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미래 (1)
이번 주에 복귀하는 팀은 공교롭게도 같이 데뷔를 했던 SG 엔터테인먼트의 ‘글로리(Glory)’와 카오스 엔터의 ‘타니아(Tania)’, 1.5티어 그룹으로 평가받는 FM 엔터의 ‘유어키스’, 그린 엔터의 ‘루나C’, 데뷔하자마자 1티어로 올라선 JB 엔터의 ‘아이엠’···.
거기에 귀환소녀의 러브원, 네미시스, 아우라까지 가세하여 혼란스러운 양상이었다.
나는 아우라를 모아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누가 우리랑 같은 시기에 컴백하는지 신경 쓰지 마. 우리는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잖아. 준비한 것만 잘하면 되는 거야.”
“······.”
“일단 드라마 1화가 방송됐으니 내가 봤을 땐 다른 팀들보다 너희가 훨씬 더 유리해.”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고 바꿀 수 없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계속 주지시켰으나, 아우라는 아직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희는 다른 팀과는 달리 자작곡으로 복귀하니까 자신감을 가져.”
“정말 괜찮을까요?”
어제 단톡방에 해당 기사를 링크한 정유리였다.
“당연하지. 리더를 믿어 봐. 난 솔직히 이번이 제일 기대된다. 어차피 우리 같은 중소기획사는 이런 게 오히려 기회야. 여기서 치고 나가면 우리도 1티어가 꿈은 아니지.”
“네!”
“그리고 항상 이야기하는 거지만, 본인이 바꿀 수 있는 것만 신경 쓰면 돼. 나머지는 그냥 잊어버려. 생각해 봐야 스트레스만 쌓인다. 어차피 내가 계속 팍팍 밀어줄 건데 뭐가 그리 걱정이야?”
“넵!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래. 그런 자세로 하면 된다.”
이야기를 마친 후 아우라는 방송 스케줄 때문에 매니저와 함께 사무실을 나갔다.
“후···. 왠지 꼰대가 된 느낌인데···.”
“대표님이 꼰대는 아니시죠. 그냥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건데요.”
“그럼 다행인데···.”
조아린 팀장이 웃으며 자료를 건네주고 있었다. 그 옆에는 하석우 이사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번 주 컴백하는 그룹들 정리한 자료입니다.”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마케팅 쪽 의견은 상당히 긍정적이라는 평가입니다. 아우라가 드라마와 함께 컴백하는 게 주요했다는 분석입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애초부터 일부러 그렇게 일정을 잡은 거니까요.”
“대표님.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는 귀환소녀 팀과 JB 엔터 아이엠의 경쟁이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글로리나 타니아 같은 신인 그룹들은 데뷔 때 이겨 본 경험도 있고···. 유어 키스나 루나C는 1.5티어로 불리고 있지만, 예전만큼 성적이 안 나오니까요. 결국, 아이엠이 문제인데 언제까지나 도망만 다닐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JB 엔터의 아이엠은 3년 차 걸그룹으로 아우라보다는 몇 개월 빨리 데뷔한 선배였다. 현재 각종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아이돌로 우리 아우라가 뒤를 따라가며 그 기록을 하나씩 깨고 있었다.
“저도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아린 팀장이 내 의견에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지시한 사항은 처리됐나요? 앨범에 넣으라고 했던 거요.”
“시크릿 코드(secret code)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건 완벽하게 준비가 된 상태입니다.”
“많이 바쁘셨을 텐데 용케 준비하셨네요.”
“그런 거라면 무조건 넣어야죠.”
“대표님. 그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요?”
아무 말 없이 나와 조아린 팀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하석우 이사가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VR 영상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게 지금 추진해야 하는 일인지 궁금해서요.”
아무래도 대표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보니 말하는 게 조심스러운 모양이었다.
“다른 아이돌 그룹은 모르겠지만 아우라한테는 꽤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우라의 코어 팬층은 분명 관심이 있을 겁니다. 아시죠? 우리 팬분들이 어떤지···.”
나는 고마운 팬들에게 오타쿠라는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초반 아우라의 컨셉상 서브 컬처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성장을 했기 때문에 다른 그룹보다 이런 첨단 문물에 익숙한 팬들이 많았다.
“그렇긴 한데···. 흠···. 그건 어떻게 쓰는 겁니까? 시크릿 코드라는 거요.”
“별거 없습니다. VR용 콘텐츠를 내려받기 위한 코드예요. 정규 앨범을 구매한 팬들에게만 주는 특전입니다. 360도로 볼 수 있는 멤버별 영상과 공연 영상을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고개를 돌리면 시야에 따라 영상이 바뀌는 거죠?”
“네. 맞아요. 거기에 아직 미흡하긴 하지만 AI도 살짝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마이크라든지 그런 설정을 해야 합니다.”
“예전에 심심할 때 사용해 본 휴대전화에 있는 그 인공지능 비서 같은 거군요?”
“네. 어설프긴 한데요. 프로그램은 이미 개발해 놓은 거라 추가 제작 비용이 안 들어요. 어차피 PC 기반으로 돌아가는 거라 기기를 연결하면 VR 영상 감상과 함께 깨알 같은 재미를 줍니다. 생각해 보세요. 최애 멤버와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겁니다.”
“음···. 저는 생경해서 그다지 감이 안 오는데요?”
“하하···. 하 이사님을 타깃으로 하는 게 아니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 마흔이 훌쩍 넘은 하석우 이사가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요즘 대두되고 있는 ‘메타버스(metavers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초월을 뜻하는 접두사 메타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를 합친 말이죠. 알기 쉽게 웹소설로 설명하자면 일종의 게임 판타지 세계라고 할 수 있어요. 가상 세계에서 아바타끼리 교류하거나 생산적인 활동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게 현실로도 연결되기도 하고요.”
“······.”
“그냥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그래픽 카드로 유명한 업체의 CEO가 앞으로 가상 현실의 주인공은 SNS 같은 2차원적 인터넷이 아닌 3차원적 ‘메타버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앞으로는 현실과 SF가 다르지 않은 세상을 보게 될 거라고 했죠.”
“그게 이 VR이라고요?”
하석우 이사의 표정이 점점 썩어들어 가는 것 같았다.
“VR은 일종의 하위 개념입니다. 메타버스는 좀 더 상위 개념이랄까요? 황당하신가요?”
“아, 아닙니다. 그렇다기보다···.”
아무래도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아 보였다.
“이미 우리나라 대형 기획사들은 죄다 투자를 하고 있는데요?”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단정적으로 명확한 근거를 이야기해 줬다.
“제페토라고 아십니까?”
“···아뇨. 잘 모릅니다.”
“우리나라 기업인 나이스가 만든 플랫폼인데요. 얼굴 인식과 증강 현실을 이용해 아바타와 가상 세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제페토는 YN, JB, 빅샷으로부터 수백억 원의 투자를 받았죠. 이 가상 플랫폼의 가치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본 겁니다.”
“후···.”
“블랙소울이 거기서 팬 사인회를 열자 4,600만 명이 몰렸습니다.”
“4,600만 명이요?”
숫자를 들은 하석우 이사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대단하죠? 현실에서는 팬 사인회를 해 봐야 몇백 명 수준인데 말이죠.”
하 이사는 점점 더 황당해하는 것 같았다.
“물론 이사님이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제페토 가입자 수가 1억 9천만 명인데 해외 이용자가 90%고 10대 유저가 80%를 차지하니까요.”
“제가 그럼 나이가 많아서···.”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맞습니다. 보통은 말도 안 된다고 코웃음을 치니까요. 반면에 10대들은 받아들이는 데 거리낌 없죠.”
”무슨 다른 세상 이야기 같네요.“
“후후···. 쉽지 않은 개념입니다. 제페토는 모르시지만, 혹시 가상 걸그룹인 ‘킬댓’은 아시나요?”
“아! 그건 알죠. 게임 캐릭터로 만든 케이팝을 표방하는 그룹 아닙니까?”
하석주 실장은 킬댓을 알고 있는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킬댓과 비슷한 것을 SG는 벌써 15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더군요. 뜬금없이 중국에서 먼저 나오는 바람에 선수를 뺏겼지만요. 그래서 요즘 나온 SG 아이돌들은 가상 아바타 기술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게임 캐릭터와는 다르지만, 개념은 비슷한 면이 있죠.”
“전 좀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그래서 드라마를 완충제로 넣은 겁니다. 중간 단계로 필요하다고 봤어요. 어차피 아이돌에 돈을 쓰는 사람은 10대, 20대 젊은이들 아닙니까? 특히 여성 팬들이죠. 그들이 이런 개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게임의 법칙이 바뀝니다. 아직까지는 오프라인 아이돌이 각광을 받지만,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은요? 아이들 세대도 그렇게 받아들일까요? 킬댓의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수억입니다. 게임 포트나이츠에서는 실제 힙합 가수가 온라인 아바타콘서트를 해서 1,200만 명이 참여했어요. 이 정도면 기존 연예기획사가 두려움을 느낄 수치 아닙니까?”
“······.”
“기획사들의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고 나중에 따라가려고 하면 늦죠. 저희도 솔직히 구색 맞추기밖에 안 돼요.”
“정말 그게 그렇게 빨리 올까요?”
“SNS 기업인 페이크북도 VR 최고 업체인 오큘러를 인수했잖아요. 가상 현실이 차후에 SNS를 대체해 버릴 확률이 크기 때문입니다. 페이크북은 자체 플랫폼이 없다 보니 급하겠죠. 심지어 가상 화폐까지 추진하다가 각 정부의 견제로 홀딩됐잖아요. 곧 다시 나온다고 하긴 하지만···.”
“후···. 이놈의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지 않습니까? 이사님은 우리 소속 연예인들만 잘 보살펴 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말씀을 들어 보니 제가 너무 안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차차 알아가시면 되죠.”
열심히 설명해 주니 그나마 수긍을 하는 모습이다.
뭐···. 심적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먼저 앞서가는 회사나 사람들의 케이스가 있으니 머리로는 이해하지 않을까?
솔직히 나도 이런 개념은 익숙하진 않다. 겨우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을 뿐이다.
“조 팀장님은 공감이 가십니까?”
“네, 뭐···. 저는 아직 20대라···. SG에 있었을 때 건너서 듣기도 했었고요.”
‘아···. 맞다. 그랬었지.’
조 팀장이 SG 출신 경력자였던 게 생각났다.
“그럼 이만 회의를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아우라 일은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부탁드립니다.”
* * *
음원이 공개되고 첫 음악 방송이 있고 난 뒤 초동 앨범 판매량이 공개되었다.
# 초동 앨범 순위
1위 아이엠 ‘Shine’ - 145,XXX
2위 아우라 ‘Black Rose’ - 99,XXX
6위 유어키스 ‘너에게만 줄래’ - 64,XXX
남자 아이돌 컴백이 없는 가운데 여지없이 JB 엔터의 아이엠이 1위를 차지했고 아우라가 2위였다. 첫 정규 앨범치고는 굉장히 선방한 셈이었다.
그리고 발매했던 앨범이 매진되는 진풍경이 일어나서 긴급하게 앨범 추가 생산에 돌입했다.
이미 시중에서는 물량을 구하지 못해서 난리였다. 왜냐하면, 내가 살짝 치사한 수법을 썼기 때문이다.
아우라의 앨범은 기본적으로 3개 타입으로 구성되어 있다. 디자인이 다르다는 말이다. 그리고 각각 들어 있는 포토 북이 5종류, 거기에 앨범 한 장당 포토 카드가 전체 30장 중 랜덤으로 2장씩 들어 있었다. (마음 같아선 100장 중 2장으로 하고 싶었지만···.)
예약 특전으로는 스티커 5장 중 랜덤 1장, 포스터 3장 중 랜덤 1장이 포함되었다. 사실 드라마 방영 이후로 팬이 된 사람들이 많아 이건 좀 망했지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비장의 카드로 숨겨 놓은 시크릿 코드!
그 코드 하나로 아우라 멤버 중 한 명의 VR 영상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다섯 명의 멤버 영상을 다 보려면 최소 다섯 장의 앨범을 사야 했다. (최소한일 경우다.)
또 그 시크릿 코드 중에서도 랜덤으로 다섯 명이 모여 있는 VR 영상이 들어간 버전도 준비했고···. 그리고 팬 미팅까지···.
하···. 말을 하려니 너무 힘이 든다. 내가 매니저 시절에 이런 걸 보고 배워서 그런지 담담하게 느껴진다.
더러는 도 넘은 상술이라고 욕을 먹는 행태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아이돌이 이런 식으로 앨범을 판매하기 때문에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CD 판매가 증가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우리 회사는 양심이 있는 곳이다. 100장 정도를 사면 1장은 팬 미팅에 당첨되게 해 놨다. 그리고 팬 미팅에 당첨된 사람들에게는 특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당첨권: 팬 사인회 겸 미니 콘서트 in 슈퍼 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