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26화 (226/263)

변화하는 미래 (2)

우리는 아우라의 골수팬들에게는 확실한 혜택을 부여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내 예상과 달리 앨범이 빠르게 동이 났고, 추가로 5만 장을 찍었으나 그것도 모자라 다시 또 5만 장을 추가 발주한 상태였다.

‘나 정도면 양심이 있는 편이지. 암···.’

물론 VR 장비가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지만, VR 영상 특전 때문인지 골수팬 층의 커뮤니티가 뒤집히고 말았다.

-나 10장 샀는데 지령이의 시크릿 코드가 당첨됐어. 개꿀! 판타지 배경인데 영상 퀄리티 오진다. 모 회사와 수준 차이 무엇?

-나도 그 시크릿 코드 다 모으느라 앨범 서른 장 샀다. 그런데 다섯 명이 다 모인 버전도 있다며? 그거 가지고 싶다. ㅠㅠ

-인공지능은 좀 어설프네. 표정이 아직까지 완벽하지 않은 듯···.

-그래도 발음에 따라 표정을 맞추려고 노력한 티가 보이는데? 그 정도는 봐주자. 간단한 대사 주고받기는 되잖아.

-난 안전빵으로 100장 샀는데 팬 미팅 당첨됨. 장소가 계룡시 슈퍼 셸터? 혹시 이거 ‘나만 아는 세계멸망’에 나오는 벙커 아니냐?

-어···. 벙커 맞는 듯···. 그런데 왜 거기서 하지? 인터넷 찾아보니 가는 데 교통은 그다지 불편하지 않은 것 같은데···. 누가 관광버스 대절 안 하나?

-오랜만에 바람이나 쐬고 드라마 촬영 현장도 보고 오지 뭐···.

-그래도 극악의 상술은 아니네. 팬 미팅을 미니 콘서트처럼 하려고 하는 거 같은데 이 정도면 혜자 아님?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은데···.

사실 비밀 같은 건 아니고···.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것을 발표하기 위함이었다.

3시즌 촬영이 거의 끝나 가는 시점에 더는 쓸모없어진 슈퍼 셸터를 좀비 테마파크로 소개하기 위해 팬 미팅 장소를 그곳으로 정한 것이다.

‘팬 미팅 하는 것을 미튜브 콘텐츠로 찍어야지.’

허투루 시간과 콘텐츠를 낭비할 순 없었다. 알뜰살뜰하게 모든 것을 이용하는 치밀함!

‘이런 것이 이준형의 클라스!’

나는 자화자찬을 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차! 오늘 스트리밍은 순위를 안 봤네.”

여러 그룹이 동시에 컴백을 했지만, 정규 앨범은 세 팀만 냈고 다들 디지털 싱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성적표는 스트리밍이라 할 수 있었다.

# 파인애플 스트리밍 순위

1위 아우라 ‘Black Rose’

2위 네미시스 ‘Come on and love me’

3위 러브원 ‘너의 목소리’

4위 아이엠 ‘Shine’

7위 글로리

10위 유어키스

23위 타니아

45위 루나C

역시나 드라마의 힘인가? 1위부터 3위까지 귀환소녀로 줄을 세웠다. 벌써 두 번째 있는 일이다. 영화 개봉 당시에도 화제가 되어 잠깐 줄 세우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잠깐이 아니었다.

더구나 아우라는 자체 프로듀싱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더욱 화제가 되고 있었다.

[걸그룹 전성시대? 차트를 점령한 우먼 파워!]

[걸그룹 아우라···. 강력한 경쟁자를 꺾고 스트리밍 1위에 오르다.]

[J&J 엔터테인먼트 이준형 대표가 기쁜 표정을 감추며 몰래 웃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전해졌다.]

[아우라 정규 1집의 놀라운 발견! 근래 보기 드문 명반이 나왔다?]

[아우라의 리더 겸 프로듀서인 이지령의 실력 논란]

···아우라의 이지령은 정말 이번 앨범을 자체적으로 프로듀싱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놀라운 수준을 넘어 경악할 만한 일이다. 현재 업계에서···. <중략>

이지령 작곡 및 자체 프로듀싱이라고 홍보를 했더니 그것에 대한 진위 논쟁이 심했다.

지령이의 능력을 알지 못했다면 나조차 틀림없이 의구심을 가졌을지도 몰랐다. 걸그룹뿐만 아니라 보이그룹에서도 앨범 전체를 다 만드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진한 갈색의 아우라를 보여 줄 수도 없고 말이지···.’

어떻게 하면 지령이를 스타로 만들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렸다. 나는 테이블에 있던 휴대전화를 들어 리더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대표님?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그래. 지령아. 방송 쉬는 시간이니?”

[네. 아까 정오쯤에 리허설 끝나고 쉬는 중입니다.]

“그렇구나. 딱 마침 타이밍 좋았네.”

[무슨 할 말 있으세요?]

“응···. 혹시 주변에서 네가 프로듀싱했다는 거 안 믿는 사람 있어?”

[···주변에는 없고 그냥 잘 모르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거 같아요. 아까 화장실에 있을 때 이름은 모르겠는데요. 누군가가 사기 아니냐고 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런 건 웬만하면 신경 쓰지 마. 당당하게 네 이름으로 저작권이 등록되어 있는데 무슨 상관이니?”

[저도 별로 신경 안 써요. 1위를 한 게 아직도 안 믿어지는데요 뭘···.]

“내가 왜 너한테 전권을 줬겠니? 곡을 들어보고 되겠다 싶으니까 그런 거 아냐? 그냥 너 자신을 믿어도 돼.”

[감사합니다. 대표님. 이상한 소리를 들어도 대표님 생각해서 힘낼게요.]

“그래, 고맙다. 아 참! 지령아. 너 미튜브에서 콘텐츠 하나 할래?”

[콘텐츠요? 어떤 거요?]

“예전에 네가 하고 싶다고 적어 냈던 거 있잖아.”

[그거 할 거 없어서 그냥 대충 적은 건데···.]

“난 그거 좋은 거 같던데···. 한번 해 봐라.”

지령이가 데뷔 전에 적어 냈던 콘텐츠는 바로 ‘아무거나 풀어 드립니다, 수학’이었다.

실시간 방송을 하면서 팬들이 풀어 달라는 수학 문제를 해결해 주는 콘텐츠였다. 거기다 녹음실에서 음악을 만드는 것을 중계해도 좋고···.

“아니면 작곡하는 방법을 강의하든지···.”

[수학은 몰라도 작곡은 좀···. 저 같은 초보가 가당키나 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응 됐고···. 그냥 해라. 알았어?”

[언제요?]

“음악방송 끝나갈 때쯤 하지 뭐.”

[네. 알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지령이와 통화를 마치고, 전에 지령이가 연습실에서 수학을 풀고 있던 모습을 떠올렸다.

세상에나! 취미로 수학을 풀다니! 수포자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사고 체계였다. 지령이는 평소에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 수학을 푼다고 했다.

‘사람들이 설마 엄청 어려운 고급 수학 같은 건 안 물어보겠지? 일단 미튜브로 지령이의 능력을 보여 주면 되겠어. ASMR처럼 말이지.’

이것저것 생각하던 나는 점심을 먹으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로 나가니 J&J 스토리 작가들이 우르르 밥을 먹으러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원래 다들 평일엔 별로 출근을 안 하는데, 어쩐 일로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원···.

“오! 안녕하세요. 대표님. 드라마 잘 보고 있습니다. 어쩜 이렇게 연달아서 히트작을 내실까요?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운이죠. 뭐···.”

“대표님. 특강 같은 거 안 하십니까? 좀 들어 봅시다.”

“기성 작가님들이 더 잘 아시면서 그러시네요. 강의는 좀 그렇고 감평은 가능합니다. 언제든지 자유롭게 보여 주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귀찮게 해 드릴게요.”

“대표님! 어제 드라마 2화 잘 봤습니다. 주인공들이 학교에 적응하는 게 진짜 웃기던데요? 담희라는 캐릭터 왜 이렇게 웃겨요? 제 소설에 비슷한 히로인을 넣어 보고 싶을 정도네요.”

나는 백정민 작가의 말에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응? 밥 먹으러 가면서 담희 이야기를 하는데 왜 영규가 없지?’

“잠깐만요. 최영규 작가는 어디 있나요? 왜 같이 밥 먹으러 안 가지?”

“다이어트 하나? 요즘 대표님하고 운동 열심히 하지 않았나요?”

“······.”

솔직하게 말하면 한 2주 나가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일이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말이다. 영규는 그 후로도 꾸준히 PT를 받고 살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뭐 그래 봐야 평타치 외모였지만···.

“아! 아까 사무실에서 웬 박스를 뜯으면서 좋아하고 있던 거 같던데요?”

“아···. 그래요? 먼저들 가 보세요. 전 영규 좀 보고 갈게요.”

나는 몸을 돌려 작가 사무실로 들어갔다. 영규의 지정석인 창가 끝자리로 가자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하는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헉!’

나는 영규가 하는 짓을 보고 기겁을 하고 말았다. 그는 아우라의 정규 앨범을 박스째로 사서 하나씩 개봉을 하고 있었다.

“히히···. 담희 짱···.”

“야 인마! 최영규!”

“하악!”

그는 무슨 저승사자라도 만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 하는 거야. 이게 도대체 몇 장이야? 너 미쳤어?”

“모든 굿즈를 모아야 해요.”

“미쳤네. 미쳤어. 너 도대체 이거 사느라 얼마를 쓴 거야?”

“한 200장 정도요.”

“하.”

한숨만 나왔다. 플렉스 하라고 돈을 꼬박꼬박 잘 줬더니만 이런 짓이나 하고 있다니···. 200장이면 한 400만 원 정도는 깨졌을 건데···.

딱!

“아악···. 왜 때리는 거임!”

“이 자식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J&J를 위해 내 돈을 쓰겠다는데 그것도 잘못된 건가요?”

“음···. 그건 상관없지만···.”

“그럼 저를 놔두셈. 이게 인생의 낙이라고요.”

‘쯧쯧···. 내가 만든 앨범이지만 너무했다. 진짜 저렇게 전부 사는 인간을 실제로 목격하다니···.’

나는 그를 그냥 사무실에 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이잉···.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발신자: 박영관]

“영관아···. 네가 웬일로 전화를 다 했냐?”

[마이 러브! 이준형! 잘 있었어? 아우라가 스트리밍 1위더라? 축하해!]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러냐? 약 먹었어?”

[대표님! 왜 그렇게 꼬이셨어요. 사람이 축하하면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받아야죠.]

“군대 안 가냐?”

[아니! 되게 뜬금없네. 진짜! 군대 가려면 아직 멀었다고!]

“멀긴 뭐가 멀어. 얼른 나이 들기 전에 다녀와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슈.]

“넌 나랑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잖아.”

[뭔 헛소리야! 이제 스물여섯이야. 왜 이래?]

나는 영관이와 예전처럼 놀고 있었다. 역시 이 녀석처럼 놀려 먹는 재미가 있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너희 요즘은 뭐 하니? 바쁜 거 다 끝났어?”

[어. 우리 이번 곡 활동 끝나고 잠깐 쉬려고···.]

“하긴 너희 너무 뺑뺑이 돌리더라.”

[뭐야. 언제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며?]

“같이 일할 때는 객관적으로 볼 수 없었지. 그리고 XM에 있을 때랑 지금이랑 같냐? 지금이 훨씬 바쁘잖아?”

[그, 그렇긴 하지. 형···. 언성 좀 낮춰라. 이거 스피커 폰이야.]

[형! 잘 있었어? 형! 하이!]

전화기 너머로 다른 테리우스 멤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영관이와 내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나 보다.

“이든아. 옆에 있냐? 네 동생 1위다. 1위···. 어떠냐 이 형님의 실력이! 하하하!”

[······.]

“왜 아무 말이 없어?”

[형! 정이든 이놈. 삐졌어. 네미시스는 원래 자기가 프로듀싱해야 했던 그룹이라고 하던데?]

“뭔 소리야. 저번에 한 번 했으면 됐지. 엄청 바쁜데 뭘 한다고 그래. 그래서 인피니티 드림즈 대표님이랑 협의도 못 한 건데?”

[아무튼, 삐졌어. 정이든 삐지면 오래가잖아.]

“동생이 1위 했는데 축하는 못 할망정···. 애먼 그룹이나 신경 쓰고 있고···.”

[···했어···. 축하···.]

“응? 뭐라고?”

[축하해 줬다고···. 유리한테···.]

“아···. 그러니? 그건 고맙네. 그런데 네미시스 두 번째 싱글 못 한 게 아쉽냐?”

[···됐어.]

“하···. 이 녀석 이거 단단히 삐졌네. 음···. 그럼 곡이나 하나 같이 내자.”

[무슨 소리야? 같이 곡을 내다니?]

“우리랑 하고 싶다며? 하면 되지!”

[누구랑?]

“누구긴 누구야. 네 동생 유리랑 듀엣 앨범 어때? 막 영감이 떠오르지 않니?”

“······.”

정이든이 나의 갑작스러운 남매 듀오 제안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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