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20화 (220/263)

귀환소녀 촬영 현장 (1)

오늘은 ‘인생 질문’ MC 두 명의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서울의 한 연예예술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하이라이트 촬영에 참관하기 위해 일찍 현장에 도착한 상태였다.

“대표님. 배고파요. 밥차 언제 와요?”

교복을 입고 있는 예원이가 배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예원아. 이제 10시가 조금 넘었는데 벌써 밥차를 찾으면 어떡하니? 아침 안 먹었어?”

“먹었는데 또 배고파요.”

“너 요즘 좀 심하다? 왜 그렇게 밥을 많이 먹어?”

“전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찌잖아요. 히히···.”

“참···. 그렇게 먹어 대는데 살이 안 찌는 거 보면 신기하다니까?”

예원이는 키 170cm 몸무게 48kg로 모델 체형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먹어도 항상 50kg를 넘는 경우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는 그 특징을 살려 엄청나게 먹는데 몸이 마른 푸드 파이터 캐릭터로 등장했다.

밥을 하도 먹어서 흙수저 기획사의 기둥뿌리를 흔들리게 하는 인물이었다.

“야 장예원! 그거 소품인데 지금 먹으면 어떻게 해?”

예원이는 한 손에 햄버거를 들고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한 입만 먹었어요.”

“너 그러다 진짜 살쪄. 아무리 캐릭터에 동화되는 게 필요하다고 해도 그런 습관까지 카피하면 곤란해.”

“에이···. 대표님이 모르셔서 그래요. 얘는 예전부터 저렇게 끊임없이 먹었어요. 예전 찍어 놓은 영상 보시면 막 우리한테 요리해 주는 거 있잖아요. 그거 다 자기가 먹고 싶어서 한 거라니까요?”

“야! 김담희! 너 사실을 왜곡하지 마! 분명 네가 먹는다고 제일 많이 손들었어.”

“난 네가 마늘 송송 썰어서 만든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가 제일 좋더라.”

“대표님. 이거 보세요. 저를 무슨 개인 요리사쯤으로 안다니까요?”

“담희야. 너 고자질 좀 그만해. 너 그렇게 하고도 팀워크는 괜찮은 거니?”

“팀워크는 최고예요. 자매처럼 아웅다웅하는 그룹이 오래간대요.”

“쯧쯧···.”

나는 담희를 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그녀는 외모가 여신인데 일이 아주 안 풀린 인물로 설정돼 있었다. 맺힌 게 많아서 수다스럽고 냉소적이고 고자질을 잘하는 캐릭터였다.

다섯 명이 이세계에서 수십 년을 살고 겨우 지구로 귀환했을 때, 가족들의 실종 신고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담희가 말을 잘못하는 바람에 씻을 수 없는 치욕적인 별명을 갖게 되었다.

5일간 어디에 다녀왔냐는 경찰의 집요한 질문에 방송 경연이 부담돼서 가출했다고 둘러댄 게 화근이었다. 나름 변명이랍시고 머리를 쓴 거였는데, 하필이면 기자가 붙어서 그 내용을 악의적인 기사로 내 버린 것이다.

[신인그룹 아우라 ‘경연이 부담되어 가출했어요’]

그렇게 아우라의 별명은 ‘가출 소녀’가 돼 버리고 만다.

비교하기 좋아하고 은근히 경쟁이 심한 H 예고에 그 소문이 쫙 퍼지고 친구들에게 무시를 당하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소속사가 듣보잡이라 자격지심이 있는 애들인데 이세계의 마법이고 나발이고 예전보다 더 위축돼 버린 것이다.

그 단초를 제공한 것이 바로 김담희라는 캐릭터였다.

“대표님. 제 데뷔곡 들어 보셨어요? 지난주에 최종 버전이라고 보내 드렸는데···.”

리더인 이지령이 자신의 곡에 대한 평가가 궁금한 듯 눈을 초롱초롱하게 떴다.

“어? 지령이구나. 노래는 들어 봤어. 최고더라. 처음 들었을 때보다 음이 꽉 찬 거 같아. 진짜 퀄리티가 넘사벽으로 좋아졌어. 이거 잘만하면 음원 1위 뚫겠던데?”

“정말요?”

“응. 정말이야. 지령아, 내 귀가 무슨 귀라고 했니?”

“지극히 대중적인 귀요. 평균 중의 평균···.”

“그래. 그러니까 된 거라고. 만약 네 곡이 차트 10위에 못 들어간다? 그러면 내가 소원 하나를 들어줄게.”

“소원이요? 드라마에 키스 장면 넣어 주시려고요?”

“···키스 장면? 그건 내 두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된다.”

“왜요. 저 이제 성인이잖아요.”

“J&J는 25세가 성인이야. 회사 사규에 나와 있어.”

“치···. 대표님이 아니라 독재자네.”

“너 드라마 ‘낙하산 인턴사원’에 러브 신이 있다고 생각해 봐라. 아찔하지. 우리 같은 장르 드라마에서는 가급적 남들이 다 하는 건 배제해야 해.”

“기적의 논리인 거 같은데요?”

“시청률이 기적적으로 나올 거니까 걱정 마.”

“하···. 아무튼 오늘 촬영하면서 제 데뷔곡 최종 안무 보여 드릴 테니 그리 아세요.”

“유상준 팀장님이 만든 안무지?”

“네. 진짜 힘든데 느낌 있어요.”

“유 팀장님 실력이면 의심의 여지가 없지. 암!”

나는 리더를 보고 엄지 척을 떡하니 날려 주었다. 지령이는 수학 천재였지만 아이돌을 하기 위해 예고로 전학을 온 학생으로 나왔다. 말수가 적고 지극히 이성적이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한 인물이랄까? 지구로 귀환 후 얼음 마법을 쓰는 것으로 성향을 드러냈다.

“그나저나 유리랑 리리는 어디 갔니? 아까부터 왜 안 보여?”

정유리는 한국말을 어눌하게 하는 일본인 유학생 유리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었는데 유창한 일본어를 선보이고 있었다. 어눌하고 귀여웠지만, 갑자기 치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주하며 가공할 지옥의 염화(炎火)를 뿌리는 캐릭터였다.

아직 혼혈이라는 정보가 퍼지지 않아서 나중에 이슈로 써먹을 예정이었다. 물론 이것은 정이든의 소속사와도 말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유리는 잠깐 화장실 갔고요. 리리 언니는 밴에서 잠깐 잔다고 들어갔어요. 제작팀에서 학교 축제 무대를 세팅하는 데 30분 정도 늦어진다고 했거든요.”

“리리는 어제 또 뭐 했길래 아침부터 자고 있어?”

“일찍 잤는데 저러네요. 잠이 진짜 많아요.”

“지령이 네가 리리 잘 챙겨서 데리고 다녀라. 걔는 노래만 잘하지 좀 덤벙대잖아.”

“대표님. 룸메이트 언니는 제가 챙길게요.”

김담희가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고 있다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래. 너도 리더를 도와서 리리 좀 잘 챙겨라.”

원래 담희와 리리는 데뷔 전부터 알던 사이였고 그래서 방도 같이 쓰고 있었다. 나는 초반에 리리가 담희를 챙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인 사실이 더 신기했다.

‘하여간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니까?’

리리는 흑마법사 캐릭터로 어딘지 모르게 음습하고 어두운 캐릭터였다. 항상 넋을 놓고 있지만 흑마법과 괴이한 기운을 느끼는 데 특화돼 있는 인물이었다. 지구로 도망친 리치를 잡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랄까?

이 다섯 명을 생각하자 마음이 든든했다. 지금까지 연기를 지켜봤는데 어색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야말로 캐릭터에 빙의한 것 같은 연기를 보여 주고 있었다.

아! 물론 내가 실제 성격과 특징을 캐릭터에 반영했기 때문에 그게 수월하게 가능했다.

‘이 바보들. 자기들이 연기를 엄청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다 내가 그렇게 만든 건지 모르고···.’

아무리 연기에 대한 포텐이 크다고 해도 이제 처음 연기를 시작하는 애들이라 기준을 많이 낮춰야 했다.

‘이 정도만 해도 잘하는 거지 뭐···.’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대표님!”

윤하영, 다솜, 혜수, 윤지, 지혜 다섯 명의 러브원 멤버들이 밴에서 우르르 내리고 있었다.

“와! 오랜만이네. 다들 잘 지냈어요?”

“네! 대표님 덕분에 자리 잘 잡았습니다. 하핫!”

일반인 전형에서 뽑혀 러브원의 개그캐를 맡아 영화에서 열연한 김지혜였다. 그녀는 공중파 방송의 예능과 드라마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 앞으로 와서 인사를 꾸벅하더니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지혜 씨가 잘해서 그런 거죠.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수고해 주세요.”

“넵! 은혜를 갚는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안녕하셨어요. 작가님.”

김지혜의 옆으로 다가와 나를 아는 척하는 블랙소울의 혜수였다.

“와···. 점점 예뻐지네? 세계적인 스타라 확실히 다른데?”

“드라마 나온다고 피부 관리도 받고 신경 좀 썼어요. 괜찮나요?”

“아주 좋아. Good!”

혜수는 유정 씨와 자주 만나다 보니 나와 자연스럽게 말을 놓게 됐다.

영화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러브콜이 있었지만, 소속사 대표가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내 드라마만 빼고 말이다.

귀환소녀가 추가로 영화까지 연결이 된다고 이야기했더니 이 드라마만 특별히 허락한 것이다. 저번 수익이 아주 짭짤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다섯 명이 어째서 같이 오는 거야?”

“아···. 안무를 맞추느라요. 케이 프로듀서님이 만드신 곡인데 열심히 해야죠.”

“대표님! 사실은 언니 스케줄이 잘 안 맞아서 지금까지 연습하다 왔어요.”

옆에서 반달 눈웃음을 하고 귀엽게 고자질을 하는 다솜이었다.

“너 요즘 영화 끝났다고 살판났구나? 흥행은 잘될 거 같아?”

“전 걱정 안 해요. 제 연기만 잘하면 되죠. 뭐.”

“그래. 그게 맞지. 녀석 이제 다 컸네.”

“저 원래 키 크거든요?”

다솜은 그간 여러 스케줄을 소화하며 바쁘게 지내다가 ‘귀환소녀’의 제작 일정에 맞춰서 일을 줄인 상태였다.

“대표님, 저도 왔어요.”

“오! 윤지 씨!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식스엔젤의 메인 보컬 윤지였다. 그녀는 최근 연기보다는 아이돌 활동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는데 내 드라마로 인해 다시 연기에 복귀한 상태였다.

“추억이 새록새록하네요. 재미있게 찍고 가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윤지 씨야 뭐···. 연기력은 말할 게 없으시죠.”

그렇게 러브원과 인사를 나누고 네미시스의 멤버들까지 내가 있는 곳을 방문했다.

다솜과 같은 팀이었던 은하와 C-Girls의 메인 보컬 이선정, 그리고 일반인 출신 3명과 차례로 인사했다. 특히 은하와 이선정은 각종 드라마에 출연하며 주가를 높이고 있었다. 둘 중 이선정은 자기도 모르는 연기 재능을 일깨워 줬다며 상당히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서 있는 네미시스의 센터 맏네 정유나가 보였다.

“유정 씨. 오늘 왜 이렇게 힘을 줬어요. 평소와 달리 화장을 너무 꼼꼼하게 한 거 같은데···. 아···. 내가 봤을 땐 역효과 난 거 같은데요?”

“씁···. 조용히 안 해요? 준형 씨는 못 봐도 저 카메라의 무시무시한 화질에는 장사가 없다구요. 어린애들하고 보조를 맞추려면 이 정도는 해야죠.”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알면 됐어요.”

“나유정 씨? 공연하는 무대가 설치되기 전에 7번 신부터 찍겠습니다.”

상남자인 엄태민 감독이 내 쪽으로 다가와 촬영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7번···. 후···.”

유정 씨는 7번 신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인상을 쓰고 있었다. 7번 신은 바로 기존에 없던 화장실 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긴장하면 배가 아프다는 설정만 넣으려고 했는데 불가사의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 터지며 그 유명한 ‘장트러블’ 정유나 캐릭터가 부활했다.

그 사연인즉슨···.

소아암 환자의 어머니가 SNS에 올린 글 때문이었다.

[유정 씨,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 선희가 유정 씨가 연기한 정유나 캐릭터를 보고 웃음을 되찾았어요. 힘든 치료를 하며 웃음을 잃어버린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유정 씨의 배가 아픈 연기를 보며 얼마나 크게 웃던지···. 지금은 유정 씨의 둘도 없는 팬이 되어 열심히 응원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유정은 그 이야기에 감동하고 소아암 환자의 병실을 방문하며 후원까지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그 연기를 보여 준다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나는 그래서 과감히 화장실 신을 넣을 수 있었다. 시청자들의 배꼽을 잡게 하는 원초적인 개그를 선보일 예정이었다.

‘유정 씨. 아무래도 귀환소녀에서도 신스틸러가 될 거 같네요. 네미시스의 비주얼 센터 장트러블 정유나로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태민 감독에게 어두운 얼굴을 하고 붙들려 가는 유정 씨를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대표님. 김지섭 씨와 심해철 씨 오셨습니다.”

나유정의 매니저가 나에게 두 명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알려 줬다. 뒤를 돌아보니 멀리서 의상을 빼입고 자신감 있게 걸어오는 두 명이 보였다.

‘드디어 오셨군. 아우라와 함께 리치의 하수인을 막을 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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