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14화 (214/263)

좀비가 된 작가님 (1)

나는 다음 날도 드라마 현장으로 출근했다. 전날 사고로 촬영이 잠시 중단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큰 사고가 아니어서 그런지 다시 곧바로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걱정되십니까?”

얼굴에 분장한 정주빈이 내 옆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사고가 났다길래 깜짝 놀랐습니다. 뭐 어쩔 수 있나요. 액땜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맞아요. 그게 속 편합니다. 차라리 초반에 이런 일을 겪는 게 나을 수도 있죠.”

역시나 베테랑다운 말이었다.

“그렇네요. 아 참···. 오늘은 어제 못했던 가장 격렬한 장면을 촬영해야 하잖아요. 주빈 씨도 안 다치게 조심하세요.”

“그렇긴 한데 제일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죠.”

정주빈은 얼굴에 더러운 분장을 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멋져 보였다.

‘이 양반···. 수현 씨랑은 잘 돼 가고 있는 건가?’

생각해 보니 제작 발표회 현장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고 기사까지 대서특필됐는데 아직까지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고 있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그냥 계속 평행선을 달릴 그런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일찍 나오셨네요.”

“안녕하세요. 희진 씨.”

밴에서 내린 주연 여배우 이희진이었다. 그녀는 1시즌의 대성공으로 연기 논란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다. 얄미울 정도로 짜증 나는 연기를 찰떡같이 소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2시즌에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다. 제작 발표회에서 내가 한 말 때문에 전작 감독이 SNS로 다시 기어 나와 그녀를 저격했는데, 그녀는 별다른 대응 없이 훌륭한 연기로 응수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그 결과 전작 감독은 희대의 망작을 만들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앞으론 영화를 만들지 못할 것 같았다.

‘SNS라도 하지 말든가. 그럼 괘씸죄는 안 걸렸을 텐데···.’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퍼거슨 옹의 말이 생각났다.

“그나저나 오늘 촬영 두근두근하네요.”

이희진이 자기도 커피를 집어 들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두근두근하다니요?”

“대표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좀비들에게 쫓기는 연기가 좀 무섭긴 해요.”

“아아···. 난 또 뭐라고···.”

오늘 좀비 웨이브를 방어하면서 최후의 저지선인 화이트 하우스까지 밀리는 신을 찍기로 되어 있었다.

“정말 장난이 아니고 되게 무서워요.”

“그게 제가 특별히 조직한 좀비 결사대 때문 아닙니까? 일부러 체격 크고 건장하신 분들만 장기 계약으로 뽑았어요.”

“그래서 그런가?”

“그나저나 좀비 결사대 두 분이 다치셔서 어떡하죠? 그분들이 핵심인데요.”

“안 그래도 그분들께서 후배들을 대타로 불렀다고 합니다.”

“다행이네요. 오늘이 하이라이트라 보조 출연자들이 많이 필요할 거 같은데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장에서는 스태프들이 촬영 준비를 하며 분주하게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촬영 감독과 김호진 감독이 카메라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이희진과 정주빈을 뒤로하고 그들에게 걸어갔다.

“감독님. 준비는 다 되셨어요?”

“아···. 네. 곧 촬영 시작해야죠. 어제 못 했으니 오늘 강행군이 예상됩니다.”

“그래도 최대한 조심히 진행하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안 그래도 준비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그나저나 보조 출연자들이 왜 이렇게 안 오지? 지금 분장해도 시간이 빠듯한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별문제는 아닙니다. 그냥 보조 출연자들 숫자가 좀 빠듯하네요.”

“아···. 팍팍 쓰셔도 되는데···.”

“최대한 여기저기서 긁어모으긴 했는데···. 다 제 욕심이죠. 뭐···.”

김호진 감독의 작품에 대한 일종의 장인 정신 같은 집착은 알아줘야 했다. 돈을 이렇게 많이 퍼부었는데도 뭔가 부족하다는 걸 보면···.

“하하···. 저라도 엑스트라로 출연해야 되겠네요.”

나는 그에게 농담처럼 툭 하고 가볍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김호진 감독이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번 쓱 훑어보는 게 아닌가?

“으음···.”

그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고 입을 꽉 다무는 게 느껴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려 조감독을 찾았다.

“조감독! 불렀다는 후배들 몇 명이나 왔지?”

“한 명밖에 안 왔습니다. 좀비 결사대는 한 명이 빠질 것 같습니다.”

“그래, 알았어.”

응? 이거 뭔가 불안하게 돌아가는데?

“들으셨죠? 최전방에서 배우들을 괴롭힐 좀비 결사대에 공석이 생겼습니다. 대표님이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도 아니고 그냥 확정인가요?”

“뭐···. 작품을 위해서라면···. 대표님은 뒤에 서서 덩치 큰 좀비로 출연하시면 됩니다. 리더의 말만 잘 들으면 됩니다. 어차피 좀비 분장이라 얼굴도 안 팔립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

꼼짝없이 좀비 결사대의 일원이 된 나는 분장팀에 끌려가 걸레짝 같은 옷으로 갈아입은 후 렌즈를 끼고 피부에 특수 분장을 받았다.

“와하하···. 작가님! 무슨 대장 좀비세요?”

대장간 기술자로 나오는 김형탁이 자기도 거의 거지꼴이면서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형탁 씨···. 웃지 마세요. 촬영 들어가면 형탁 씨부터 조질 겁니다.”

“억···. 절대 저한테 오지 마세요. 이 무기에 맞고 싶지 않으시다면요.”

김형탁이 흉악하게 생긴 도끼날이 달린 메이스를 들어 올렸다.

“음···. 생각해 보니 말이 씨가 됐네요. 지난 제작 발표회 때 일이 많아서 좀비가 된 거 같다고 했더니만···.”

“아마 작가님 뚝배기를 제가 깬다고 했을걸요?”

“아, 그랬나요? 저는 그리되면 대장장이 캐릭터를 죽음으로 승화시키겠다고 했던 거 같은데요?”

“에헤이···. 그건 아니죠. 바쁘신데 대본 수정이라니요? 저는 작가님이 그런 수고를 하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습니다.”

“하하하···.”

나와 김형탁의 농담에 주변에 있던 배우들이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재미있게 바라보고 있다가 입고 있는 옷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완전 상거지가 따로 없네.’

나는 분장을 통해 완벽하게 좀비로 변신했다. 드라마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차피 분장을 한 터라 얼굴이 팔릴 리도 없고 기분 전환으로 괜찮은 거 같았다.

“작가님. 너무 잘 어울리시는데요? 저 예전에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신 거 봤어요. 연기도 꽤 잘하시던데···. 대학 때 연극 동아리 하셨다고···.”

정주빈 옆에 서 있는 이수현까지 나를 보고 농담을 하고 있었다. 테리우스와 예능에 나가서 전설의 흑역사를 썼던 장면을 본 모양이었다.

대부분 내가 삑사리 냈던 노래와 엉망이었던 춤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수현 씨는 연준이와 함께 연기했던 내 모습도 기억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연극 동아리 출신답게 실감 나는 좀비 역할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 하이라이트 신 촬영이 시작됐다. 현장은 김호진 감독의 일사불란한 지시로 엄격하게 촬영이 진행됐다.

보조 출연자들도 긴장하며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좀비 결사대 리더에게 주의 사항을 들으며 촬영 내내 시키는 대로 이리저리 움직였다.

‘헉헉···. 너무 빡센데···.’

역시나 체력이 문제였다. 매일 운동을 한다고 해 놓고 책상에만 앉아 있으니 상태가 개선될 리 만무했다. 그리고 뙤약볕에서 좀비 분장을 하고 움직이려니 죽을 노릇이었다.

갑자기 좀비 결사대가 너무 든든하고 존경스러워 보였다. 50인의 좀비 결사대는 뒤에 있는 엑스트라들에 비해 꼼꼼한 분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훨씬 더 힘들 수밖에 없었다.

‘헉헉···. 진짜 고생이 많네.’

제작 발표회에서 수현 씨가 좀비로 출연하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는데 왜 그랬는지 지금에서야 이해가 갔다. 이분들에 대해서는 처우를 개선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보너스를 좀 주거나···.

촬영은 그럭저럭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현재는 좀비들이 슈퍼 셸터와 생존자들에게 갈려 나가고 있었다. 특수하게 고안된 셸터의 비장의 무기들이 성능을 발휘하고 있었고, 생존자들은 꾸역꾸역 몰려드는 좀비들을 막아 내고 있었다.

이 좀비 웨이브는 계룡산에 있는 사이비 종교 시설에서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하자 그것을 피해 시설에서 뛰쳐나온 생존자들이 산속을 헤매며 주변 도시의 좀비들을 하나둘씩 끌어모아 발생한다는 설정이었다.

급기야 시설에 불이 나면서 도시에 있던 좀비들이 천천히 시설로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그 위치가 공교롭게 슈퍼 셸터 근처였다.

결국 슈퍼 셸터의 위치를 들키게 되고, 시설에 살던 사람들이 살려 달라고 외치며 담장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벙커로 좀비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기지에서 질서를 지키며 편안한 생활을 하던 정중대의 동료들은 그때부터 좀비 웨이브를 막아 내기 위해 마치 군대처럼 조직을 짜서 대항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담장 근처에서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 대장님! 좀비들이 끝도 없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담장 위 망루에서 연하 남편 이현우 대위로 출연 중인 정혜성이 긴급하게 소리쳤다.

“모두 침착하세요. 시끄럽게 해서 최대한 망루 밑으로 좀비들을 몰아넣어야 합니다.”

정주빈은 차분하게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그러자 망루에 있던 생존자들이 종을 치며 좀비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좀비들이 아래에 가득합니다!”

정혜성의 긴급한 외침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분쇄기 가동 준비!”

“가동!”

끼이이익···. 우우우웅···.

정주빈의 외침에 따라 땅 밑의 분쇄기가 움직이고 있었다.

콰드드드···.

위에 서 있던 좀비들이 기분 나쁜 소음을 내면서 갈리기 시작했다. 육편이 된 좀비들의 시신은 지하 오수로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좀비들이 빠르게 빨려 들어갑니다.”

생존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긴장을 늦추지 마세요! 장창 부대는 담장에 달라붙은 좀비들을 계속 창으로 찔러야 합니다!”

“네!”

생존자들은 정주빈의 지시에 따라 담장 구멍, 즉 총안을 통해 장창을 계속해서 쑤시고 있었다.

“아흑···. 이 지겨운 좀비 새끼들! 뒤져! 뒤져!”

총안을 통해 으르렁거리고 있는 좀비의 얼굴에 창을 찌르고 있는 이수현의 외침이 들려왔다.

담장 위, 담장 안, 그리고 담장의 양쪽 끝과 강철 대문 앞에서 생존자들의 연기가 촬영됐다.

“정문 앞에 좀비들이 가득합니다. 문이 흔들립니다.”

“잠시만 기다려요!”

정주빈은 정문 앞 생존자의 외침에 정문 쪽으로 달려가 육중한 레버를 위로 쳐올렸다.

드르륵···. 두꺼운 쇠사슬이 풀리며 정문 위에 있던 거대한 스파이크가 좀비들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콰악···.

십여 구의 좀비들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스파이크는 경유 발전기를 최대한 아끼기 위해 수동으로 제작한 무기였다.

“다시 쇠사슬을 감으세요. 여기 레버를 돌리면 됩니다.”

“으으윽···. 안 올라갑니다. 벌써 좀비들이 위에 올라간 거 같습니다.”

“어쩔 수 없군. 잠시만···.”

정주빈은 강철 문에 자기 얼굴 높이로 설치돼 있는 원반형 고속 절단기를 가동시켰다.

위이잉···.

기계가 가동되자 손잡이를 잡고 우에서 좌로 절단기를 밀기 시작했다.

드드드드···.

“캬아악···.”

좀비들이 괴성을 지르며 뒤로 우수수 넘어졌다.

나는 거기서 얼굴이 갈려 나가는 좀비를 연기했다. 물론 시늉만 하고 특수효과팀과 CG팀이 사후 처리를 해서 완성하는 신이었다.

그리고 나는 죽었지만, 다시 좀비 스쿼드로 재활용하기 위해 다른 옷을 입어야 했다.

분장팀이 있는 곳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밥 먹고 합시다!”

스태프 중 한 명이 밥차가 왔다고 소리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응?”

“어이! 신입! 얼른 뛰어, 밥차 왔대! 늦게 가면 쉬는 시간 줄어든다!”

얼굴에 분장하고 있으니 누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

나도 모르게 일행들과 섞여 밥차로 뛰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과 줄을 서서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았다.

‘허허···. 이건 뭐 군대 시절 유격 훈련 나온 거 같네.’

좀비 무리에 섞여 있으니 흡사 개방의 거지가 된 느낌이었다.

꼬르륵···.

이놈의 배꼽시계는 왜 이리 정직한지···.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반나절 동안 고생해서 그런지 매우 시장했다.

식판을 놓고 테이블에 앉아서 밥을 먹는데 앞의 좀비 결사대 리더가 나를 보고 씩 웃고 있었다.

“신입! 연기 잘하더라? 덩치도 좋고···. 너 사회에서 무슨 운동 했니?”

“아, 아뇨. 별 운동은 안 하고 헬스만 가끔 합니다.”

좀비 리더의 카리스마에 눌려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옆에 신입! 너도 처음 하는 것 치고는 잘하더라.”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젊어 보이는 키 큰 좀비 하나가 내 옆에서 어묵 국물을 마시고 있었다.

아까부터 나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는 녀석이었는데 아무래도 오늘 합류한 신입인 모양이었다.

“아···. 선배님들 안녕하십니까? 오늘 학교 선배님의 전화를 받고 합류한 성우진이라고 합니다. 대학교 1학년이고 휴학생입니다.”

“녀석 참 싹싹하네. 너 맘에 든다. 좀비 스쿼드에 들어온 거 환영한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성우진이라는 녀석은 넉살도 좋게 어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분장 때문에 잘은 모르겠지만 말하는 건 호감상이네.’

나는 그를 쳐다보다가 밥 한 숟갈을 떴다. 점심시간이 왁자지껄하니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지나가던 스태프 한 명이 나를 알아보고 깜짝 놀라자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 모른 척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이런 것도 추억 아니겠는가?

이들 좀비 결사대는 내가 심혈을 기울여 뽑은 이들로, 모두 내 스카우터를 거쳐 간 인물들이었다. 그러다 무슨 생각인지 갑자기 성우진이라는 젊은이에게 호기심이 생겨 아우라 스카우터를 가동시켰다.

‘어디 한번 포텐을 살펴볼까?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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