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즌 공개 (1)
테리우스 한연준의 홍보 효과는 대단했다. 과연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라더니 일본 여성 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슬금슬금 조회수가 오르기 시작하다가 금세 랭킹 안으로 진입했다.
‘사실 좀 치사하긴 한데···. 내가 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나는 연준이를 생각하며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을 스타덤에 올려 준 드라마를 쓴 작가인 동시에 매니저였는지라 그들의 팬이라면 내 이름을 모를 리가 없었다.
예전 테리우스 팬 미팅 때 몸을 날리며 나유정을 구한 게 일본에서 큰 화제가 되어 팬이 됐다는 분들도 많았다.
“아직까지 나를 기억하고 있다니 정말 고마우신 분들이네.”
연준이의 얼굴을 본 지 꽤 된 것 같아서 같이 밥이라도 먹고 싶었지만, 워낙 바빠서 서로 시간을 맞추기 힘들었다.
‘연준이도 언젠가 내 작품에 주인공으로 캐스팅해야지.’
* * *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나세멸’ 2시즌은 편집이 거의 끝나고 공개 날짜까지 모두 잡힌 상태였다.
그리고 ‘귀환소녀’는 엄태민 감독과 제작 2팀이 손발을 맞춰 촬영을 시작했다. 날씨가 춥긴 했지만, 어차피 이 작품은 실내 촬영이 많다 보니 크게 상관없었다.
드라마 장르가 하이브리드라 그런지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때려 넣을 수 있어서 좋았다. 기본적으로 학원물이며 거기에 연예계 스토리가 이어지고 마지막은 리치가 만든 괴물이나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식이었다.
‘어차피 예산이 ‘나세멸’처럼 크게 들어가는 작품이 아니라 시청률이 평균 이상만 나와 줘도 괜찮지.’
사실 이 작품은 아우라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부수적인 수단이며 블록버스터 영화를 찍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김시후, 최하나 작가의 작품도 거의 완성 단계였고 J&J 스토리의 작가들이나 웹툰도 지속해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는 배우들도 만족스러운 활동을 하고 있어서 이제는 내가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굴러가는 시스템이 정착되었다.
딱 2년이 걸린 셈이었다.
계좌에는 평생 다 쓰지도 못할 돈이 모인 상태였다. 어쩜 이렇게 무식하게 모아만 놨는지···. 음···. 어디 투자라도 해야겠지.
‘하아···. 기분이 이상하다. 앞만 보고 달려와서 그런가?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야.’
똑똑···.
옆문에서 노크 소리가 나며 나유정이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대표님. 놀고 계시는군요.”
“네···.”
“어라? 네라니···. 오늘 컨디션 별로예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아닌 거 같은데···.”
나유정은 내가 평소와는 다른 기분이라는 걸 감지한 모양이었다. 솔직히 나도 원인을 몰라서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다.
“힘내요. 지금 ‘나세멸’ 2시즌을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난리라구요.”
“그런가···.”
하긴···. 언론에 그렇게 홍보를 해 놨는데 이슈가 안 되는 게 이상하다. 1시즌이 도입부였다면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다.
“흠···. 오늘 이상하네.”
그녀가 갑자기 내 이마에 손을 올려놓았다.
“열은 없는데···.”
유정 씨의 손에서 나는 핸드크림 향기가 내 머릿속을 깨우는 것 같았다.
“웃···.”
나는 그녀의 손을 떼어 낸 후 기지개를 켰다.
“···피곤한 건 아닌데 요즘 한가해지다 보니 잡생각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요. 사람이 항상 같은 속도로 달릴 순 없어요. 모든 게 잘 되고 있잖아요. 잠시 쉬어 가도 괜찮아요.”
거창한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똑똑···.
조아린 팀장이 두 손에 서류들을 들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이사님도 여기 계셨네요.”
“오랜만이네요. 팀장님.”
“이사님,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냥 운동하고 스케줄 있으면 나가고 집에서 뒹굴뒹굴하면서 드라마 보고 그랬죠. 뭐.”
“호호···. 그러셨구나. 아! 대표님, ‘나세멸’ 홍보 자료와 배우들의 방송 스케줄을 정리한 자료입니다. 작품이 공개되기 전에 방송을 한번 쭉 돌아야죠.”
“그래요. 우리 배우들이 CF도 찍고 그러려면 홍보를 열심히 해야죠. 배우들이 잘돼야 작품도 잘되는 거고, 회사도 잘되는 거죠.”
“하하···. 그럼 말씀 나누세요. 전 이만 일하러 가 보겠습니다.”
조 팀장이 사라지자 유정 씨가 자신의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이제야 정신이 좀 드세요? 나 여기서 일 좀 해도 되죠?”
“마음대로 하세요.”
나유정은 마치 자신의 안방이라도 된 양 편하게 노트북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금 좀 이상한 거 같은데···. 나나 되니까 딱 보면 아는 거라고요.”
“알긴 뭘···.”
“조용히 하고 뭐라도 해 봐요. 난 지금 ‘진아돌’ 기획 짜느라 바쁘니까요.”
“웬만하면 전문가랑 같이해야지. 왜 혼자 그러고 있어요?”
“전문가요? 제가 전문가예요. 오디션이란 오디션은 죄다 본···. 음 이렇게 말하면 또 나를 놀릴 것 같지만···. 어쨌든 나만 믿어 보세요. 요즘 많이 쉬어서 아이디어가 넘치거든요.”
“그래요. 이사님이 알아서 하세요. 그나저나 우진이는 좀 어때요?”
“진짜 준형 씨는 어디서 그런 멤버들을 데려오는 거예요? 어쩜 그런 애가 소속사도 없이 그러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몰라서 물어요? 유정 씨가 재신(財神)이 붙어있다면 전 인복(人福)이 있습니다.”
“그건 인정!”
그녀는 최근까지 집에서 뒹굴다가 두 번째 연습생인 새끼 좀비 성우진이 합류하자 의욕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연습생 출신이다 보니 기본기가 확실했고 테스트를 해 보니 실력도 상당히 좋았다. 다만 6개월간 노래, 춤을 쉬었기 때문에 좀 더 연습할 필요가 있었다.
둘은 인성도 좋아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금방 친해졌다. 같이 수업을 들으면서 성우진이 권태현에게 알고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 공유해 주고 있었다.
‘권태현과 성우진···. 일단 두 명밖에 없긴 한데···.’
자꾸만 보고 싶은 그림이었다. 남자인 나도 이런데 여자들은 오죽할까? 회사에 남신 2명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여직원들이 7층을 기웃거린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기획이 완료되면 조만간 보여 줄게요.”
“뭐···. 그러시든가요.”
* * *
드디어 넷플릭에 ‘나만 아는 세계멸망’ 2시즌이 공개됐다.
날짜는 크리스마스가 지난 12월 26일이었다.
사전에 여러 매체를 통해 홍보가 대단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었다. 더러 1시즌의 과도한 성공으로 2시즌에 대해 우려를 하는 언론도 있었지만, 무조건 그 이상으로 성공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건 내가 좀비로 굴렀기 때문에 몸소 체험한 것이다. 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열기란···.
CG 처리된 김호진 감독의 최종 편집본을 보고 대박을 예감했다.
‘허···. 뭐야 이거? 완전 6편짜리 영화잖아? 그것도 쉴 새 없이 몰아치는···.’
1시즌을 본 시청자들은 스토리가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2시즌을 더 기대하는 상황. 영상이 공개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시청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다음 날 커뮤니티와 미튜브에 ‘나세멸’ 2시즌에 대한 리뷰나 반응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전율! ‘나만 아는 세계멸망’ 2시즌 완벽 분석]
[‘나세멸’ 미쳤다! 1시즌을 능가하는 압도적인 재미!]
[2시즌 징크스를 깬 ‘나만 아는 세계멸망’ 넷플릭에서 쾌속 진격 중!]
J&J 스튜디오의 ‘나만 아는 세계멸망’(이하 나세멸)이 거침없는 흥행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다. 평론가와 일반 시청자들이 동시에 열광하면서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각종 커뮤니티에는 감상을 완료했다는 글들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 2시즌 1화부터 6화까지 연달아서 시청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만큼 매 화가 긴장감의 연속이었다는 뜻이다. 한 시청자는 시리즈가 6편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날을 새울 뻔했다는 말을 했다.
2시즌에서는 사이비 종교에서 터진 긴박한 사태와 슈퍼 셸터에서 평화롭게 지내던 생존자들의 모습이 교차하며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마지막 5, 6화에서 미친 듯 몰아치는 좀비 웨이브는 넷플릭 역사상 가장 강렬한 좀비 액션 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좀비 영화의 끝판왕을 보는 것 같다는 평들이 주를 이뤘다. (생각해 보면 심지어 영화도 아니고 드라마다.)
주인공이 건설해 놓은 슈퍼 셸터의 정체와 3시즌으로 이어지는 미스테리한 전개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특히 대규모의 좀비를 유인하면서 여러 군데를 물린 주인공이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셸터로 돌아온 장면에서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2시즌도 성공시킨 J&J 스튜디오는 명실상부하게 최고의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진 회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당 기업의 대표이자 ‘나세멸’의 원작자인 이준형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조건 재미입니다. 재미가 없다면 그건 바로 시청자들의 시간을 낭비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재미를 위해 극한을 추구한다는 것은 다소 과한 생각처럼 들리기도 한다. 물론 이런 행태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나세멸’ 2시즌은 잔인한 장면과 생각조차 하기 힘들게 몰아치는 속도감의 결정체다. 거기다 스토리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주변 인물들까지···.
단점을 잡아내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준형 작가의 작품을 보는 이유는 그런 단점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집에서 편히 대리만족과 긴장감을 즐기기 위함이다. 이런 점을 노린 거라면 100% 이상 기대에 부응했다. <중략>
대다수 언론에서는 글로벌 흥행에 편승해서 계속 좋은 이야기만 기사로 써 주고 있었다. 특히 해외에서 엄청난 호평과 해외 스타들의 SNS에 시청 인증 행렬이 이어지며 작품으로는 도저히 깔 수 없는 위치에 올라가 버린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괜히 비평했다가는 융단 폭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는 모양이었다.
‘역시 사람이건 작품이건 성공해야 해. 그래야 별말이 없어.’
나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커뮤니티 반응도 살펴보았다.
-너희들 ‘나세멸’ 2시즌 봤냐? 캐릭터 하나하나가 다 살아 있더라. 이게 바로 군상극 아닌가 싶어.
-진짜 개꿀잼이던데? 괜히 밤에 보다가 심장 떨려서 죽는 줄 알았다.
-좀비들이 무슨 미식축구 선수들 같더라. 우르르 몰려오는데 존재감 오짐.
-난 무서워서 가족들이랑 다 같이 봤다. 다들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어. 늦게 클릭하는 바람에 밤새도록 봤다. ㅋㅋ
-J&J 스튜디오가 드라마의 퀄리티로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해 버리네? 이러다 D-Studio에 비비는 거 아니냐?
-아직 그건 오바지. 이제 겨우 3개 정도밖에 안 찍은 회사인데···.
-난 다른 건 모르겠고 좀비 학살하는 게 아직도 계속 기억이 남더라.
-맞아. 나도 그래. 주인공이 만든 슈퍼 셸터가 사실은 좀비 슬래터 하우스였어. 그냥 숨기 위한 장소가 아니었던 거야.
-담벼락 대형 분쇄기 어쩔거임? 좀비 믹서기냐? 실제로 저런 게 있나?
-실제로 있다. 미국 폐차장에서 차를 3분 안에 갈아 버리는 기계를 본 적 있음.
-그나저나 주인공은 왜 좀비한테 물려도 감염이 안 되는 거지? 이거 비하인드 스토리가 3시즌에 나오겠지?
-아마 모종의 음모가 있는 듯···. 이번 시즌에 잠깐 언급되는 작은아버지랑 연관성이 있는 것 같은데···.
-아니 그런데 생존자들 다들 어디 간 거야? 누가 데려갔나?
-모르지. 3시즌이나 얼른 나오면 좋겠다. 으으···. 못 기다리겠어. 미치겠네. 이준형 이놈아! 소설이라도 좀 내놓든가!
커뮤니티의 반응이 너무 좋았다. 역시 좀비는 학살해야 제맛이랄까?
‘반응 재밌네.’
일단 분위기를 보니 ‘나세멸’은 3시즌까지 무리 없이 진행될 것 같았다.
러브원, 네미시스, 아우라의 음원, 음악 방송 공습과 합동 콘서트까지 쭉 이어 가려면 다음 프로젝트인 ‘귀환소녀’를 성공시키는 게 중요했다.
지이잉···.
계속 휴대전화의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요즘 부쩍 늘어난 방송 출연 섭외였다.
‘휴···. 이거 매번 거절할 수도 없고···. 일단 귀환소녀 홍보도 할 겸 토크쇼나 나가 볼까?’
거기서 러브원과 네미시스 컴백에 대해 발표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