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19화 (219/263)

2시즌 공개 (3)

MC 김지섭의 아우라는 크다고 할 순 없었지만 나름대로 준수한 편에 속했다. 개그맨이자 최고의 MC답게 연기를 뜻하는 노란색의 아우라를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심해철은 노래의 재능을 뜻하는 붉은색 아우라만 소유하고 있었을 뿐 연기 재능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카메오 출연은 얼마든지 가능하니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두 분 다 출연 가능하십니다.”

“어? 정말요? 만약 저희를 써 주신다면 진짜 열심히 할 겁니다. 괜찮으시겠어요?”

“하하···. 괜찮습니다. ‘나만 아는 세계멸망’에는 좀 힘들지만 제 차기작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으아! 오케이! 됐어! 나도 이제 한을 풀어 보자!”

김지섭이 주먹을 불끈 쥐고 결연한 의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이슈가 되는 연예인이 직접 나오고 싶다고 하는데, 말릴 필요가 있을까?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최고의 인지도를 가진 두 사람이었다.

나는 김지섭에게는 약간 비중 있는 배역을 주고 연기력이 다소 부족한 심해철에게는 단역을 줄 생각이었다.

‘생각해 보니 딱 맞는 역할도 있는 거 같은데?’

‘귀환소녀’에 넣을 만한 배역이 머릿속에 바로 떠올랐다.

“아무래도 스케줄을 조정해야 할 것 같은데요?”

“혹시 다음 주에 가능하시겠습니까? 그때 촬영이 있거든요.”

“어? 벌써 배역까지 생각하셨어요?”

“네. 두 분을 보니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와우! 으흐흐···. 너무 기대됩니다. 내가 사실 연기를 지망했잖아요. 외모가 이래서 현재는 개그맨을 하고 있지만···.”

“외모도 뭐···. 준수하시잖아요. 제가 봤을 땐 정통 드라마 연기도 잘하실 것 같습니다.”

“정말이요? 그게 눈에 보이시나 봐요?”

“꼭 그런 건 아니고 예전에 콩트 하시던 거 보면 연기력이 좋으시던데요?”

“아유···. 우리 대표님이 사람을 볼 줄 아시네. 아셔.”

“에이···. 형은 개그맨이 딱이지. 만약 연기를 했어 봐. 국민 MC는 무슨 국민 MC야.”

김지섭과 심해철이 티격태격하며 가벼운 분위기를 계속해서 이끌어 갔다.

“아무튼, 일단 출연을 약속하셨으니까 이 정도로 하시고 다른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단 하나의 악플을 읽어 보는 시간입니다. 이거 보셨나요? 딱 하나만 선정해서 이야기를 들어 보는 코너입니다.”

“네. TV에서 봤습니다.”

“작가님 약력을 보니까 J 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셨네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작가님께서 콘텐츠에 관련된 일들을 많이 하시잖아요. 처음에는 웹소설로 출발하셨고 지금은 아이돌이나 웹툰까지 하고 계시는데요. 항간에는 너무 상업적인 작가···. 아니···. 상업적인 면만 추구하는 게 아니냐 하는 그런 이야기도 간혹 있던데요. 이런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살짝 민감한 질문이긴 하지만 그게 궁금하거든요.”

“그건 지금 순화해서 말씀하신 거죠? 원래는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보고 싶지 않으실 텐데요?”

김지섭이 나에게만 조심스럽게 큐시트를 내밀었다.

[이준형 작가는 돈만 밝히는 거 같다. 오직 자극적인 재미만 추구할 뿐 글에 깊이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힐 그런 작가다. -ID xstar1214]

“흠···. 댓글이 많이 보던 내용이네요.”

“그런가요?”

MC 김지섭이 하는 말은 나도 인터넷으로 가끔 보던 댓글이었다. 그런 글을 보면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그냥 무시할 뿐이었다.

“아···. 최근까지 그런 말을 듣기도 했었고 저 자신도 상업 작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댓글로 상업적이다, 돈만 밝히는 작가라는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가 않습니다.”

십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대상을 탔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어느 살인자의 일기’라는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어필하고 싶었지만, 왠지 구질구질한 것 같아 아무렇지 않다고 말해 버렸다.

“그래도 동창분들이 신춘문예 같은 곳에 참가해서 상도 받고 등단하는 걸 보면 부럽지 않으세요? 업계에서 글로 인정을 받는 거잖아요.”

“···부럽죠. 그분들은 정말 글을 잘 쓰시거든요. 하지만 저는 원래 다른 쪽을 하려고 준비하던 사람이라 그냥 제 갈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거죠. 제 동창들이 걷는 길을 과감히 포기하고 나서 찾은 길이랄까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으음···. 애초부터 계획이 있었네. 있었어.”

“뭐 얻어걸린 거죠. 솔직히 말하면···.”

“그건 아닌 거 같지만···.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SNS를 안 하시잖아요. 혹시 이유가 있는 건가요? 항상 보면 나유정 씨를 통해서 정보가 나오던데요.”

엄청난 팔로워 수를 자랑하는 심해철이 평소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것 같았다.

“아···. 제가 SNS랑 별로 안 친합니다.”

“혹시 퍼거슨 옹처럼 SNS를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하시나요?”

“하하···. 그런 건 아닙니다. 저도 하고 싶긴 한데요. 사실 시간이 없는 게 제일 큽니다. SNS를 하다가는 글을 못 쓸 것 같아서요. 매니저로 일할 당시에도 글을 쓰려면 대기할 때나 새벽밖에 시간이 없다 보니 SNS는 꿈도 못 꿨죠. 그리고 글 쓰는 게 재밌다 보니···.”

“아···. 글 쓰는 게 SNS보다 재미있다! 그게 포인트였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글 쓰는 건 힘들고 SNS가 재밌지 않나요? 이런 것만 봐도 원래부터 글에 재능이 있던 거 아닙니까?”

“글쎄요?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만···.”

“기만자네. 기만자야.”

“아닙니다. 제 입장에서는 같은 분야에서 오랫동안 톱을 지켜 오신 두 MC 분들이 훨씬 대단하게 보입니다.”

“허···. 이걸 이렇게 빠져나가시네. 누가 작가 아니랄까 봐···.”

심해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허탈하게 웃고 있었다.

“쑥스러우니 이제 그쯤 하시죠? 계속 이러시면 다음 주에 러브원, 네미시스, 아우라를 못 만나실 수도 있습니다만···.”

“엇! 이제 그런 이야기는 이 정도만 할까요?”

“야! 넌 창피한 줄 알아야 해. 하여간 걸그룹에 죽고 못 살아요.”

“뭔 소리야! 갑자기 사람을 오덕후로 만들고 있어?”

“제가 분량이 좀 있는 역할을 드릴 테니 지섭 씨도 이제 그만 하시죠.”

“자! 이제 다음 질문입니다.”

김지섭은 내 말을 듣고 곧바로 주제를 전환하려고 했다.

“와! 태세 전환 보소?”

“제 의견이 아니고 작가님들이 빨리빨리 넘어가라고 하네요. 그럼 이제 제가 중요한 ‘인생 질문’을 드릴 차례입니다.”

“응? 아니···. MC님 벌써 ‘인생 질문’인가요? 중요한 이야기도 다 못 한 거 같은데요?”

“중요한 이야기 뭐요? 혹시 나유정 씨랑 뭐 그런 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뭐 이를테면···.”

“솔직히 저는 궁금하지가 않거든요. 결국, 답정너 같은 질문 아닙니까?”

“네?”

“에이! 연기하시지 마시고요. 바로 인생 질문이나 하시죠. 자! 히트 메이커 이준형 작가의 인생 질문은?”

“······.”

어처구니가 없었다. 궁금하지 않다니! 변명을 잔뜩 준비해 왔는데 쓸모가 없다니 갑자기 나도 모르게 무력감이 엄습했다. 그 후로 나는 무슨 정신으로 촬영을 마쳤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어떤 삶이 성공한 삶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려고 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달한 건지 모르겠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어디론가 억지로 끌려가듯 사는 삶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며 일하는 것이 바로 성공이 아닐까 하는 개똥철학을 주절거린 것 같았다.

“흐음···.”

나는 힘이 빠진 상태로 방송국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차에 문을 열고 겉옷을 벗어 조수석에 던져 놓았다.

“아···. 왜 이러지?”

갑자기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운전까지도···.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의자에 앉아 천장을 쳐다보았다.

‘상업 작가···. 돈만 밝히는 작가라···.’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타격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았는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나도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될 명작을 쓰고 싶은 걸까? 아니면···.’

손바닥으로 이마를 훔치자 손아귀에 땀이 흥건했다.

“후우···.”

갑자기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눈을 감으니 몸이 의자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잠깐 눈이라도 붙일까?’

나는 그렇게 꿈을 꾼 것 같았다. 역시나 꿈에서도 글을 쓰고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방에 내가 쓴 것으로 보이는 소설책 2권이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아무래도 등단은 한 모양.

정식으로 등단했다는 자부심? 인정? 평소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떠오르며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러다 문득 내 옆에 통장이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에 내가 거래하고 있던 은행의 통장이었다. 나는 손을 뻗어 통장을 집어 들었다.

이거 왜 이렇게 차갑지? 어쨌든···.

조심스럽게 안을 쳐다보니 잔액이 마이너스인 통장이었다. 충격이었다.

“흐어어억···. 아, 안 돼!”

나는 숨이 멎을 듯 헛바람을 들이켜며 잠에서 깨어났다.

“헉헉···.”

“준형 씨 괜찮아요? 개꿈···. 아니 악몽 꿨어요?”

흐릿한 시야에 유정 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으음···. 이거 꿈은 아니죠?”

“현실이에요. 현실···. 왜 사무실에서 자고 있나 했어요.”

나는 몸을 일으키지 않은 상태에서 이마를 만지고 있었다. 거기에는 수건 같은 게 올려져 있었다. 아까 차가웠던 게 바로 이거였던가?

“열이 있는 거 같은데 몸은 좀 어때요? 제가 혹시 몰라서 이마에 찬 물수건을 올려 놨어요.”

“이거···. 과학적으로 효과 없다는 소리가 있던데···. 아앗!”

“말을 참 예쁘게 하시네. 일부러 신경 써 준 사람 성의는 생각도 안 하고 깨자마자 무슨 헛소리예요?”

그녀가 내 팔뚝을 손으로 꼬집었다.

“으으···. 아픈 사람에게 이게 무슨 짓입니까?”

“준형 씨는 혼 좀 나야 해요.”

“유, 유정 씨 손이 약손이네요. 이제 좀 괜찮은 거 같아요.”

사실 그냥 피곤했을 뿐 어디가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자 꼬집은 그녀의 손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거 아무래도 피멍 든 거 같은데···.

“진짜 괜찮아요?”

“네. 좀 괜찮아진 것 같아요. 저도 몰랐는데 아무래도 살짝 감기 기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잠깐 낮잠을 잤더니 좋아졌네요.”

“무슨 꿈을 꿨길래. 그렇게 깜짝 놀랐어요?”

“···.그게···. 꿈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봤어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글을 쓰고 통장이 텅텅 빈 거죠.”

“네? 난 또 뭐라고···. 꿈에서 좀비라도 본 건가 했네요. 요즘 매일 좀비 영화만 보던데···.”

“유정 씨는 좀비보다 가난이 더 무섭다는 소리 못 들어 보셨어요?”

“자꾸 헛소리할래요? 오늘 방송국에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보세요.”

“별거 아닙니다. 괜히 상업 작가다, 돈만 밝히는 작가다 하는 소리가 머릿속에 남았나 봐요. 저도 모르게···.”

“아니! 준형 씨는 TV 부문 대상도 타고 전 세계에서 사랑받았던 베스트셀러 소설도 출간했잖아요? 그걸 적극적으로 어필하시지 그러셨어요.”

“···고맙습니다. 역시 제 마음은 유정 씨만 알아주시는군요.””

“고맙긴요. 그런 게 영 마음에 걸리면 해리 포터 같은 작품이나 한번 써 보시든가요. 자···. 이제 일어나세요. 아무리 봐도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가서 쉬는 게 좋겠어요.”

그녀는 내 팔을 잡고 나를 일으키려고 힘을 쓰고 있었다.

‘그래. 내 나이 이제 서른하나잖아. 뭔들 못 하겠어? 주위에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데 힘을 내야지.’

“유정 씨. 요 밑에 설렁탕집에서 밥이나 먹고 갈까요?”

“흠···. 오랜만에 준영 씨가 의견을 낸 건데 그럴까요?”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 힘이 좀 날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럼. 우리 1층으로 가요.”

나는 나유정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1층 상가는 화려한 조명으로 아주 멋진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우리 여기서 사진 한 장 찍고 갈래요?”

멋진 조명을 발견한 유정 씨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러시죠. SNS에도 올리시고···.”

“웬일이래···. 앞으로 종종 좀 아파야겠네.”

“아픈 거 아닙니다. 뭐 해요. 어서 사진이나 찍읍시다.”

“아 정말! 촌스럽게 브이 자는 왜 그려요? 제발 그런 것 좀 하지 말아요.”

“큭큭···.”

그렇게 오붓하게 사진을 찍고 있으니 주머니에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누구지? 응? 이기훈 전무?’

“여보세요? 전무님?”

[이 대표님. 안녕하셨어요? 오늘 보고 받으셨어요?]

“네? 무슨 보고요?”

[아직 보고 못 받으셨나 보네요. 영화 OSMU로 벌어들인 수익을 정산해서 회사 계좌로 보냈을 겁니다. 금액이 꽤 될 거예요.]

“하하···. 그거 기쁜 소식이네요. 역시 돈이 최고죠. 암요. 얼어죽을 명예는 무슨 명예입니까?”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요?]

“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혹시 ‘귀환소녀’ 때문에 전화 주신 거예요?”

[맞습니다. 잘 돼 가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다음 주에 1시즌의 중요한 장면을 찍기로 했습니다. 그거만 촬영하면 거의 90%는 끝났다고 보시면 됩니다.”

나는 그렇게 이기훈 전무와 통화를 마치고 나유정을 돌아보았다.

“이기훈 전무 전화네요. ‘귀환소녀’ 때문에 전화했다네요. 자! 이제 갈까요?”

“얼른 앞장서세요!”

유정 씨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나를 뒤에서 밀고 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피식거리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제 귀환소녀만 잘되면 회사 기반이 튼튼해질 것 같았다.

그렇게 촬영 날이 밝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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