저희도 CA하고 얽혀 있잖아요. 그런 짓을 했다가는 큰일 납니다.”
[그렇구나···.]
“당연하죠. 미리 알아서 그만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저흰 엔터 쪽 인원이 부족해서 스카우트 같은 거 하고 다닐 사람도 없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미튜브로 홍보하는 거잖아요.”
[그래. 네가 그럴 리가 없지. 그게 바로 평소에 봐 온 이준형의 모습이지.]
“괜히 그런 짓을 해서 업계에서 공적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만···.”
[알면 됐다. 너 인마! 자꾸 네 위치를 잊어먹나 본데···. 너흰 요주의 대상이야. 대형 기획사들이 인재 유출을 우려하는 대상 중 하나라고!]
“우리가? 왜?”
[참···. 너흰 콘텐츠 제작과 아이돌을 양립시킨 몇 안 되는 회사잖아. 그리고 하는 작품마다 대박이고! 아이돌로 데뷔해서 하고 싶은 가수 생활을 하다가 회사에서 드라마 제작하면 거기 출연해서 인지도도 쌓고···. 얼마나 좋냐? 연금이다. 연금.]
“연금이라고?”
[그래. 너도 알잖아. 아이돌들이 미래에 대해 엄청 불안해하는 거 말이야. 솔직히 인기 그룹의 센터들이나 사람들이 기억하지 주변 멤버는 잘 모르잖아.]
“뭐···. 그렇긴 하지.”
솔직히 말해서 아이돌에서도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멤버들은 해체 후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일이 허다했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었다.
항상 선배들이 조언하는 내용이 일단 돈은 벌어 놓고 최대한 그룹 생활을 오래 하라는 거였으니까.
아이돌을 소비하는 대다수 사람은 그 하나가 된 그룹의 이미지를 좋아하는 거지, 팀이 깨지고 나서는 다른 곳으로 관심이 옮겨가기 마련이었다.
[그러니까 연습생들이 너희 회사를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을 거야. 너희는 자체 인원들을 드라마에 많이 넣는다고 소문이 났잖아. 그런 기대감이 있는 거지. 너흰 상시로 연습생을 뽑질 않다 보니 더 신비감이 강해. 아무튼, 우리 회사도 그렇고 연습생들 단속하는 거 같더라. 아마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일 거야.]
“음···.”
[만약 연습생을 뽑는다면 계약 관계 잘 확인하고 뽑아라. 나중에 문제 생길 수도 있다.]
“그래. 고마워 형. 솔직히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줄은 몰랐어. 오늘 형한테 좋은 거 배워 가네.”
[그래 인마. 언제 밥 살래?]
“언제든지 연락해요. 거하게 쏠 테니까.”
[휴···. 너 이 자식. 정이든 꼬셔서 활동하게 하고···. 좀 쉬려고 했는데 너 때문에 쉬지도 못한다.]
“뭐야···. 필드는 이제 안 뛴다며?”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일이 있으면 신경이 쓰이잖냐.]
“우리 형택 사마는 왜 이렇게 디테일하실까? 덩치는 산만 하신 분이···. 우리 드라마에 좀비로 쓰면 딱인데 말이죠.”
[뭐? 좀비? 내가 그런 잔챙이 같냐? 만약 나온다면 보스로 출연해야지.]
“됐고요. 언제 한번 식사나 해요. 형수님하고 같이 나오셔도 되고···.”
[설마···. 유정 씨도 나오는 거냐? 커플로?]
“아···. 또 무슨 소리야. 흰소리 그만하시고 일이나 하세요.”
[그래. 이제 끊는다. 운동 좀 하고···. 알았냐?]
뚜뚜···.
나는 사수였던 조형택 실장과 통화를 종료한 뒤 이번 남자 데뷔조 선발 콘텐츠가 그냥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난 아직도 우리 회사가 신생 기획사쯤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이게 이렇게 파장이 클지 몰랐는데···.”
똑똑···.
“네. 들어오세요.”
내 사무실 문을 열고 나유정 이사와 조아린 팀장이 함께 들어왔다. 그들은 이미 사전 회의를 마쳤는지 옆구리에 자료를 끼고 있었다.
“하하···. 부지런들 하시네요.”
“열심히 해야죠. J&J의 첫 남자 아이돌인데요?”
“네. 그러셔야죠. 일단 기획안은 다 만들어졌나요?”
“넵! 대표님. 여기 있습니다.”
나는 조아린 팀장에게 자료를 건네받아 훑어보기 시작했다.
“음···.”
일단 연습생 선발은 내 지시대로 사전 비대면 동영상 심사에서 최종 30명을 추린 다음 내 주재로 1차 오디션을 열기로 했다. 콘텐츠에 참여할 최종 멤버는 총 10명!
나는 검증된 아우라를 가진 인재만 뽑기 때문에, 딱 데뷔할 만한 연습생의 수만 뽑기로 했다.
“대표님 의견대로 최종 10명을 뽑고 콘텐츠를 진행하면서 다섯 명까지 추린다는 것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오늘 회의가 끝나면 곧바로 홈페이지와 여러 매체를 통해 자격과 콘텐츠 내용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조 팀장님이 수고 좀 해 주세요. 아! 연습생들 말인데요. 다른 회사와 계약 관계를 철저히 조사해 주세요. 이건 중요 사항입니다.”
“네! 대표님.”
“그리고 나 이사님은 선발된 인원에 대해서 철저한 관리를 부탁드립니다.”
“네. 맡겨만 주세요.”
“흠···. 일단 가장 중요하고 급한 연기 부문의 멘토는 나 이사님하고 김형탁 씨네요?”
“네. 나 이사님이야 원래 확정 멤버였고 한성우 씨가 고사하셔서 김형탁 씨로 낙점되었습니다.”
“형탁 씨 요즘 일이 없나 보죠?”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니고, 자기도 그런 프로그램에 한번 출연해 보고 싶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의사 표시를 해 왔습니다.”
“드라마에서 내 뚝배기를 깼는데···.”
“······.”
“뭐···. 형탁 씨라면 워낙 많은 작품에 출연했고 연기력도 출중하니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 구하기엔 시간도 없고···.”
“휴···. 다행이네요.”
아무래도 추천을 한 사람이 유정 씨인 것 같았다. 드라마를 찍으며 상당히 친해진 모양.
우리는 다른 멘토들도 쭉 언급하며 넘어갔다. 댄스 멘토는 신인개발팀 유상준 팀장으로 결정됐다. 유 팀장은 일찍이 아이돌 메이커에도 출연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주 안정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컬의 경우 한물간 발라드 가수였지만 현재 미튜브에서 만능 보컬 트레이너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정재훈을 캐스팅했다. 말도 재미있게 잘하고, 무엇보다도 보컬 트레이닝에 있어서는 지식이 해박하여 내가 봐도 신기할 정도로 사람들의 문제점을 잘 고쳤다.
그리고 진짜 아이돌의 주 콘텐츠가 될 리더십, 협동, 체력 단련에서는 파주 액션 스쿨 출신의 배우 정혜성 사범이 낙점되었다. 정혜성 사범은 특전사 출신에 아마추어 격투기 챔피언이었고, 엄한 액션 스쿨 교관이었지만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자랑했다.
떠오르는 신예가 된 정혜성은 ‘나만의 세계’에서 안타깝게 사망하며 여심을 뒤흔든 품절남이었다.
“오···. 멘토들이 환상적이네요. 그냥 콘텐츠로 진행할 수준이 아닌데요?”
“사실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다들 도와주고 계셔서 제작비는 크게 많이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죠. 남자 아이돌 홍보비라고 생각하면 되니까요.”
“저···. 대표님···.”
“네. 조 팀장님.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세요.”
“아침 일찍 카오스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카오스요? 거기서 왜요?”
“진아돌 콘텐츠를 사전 독점으로 방영하고 싶다고 합니다.”
“네? 카오스가요? 정말입니까? 경쟁사인 저희 아이돌을 홍보해 준다고요? 왜죠?”
“일단 대표님을 만나 보고 싶다고 합니다. 상당히 적극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