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가 된 작가님 (2)
성우진의 몸에서 밝고 연한 주황색 아우라가 강하게 뻗어 나오고 있었다.
“큭···. 쿨럭쿨럭···.”
오물거리던 밥이 목에 걸려 기침이 나왔다.
‘어우···. 죽겠네. 이게 무슨 일이지? 왜 이런 애들이 막 튀어나오는 거야? 무슨 백팩몬도 아니고!’
“괜찮으세요? 여기 시원한 콜라 드세요.”
성우진이 나에게 얼음이 담긴 콜라를 내밀었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나는 콜라를 마시며 그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왜 그러세요? 더 가져다드릴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런데 우진 씨는 학교를 왜 휴학하고 여기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어요?”
“아···. 집안 사정이 좀 안 좋아져서요. 잠시 휴학을 하고 일자리를 구하려는데 선배님이 여기를 소개해 주셔서요.”
아니 요즘 왜 이렇게 집안 사정이 안 좋아진 사람들이 많지? 권진현, 권태현 형제들도 그렇고···. 요즘 경기가 안 좋나? 이상하네.
“아니···. 어떤 사정이 있길래 그래?”
좀비 결사대의 리더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코인으로 전 재산을 싹 다 날리셔서···.”
“허···.”
“으음···.”
여기저기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남의 일이 아닌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빚도 생겼을 거 같은데···.”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거 부모가 망한 거지. 신입 네가 망한 게 아니잖아. 나중에 상속 안 받으면 된다. 대신 갚을 필요가 없지.”
“에이! 형님. 아무리 그래도 생판 남도 아니고 어떻게 그럽니까! 집이 거덜 나서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을 수도 있잖아요. 아예 돌아가셨으면 몰라도 그런 건 자식 된 도리가 아니죠.”
“······.”
“야 인마. 돈 앞에 부모 형제가 어디 있어?”
갑자기 돈 이야기가 나오면서 식사 자리가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나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이 성우진이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갔다.
‘지금 보니 얼굴도 꽤 잘생긴 것 같은데···.’
“우진 씨는 혹시 배우 지망생입니까?”
“저요? 어떻게 아셨어요? 혹시 오디션 같은 데서 만난 적 있던가요?”
“아뇨. 전 진짜 아르바이트예요.”
“아까 보니까 연기도 곧잘 하시는 거 같던데···.”
이 녀석 악담인가? 힘들어서 헉헉대면서 뛰어다닌 게 다인데···.
“혹시 소속사 있어요?”
갑자기 소속사라도 있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내가 누군지 모를 테니 얼굴에 철판을 깔고 직접 물어봤다.
“하하···. 제가요? 소속사가 있으면 여기서 이러고 있진 않겠죠.”
“음···. 키도 그만하면 됐고···. 외모도 괜찮은 거 같은데···.”
“···제가 예전에는 소속사가 있었어요. 어릴 때 멋모르고 계약을 덜컥 해 버려서···.”
“아···.”
성우진이 밥을 먹으며 천천히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중소 기획사에 들어가 아이돌을 준비했지만, 소속사가 데뷔를 못 시켜 주면서 멤버들이 하나둘씩 나가고 결국 혼자 남았다는 뻔한 이야기였다.
회사에 남아서 연기자로 전향해서 해 보려고 했지만, 기획사가 부도가 나고 연습생 생활도 여의치 않아 공부를 다시 하고 학교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엔 아버지가 코인으로 전 재산을 다 날리신 거다.
“그래서 연극영화과를 다니다가 잠깐 휴학하고 여기까지 온 거죠.”
“으음···.”
성우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살피고 있었다. 사람을 잠깐 보더라도 인성이 보이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게 나쁜 쪽일 수도 좋은 쪽일 수도 있는데 그는 후자였다.
솔직히 말하면 SJ에 탐방하러 갔을 때 봤던 엄청난 아우라의 연습생들하고 비교해서 낫다고 볼 순 없었지만, 사람을 끄는 묘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음···. 오후에는 이 녀석이나 관찰을 좀 해볼까?’
그렇게 나의 성우진에 대한 스토킹이 시작됐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치우는 거나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건 일단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오후 촬영도 옆에 붙어서 같은 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참···. 아우라도 괜찮고,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데?’
일도 열심히 적극적으로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친절했다. 같이 처음이면서 나를 잘 챙겨 주고 배려하는 게 느껴졌다.
* * *
오후가 지나자 촬영장이 다시 한번 긴박해지고 있었다.
담장 밖에 좀비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자 좀비들이 그것을 밟고 넘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대형 고철 분쇄기는 이미 너무 많은 좀비를 집어삼키고 작동 불능이 된 상태였다. 그로 인해 생존자들이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
나는 담장 바깥에서 좀비 시체를 밟고 올라가는 좀비 스쿼드의 일원이었다. 포크레인으로 흙을 쌓아 놓고 그 위에 좀비 마네킹을 깔아 놓은 뒤 소, 돼지의 내장을 트럭째 사다가 뿌려 놓았다.
구역질이 치밀었지만 내 작품이라 그런지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리더 좀비의 신호에 일제히 담벼락으로 진격했다. 하필이면 김형탁이 사수하고 있는 망루 쪽에 배치된 나는 미끌미끌한 내장을 밟으며 담벼락을 박박 기고 있었다.
‘큭···. 당분간 순대는 못 먹겠구만.’
결국, 나는 김형탁에 의해 다시 한번 뚝배기가 깨져서 좀비 산을 데굴데굴 구르는 신세가 되었다.
‘으···. 젠장···.’
더러운 흙바닥과 인공 피, 그리고 실제 동물의 내장 위를 구르고 나서 한 가지를 굳게 결심했다.
‘좀비 결사대에게 사비를 털어서라도 무조건 보너스를 준다!’
나는 얼굴에 묻은 흙을 손으로 훔쳐 내고 가만히 쓰러져 있었다.
“컷! 좋았습니다. 다음 신으로 갑니다.”
이제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또다시 옷을 갈아입고 분장을 고친 뒤 담장을 넘어 화이트 하우스를 덮치는 장면을 찍었다. 초반 담장을 넘은 좀비 스쿼드가 함정에 빠지고 강철 와이어에 수십 구의 좀비가 몸이 두 동강 나는 장면이 연출됐다.
옆에서 대기하며 그 장면을 보니 실제 드라마에 어떻게 나올지 자못 궁금해졌다. 김호진 감독은 어떤 식으로 이 장면을 실감 나게 연출할지···. 작가인 나조차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특수효과팀하고 머리를 쥐어 짜내겠지.
마지막으로 화이트 하우스 앞에서 생존자들과 거친 몸싸움을 하며 뒹구는 장면을 끝으로 오늘 일과가 끝이 났다.
마지막에 김형탁을 잡고 같이 실랑이를 펼쳤는데 서로 웃음이 나서 NG가 났다. 우리는 서로 혀를 깨물고 세 번 만에 촬영을 완료했다. 내 머리는 이수현 씨의 몫이었다. 수현 씨의 거친 욕설과 함께 다시 한번 뚝배기가 박살이 났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다시 마지막 화이트 하우스 급습을 찍도록 하겠습니다.”
김호진 감독의 말에 출연진들이 하나둘씩 해산하기 시작했다.
“힘드시죠?”
김호진 감독이 나에게 다가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재미있네요. 엑스트라도 해 볼 만한데요?”
사실 나는 진이 다 빠진 상태였지만 억지로 허풍을 떨고 있었다.
“그럼 내일도···.”
“아···. 감독님, 제가 내일은 중요한 일정이 있습니다. 정말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불가능할 것 같네요.”
명백한 손절이었다.
“농담입니다. 내일은 보조 출연자들을 구했습니다. 원래 오늘 오기로 했었던 사람들 말입니다.”
“아···. 네. 다행이네요.”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향해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이심전심 아니겠는가? 김호진 감독도 피곤할 텐데 정말 대단한 것 같았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어. 현장은 더욱더 힘이 든다.’
그렇게 감독과 인사를 나누고 분장팀이 있는 천막에 들어가 분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제야 살 것 같았다.
나는 먼저 옷을 갈아입고 나가려는 성우진을 급하게 불러 세웠다.
“우진 씨. 잠깐 나 좀 봅시다.”
“네?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세요? 어?”
내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던 그가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자신과 함께했던 콤비가 TV에 가끔 나오는 사람이었을 줄이야! 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역시나 내 예상대로 외모도 상당한 미남이었다. 남자답게 생긴 미남으로 권태현과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제 얼굴을 알고 있군요?”
“네. 이준형 작가님 아니십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와! 같이 좀비 역할을 했던 분이 작가님이셨어요?”
“그러게요. 저도 당황스럽네요. 제 작품에 엑스트라로 나오다니···. 그래도 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우진 씨도 만나고요.”
“하하···. 유명하신 분을 이런 곳에서 만나니 되게 신기하네요.”
머리를 긁적이는 그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언제 한번 회사로 찾아오세요.”
“와! 저 혹시 캐스팅된 건가요? 같이 좀비 역할을 했다고 이렇게 신경 안 써 주셔도 되는데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전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으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하루 동안 우진 씨를 겪어 보고 내린 결론이에요.”
“가, 감사합니다. 이 촬영이 끝나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성우진은 나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며 감사하다는 표현을 전했다.
‘음···. 역시 이런 멤버가 하나쯤은 있어야 팀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는 거지. 성실함과 인성만큼은 확실해. 아우라도 밸런스 있게 딱 잡혀 있고 말이지.’
그렇게 힘들었지만 재미있고 보람찬 하루가 지나갔다. 나는 촬영장에서 다른 배우들에게 인사를 하고 곧바로 서울로 복귀했다.
* * *
이제 ‘나세멸’ 2시즌 촬영도 막바지에 다다랐고, 제작 2팀도 완성되어 엄태민 감독을 중심으로 제작 일정이 착착 잡혀 가고 있었다.
아우라는 드라마를 촬영하기 전에 데뷔곡을 숙지하고 안무를 완성하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다. 케이 프로듀서의 편곡으로 완성된 리더 지령이의 곡은 여느 일류 작곡가 못지않은 곡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리고 천만 영화에서 짭짤한 재미를 봤던 다른 기획사들도 협조가 잘 되어 모든 멤버들이 ‘귀환소녀’에 출연하기로 했다.
나중에 영화도 나오고 시즌제 드라마로 쭉 이어가기로 해서 그런지 다들 출연을 하겠다며 연락을 해 왔다. 더구나 촬영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아서 더 적극적이었다.
“···그렇게 ‘귀환소녀’의 스케줄이 다 나왔습니다. ‘나세멸’ 방영 시기가 되면 귀환소녀도 한창 촬영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이면 하나 끝나면 다른 드라마가 시작하는 사이클이 될 것 같은데요?”
“네. 대표님. 거기다 새로운 드라마도 준비하고 있지 않습니까?”
조아린 팀장이 나를 보며 반문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김시후, 최하나 작가님의 작품도 제작해야겠죠.”
“대표님. 혹시 그 작품은 어디서 하실 건지 생각이 있으신가요? 어떻게 알았는지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아마 최하나 작가님이 이야기하셨을 거예요. 워낙 발이 넓다 보니···.”
“연락 온 곳 중에 지상파 방송국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꼭 한번 같이하자면서 대표님과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아···. 그래요? 아직 제작팀도 못 구했는데···.”
“그래서 살짝 걱정입니다. 외주팀을 고용해서 하더라도 연출은 저희가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조아린 팀장도 아직 그 이상으로는 생각해 놓은 게 없는 것 같았다.
“제가 한번 방법을 강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조 팀장에게 어떻게든 수를 내 보겠다는 말을 했다. 아무래도 인원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조 팀장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원 문제는 전적으로 내가 결정해야 했다.
조 팀장이 나가고 받은편지함의 메일을 읽고 있었다.
“응?”
플랫폼 나이스에서 온 정산 메일이었다. 이번 달 수익으로 자그마치 5억 원이 정산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이스와 웹툰 직계약을 할 때 만났던 나윤선 팀장이었다.
[여보세요? 아! 작가님. 어쩐 일이세요?]
“안녕하세요. 나 팀장님. 그동안 건강하셨어요?”
[저야 항상 똑같죠. 혹시 정산금 때문에 연락해 주셨어요?]
“네. 맞습니다. 정산금이 꽤 많길래요.”
[아···. 안 그래도 제가 전화를 드리려고 했었는데요. 그거 중국에서 들어온 수익이 이번에 정산돼서 그렇습니다.]
“아···. 중국이요? 저번에 말씀하셨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