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21화 (221/263)

귀환소녀 촬영 현장 (2)

“대표님! 안녕하세요. 저희가 좀 늦었죠?”

“안녕하세요. 아닙니다. 제대로 맞춰서 오신 거예요.”

김지섭이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그와 심해철 뒤로는 ‘인생 질문’ 촬영팀이 카메라를 들고 따라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기들 방송에 에피소드로 넣을 작정인 듯했다.

“오늘 옷이 멋지시네요.”

나는 촬영을 위해 멋지게 입고 온 김지섭을 보고 덕담을 해 줬다.

“아유···. 전 세계적으로 나가는 드라마 촬영 아닙니까? 당연히 신경 좀 써야죠.”

“역시 든든합니다. 그나저나 우리 해철 씨는 머리도 저번 주와는 다르게 아주 정상적이시고 옷도···.”

“분위기에 맞춰야죠. 뭐···. 어떻게 저만 튀겠습니까?”

그는 예전에 인기를 끌었던 깔끔한 아이돌 스타일로 변신해 있었다. 하지만 약간 소심한 말투로 평소와 다른 텐션을 보여 주고 있었다.

“어라? 해철 씨,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세요?”

“그렇게 보이시죠? 이 녀석 어제 저랑 연기 연습하다가 기가 확 죽었어요.”

“왜요?”

“왜긴 왜겠어요? 연기를 너무 못하니까. 큭큭···. 대사 분량을 이렇게 준 이유가 바로 이거구나 싶더라고요. 넌 연기를 어쩜 그렇게 못하니?”

“아···. 조용히 좀 해요. 나도 왕년에 연기 좀 했었다고···.”

“아? 그 너희 회사에서 만든 아이돌 영화 말이냐? 쫄딱 망한 거? 인마, 연기를 그렇게 하니까 그렇지.”

“이렇게 안 될 줄 몰랐지. 이제야 내가 연기를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줄 알고 대사가 많이 없는 배역을 드렸습니다.”

나는 소심해진 해철 씨를 보며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얼마 안 되는 대사도 엉망진창이라 문제가 심각해요.”

김지섭의 계속되는 핀잔에 심해철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인생 질문’ 촬영팀은 이런 구도를 놓칠세라 열심히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

‘후후···. 알아서 홍보해 준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지.’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신인 걸그룹 아우라입니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아우라 멤버들이 두 MC를 보고 45도로 인사했다.

“와! 아우라 여러분! 우리 처음 보는 거죠? 반갑습니다. 심해철입니다.”

“선배님! 팬이에요!”

“저두요.”

장예원과 정유리가 팬심을 고백하자 심해철은 쑥스러운 듯 얼굴이 벌게지며 머리를 매만졌다.

“두 분이 내 팬일 줄 몰랐네요.”

“야! 그냥 하는 말이지. 그걸 믿고 있어요. 쯧쯧···.”

김지섭이 옆에서 자꾸 깐족거리며 훼방을 놓고 있었다.

“김지섭 선배님. 팬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봤어요. 어머 어떡해!”

정유리는 김지섭의 진짜 팬인지 마치 좋아하던 연예인을 만난 사람처럼 굴었다.

“아···. 그으래? 다들 반가워요. 나 아우라 뮤직비디오 봤잖아. 진짜 멋있더라고···. 마법을 막 쏘는데···. 어우···.”

“와아아···.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 뒤로 러브원과 네미시스도 두 MC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김지섭과 심해철은 많은 걸그룹 멤버들에게 둘러싸여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우···. 이 영감쟁이들. 정신 못 차리네!”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유정 씨가 혀를 차며 그들을 질타하고 있었다.

“어? 유정이 왔니? 영감쟁이라니! 말이 좀 심하네.”

유정 씨는 올해 예능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하더니 이 두 MC하고도 많이 친해진 것 같았다. 아니···. 원래 안면이 있었다고 했던가?

“지금 카메라에 헤벌쭉한 표정 다 찍히고 있거든요?”

“엇? 야! 김 PD, 너 인마 왜 쓸데없는 거 찍고 있어?”

나유정의 극딜에 소란스럽던 장내가 살짝 안정을 찾아 가고 있었다.

“험험···. 그나저나 꼭 무슨 음악 방송에 온 거 같네요.”

심해철이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건넸다.

“아닌 게 아니라 거의 음방이랑 비슷합니다. 일단 여기 3팀이 촬영을 하면서 신곡을 발표할 예정이거든요.”

“네? 그게 정말입니까?”

심해철의 두 눈이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네. 이번에도 곡을 정말 잘 뽑았거든요.”

“와···. 저 진짜 기대돼요. 제가 작가님 영화에 나온 OST를 엄청 들었거든요. 그거 들으면서 케이 프로듀서가 곡 하나는 정말 끝내주게 만든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있다가 강당에 있는 무대에 올라가셔서 직접 옆에서 보세요.”

“오오!”

심해철은 직관하는 게 기대가 되는지 연기에 대한 부담을 싹 잊어버린 듯했다.

‘그렇게 긴장을 푸시면 연기가 잘 나올 겁니다.’

드디어 제작팀이 무대 세팅을 모두 마치고 촬영이 시작됐다. 두 MC는 무대로 올라가고 걸그룹 세 팀은 각자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엄태민 감독의 큐 사인이 들어가자 카메라가 무대 위에 있는 두 MC를 비췄다.

“자! 이번에 올라오는 팀은 지금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는 팀이죠?”

“네. 차세대 신인 걸그룹 전쟁 ‘걸즈온탑’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팀입니다. ‘내 안의 나’라는 곡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네미시스인데요.”

우와아아!

엑스트라들이 제작진의 신호에 맞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이 그룹의 막내인 정유나 씨가 이 학교에 3학년으로 재학 중이라고 합니다.”

“휘익! 정유나! 정유나!”

“H 예고의 자랑이네요. 이번 축제를 축하하기 위해 신곡까지 발표한다고 합니다. 다 함께 박수로 맞아 주세요. 네.미.시.스!”

“컷! OK!”

그들은 평소 방송하던 대로 NG 하나 없이 매끄럽게 촬영을 마쳤다. 안도감을 내쉬는 가운데 네미시스가 무대 위로 올라가며 촬영이 시작되었다.

네미시스가 무대 위에서 대형을 유지하면서 댄스 포메이션을 형성했다.

“으윽···.”

스트레스성 장염이 도진 정유나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배를 자꾸 만지고 있었다.

“야! 유나야, 너 왜 그래? 혹시 그거야?”

“아, 아니 참을 만해.”

네미시스의 리더 은하가 막내 정유나에게 눈치를 주고 있었다.

“죽을 각오로 참아 봐. 눈 딱 감고 두 곡만 하면 되잖아.”

“아, 알았어. 언니···.”

정유나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았다.

“유나야. 잘 좀 참아 봐. 여기 너 다니는 학교야.”

찰싹찰싹···.

“흐아···.”

네미시스의 메인 보컬 이선정이 피식 웃으며 정유나의 엉덩이를 두들겼다. 노래가 시작되고 사색이 된 정유나의 댄스가 시작됐다. 얼마나 실감 나게 연기를 잘하는지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솔직히 변명하자면 나는 분명히 이 장면은 넣지 말자고 했다. 장 트러블이 상당히 오래 나오는 장면이라 유정 씨에게 너무 부담되지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의지는 확고했다. 자신이 후원한 소아암 환자의 웃는 모습을 꼭 봐야겠다는 기세였다.

‘연기는 진짜 끝내주네.’

정말이지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였다. 절로 박수가 나오는 상황!

첫 번째 곡이 끝나고 네미시스의 신곡이 흘러나왔다. 카이시브가 만든 신곡으로 내 취향을 저격해서 만든 북유럽 EDM 댄스곡이었다.

컨셉이 섹시 계열인 네미시스의 분위기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곡으로 실제 OST 발매가 되면 선풍적인 인기를 끌 곡이었다.

‘카이시브 녀석들 많이 늘었네.’

네미시스는 댄스 연습도 꽤 많이 했는지 완벽한 칼군무를 추고 있었다. 마치 전성기 텐뮤지스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음···. 이런 그룹을 기다려 왔다. 내 마음속에 One Pick!’

끈적끈적한 EDM 사운드가 내 마음을 사정없이 후벼 파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눈은 자연스럽게 나유정에게 고정됐다.

“푸흣···.”

비주얼 센터인 그녀는 섹시하지만 코믹했다. 그야말로 연기의 신이 강림한 모습이었다.

‘레전드네.’

드라마에는 네미시스의 곡이 전부 다 나오지 않고 일부분만 나올 예정이었다. 컴백 후 음악 방송에서 곡 전체를 소개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아쉽지만 꼭 나중에 영상으로 찾아볼 예정이었다.

‘음방에서 저런 코믹 연기 없는 네미시스를 보고 싶군.’

그녀들의 무대가 끝나고 러브원의 무대가 이어졌다. 러브원에도 H 예고를 다니는 멤버가 있다는 설정이었다. 러브원은 케이의 신곡까지 소화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신인 걸그룹 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팀답게 인기가 최고였다.

블랙소울의 혜수가 일정이 너무 바빠서 연습을 많이 못 했지만,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로 그럭저럭 무리 없이 녹화를 마쳤다.

무대 옆에서는 김지섭과 심해철이 공연을 직관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심해철은 걸그룹 댄스 마니아답게 안무를 따라 추고 있었다.

러브원의 무대도 끝나고 드디어 메인 주인공인 아우라의 무대가 펼쳐질 예정이었다. 아우라는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인 화려한 코스프레 복장을 한 게 아니라 평범한 무대 의상을 입고 있었다.

실제 아우라는 이미 대중들에게 이미지를 각인시키면서 독특함과 최첨단을 달리는 개성 있는 그룹으로 인식되고 있었지만, 드라마에서는 흙수저 걸그룹이었기 때문에 허접한 의상으로 놀림을 받는 신세였다.

하지만 아우라는 이지령의 자체 프로듀싱이라는 비장의 한 수를 숨겨 두고 있었고, 그걸로 포텐을 터트리기 위해 단단히 벼르는 중이었다.

“자! 다음 경연팀은 ‘아우라’라는 신인 걸그룹입니다. 다섯 명 모두 H 예고의 학생으로 이루어진 그룹입니다.”

“본 적은 없는데 데뷔를 한 친구들이군요.”

“네. 이쯤 해서 소개는 그만하고 직접 보도록 하시죠. 아우라가 부릅니다. Black Rose!”

MC들의 소개에 아우라가 무대 위로 올라갔다. 앞선 두 팀과 달리 관객들에게서 환호성이 전혀 없었다. ‘가출 소녀’라는 별명을 얻은 팀답게 학교에서 아무도 기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와! 쟤들 무대 의상 좀 봐. 어디 앞에 두 팀이랑 완전 비교된다.”

“하하하···.”

몇몇 학생들이 그들의 의상을 비웃었지만, 아우라는 자신 있었다. 이지령이 만든 곡과 멤버들이 힘을 합쳐서 만든 안무라면 통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아아···. 음향에 문제가 있네요. 잠시만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마이크 끌게요.”

스태프의 공지가 들려왔고 아우라의 멤버들은 정비가 되는 동안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의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이세계에서 수십 년을 같이 보내며 사선을 넘나들었던 삶이었다. 멤버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따뜻한 전우애가 피어났다. 어떻게 보면 아름답고 풋풋한 장면인데, 정작 멤버들의 대화는 환상을 깨 버리는 놀라운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자! 즐기자. 얘들아.”

“언니. 나이 먹고 걸그룹 하려니까 좀 그렇다.”

“말조심해. 우린 누가 봐도 십 대 후반의 학생이잖아.”

“그래, 리더 언니 말이 맞아. 가물가물하지만 학창 시절의 그 풋풋함을 떠올려야 한다고!”

“야! 김담희. 넌 테라 행성에서 결혼까지 한 유부녀였던 주제에 말은 참 잘한다?”

“쉿! 조용히 해. 이제 음악 나온다.”

스피커에서 이지령이 작곡한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퓨처 베이스와 함께 트로피컬 하우스를 접목한 깔끔하고 중독성 있는 사운드였다.

히트곡의 비밀을 수학적으로 풀었다는 지령이의 신곡이었다.

‘오···. 노래 진짜 좋다. 미쳤는데?’

아까 무대에 섰던 네미시스와 러브원보다도 더 여성스럽고 멋진 안무가 펼쳐지고 있었다. 마치 다섯 명이 한 몸이 된 것처럼 펼쳐지는 안무가 정말 압권이었다.

초반부터 깨끗한 고음을 날려 주는 리리의 역대급 보컬까지!

가출 소녀라고 놀리던 학생들도 그 모습을 보며 입을 떡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덜컹···. 콰앙!

갑자기 춤을 추고 있던 아우라 앞으로 어떤 물체가 떨어져 내렸다.

“꺄아아악!”

관객들은 무대 위로 떨어져 내린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의 시체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천장에 줄로 목을 맨 것 같았다.

끼익···. 끼익···.

목이 매달린 시체는 H 예고의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었다. 목이 기괴하게 꺾여 있었으며 몸 전체가 축 늘어진 것으로 봐서는 이미 즉사한 모양.

으아아아···.

강당이 패닉 상태가 될 때쯤 모든 조명이 꺼지고 암흑이 찾아들었다.

팍! 팍! 팍!

그러더니 강당 무대 뒤 스크린이 밝아지며 한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H 여고에서 연기를 가르치는 미남 선생님이었다. 창백하게 생긴 선생님은 음산하게 웃고 있었다.

“아아! 모두 주목! 다들 여길 보길 바란다.”

어두운 곳에서 영상이 빛나고 있으니 모두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향했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궁금하지? 너희는 이곳에서 영광스러운 제물이 될 다섯 명을 뽑아야 한다. 크크크···.”

모든 이들이 그의 얼굴을 홀린 듯 쳐다보고 있었고 스크린에 나온 연기 선생님은 악마처럼 기다란 혀로 입술을 핥고 있었다.

소름 끼치는 장면이었다.

모든 이들이 저주 마법의 일종인 환각에 빠져 있었지만, 단 한 명! 흑마법사 리리는 마나를 일으켜 환각에 저항하고 있었다.

리리의 두 눈이 시커멓게 변하며 완벽하게 환각에서 빠져 나왔다.

“컷! 수고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다음 장면 촬영 가겠습니다.”

엄태민 감독의 사인에 촬영이 잠시 중단됐다.

앞으로 아우라는 화장실에 있다가 환각에 빠지지 않은 두 명의 조연, 그러니까 네미시스의 정유나와 MC 김지섭과 함께 리치의 하수인이 된 사이코패스 선생을 처치할 예정이었다.

‘흠···. 이 드라마도 특수 효과와 CG가 많이 들어가야 하겠는데?’

나는 촬영 현장을 지켜보며 아주 좋은 느낌을 받았다. ‘나만 아는 세계멸망’에 좀비로 출연했을 때 받았던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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