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31화 (231/263)

팬 미팅 행사 (3)

‘와! 노래 진짜 잘 빠졌다.’

완성된 이지령의 곡은 완벽했고 정이든과 정유리의 음색은 듣기 편했다. 둘 다 엄청난 보컬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어디에 넣어도 빠지지 않는 훌륭한 수준이었다. 특히 정유리의 보컬 스타일은 듣는 사람을 안심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힘을 주지 않아도 고음을 쭉쭉 올리는 마법 같은 편안함이랄까?

‘생각해 보니 둘 다 그룹에서 메인보컬 뺨치는 리드 보컬이네.’

정 남매의 곡을 주의 깊게 라이브로 감상하고 있으니 나유정이 내 옆구리를 툭툭 건드렸다.

“노래가 진짜 좋네요.”

“좋죠? 저도 이렇게 잘 나올지 몰랐어요.”

“관객들 좀 보세요. 완전히 몰입했네요.”

정말 나유정의 말처럼 관객석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마치 합동으로 마법에 걸린 것 같았다.

“그러네요. 잘생긴 남매 듀오라···. 뭔가 좀 신선하지 않아요?”

“음···. 잘만 하면 가요계에서 장기간 흥행할 거 같은데요? 솔직히 남매 듀오가 거의 없는 포지션이긴 하죠. 와···. 그런데 일본에 계신 유리 어머님은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시겠어요. 어쩜 자식들이 하나같이 저렇게 외모가 출중한지···. 뭔가 그림 같아요. 아니! 막 그림을 찢고 나온 캐릭터 있잖아요? 만찢남, 만찢녀라고 하던가?”

“저런 자식 낳고 싶네요.”

“네? 뭐라구요? 잘 안 들려요.”

나유정은 스피커 소리에 내 목소리가 잘 안 들리는지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아, 아닙니다. 그냥 하는 소리예요.”

“치···. 싱겁긴···. 그런데 남매 듀오를 어떻게 추진한 거예요?”

“흠흠···. 왜 이렇게 가까이···. 사람들 봅니다.”

“치···. 지금 전부 무대 보고 있거든요? 그리고 보면 좀 어때?”

“크흠···. 저 듀오는 왠지 잘될 거 같아서 한번 해 보라고 한 거예요.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네요.”

“거짓말! 내가 그걸 믿을 거 같아요? 또 치밀하게 계획한 거 아녜요?”

“콜록콜록···.”

“거봐. 아닌 척하면서 다 계획해 놓고···. 항상 그런 식이라니까!”

“아니! 제가 무슨 흑막입니까? 뭘 다 계획해요? 그냥 이야기하다 보니까 좋은 아이디어도 나오고 그러는 거죠.”

“그런 좋은 아이디어는 ‘진아돌’에 보태세요. 명색이 우량 기획사 J&J가 남자 아이돌이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 되나요?”

“뭐···. 만들긴 만들어야죠. 벌써 연습생으로 3명이나 구했잖아요.”

권태현, 성우진, 이도영으로 이루어진 남자 연습생들이었다. 바로 J&J 엔터테인먼트의 히든카드!

이도영은 몇 개월 전 새롭게 합류했는데 프로듀서 DJ. Nec(문병춘)이 데려온 빅샷 연습생 출신으로 열아홉 고등학교 3학년생이었다.

“귀찮은데 진아돌이고 나발이고 그냥 3인조로 데뷔시킵시다. 곡은 그까이꺼 대충···.”

“자꾸 그럴 거예요? 그럴 거냐고요!”

“···농담입니다. 일단 오늘은 콘서트나 즐기세요. 그 콘텐츠는 정식으로 공지를 올리고 진행하시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뽑히면 ‘나세멸’ 시즌4에 조연으로 출연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 안에는 뽑을 겁니다.”

“연기 연습시키려면 얼른 뽑아야 하는데···.”

“알았다니까요! 합니다. 해요. 아마 곧 공지가 곧 올라갈 거예요.”

드디어 첫 번째 곡이 끝나고 정이든의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확실히 둘이 머리를 맞대서 그런지 곡의 퀄리티가 확 올라갔어.’

처음 정이든이 만들어 왔던 곡보다 훨씬 세련되고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는 비트로 바뀌어 있었다. 댄스 음악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빠른 비트로 노래 실력까지 뽐낼 수 있는 곡이었다.

‘와···. 잘하면 이번 듀엣 싱글 앨범 대박 날지도 모르겠는데?’

곡이 후반부로 가면서 비트가 빨라지고 음이 높아졌다. 왠지 모르게 우울하지만 세련된 하우스 풍의 노래였다.

우와아아아!

정 남매의 노래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나도 관객을 따라 미친 듯이 손뼉을 치고 있었다.

‘좋다. 좋아.’

가요계에 돌풍을 일으킬 듀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비주얼, 재능, 가창력···.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유리는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울컥했는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남매는 손을 흔들며 팬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저는 유리 씨가 정이든 씨의 친동생인 건 알았는데, 이렇게 같은 무대에서 보니 감회가 또 남다르네요. 여러분! 이거 완전히 연예계의 역대급 남매 아닌가요? 제가 살다 살다 이렇게 만화처럼 생긴 남매는 처음 보내요. 하···. 갑자기 힘 빠지네. 세상은 너무 불공평합니다. 여러분!”

“하하하···.”

“자! 이제 1부를 마치고 곧 2부가 진행되겠습니다. 막간을 이용해서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은 귀환소녀 비하인드 컷이 공개될 예정이오니 조용히 영상을 감상해 주세요. 무대를 정리하고 15분 후에 다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주선의 마무리 멘트로 1부가 종료되었다.

“뭐야. 뭐야. 준형 씨! 2부에 뭐 있어요? 뭐 하는데 거창하게 2부씩이나···.”

“1부에 너무 달렸잖아요. 잠시 쉬었다가 노는 거죠.”

“음···. 일정표 보니까 그냥 2부는 아우라 공연이라고 나와 있네요?”

“아우라 팬 미팅이니까요. 당연하죠.”

“또 뭘 꾸미셨길래···.”

관객들은 스크린에 나오는 드라마 비하인드 컷을 감상하고 있었다. 영상을 보는 팬들의 웃음소리와 환호성이 들려왔다.

“대표님. 이제 준비가 다 됐습니다.”

이어 마이크를 착용한 한 PD가 나에게 다가와 조용한 소리로 정보를 건네주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군요. 영상이 꺼지면 시작입니다.”

“네! 대표님.”

잠시 후 스크린이 꺼지며 아우라가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멤버들 뒤쪽 스크린에 아우라의 시그니처 마크가 떠올랐다. 가부좌를 튼 시커먼 여성의 실루엣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모습이었다.

환한 조명이 들어오며 귀환소녀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은 아우라 멤버들이 한 명씩 카메라에 잡혔다. 개인별 맞춤 의상을 입고 있었는데 모두가 빛나고 있었다.

“우와아아!! 멋있다!”

“휘이이익!”

팬들의 환호 속에 아우라의 데뷔곡 ‘Return’의 강렬한 도입부가 연주되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어라?”

“뭐지?”

공연장을 울리는 천둥소리에 관객들이 일제히 몸을 움찔했다.

“어? 뭐, 뭐야···.”

“와! 헬게이트(Hellgate)다! 대박!”

아우라의 뒤편으로 헬게이트 멤버들이 나타나 라이브 연주를 하는 게 아닌가!

아우라의 진정한 팬들은 다들 이런 무대를 즐길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다. 이미 수많은 영상을 통해 헬게이트와 합동 공연이 익숙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쳤어!”

관객들을 보니 깜짝 놀라 머리를 부여잡거나 입을 틀어막고 발을 동동 구르는 등 엄청나게 환호하고 있었다.

“우와아아!!”

실제로 야외에서 엄청난 출력의 스피커로 공연을 보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진짜 미쳤네. 역시 헤비메탈 공연은 진짜 라이브로 봐야 한다니까? 박력 자체가 다르잖아?’

헬게이트와 합동 공연은 내가 마지막으로 기획한 깜짝 카드였다. 내한 공연에서 한국의 떼창을 잊지 못한 그들이 다시 한번 한국에서 공연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며칠 먼저 입국해서 아우라의 미니 콘서트에 참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헬게이트 리더 존 리는 흔쾌히 내 부탁을 수락했고, 그도 ‘나세멸’ 시리즈의 광팬이라며 슈퍼 셸터에서 공연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무대는 헬게이트의 박력 넘치는 사운드와 아우라의 고난도 퍼포먼스가 이어지며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뭐예요.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했어요?”

유정 씨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제 비장의 카드가 어떻습니까?”

“하여간···. 음흉하긴···.”

“하하하···.”

“지금 생방송으로 50만 명이 보고 있는 거 알아요? 미쳤어요. 왜 이렇게 많아요?”

“그거 전 세계 팬들이 다 모여서 그래요. 존 리가 SNS로 정보를 푼다고 했거든요. 아우라의 팬들과 헬게이트의 팬들이 같이 보고 있을 거예요.”

“와···. 상술 대박···.”

“공짜 공연인데 상술이라뇨?”

“다 이게 큰 그림을 그리는 거잖아요. 전 세계적으로 테마파크인가 뭔가를 홍보하는 거잖아요.”

“그거야 부수적이죠. 아우라도 홍보하고 코어 팬들도 결집시키고 드라마도 홍보하고 정 남매 싱글 발표도 하고요. 두루두루 다 포함하는 거죠.”

“흠···. 뭐 속아 주겠어요. 준형 씨가 그렇다면 그렇겠죠.”

“유정 씨. 그런 건 그냥 모르는 척해 주는 것도 좋습니다.”

“진아돌이나 얼른 추진 좀···.”

“거참···. 일단 지켜봅시다.”

나는 나유정의 애타는 심정을 무시하고 무대로 눈길을 돌렸다. 야외 공연이라 그런지 아우라 멤버들도 흥분을 해서 어느 때보다 더 흥겨운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녀석들 즐겁나 보네. 표정 한번 밝다.’

얼마나 즐거운지 얼굴에 티가 났다. 세 곡을 연달아서 하고 숨이 차는지 담희가 무대 위에서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하악···.”

“여러분! 즐거우시죠?”

“네!!!”

아직 체력이 팔팔한 예원이가 손을 들고 외치고 있었다.

“어이! 어이! 어이!”

그녀는 드럼 비트에 맞춰 마치 시위를 하듯 손을 하늘로 뻗었다. 그러자 팬들도 그에 화답해 동시에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렇게 가수와 팬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멋진 광경이었다.

그 순간···.

슈퍼 셸터의 문이 열리며 시커먼 인영들이 영내로 어슬렁거리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옆에서 ‘나세멸’을 찍고 있던 50인의 좀비 스쿼드였다.

‘크크···. 이제 시작이구만.’

관객들이 예원이의 구호에 맞춰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이 좀비들이 관객석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꺄아악!”

“뭐야!”

“엄마야!”

어두운 저녁에 분장한 좀비들을 본 관객들이 깜짝 놀라며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여러분. 드라마를 촬영하시는 배우분들입니다. 놀라지 마세요.”

이지령이 황급히 마이크를 들고 진정하라는 말을 했다. 50인의 좀비 스쿼드는 자연스럽게 관객석을 파고들며 랜덤으로 간식을 배달했다.

“열심히 외치시는 분들에게 좀비들이 피자를 드립니다. 어이! 어이! 어이!”

“와, 좀비들이 주는 간식이다.”

“와···. 뭐야. 골 때리네.”

“좀비 선생님들 여기요! 여기 피자 좀 주세요!”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좀비들이 덩치가 워낙 크고 무섭게 분장을 했는지라 겁 없이 다가서는 관객들은 없었다.

“미, 미쳤···. 좀비 피자 배달부라니···.”

옆에서 나유정이 입을 떡 벌리고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어때요? 유정 씨도 피자 한 뚝배기 하실래요? 기껏 해 봐야 피자 100판 정도인데 이렇게 효과가 좋다니···.”

“와···. 무슨 이벤트를 이렇게 많이 해요? 몇 개를 준비한 거예요. 도대체···.”

“많이 해서 팬들이 즐거워하면 좋죠. 어차피 앨범을 100장이나 사 주시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소중히 해야 합니다.”

“······.”

팬들이 피자를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는 가운데 스크린으로 최영규 웹툰 작가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200장을 구매해서 팬 미팅 당첨권을 뽑은 최영규는 [담희 내 사랑]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목에 걸고 좀비에게 손을 벌리고 있었다.

그간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그런지 이제 턱선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쯧쯧···. 저 인간은 이번 주 연재할 건 다 그렸는지 모르겠네.”

“왜요. 아는 사람이에요?”

“최영규 작가라고 몰라요? 제 웹툰 그려 주는 작가요.”

“아···. 그분이에요? 살이 많이 빠져서 못 알아봤어요. 다이어트 열심히 하셨나 보네.”

“쟤가 담희 열혈 팬이에요. 쟤 때문에 연습실에 지문 출입 장치 설치해 놨잖아요.”

“에이···. 설마요.”

“Never say never라고 모르십니까? 사람 일은 모르는 겁니다. 설마가 사람 잡으니까요.”

“에이···. 그래도 너무했다. 같은 사무실 작가인데···.”

“평소에 하는 행동 보면 절대 그런 소리 안 나옵니다. 저는 아우라를 저 오덕후의 마수에서 지킬 필요가 있어요.”

“뭐래···.”

드럼을 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던 헬게이트가 다시금 연주를 시작했다.

“Grrrr···.”

성대를 심하게 긁는 소리가 장내에 깔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어떻게 놀았는지 정신이 쏙 빠진 것 같았다. 그야말로 마법 같은 공연이었다. 나와 나유정은 땀에 흠뻑 젖은 채 서로를 보고 웃기 시작했다.

“와···. 진짜 재밌다. 이런 게 진짜 공연이구나.”

“대박이죠? 어때요. 저랑 공연 자주 다닐래요?”

“그럴까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아우라와 헬게이트가 무대에 모여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캄사함니다. 우리는 Hellgate입니다.”

헬게이트가 태극기를 두르고 어눌한 한국말을 시전했다.

“자, 이것으로 아우라 팬 미팅 in 슈퍼 셸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주선의 장내 정리 멘트로 공연이 끝나 가고 있었다.

스크린에 BYE BYE라는 커다란 글씨가 올라오고 관객들도 땀을 닦으며 소지품을 정리하고 있는데···.

끝난 것 같던 화면에서 갑자기 글자가 나타나며 영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제2의 아우라를 찾습니다. 진짜 아이돌!]

‘하는 김에 뽕을 뽑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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