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 미팅 행사 (1)
“얼른 곡이나 듣자. 가져왔지?”
“잠시만···.”
정이든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이 장비들 XM에 있던 거 가져온 거였어?”
“왜? 무슨 문제 있냐? 이기훈 전무랑 이야기해서 싸게 사 온 거야. 어차피 쓸데도 없다고 그래서···.”
“누가 가져갔나 했더니 형이었어?”
“너도 노리고 있었냐? 이 큰 장비들 가져가서 뭐 하게? 넌 그냥 홈 레코딩으로 만족해, 인마.”
“······.”
“뭐 해? 얼른 곡이나 틀어 봐.”
“알았어.”
그는 컴퓨터로 음원을 내려받고 파일을 실행시켰다. 스피커에서 조용한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깔끔한 트로피컬 하우스 전자음이 시작되며 곡이 고조되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정이든의 음악적 베이스는 어쿠스틱 기타와 EDM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옆집 아저씨에게 배웠다는 기타와 독학으로 익힌 EDM.
전체적으로 트랜디하고 깔끔한 미드 템포의 일렉 팝이었지만 뭔지 모르게 살짝 밋밋한 느낌이 들었다.
‘발전이 별로 없었나?’
테리우스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되고 항상 바쁘게 활동을 해야 하다 보니 작곡에 있어서 역량이 크게 나아지진 않은 것 같았다.
본인 스타일로는 잘 만들었는데 아직 다른 장르는 최고의 실력이라고 하기엔 약간 모자란 것 같았다. 그래도 처음 만들어 온 것 치고는 꽤 고심한 흔적이 느껴지는 수준 높은 곡이었다.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괜찮긴 하네.’
“왜? 별로야?”
그는 노래가 끝나도 내가 별말을 하지 않자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으음···. 괜찮은데?”
“괜찮은데?”
정이든도 내가 말하는 뉘앙스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뭐랄까···. 남매가 무대에서 듀엣으로 부르기엔 으음···.”
“그렇지? 나도 그게 좀 걸리더라. 형이 그렇게 느꼈으면 100%인데···.”
“너도 인정하는 거냐?”
“형의 듣는 귀 말이야. 귀신이잖아. 귀신!”
음악도 많이 듣다 보면 고급스러운 취향으로 가기 시작하는데, 나는 일부러 그런 것을 멀리했다. 취향을 없애려는 시도랄까?
‘네미시스의 섹시한 신곡은 내 취향에 맞긴 하던데···.’
“아! 트로피컬 하우스 같은데 전체적으로 살짝 우울한 느낌이네? 왜 이렇게 한 거야?”
“예전에 유리랑 영국 살 때 생각나서···.”
“아···. 영국 살 때···. 그때 좀 힘들었나 보구나.”
“외국 생활이 다 그렇지 뭐···. 동네에 동양인이라곤 우리뿐이어서···.”
정이든이 말을 하면서 유리를 바라보자 그녀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영국에서의 생활이 그다지 좋지 않은 추억이었다는 것만 짐작될 뿐···.
잠시 녹음실에 침묵이 흘렀다.
“곡 좋네요. 그런데 중반부터 좀 더 비트를 올리고 베이스와 퍼커션들을 좀 강화하는 게 듣는 맛이 있을 것 같아요. 그냥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조용히 앉아 있던 이지령이 뜬금없이 곡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응?”
정씨 자매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이지령을 쳐다보자 내 입꼬리가 자동으로 쓱 올라갔다.
“그게 무슨 소리죠?”
정이든의 평소보다 더 높은 목소리였다. 딱 봐도 몰라서 묻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뭔데 참견이냐는 뜻이었다. 평소엔 과묵하지만, 자신의 곡에 대해서는 상당히 민감한 녀석이었다.
그러자 정유리가 급히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오빠. 우리 리더가 작곡에 관심이 많아서 그래. 알지? 우리 앨범 전체를 프로듀싱한 거···.”
“······.”
아무래도 아우라에 대한 소식을 계속 듣고 있었을 테니 정이든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지령아. 너 저번에 방송에서 작곡했던 곡 완성했니?”
나는 이때다 싶어서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네?”
지령이는 내 말이 황당한지 내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다. 어이가 없긴 하겠지. 지가 곡을 들고 오늘 찾아오라고 해 놓고 시치미를 떼고 있으니까. 솔직히 아까 지령이가 왔을 때 다 보고한 내용이었다.
‘하···. 머리는 좋아도 이런 감은 떨어지네.’
나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어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정이든도 뜬금없는 내 말에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저번에 라이브 방송할 때 만든 곡이 생각나서 그래. 왠지 둘이 부르면 좋을 것 같아서···. 어때, 동생 친구가 만든 곡인데 한번 들어 보지 않을래?”
“···그러든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쯤 되니 정이든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오케이! 지령아, 네가 만들었다는 곡 좀 듣자.”
“네.”
우리는 그렇게 이지령이 작곡한 곡을 함께 감상했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심금을 울리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지령이의 보컬. 곡에는 이미 가사까지 미리 들어가 있었다. 사랑에 대해 시처럼 읊조리는 느낌이었는데 내가 30분 동안 고심(?) 끝에 만든 가사였다.
이지령은 이제 알겠다는 듯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알았니? 내가 왜 이런 걸 써 오라고 했는지···.’
살짝 민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민감한 성격에 자존심 높은 정이든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스토리가 필요했다. 물론 거부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난 그저 더 좋은 곡으로 대중들에게 임팩트를 줬으면 하는 바람이니까.
“곡 어때? 괜찮지?”
“···이게···. 지령 씨가 만든 곡이라고?”
“왜? 너도 지령이가 자체 프로듀싱했다는 거 안 믿고 있었니?”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민감한 질문을 던지자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본인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 아니던가? 아이돌이 무슨 작곡이냐, 그냥 멜로디나 몇 마디 읊었겠지 하는 말들···. 사기 아니냐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야. 이건 팬들도 다 알아. 라이브 방송에서 즉흥적으로 만든 곡이거든.”
“······.”
정이든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의자를 빙글 돌려서 컴퓨터 앞으로 이동했다.
드르륵···.
의자 바퀴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뭘 하려는 걸까? 그는 미디 파일을 열고 뭔가를 바꾸고 있었다. 그는 살짝 고민하는 것 같더니 마우스 커서를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였다.
딸깍···.
“이제 한번 다시 들어 봐.”
그가 수정한 음원은 이전보다 훨씬 듣기 좋고 비트감이 살아 있었다.
“오오! 이게 훨씬 낫네.”
“그러게요. 역시나···.”
자존심 강한 정이든이 이지령의 조언을 듣고 그 지적한 부분만 변화를 준 것이다. 살짝 손만 봤는데 느낌이 확 살아났다. 역시 음악의 세계는 오묘했다. 한 끗 차이인 것 같은데···.
“난 이게 훨씬 좋은데? 이걸로 할 거야?”
“괜찮은 거 같아?”
“그럼 인마. 대박이다. 이럴 게 아니라 네 곡이랑 지령이 곡이랑 해서 더블 타이틀곡으로 두 개 다 내 버리자.”
“와! 저는 찬성이에요. 전 두 곡 다 마음에 들거든요.”
정유리가 의자에서 일어나서 폴짝 뛰면서 박수를 쳤다. 아무래도 친구와 오빠의 곡으로 데뷔한다는 게 기쁜 모양이었다.
결국, 내 의견대로 두 곡 모두 싱글 앨범에 넣기로 했다. 내친김에 그냥 오늘 녹음까지 다 해 버리기로 했는데, 조금 더 다듬어야 한다는 말은 내 권한으로 뭉개 버렸다.
‘어차피 장고 끝에 악수 두는 법이야. 항상 소설을 쓸 때도 오래 고민하면서 쓴 글이 더 안 좋을 때가 많았어.’
“아···. 너무 빠른 거 같은데···.”
“어차피 디지털 싱글이고 네 일정 때문에 오래 활동할 수도 없어. 쉬는 김에 빨리 출시를 해 버리는 게 나아. 데뷔 무대는 아우라 팬 미팅에서 하고···.”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아우라 팬 미팅이라니? 그거 이번 주말이잖아?”
정이든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뭐 어때? 어차피 그 팬 미팅도 우리가 자체 중계할 거야. 미튜브 채널에도 올라갈 거고···.”
“하···. 하여간 상술은···.”
“상술이라니 인마! 마케팅이지. 거기 아우라 말고 러브원하고 네미시스도 게스트로 나오니까 사람들이 많이 볼 거야. 화제가 되는 무대에서 공개하는 게 좋지. 안 그래도 미니 콘서트라 할 거 많으면 좋기도 하고···.”
“알았어. 그 정도면 할 만하네.”
이 정도 말을 해 주니 정이든도 수긍을 하는 모양이었다.
“자···. 그러면 녹음하자. 녹음!”
정이든의 곡도 미리 만들어 둔 가사가 있어서 한두 시간 연습하고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녹음을 진행했다. 정이든과 이지령은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며 자체 프로듀싱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며 마음이 뿌듯해졌다.
좋은 의미의 자강두천이랄까? 얼른 정씨 남매의 싱글을 만들어 놓고 슈퍼 셸터에서 당당히 공개하고 싶어졌다.
사실 아우라 팬 미팅은 추가로 비장의 카드가 하나 더 숨겨져 있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협의가 안 돼서 내용을 밝힐 순 없었다.
* * *
아우라의 팬 미팅이 있는 토요일 오전이었다. 나는 일찍부터 나유정 이사와 함께 차를 타고 계룡의 슈퍼 셸터로 출발했다.
그녀는 수수한 얇은 흰 티셔츠에 물이 빠진 스키니 진을 입고 있었다. 요즘은 그룹 활동을 하러 다니는지라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 패션을 하고 다니는 중이었다.
“요즘 음악 방송 도느라 좋으시죠?”
나는 고속도로에 들어서며 나유정에게 질문했다.
“뭐예요. 지금 또 저 놀리려고 하는 거죠?”
항상 농담으로 대화를 시작해서 그런지 몰라도 으레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나유정이었다.
“아니에요. 제가 언제 놀렸다고 그래요. 절대 아닙니다. 네미시스가 있었기 때문에 영화가 성공했고 그거 때문에 J&J가 있는 것 아닙니까? 더구나 네미시스의 주축 멤버이자 비주얼 센터인 정유나의 존재가 컸죠.”
“뭔가···. 멕이는 거 같은데···.”
유정 씨도 상황이 웃기는지 피식 웃고 있었다.
“아니에요. 진짜 그냥 좋았는지 묻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마지막 휴식 같은 거니까···.”
“그렇긴 하네요.”
현재 ‘나만 아는 세계멸망’ 시즌3 촬영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나유정은 시즌4부터 최악의 생체 병기 레이첼로 등장하기 때문에 바빠질 예정이었다. 마지막 휴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오늘 마음껏 즐기세요. 팬 미팅을 축제의 현장 같은 분위기로 만들 겁니다.”
“팬 미팅을 하면서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무슨 규모가 콘서트급인데···.”
“다 마케팅입니다. 드라마도 홍보하고 팬 미팅도 하고 정씨 남매 신곡도 발표하고 이 모든 걸 미튜브 채널 콘텐츠로도 쓰고요. 겸사겸사 좀비 테마파크 홍보도 좀 하고···.”
“휴···. 하여간 잔머리는 알아준다니까···.”
“어허! 잔머리라뇨. 저 좋자고 하는 일입니까? 유정 씨도 지분으로 엮여 있습니다.”
“쳇! 저는 더 이상 돈 안 벌어도 되거든요?”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큭···.”
우리는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다가 서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운전 중에 한눈팔지 말아요. 갑자기 사고 나서 환생하고 싶지 않으면요.”
“지금 상태에서 환생하면 너무 억울할 것 같은데···.”
“억울하겠죠. 백번을 윤회해 봐요. 나 같은 사람 다시 만날 수 있는지···.”
“······.”
기습적인 나유정의 말을 듣고 얼굴에 뜨거운 게 올라왔다.
“왜요? 내 말이 틀려요?”
“으음···. 맞을 겁니다.”
“알면 됐어요.”
그녀는 그게 너무 당연하다는 듯 팔짱을 끼고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음···. 언제 타이밍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네.’
팬 미팅 현장에 도착해 보니 오전 10시 반이었다. 담벼락 안에서는 무대 세팅이 한창이었다. 약 2,500석 규모의 콘서트 현장을 만들기 위해 공연 기획사와 크리에이티브 본부가 협업하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팬 미팅을 중계하는 것은 문제없는 거죠?”
“네. 1시부터 아우라가 출연해서 준비 상황을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생중계할 예정입니다. 공연 시작이 5시니까 한 4시간 정도는 자체 방송을 할 예정이구요.”
나는 현장에서 콘텐츠 제작팀 한수민 PD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좋습니다. 한 PD님이 계속 수고해 주세요.”
“네. 차질 없도록 하겠습니다.”
팬 미팅 전까지는 아우라가 이 슈퍼 셸터를 좀비 테마파크로 소개할 예정이었다. 이는 계룡시와 협업을 하는 것으로 길 건너편 야외 촬영 세트와 슈퍼 셸터, 그리고 계룡산 둘레길 코스와 함께 지역의 관광 명소로 홍보하기 위함이었다.
계룡산에 놀러와서 필수적으로 거치는 코스로 만들기 위한 나와 계룡시의 음험한 계략···. 아니 스마트한 전략이 펼쳐졌다. 야외 촬영장과 슈퍼 셸터의 좀비들은 시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서 운영할 예정이었다.
나는 이미 셸터 안에 기념품 가게와 카페 그리고 푸드 코트를 마련해 단단히 준비를 해 놓고 있었다.
이미 드라마가 시즌2로 전 세계적인 히트를 했기 때문에 일종의 성지 순례 코스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계룡산 둘레길 초입이기도 하니 등산객들을 노릴 수도 있고···.’
그렇게 팬 미팅을 가장한 거대한 마케팅 쇼가 초읽기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