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27화 (227/263)

남매 듀엣 (1)

[지금 나보고 유리랑 듀엣을 하라고?]

“왜? 안 될 게 있나? 너희 이제 당분간 활동 쉰다며?”

[···그렇긴 하지.]

“동생이랑 하는 게 창피해? 어차피 너희 남매라는 거 사람들이 다들 알잖아. 예전에 보니까 유리가 오빠라고 엄청 챙기던데···. 혹시 요즘 사이가 별로니?”

[그런 건 아냐.]

정이든과 정유리는 어릴 적부터 타국에서 서로 의지하며 자라서 그런지 사이가 좋은 것 같았다. 무뚝뚝한 녀석이 SNS로 동생이 데뷔한다고 홍보도 해 줬으니까···. 물론 그렇게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말이다.

[형! 이든이 이 녀석 말이야. 숙소에서 유리 나온 영상 다 챙겨 보더라. 그래도 오빠라고 신경이 쓰이나 봐. 으이구! 하여간 넌 좀 표현을 해야 해. 나 같으면 그런 동생 있다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녔다.]

“영관아. 그만 좀 끼어드시구요. 누나들이 창피해하지 않는 동생이 되길 바란다.”

[형!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우리 누나들이 나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데?]

“예전에는 누나들이 주변에 말도 안 한다고 신경질 내고 깽판 치고 그랬잖아.”

[그, 그거야 우리 인지도가 없었을 때 이야기지.]

“그 인지도를 도대체 누가 올려 줬지? 그 고마운 은인이 대체 누굴까?”

[···하하···. 그야 우리가 잘나서···.]

“이거 봐. 자고로 검은 머리 짐승은 키우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딱 너를 지칭하는 말이었구만. 영관이는 탈락!”

[아, 아니 잠깐! 물론 형의 공로도 무시할 수 없지. 그걸 내가 부정하는 건 아니야. 단지···.]

[형! 나 창민이야. 나는 당연히 형 때문에 지금의 테리우스가 있다고 생각해! 형 아니었으면 어땠을지 아찔하다니까? 나는 리더 형처럼 검은 머리 짐승은 아니지?]

“그래. 역시 우리 창민이는 정말 사람이 됐네. 됐어. 다음번 작품에 신중히 고려를 해 봐야겠는데?”

[와우! 형 나 좀 키워 주라. 아이돌 은퇴하면 난 형만 믿고 있으니깐!]

창민이는 ‘프로듀서님 저 회귀했어요’에 출연해서 배우로서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 천만 영화 주연이라는 타이틀로 인지도가 최상급으로 올라가 테리우스에서는 이제 한연준과 함께 트윈 타워 혹은 더블 에이스로 불렸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항상 내 작품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든아! 듀엣은 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안 드니? 관심 없어?”

[흐음···. 그런 건 아닌데 생각해 놓은 곡이 없어서 그렇지.]

“그래? 그럼 우리 회사에 있는 작곡가한테 맡기지 뭐.”

[누구? 케이 프로듀서님?]

“아니···. 케이가 키우는 카이시브라는 밴드 출신 작곡가들이야. 걔들이 이번에 네미시스의 곡을 만들었거든.”

[···네미시스?]

어쩐지 전화기 너머로 정이든의 빡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걔들도 작곡 잘해. 이번 스트리밍 순위 보면 알겠지만 케이가 만든 곡보다 성적이 더 좋아.”

[···그건 유정이 누나 때문에···.]

“그건 아니지. 유정 씨가 무슨 노래를 한다고···. 파트가 거의 실종 상태인데···.”

사실 나유정의 존재가 네미시스의 인기 비결이긴 하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모른 척 의뭉을 떨었다.

[하···. 됐고, 카이스트인가 뭔가가 나보다 낫다고?]

“낫다기보단 네가 곡이 없다고 하니까 그렇지 뭐···.”

[알았어. 조만간 내가 만들어 갈 테니까 딱 기다려.]

“마음대로 해라. 만약 할 거면 너희 회사랑도 이야기해 봐야 하니까 확실히 말해.”

[한다니까!]

정이든은 이상한 곳에서 경쟁심이 있었다. 그깟 네미시스가 뭐라고···. 살짝 긁어 주니 격렬하게 반응한다. 만들어 놓은 곡도 없다는데···. 아니 지금까지 발라드곡을 만들어 보긴 했나?

“이든아. 그나저나 오늘 평생 했던 말보다 많이 한 거 같다. 그렇지?”

[······.]

“그래. 전화 줘서 고맙고 조만간 한번 보자.”

[형! 따랑해. 행님밖에 없다.]

“응. 늦었어. 영관아.”

[형! 제발···.]

뚜뚜뚜···.

갑자기 떠오른 내 아이디어로 졸지에 남매 듀오가 탄생하게 생겼다. 연예인은 항상 미디어에 노출이 되어야 인기를 유지할 수 있다. 아우라는 현재 촬영을 마치고 방송에 드문드문 출연하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은 한가한 상태였다.

‘지령이의 미튜브 콘텐츠하고 정이든 남매의 데뷔를 동시에 추진하면 반응이 꽤 괜찮을 거 같긴 한데···.’

* * *

오늘은 오랜만에 아우라의 숙소에 와 있었다.

“대표님. 이제 시작하면 되나요?”

이지령이 책상에 다소곳이 앉아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미튜브 콘텐츠인 ‘아무거나 풀어 드립니다, 수학’의 라이브 방송이 있을 예정이었다. 지령이의 방은 성격처럼 깔끔하게 정돈된 상태였다. 필요한 것만 가져다 놓고 책과 작곡에 필요한 장비들만 눈에 띄었다.

‘미니멀리즘인가?’

책상을 비추는 화면과 지령이의 모습을 중계하는 화면이 동시에 송출되고 있었다.

“세팅은 전부 끝났습니까?”

“네. 대표님. 이제 시작하시면 됩니다. 일단 제가 채널에 광고를 띄워 놨습니다. 8시부터 시작한다고 했으니 한 5분 남았네요.”

J&J 스튜디오에서 분사해서 나온 크리에이티브 본부 소속 콘텐츠 제작팀의 여성 피디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녁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괜찮습니다. 대표님. 지금껏 밥을 축내고 있어서 살짝 찔렸는데 이런 거라도 해야죠. 솔직히 저는 이런 기획을 더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피디님. 의욕이 크시네요. 일이 없을 때 에너지를 비축해 놓으세요. 곧 일이 점점 늘어날 겁니다.”

“대표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하시니 좀 무섭네요.”

“그렇다고 제가 악독한 사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요즘은 참 회사 다닐 맛이 나요. 앗···. 이제 방송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령 씨?”

8시 정각에 이지령의 개인 방송이 시작되었다.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수만 명의 사람들이 시청 중이라는 수치가 떴다.

‘와···. 대박이네. 확실히 아우라의 네임 밸류가 올라가긴 했어. 시작하자마자 7만 명 뭐냐?’

시청자 수가 가파르게 상승 중이었다. 대화창이 엄청난 속도로 휘리릭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떤 수학 문제라도 풀어 준다는 맛집입니까?

-누나! 카이스트의 실력을 보여 주세요. 그리고 덤으로 제 숙제도···.

-초딩, 중딩들이 지들 숙제 오지게 보냈을 듯.

-이상한 놈들이 세계 7대 수학 난제 같은 거 의뢰하는 거 아니냐?

“안녕하세요. 아우라의 리더 이지령입니다. 저 보이시나요?”

그녀는 채팅창을 들여다보며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잘 보인다고 하네요. 오늘은 멤버들하고 같이 방송을 하는 게 아니고 저 혼자 콘텐츠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가끔 제가 집중을 하면 아무 말도 안 할 수 있으니 이 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배경 음악으로 아주 작게 클래식 음악이 들려왔고 이지령이 마우스를 조작해 응모된 수학 문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자, 공지에 있던 메일로 온 문제들을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8시 이후로 온 메일만 선택됩니다. 그럼 한번 볼까요?”

이는 미리 준비하지 않고 라이브로 푼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조치였다.

“와! 메일이 많이 왔네요. 보니까 문제 수준도 천차만별이고요. 먼저 쉬운 것부터 풀어 볼까요?”

이지령은 특이하게 연습장에 검은색 컴퓨터용 사인펜을 들고 문제를 풀었다.

“저는 항상 사인펜으로 수학을 푸는 습관이 있어요. 그냥 뭔가 화선지에 먹으로 그리는 듯한 느낌이 좋아서랄까? 자, 초등학교 문제부터 갑니다.”

이지령은 정말 거침없이 문제를 풀어 갔다. 오디오가 상당히 많이 비었지만, 그녀가 문제를 푸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꽤 볼 만한 영상이었다. 솔직히 이지령도 엘프 3대장에게 치여서 그렇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외모였다.

‘와···. 뭔가 빠져드네. 집중하는 모습이 진짜 매력적이구나.’

나만 그런 것을 느끼는 것은 아닌 거 같았다. 문제를 푸는 모습만 봐도 힐링이 된다는 사람들의 채팅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른바 미녀가 공부하는 모습을 ASMR로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 문제는 이런 식으로 하면 쉽게 풀려요.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령이가 쉽다고 하고 있지만 나는 중학교 3학년 수준의 수학에도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그냥 그 영상만 뭐에 홀린 듯 보고 있을 뿐···.

그녀는 중학교 수준부터 대학교 수준의 문제까지 척척 풀어 내고 있었다. 물론 대학교 수준의 수학으로 접어들자 사람들은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했다.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채팅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누나. 너무 어려워요. 머리에 쥐가 날 거 같아요.

-지령 씨 수학 푸는 거 장난 없네요. 진짜 카이스트 출신답네요.

-노트 글씨 너무 예쁘다. 일단 답은 모르겠고 사인펜으로 쓱쓱 풀어 가는 모습만 멍하니 보게 됨.

-나 수학 전공자다. 이분은 찐이다. 설명 개깔끔하네. 수학 1타 강사보다 더 잘한다.

-지령이 언니. 미국 영재 학교 출신이라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너무 어릴 때 월반해서 마음고생이 있었다고 저번에 이야기했던 거 같은데 맞을걸요?

이지령은 수학 문제를 한 시간 반 이상 풀어 대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자 누군가 방에 있는 키보드나 컴퓨터 등 작곡에 필요한 장비를 보고 설명을 해 달라는 글을 올렸다.

“이제 슬슬 지겨우신 분들이 많은 거 같은데요. 제 장비들 설명해 드릴까요? 아니면 피아노 연주해 드릴까요?”

채팅창에 연주해 달라는 글이 폭주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배경 음악을 끄고 키보드 앞에 앉아 잔잔한 피아노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오! 저것은!’

그것은 바로 헬게이트와 합동 공연 초반에 연주하던 곡이었다.

‘크··· 다시 봐도 너무 멋지네···.’

그녀는 몇 곡을 더 들려주다가 잠시 쉬기로 하고 카메라에서 벗어났다.

“대표님. 이거 할 만한데요? 그냥 취미로 하던 거 그냥 보여 주는 거니까 부담도 없고···.”

뭐? 부담이 없다고? 미치겠네. 재능이 아주 그냥 지붕 뚫고 하이킥이지?

“그, 그러니? 나는 힘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구나?”

“저야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하는 건데 오히려 팬들이 지루해할까 봐 걱정되는데요?”

“지루하긴, 네 얼굴만 봐도 재밌는데? 아주 꿀잼이에요.”

“킥킥···.”

살짝 농담을 해 줬더니 현웃이 터진다. 그만큼 컨디션이 좋다는 뜻이었다.

“지령아, 이제 작곡하는 거 팬들에게 보여 줄래?”

“그거 정말 해도 될까요? 잘하지 못하는 거라 민망한데···.”

큭···. 잘하지 못하는 거라니? 황당한 애네. 착각계 캐릭터인가? 소설에 등장시켜도 좋을 것 같은데?

“그, 그거 농담이지?”

“진짠데···. 으음···. 뭘 하지?”

“잠깐만···.”

“왜요?”

갑자기 머릿속에 번쩍하며 떠오르는 게 있었다.

“너 혹시 잔잔한 발라드도 만들 수 있어? 듀엣이 부를 수 있는 곡이면 좋겠는데···.”

“듀엣이요?”

“응. 가능하겠어?”

“그거 피아노로 간단하게 만들어도 되죠?”

“다, 당연하지.”

지령이는 잠시 물을 한 잔 마신 뒤 책상 앞에 앉았다.

‘싱글에 두 곡을 넣어도 될 것 같은데···. 정이든이 곡을 만들어 오면 좋겠지만 녀석은 클래식한 작곡보다는 거의 EDM이나 댄스 쪽에 특화됐으니까···. 혹시 남매 댄스 듀오를 한다고 하면 절대로 말려야 해.’

솔직히 남매가 같이 추는 댄스는 별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건 내가 여동생이 있어서 하는 소리다. 만약 내가 주리하고 그런 걸 같이 했다간···. 으으으···.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여러분, 제가 수학 문제 푸는 거 지루해하시는 분들이 계신 거 같은데요”

‘아니다, 괜찮다!’ 하는 반응의 채팅이 화면으로 우르르 올라오고 있었다.

-지령 님의 공부하는 모습만 봐도 지립니다. 캬하하···. 라임 무엇?

-언니! 문제를 시원시원하게 푸는 모습이 너무 멋지네요.

-혹시 더 어려운 거 없나요? 팬들 수준은 간단히 뛰어넘네.

“아···. 괜찮다구요? 의외로 저희 팬분들이 수학을 좋아하시네요. 역시 수학은 재미있죠?”

급기야 그녀는 아무도 공감하지 못 하는 말까지 남발하고 있었다. 수학이 재미있다니?

갑자기 채팅창의 글들이 두세 배 빠른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민심이 폭발하려는 분위기였다. 나는 손날로 내 목을 치는 시늉을 하며 문제 푸는 코너를 종료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제는 수학은 그만하고! 가볍게 곡이나 만들어 볼까요? 그래요. 그게 좋겠어요. 자···.”

이지령이 손을 들어 건반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바로 성난 민심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들려오며 마음이 평온해졌다.

‘으음···. 되게 단순한 진행인데 마음이 편안해져 온다.’

“여러분 어떠세요? 마음이 좀 편안해지시나요? 이게 갑자기 생각난 머니 코드입니다. 히트곡들이 많이 사용하는 코드 진행이거든요. 아! 물론 제가 살짝 변주를 줬어요. 그런데 보세요.”

그녀는 멜로디를 건반으로 치며 자신의 곡에 취해 있었다. 뭐랄까, 단순한 반주 같은 느낌?

“어때요? 멜로디가 살짝 유치하죠? 이 멜로디는 반복적인 음의 사용이 많아서 그래요. 연주곡으로는 적합하지가 않아 듣기가 별로거든요? 자···. 보세요.”

그녀는 다시 어디서 많이 들어 본 피아노 연주곡을 멋지게 연주했다.

‘오···. 역시 이거네. 듣기 너무 좋고···.’

나도 모르게 지령이의 연주를 들으며 눈을 살짝 감았다.

“듣기 좋죠? 선율이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이런 연주는 정작 보컬이 노래를 불렀을 때 적합하지가 않아요. 중간에 숨 쉬는 곳이 없어서 노래를 함께 부르기가 힘들죠. 이 차이를 아시겠어요? 자 보세요. 제가 처음에 연주한 곡에 살짝 보컬을 입혀 볼게요.”

이지령은 곧바로 첫 번째 멜로디를 연주하며 허밍을 추가했다.

‘오오! 이, 이거다.’

즉흥적으로 나오는 곡의 퀄리티에 소름이 돋고 말았고, 채팅창의 글 리젠 속도도 미친 듯 빨라지기 시작했다.

‘크···. 이제 누가 이지령의 작곡 실력을 사기라고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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