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 그룹이 된 아우라 (2)
“아···. 떨려요. 데뷔하는 거보다 더 떨려.”
예원이의 걱정하는 얼굴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제일 잘한 녀석이 연기 욕심이 제일 큰 것 같았다.
‘연기력만큼은 예원이가 최고지.’
화려한 외모와 모델 같은 키에서 나오는 무형의 아우라가 사람들을 압도했다. 내 생각에는 제2의 나유정이 될 것 같았다.
도도한 공주 같은 외모를 가졌지만 어렵게 자라서 그런지 얼굴 한편에 슬픔이 공존했다. 거기다 은근히 억척스러운 면이 있는 것도 사실···.
“으아! 시작한닷!”
드라마는 아우라를 태운 낡은 승합차가 새벽에 외딴 도로에 나타난 시커먼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시작되었다.
- 자막: 20년 후 (지구 시간으로 5일 후) -
그러니까 지구 시간으로 5일 후, 고시원이 밀집한 동네에 다시 한번 게이트가 생기고 리치를 쫓아 아우라가 다시 지구로 귀환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아우라는 첫 싱글인 ‘Return’ 활동을 할 당시 입었던 화려한 무대 의상을 입고 골목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드디어···. 돌아왔어.”
20년 만의 귀환이었다. 리리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리리 언니 울어?”
예원이가 울고 있는 리리의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 주었다.
“언니! 울긴 왜 울어? 쯧쯧···. 전쟁통에 그렇게도 사람을 죽이고도 인간성이 남아 있네?”
바람 마법사 김담희가 울고 있는 리리를 보고 핀잔을 줬다.
“그, 그게 아니라 저기···.”
리리는 손을 들어 도로 건너편 불빛을 가리켰다.
“뭐 때문에 그래···? 어맛!”
일행의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새벽에도 하는 24시간 분식점이었다.
[할매 분식]
시뻘건 떡볶이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이 보이는 전형적인 분식집이었다. 하지만 다섯 명은 너나 할 것 없이 눈이 벌게져 미친 듯 가게로 달려갔다.
다다다다···.
좀비 스쿼드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속도였다.
“저, 저기요! 떡볶이랑 튀김, 순대 주세요. 아 참 어묵도요! 국물 팍팍 주시구요!”
그렇게 음식들이 그릇에 담겨서 나오자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아우라였다.
“머, 먹자.”
리더의 선언에 아우라 멤버들은 젓가락을 들고 허겁지겁 음식을 입으로 쑤셔 넣었다.
20년 만에 먹는 떡볶이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아우라였다.
“크···. 그래 이 맛이야.”
“흐앙···. 너무 마시쪄.”
리리가 입 주변에 떡볶이 국물을 묻히며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었다.
“언니. 마흔 살 먹고 혀 짧은 소리 좀 그만 내!”
“마, 마흔 살···. 내가 마흔 살이라니···.”
“테라 행성으로 갈 때 스무 살이었으니 지금은 마흔 살이지!”
순대를 먹고 있던 리리가 마흔 살이라는 담희의 말에 고개를 푹 떨구고 말았다.
“언니! 울지 마. 그래도 얼굴은 아직 스무 살이잖아. 얼마나 좋아. 몸뚱이는 우리가 사라졌던 때 그대로잖아.”
리더 이지령이 시무룩해진 맏내 리리를 위로했다.
“칫···. 불행 중 다행이네. 하여간 더럽게 재수도 없어요. 경연에서 확 뜰 기회였는데 다른 차원에 떨어져 20년간 사람이나 죽이고···. 하아···. 내 팔자야! 내가 거기서 구르다가 대한민국 남자들의 고충을 알게 됐잖아.”
청순 미소녀의 입에서 아줌마 같은 걸걸한 대사가 튀어나왔다.
“담희야. 그래서 다시 가라면 못 가겠니?”
예원이가 커다란 튀김을 입에 물며 시니컬하게 묻고 있었다.
“너 같으면 그 지옥 같은 곳에 다시 가고 싶냐? 리치인가 해골바가지인가 그 녀석만 잡으면 땡이야. 계약 완료라고! 알면서 그래!”
“야! 넌 그래도 우리 중에 유일하게 결혼도 한 주제에···.”
“이, 이혼했잖아!”
“흥! 이혼한 게 자랑이다!”
“너 같으면 바람을 피우는데 이혼 안 하게 생겼어?”
“이 미친X 좀 보게. 그쪽에선 황제가 첩을 거느리는 게 일반적인데···. 너 때문에 십 년간 잡혀 살았잖아. 그 정도면 순정파 황제 아냐?”
“몰라! 난 황제건 뭐건 바람은 용서 못 해!”
“서른아홉에 참 잘하는 짓이더라. 새파랗게 어린 후궁을 질투하고···. 아주 꼴불견이 따로 없어요.”
“나쁜 새끼···! 새파랗게 어린애나 들이고···.”
쾅···! 담희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쟁반에 있던 야채 튀김이 공중을 날아 딱지처럼 뒤집혔다.
“어허! 우리 이혼 황후님이 말하는 게 너무 걸걸하시네요. 그런 식으로 하니까 그 잘생겼던 황제님도 돌아선 게 아닙니까?”
“장예원. 그러다 너 뒤진다.”
“왜? 여기서 한판 붙을까? 내 주먹에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고 싶은가 보지?”
비릿한 표정의 예원이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단단한 스테인리스 젓가락이 엿가락처럼 휙휙 휘어졌다.
“···크흠···. 먹자.”
화면으로 분식점의 음식들을 초토화시키는 아우라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떡볶이의 메추리 알을 유리가 먹으려 하자 담희가 바람 마법을 일으켜 그것을 띄우더니 자기 입으로 가져갔다.
그야말로 절묘한 스틸이었다.
“헤헤헤? 막타 쳤다.”
“으윽···.”
아껴 놨다가 먹으려고 한 거 같은데 눈앞에서 스틸을 당하자 눈이 뒤집히는 큐드 엘프 정유리였다.
부들부들···.
분노가 치솟자 손아귀에서 화염이 일어났다. 스테인리스 젓가락이 벌겋게 변하면서 촛농처럼 테이블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새벽이라 보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담희야! 넌 왜 그러니? 왜 가만히 있는 유리 언니를 화나게 만들어! 언니 뚜껑 열리는 거 보고 싶어? 저번처럼 왕궁을 날리고 싶냐고!”
민망해진 담희가 눈을 뒤룩뒤룩 굴리며 테이블에 떨어지고 있는 쇳물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야! 크, 큰일 났다. 생각해 보니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어!”
그녀는 겨우 화제를 돌리는 데 성공했다. 지구의 화폐가 전혀 없다는 게 생각난 것이다.
아우라 다섯 명은 문 앞을 지키고 있는 할매 분식집 사장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계산대에 있는 할머니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너 아공간에 보석이랑 금덩이 넣어 뒀잖아? 전남편이 헤어질 때 기쁘게 내준 거 말이야.”
“아니···. 그게 얼마짜리인데 떡볶이를 먹고 계산을 해?”
담희의 눈빛이 야차와 같이 빛나고 있었다.
“일단 금이나 꺼내 봐.”
“하아···. 여기···.”
“예원아. 금덩이를 손으로 좀 뜯어 봐.”
이지령의 말에 예원이가 금덩이를 받아들고 무슨 클레이 자르듯 손으로 뚝 잘라 냈다.
“담희는 잘린 금을 허공에 띄워 봐. 거기다 스핀을 좀 걸어. 그리고 유리야, 이거 녹일 수 있지? 동그랗게 금화처럼 만들어 봐. 사장님도 금화처럼 생겨야 받을 거 아냐.”
화면에는 금화를 만드는 장면이 CG 처리가 돼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잘한 특수효과와 미소녀들의 입에서 걸걸한 대사가 필터링 없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흐흐···. 웃기네. 이걸 보고 오글거릴 거 같다고? 뭐? 웹드라마?’
“와···. 첫 장면부터 재밌다. 엄 감독님 편집 잘하셨네.”
“드레스 입고 떡볶이 먹는 거 뭐야. 미쳤어. 큭큭···.”
“그러게 찍을 때는 아무 생각 없는데 저렇게 보니 되게 웃긴다.”
“리리 언니 연기 좀 어색하지 않아?”
“그래도 처음에 덜덜 떨던 거에 비하면 잘한 거지. 난 그때 리리 언니 연예인 때려치운다고 할까 봐 겁나더라.”
“아···. 감독님한테 혼났을 때? 큭큭···.”
“리리가 제일 잘하는 거 같은데?”
나는 억지로 리리를 위해 좋은 말을 해 줬다. 리리는 스타일상 칭찬을 할 때 가장 성장을 많이 하는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그룹 내에서 주변 인물을 맡고 있다 보니 이런 칭찬에 굶주려 있었다. 워낙 엘프 3인방에게 팬들의 인기가 집중되다 보니 그런 경향이 심했는데, 리더 이지령의 경우 그런 것을 별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었다.
메인 보컬이었지만 약간은 3차원인 리리는 알게 모르게 주눅이 살짝 들어 있는 상태였는데, 내 칭찬을 듣고 눈에 띄게 표정이 좋아졌다.
“그저 좋대요. 누가 우리 맏내 아니랄까 봐.”
“······.”
“아무튼, 연기는 엄청 늘었네. 캐릭터에 딱 맞아.”
“헤헤···.”
“다들 조용히 좀···. 이제 욕쟁이 할머니 나온다.”
화면은 식대를 치르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담희가 쭈뼛거리며 금화 하나를 내민 모습에 할머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쌍 X들이. 돈이 없으면 처먹지를 말든가! 옷은 어디 정신 나간 X처럼 입고 와서 아침까지 장사할 거 다 처먹고···. 뭐? 이제 와서 돈이 없다고? 이게 말이야 방구야? 내 이것들을 그냥···.”
욕쟁이 할머니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이거 진짜 금이에요. 이거 하나만 받으셔도 음식값으로 충분해요. 무조건 10만 원 넘을 거예요.”
“내가 알 게 뭐야. 그런 거로 사기 치는 것들이 한두 명인 줄 알아?”
결국, 경찰서까지 끌려간 아우라는 가족들이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음식값을 치른다. 하지만 이내 가출로 신고된 소녀들이라는 게 밝혀져 다시 취조 아닌 취조를 당하고, 가출 소녀라는 기사가 나며 학교에 안 좋은 소문이 쫙 퍼진다.
학교로 복귀한 아우라를 보고 친구들이 쑤군거리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오글거리지도 않고 잘 나왔네요.”
상당히 과한 설정이라 지령이도 꽤 걱정한 모양이다. 하지만 내 대본과 엄 감독의 편집은 그런 우려를 원천 차단하고 있었다.
“오글거리는 건 일단 글도 못 쓰겠더라.”
일단 초반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성공적으로 끈 것 같았다.
* * *
방송이 끝난 후 남자 커뮤니티보다 여성 커뮤니티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거의 우쭈쭈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할까?
-아우라 멤버들 왜 이렇게 귀여워? 남자애들이 맨날 엘프다 뭐다 해서 짜증 났었는데 지금 보니까 너무 예쁘잖아!
-윗분 일단 욕하려고 드라마 봤다가 아우라의 마수에 빠지셨군요. 아우라는 진리입니다.
-진짜 예쁜 애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좋아함. 이건 과학적으로 입증됨. 어설프게 예쁜 척을 해서 욕먹는 거죠.
-정신연령 30대 후반에서 40대 걸그룹이라고? 컨셉 무쳤네···.
-오글거리는 것을 어떻게 참나 싶었는데 처음부터 개빵터졌음. 완전 내가 평소에 하는 말투야.
-담희는 혼자 이혼녀! 큭큭···.
-거창하게 이혼 황후래. 황제가 바람피웠다는데? 크크···.
-같은 반에 나유정이 뒤에서 자는 거 보신 분? 회사 이사님이 같은 반 친구임. 미친···.
-옆에 다솜이도 자고 있었음. 직속 선배일걸?
-네미시스와 러브원 막내가 제일 뒤에서 처자고 있음. 후덜덜···. 세계관 통합 무엇?
-나유정은 좀 오바 아니냐? 이제 서른 아님?
-편견 없이 외모로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이긴 하는데···.
-그건 유정이가 데뷔한 지 오래돼서 그래. 약간 중견 느낌이 나지. 솔직히 얼굴로는 원톱인 듯.
-그나저나 완전 허를 찔린 기분이다. 의외로 재미있게 봤음.
이 모든 것이 내가 안배한 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요즘 아이돌은 남자건 여자건 여성 팬층을 흡수하지 못하면 롱런할 수 없는 구조였다.
아우라는 메탈 팬과 오덕에 가까운 남성 팬 위주의 팬층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번 드라마로 두꺼운 여성 팬층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려를 불식시킨 ‘귀환소녀’, 첫 방송 10% 시청률로 쾌조의 스타트!]
[이준형 작가 전작에 비하면 아쉬운 시청률! 하지만 관계자들 사이에서 평은 좋아···.]
[새롭고 신선한 드라마를 원한다면 TVM의 귀환소녀!]
[TVM의 새로운 시도! 남성 팬들을 끌어들이려고 했는데 여성 팬들이 움직였다?]
[라이징 스타? 이혼 황후로 빛난 아우라의 담희!]
‘어라?’
갑자기 담희의 인기가 떡상하고 있었다. 절대 이런 걸 노리지 않았는데···.
아우라와 함께 있는 단톡방은 아주 난리가 났다.
[이지령] 망하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이네요. 대표님 얼굴에 먹칠은 안 한 거 같아요.
[김담희] 꺄하하하···. 제 기사 보셨어요? 저보고 라이징 스타래요!
[장예원] 라이징 스톤 아니야?
[김담희] 예원아. 먼저 떠서 쏴리~
[장예원] 담희야. 이 언니는 황종원 선생님하고 먼저 떴지 않니?
[이준형] 이것들이 여기서까지 싸우고 그래? 그만두지 못할까?
[이지령] 다들 이제 그만해. 경고야. 아무리 친해도 지킬 건 지켜.
[장예원] 아···. 농담 그만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김담희] 죄송합니다.
[정유리] 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요? 불길한 기사가 떴어요. [링크]
[이리리] 학! 어뜨케···ㅠㅠ
나는 정유리가 보내준 링크를 클릭했다.
[걸그룹 슈퍼 대전? 피 터지는 가요계]
다음 주 다수의 걸그룹이 컴백하는 가운데 드라마에 출연 중인 프로젝트 그룹들까지 그 대열에 합류한다. 바로 천만 영화인 ‘프로듀서님 저 회귀했어요’에 출연한 러브원과 네미시스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