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 그룹이 된 아우라 (1)
S급 작가 찾기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괴작판독기 케이, 기획팀 조아린 팀장 그리고 J&J 스토리의 이보건 팀장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보건 팀장은 글에 대한 선구안이 좋은 편집자였다. 초보 작가 시절 딱 한 번 잠깐 내 글을 봐준 적 있었는데 그 기억이 강렬해서 팀장으로 스카우트해 온 사람이었다.
원래 편집자의 일은 박봉에 할 일이 많은 직종이었다. 그는 예전 직장과 다른 업무 강도에 만족하며 팀을 잘 이끌어 나갔다.
내가 담당 작가 수를 엄격해 제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속 작가들의 능력이 뛰어나 편집자들이 많은 작가를 담당해야 할 필요가 없기도 했고···.
조 팀장과 케이는 회의를 통해 뛰어난 신인 작가를 찾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공감했고 즉각적으로 세부적인 계획을 작성해서 실행하기로 했다.
“케이. 넌 앞으로 J&J 스토리 쪽에 집중해라.”
“오케이. 알았어. 이제 앨범도 다 만들었고···.”
내가 케이 프로듀서를 J&J 스토리 쪽으로 돌리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그가 담당했던 러브원의 미니 앨범 준비가 끝났기 때문이다.
누가 들어도 케이의 음악이라고 느낄 만한 곡으로 최고 전성기에 접어든 그의 음악적 정수가 녹아든 앨범이었다.
두 번째는 바로 아우라의 자체 프로듀싱 능력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 때문이었다.
타이틀곡만 들었을 때는 EDM과 트로피컬 하우스가 일품인 중독성 있는 노래라고만 생각했었다. 거기에 리리의 감각적이고 트랜디한 보컬에 다섯 명의 독특한 보이스가 어우러지자 전 세계적으로 히트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긴급 제안으로 영어 가사를 더해 영어 버전도 발매하기로 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지령이 만든 다른 곡들이 전부 다 미친 퀄리티였다는 것이다. 케이팝이란 장르에 가장 어울리는 타이틀곡 ‘Black Rose’ 말고도 누디스코 장르로 일렉트릭 베이스와 신디사이저로 굉장한 그루브감을 끌어낸 ‘Let’s get it on’, 그리고 라틴 팝 계열의 열정적인 곡까지···.
이지령은 심지어 작곡할 때 멤버들의 의견까지 반영해서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곡을 타이틀곡으로 해야 할지 모르는 수준이었다. 더구나 각 멤버의 성량과 음역대를 고려해서 정교하게 만든 노래다 보니 다섯 명 모두가 노래를 잘하는 것처럼 들리는 효과가 있었다.
“그냥 미쳤지.”
지령이의 곡을 듣다가 정말 저급한 말로 지릴 뻔했다.
“형···. 이거 어떻게 하지? 곡이 다 좋은데? 앨범으로 넣기엔 너무 아깝고 한꺼번에 다 때려 박기엔 전체적인 일관성이 없고···.”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그렇지. 이지령 얘 뭐야? 볼 때마다 계속 깜짝 놀라게 하네. 촬영하느라 엄청 바쁠 텐데···.”
“내가 괜히 천재라고 했겠니?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그런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다고!”
“형의 그 사람 보는 안목 같은 거 말인가?”
“흠···. 그거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지”
“잘났어요. 근데 앨범 어떻게 할 거야?”
“에이! 그냥 다 때려 넣자. 저런 곡들이 한두 개가 아니라며?”
“응···. 그냥 장르별로 다 만들어 낼 심산인가 봐. 그것도 수학적으로 분석한 건가?”
“그건 모르지. 나는 문과에 수포자였으니까.”
“수포자?”
“넌 예체능이라 그런 거도 모르냐? 수학을 포기한 자라는 뜻이다.”
“아···. 그럼 난 원래 수포자야. 날 때부터···.”
“얼씨구! 자랑이다.”
“됐고···. 진짜 다 넣어 버린다. 그럼 아우라는 정규 앨범으로 가야 해.”
“그렇게 하자. 아예 정규 앨범으로 제작해서 포토북하고 미니 포스터도 제작해서 발매하자.”
그렇게 탄생한 게 아우라의 첫 정규 앨범이었다. 그야말로 타이틀곡으로 꽉 들어찬 앨범이었다. 촬영을 마친 ‘귀환소녀’가 편집되는 동안 정규 앨범을 제작했다.
타이틀곡뿐만 아니라 다른 곡들도 의상과 안무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다른 곡들의 안무는 유상준 팀장의 코치로 멤버들이 의견을 내서 안무를 만들었다.
앨범의 제작 수량은 약 10만 장이었다. 많은 홍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고 부담이 있다는 기획팀의 의견에 내가 책임질 테니 1차 물량으로 10만 장을 발주하라는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나는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아우라에게 전적으로 자유를 허락하자 이런 놀라운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물론 프로듀서인 이지령의 역할이 컸지만 다른 멤버들도 그냥 구경만 한 것은 아니었다. 완벽한 자유가 허락되자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음악에 담은 것이다.
역시 문화적 자유는 자본과 노하우를 뛰어넘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돈을 투입하거나 노하우를 배운다고 해도 자유가 억압된 상태에서는 이런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올 리가 없는 것이다.
현재 케이팝은 뛰어난 퍼포먼스와 화려한 영상, 뛰어난 외모, 그리고 가창력으로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하지만 공장형 아이돌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슈퍼노바라든지 일부 아이돌들에서 이런 한계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이런 형태가 케이팝의 최종 형태가 아닐까?’
기본에 충실하되 자신들의 재능과 개성을 자유롭게 보여 주는 것 말이다. 꼭 자체 프로듀싱 능력이 없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스스로 명확한 주관만 있으면 된다.
나는 아우라를 그렇게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드라마 때문에 컨셉돌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진정한 스타는 그런 식으로 빛나지 않는다.
장르나 컨셉에 제한을 받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아티스트가 되길 바랐다.
‘그리고 능력도 충분하고···.’
요즘 무대 위의 모습을 보면 월드 투어를 해서 그런지 몰라도 완전 여유가 생긴 느낌으로 무대를 가지고 노는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가창력이 있는 멤버들이라 라이브 콘서트를 통해 능력이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실제로 갑자기 컨셉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드라마에서는 흙수저 출신으로 자체 프로듀싱을 하는 그룹으로 나오기 때문에 그 이미지로 밀어붙이면 되는 것이다.
‘물론 적들과 싸울 때는 멤버별 고유 의상으로 갈아입고 배경 음악으로 케이&카이시브의 곡들이 나올 테지만···.’
전 세계 메탈 헤드들에게 여신으로 취급받는 아우라의 이미지도 온전히 가져갈 생각이었다.
* * *
오늘은 드디어 ‘귀환소녀’의 첫 방영이 있는 날이다. 어제부터 TVM과 각종 연예 기사를 통해 드라마의 홍보가 줄을 잇고 있었다.
과연 ‘인생 수업’의 홍보 효과는 대단했다. 러브원과 네미시스까지 컴백을 하며 드라마에 나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엄청난 반향이 일어났다.
[천만 영화 ‘프로듀서님 저 회귀했어요’의 팀이 다시 뭉쳤다!]
[러브원, 네미시스, 아우라가 동시에 컴백. 긴장하는 가요계.]
수많은 기사가 쏟아지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오! ‘프로듀서님 저 회귀했어요’를 엄청나게 재미있게 봤는데 기대되네요.
-러브원과 네미시스라는 강력한 용병의 등장으로 걸그룹 기획사들 죄다 초비상일 듯···.
-그런데 이거 실화냐? 드라마로 만들어진다고 할 때 농담이라고 생각한 사람 손!
-나 같은 놈이 또 있었네. 난 당연히 농담이라고 생각했지. 가당키나 하냐? 무슨 걸그룹 판타지 드라마냐? 웹드라마만 봐도 오글거려 죽겠는데 걸그룹에 웹소설 갬성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전 일단 중립 기어 박습니다. ‘나만 아는 세계멸망’을 만든 J&J 스튜디오 작품입니다. 작가도 믿고 보는 이준형 작가고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거 아니냐?
-아우라 첫 번째 싱글 뮤비를 보면 영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님.
-그건 돈을 때려 박아서 만든 거잖아. 요즘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보면 CG나 특수효과는 기본이지.
-그래도 아우라의 ‘Return’ 뮤비는 선을 넘었지. 그게 뮤비냐? 영화지?
-영상 퀄리티는 의심하지 않는다. 오글거릴 스토리가 뻔하기 때문에 걱정되는 거다.
-오글거리면 안 보면 되지 무슨 상관임?
-무조건 본다. 그건 내가 헬게이트와 아우라의 팬이기 때문이지. 흐흐흐···.
-이 시키 취향이 마이너네.
나는 커뮤니티의 그런 댓글들을 보고 실실 웃고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이세계에서 수십 년을 살다 온 이모뻘 캐릭터라는 설정인데 오글거릴 리가 없지.’
숙소에서 추레하게 추리닝을 입고 양푼 비빔밥을 비벼 먹는 이들이다. (당연히 모델은 나유정이다.) 그리고 대사에도 노처녀인 이모들이 나누는 그런 구수함이 녹아 있었다.
‘다들 드라마를 보고 어이없어하겠지. 중년의 미소녀라니? 흐흐···. 오글거림 따윈 하나도 없다고!’
똑똑···. 끼익···.
이제야 아우라가 방송 스케줄을 끝내고 도착한 거 같았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저희 왔어요. 늦어서 죄송해요. 저희가 같이 보자고 한 건데···.”
내 사무실로 다섯 명의 요정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래. 어서 와라. 아직 8시밖에 안 됐는데 뭘···. 라디오 방송은 잘 다녀왔니? 힘들진 않았고?”
“네···. 갔다가 오는데 길이 많이 막히더라고요.”
역시나 예원이는 싹싹했다.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오자마자 늦었다고 미안하다는 티를 낸다.
‘역시 인성이 된 녀석이야. 괜히 연습생 1호가 아니지. 암···.’
“저거 봐. 대표님은 항상 예원이만 예뻐한다니까?”
김담희가 뭔가 아니꼬운 표정을 하면서 팔짱을 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제가 처음에 인사했으면 분명 뭐라고 하셨을 듯!”
“에이.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야. 새끼손가락을 깨물어도 똑같이 아파요. 너희들 다섯 명이 전부 내 손가락 아니냐.”
“칫! 왜 제가 새끼손가락이에요! 제일 마지막이잖아요!”
“야! 김담희, 너 그거 몰라서 묻니? 새끼손가락으로 코딱···. 킥킥···.”
“야, 막내 너! 혼 좀 나 볼래? 데뷔도 한참 늦은 주제에?”
“나랑 나이도 똑같은 게! 우쒸!”
막내즈가 또 시작이었다. 항상 둘이 티격태격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면서도 사이는 제일 좋았다. 그냥 일종의 만담 콤비 같달까?
“다들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해. 오늘은 유리 먹고 싶은 거 시켜”
“언니. 고마워요!”
정유리는 리더의 휴대전화를 받아들고 근처에 있는 가게 메뉴를 검색했다.
어쨌건 오늘 첫 방송은 다 같이 내 사무실에서 모여서 보기로 했다.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무슨 기념을 하겠다나 뭐라나···.
그래도 첫 방송을 나랑 본다고 하니 기특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퇴근을 벌써 했을 시간인데 말이다.
“대표님은 최종 편집본 보셨죠? 어때요? 괜찮나요?”
“궁금하니? 곧 나올 텐데 직접 확인해 봐.”
“왜요! 좀 알려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담희야. 너도 나 이사님 닮아가니? 빈혈이야?”
“좀 알려 주면 안 돼요?”
“인마···. 너만 잘했으면 아무 문제 없는 거 모르냐?”
“캬하하···. 대표님이 뭘 아시네요. 담희만 잘하면 끝이죠.”
“너 이리 와 봐. 저게 오늘따라 성질을 긁네.”
고요하던 사무실이 다섯 명의 난입으로 시끌벅적했다. 곧 배달 음식이 도착하고 나와 아우라는 테이블에서 저녁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우왓! 하, 한다!”
사무실에 있는 대형 TV에서 드디어 광고가 끝나고 ‘귀환소녀’ 1화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