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에서 생긴 일 (2)
스피커에서는 마치 소프라노 같은 높은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
녹음실에 있던 모두가 권태현의 노랫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원곡을 부른 퀸의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와는 음색이 약간 달랐다. 하지만 깔끔하게 고음을 찍고 내려오는 이 미친 음색은 뭐란 말인가?
‘크···. 실화냐?’
소리 자체가 얇은 테너로 보였는데 본능적으로 가성과 두성을 이용하는 스타일이었다.
‘음색은 달라도 스타일은 프레디 머큐리와 비슷해.’
뭔지 정확하게 말할 순 없지만, 개성이 있다고 해야 하나? 얇게 부를 때는 깨끗하고 청아하지만, 중반부나 후반부로 가면서 목소리에 힘이 느껴졌다. 살짝 허스키한 소리가 나는 것도 반전 매력이었다.
‘진짜 매력적인 보컬이네. 체격이 커서 그런가? 목소리에 힘도 있고···.’
물론 기술적으로 완성된 보컬은 아니었지만, 보면 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감탄이 나오는 인재였다.
허공에서 케이와 내 눈이 마주쳤다. 그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짙은 갈색이라서 확실하진 않았는데 보컬적인 능력도 확실하네. 솔직히 이건 나도 몰랐다고.’
강력한 진성에 이어 하이라이트로 이어지는 감미로운 가성이 터지자 팔뚝에 소름이 돋아났다.
“와···.”
옆에 있던 조아린 팀장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조 팀장은 유정 씨 못지않은 아이돌 마니아였기 때문에 보는 눈이 상당히 까다로웠는데, 그 기준을 맞췄다는 것은 가능성이 아주 뛰어난 인재라는 뜻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권태현이 헤드폰을 벗고 부스를 빠져나왔다. 그가 밖으로 나왔지만, 녹음실엔 계속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짝짝짝···.
나는 그를 쳐다보며 박수를 쳐줬다.
“태현 씨. 노래 배운 적 없다더니 너무 잘하시는데요?”
“그렇습니까?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고 예전 어렸을 때 합창단 활동을 아주 잠깐 한 적 있습니다.”
그는 이제야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좋네요. 녹음하는 거 신기하죠?”
“네. 꼭 가수가 된 거 같네요.”
“제가 보기엔 재능이 충분한 것 같은데요. 혹시 이쪽으로 의향이 있으신가요?”
“음···.”
내 갑작스러운 제안에 멈칫하는 권태현이었다. 나는 형인 권진현을 돌아봤는데 그도 동생의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진현 씨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셨어요?”
“네. 부끄럽게도 전혀 몰랐습니다. 가족끼리 노래방을 간다거나 하는 집안 분위기가 아니어서···.”
“아···. 괜찮습니다. 모를 수도 있죠. 저희 집에서도 제가 이렇게 될 줄 아무도 몰랐습니다. 하하···.”
내 썰렁한 농담에 사람들이 피식 웃고 있었다.
“태현이는 어렸을 때부터 거의 외국 유학 생활을 했기 때문에 방학 때 가끔 한국에 들어오는 것 말고는 저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렇군요. 혹시 태현 씨는 미국에서 주로 어떤 생활을 했나요?”
“학교 다니면서 공부하고 친구들하고 농구하고···. 코딩하고···. 거의 그런 생활이었죠. 특히 대학교 들어가서는 다들 그쪽 방면에 천재들이 많아서 거의 공부만 했습니다. 그러다 집안 사정 때문에···.”
‘음···. 취미가 농구였구나. 그래서 괴짜치고는 몸이 탄탄했었군.’
“어때요? 연예인 해 볼 생각 없으세요? 아무리 경험 삼아서 오디션을 봤다고 해도 관심이 있었으니까 지원한 거 아닙니까?”
“······.”
그는 고민이 되는지 눈동자만 살살 굴리고 있었고 형을 쳐다보며 최종적인 의중을 묻고 있었다.
“우리 태현이가 거의 공부만 하고 지내서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그게···.”
“잠시만요. 제가 한마디 해도 될까요?”
내가 말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유정 씨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녀는 눈빛으로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보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추측하건대 동생분은 아이돌로 대성할 자질을 타고났습니다.”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옆에 있던 조 팀장도 덩달아 소리치더니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희가 조만간 남자 아이돌을 육성하려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겁니다. 물론 태현 씨도 참가를 해야 할 거고 그때까지는 충분히 관련 교육을 받아야겠죠.”
나유정 이사와 조아린 팀장이 적극적인 영입 의사를 내비치자 형인 권진현이 살짝 동요하고 있었다.
“교육이요? 아이돌로 데뷔하려면 2~3년은 기본이라던데요?”
“그, 그건···.”
‘흠···. 드디어 내가 다시 나서야겠군.’
“제가 생각하기엔 태현 씨는 그렇게 오래 준비 기간이 필요 없어 보입니다.”
“······?”
내 뜬금없는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노래는 따로 가르치지 않을 겁니다. 물론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가르치겠지만···. 저는 그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태현 씨는 일반적인 아이돌 형태의 보컬이 아니에요. 날것 그대로의 야성적 보컬입니다. 그런 모습이 바로 그룹에 특성을 부여하거든요.”
“아···.”
솔직히 이런 천재를 규격 안에 가두는 것 자체가 모순되는 일이다. 차라리 스스로 발전하도록 놔두는 게 중요했다. 아우라의 리더 지령이랑 비슷한 과라고 보고 접근하는 게 옳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아깝다고 할 필요도 없어요.”
“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아···. 잠시만요. 제가 뭐 하나를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양해를 구하고 녹음실을 빠져나와 사무실에 들러서 VR 기기를 가져왔다.
“죄송합니다. 뭣 좀 들고 오느라···.”
권씨 형제는 내 손에 들린 물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이게 뭔지 아십니까?”
“VR 기기네요.”
“오! 역시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자답군요. 맞습니다.”
내가 가져온 것은 카이스트에 방문했을 때 가져온 VR 기기였다. 나는 VR 기기를 권태현에게 건네주고 영상을 보여 주었다.
“으앗! 꽃잎 날리는 게 엄청 리얼하네요. 어? 누가 저한테 다가오는데요? 여신인가?”
“······.”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VR에 나오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권태현이었다.
“어라? 허공에 하트는 뭐지?”
그는 손을 뻗어 허공을 터치했다.
“와! 대표님, 이거 신세계인데요? 직접 촬영해서 CG를 입히신 건가요? 으악!”
권태현은 VR 기기를 쓴 상태로 웃으며 질문을 하더니 갑자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마, 말을 한다! 이거 AI인가요?”
황급히 고글을 벗은 그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하···. 지금 보시는 건 초창기 버전이고 현재 AI 성능이 살짝 더 올라갔습니다. 영상도 전문가가 다시 촬영할 예정이고요···.”
“와···. 미쳤다. 가슴 뛰는 거 봐.”
그는 정말 깜짝 놀랐는지 손으로 심장 박동을 체크하고 있었다.
“카이스트 연구원들이 창업한 회사에서 개발 중인 제품입니다. 제가 투자한 회사죠. 코딩을 하는 것 같던데 혹시 이런 것에 관심이 있으면 같이 연구를 하셔도 되고···. 일거양득 아닙니까?”
나는 그의 표정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진짜 연구원으로 키울 거냐고? 당연히 아니다. 이런 최상급 연예인이 될 수 있는 존재를 연구원으로 키운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이돌이 얼마나 바쁜데···.
우리 회사에 들어오면 배운 것도 써먹을 확률이 있다는, 거의 사기에 가까운 낚시였다.
‘아냐. 개발 능력이 있으면 괜찮을지도? 뭐···. 사람 일은 모르는 거 아니겠어? 진한 갈색 아우라가 흔한 것도 아니고···.’
“저, 정말 그게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태현 씨는 미국에서 속고만 살았습니까? 하하···.”
“저 그럼 한번 해 보겠습니다.”
‘예쓰!’
그렇게 첫 번째 남자 연습생이 탄생했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당연히 황당하겠지. VR에 관한 내용은 이지령밖에 모르니까···.’
아무래도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따로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나 이사님은 태현 씨가 내일부터 연기와 댄스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도록 신인 개발팀과 협의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로써 J&J 엔터테인먼트가 데뷔시킬 남자 아이돌의 코어를 확보할 수 있었다.
‘지령이 같은 역할을 해 주면 좋겠는데···.’
* * *
다음 날.
사무실에 일찍부터 출근해서 유정 씨에게 어제 일을 설명해 줬다. 그녀는 내가 무슨 마법을 부린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VR이라구요? 그런 것도 개발하고 있어요? 갑자기 일이 빠르게 진행돼서 조금 당황하긴 했어요.”
“그걸 보여 주면 흥미를 느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실제로 개발을 시킬 건 아닙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습니까?”
“그게 사람의 능력을 보는 안목인가요? 신기하네요. 자세히 묻진 않을게요. 아마도 설명으로 되는 건 아닌거 같은데..”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지이잉.
갑자기 테이블에 있던 휴대전화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어우···. 깜짝이야.”
나는 화들짝 놀라 전화를 받았다. 발신자는 지금 2시즌을 열심히 찍고 있는 김호진 감독이었다.
“여보세요? 감독님?”
[대표님. 현장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네? 사고요? 무슨 사고요?”
[두 명이 다쳤습니다. 큰 사고는 아니고···.]
“상태가 어떤데요? 아니다.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정 씨. 회사에 좀 계세요. 전 잠깐 현장에 다녀오겠습니다.”
유정 씨에게 회사 일을 맡겨 놓고 그대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김 감독이 알려 준 대전의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입원한 병실로 들어가 보니 두 명이 침대에 누워 있었고 그 옆에 김 감독과 조연출이 보였다.
“대, 대표님.”
“어떻게 된 겁니까? 배우들은 괜찮은가요?”
나는 다급히 배우들의 상태를 물었다.
“다행히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한 분은 발목 골절이고 다른 분은 그냥 뇌진탕입니다.”
부상자는 내가 심혈을 기울여 뽑은 좀비 군단의 배우 두 명이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제가 실수로···.”
“아닙니다. 이 정도로 그친 게 다행입니다. 큰일 날 뻔하셨습니다. 배우분들은 걱정하지 마시고 회복에 전념해 주세요. 치료비와 일체의 경비는 저희 회사에서 다 책임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침대에 누워 있던 배우 한 명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나에게 인사했다.
나는 배우들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을 하고 김호진 감독과 함께 병원 밖으로 빠져나왔다. 9월 중순이었지만 날씨는 아직 여름이었다.
“어떻게 된 건가요? 제가 2시즌 촬영은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잖습니까!”
“죄송합니다. 배우들이 너무 몰입하는 바람에 대형이 무너졌습니다. 한 명은 넘어져서 발목을 밟히고 끝에 있던 분은 담장에 머리를···.”
“하아···. 그나마 다행입니다. 다치신 분들은 끝까지 관리를 잘 해 주세요. 필요하면 간병인도 쓰시고···.”
“네. 알겠습니다.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에 와서 화를 내서 뭐 하겠는가. 재빨리 수습할 수 있도록 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현장에 한번 가 보시죠.”
나는 김호진 감독과 촬영장에 도착해서 사고 현장을 돌아보았다. 사고 현장은 대형 고철 분쇄기가 설치돼 있는 곳 옆이었다. 약한 모터로 돌고 있지만, 까딱 잘못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하는 곳이었다.
“위험한 장치들이 설치돼 있으니 무조건 안전에 힘써 주세요.”
“네. 안전 관리 요원을 더 선발해서 운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감독님도 고생하시네요.”
다시 한번 안전에 대해 당부를 하고 촬영장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액땜일지도 몰라. 차라리 지금 먼저 터지는 게 낫다. 나중에 대형 사고가 나면 큰일이지.’
좀비를 학살(?), 아니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슈퍼 셸터였다. 이미 설명한 대형 분쇄기뿐만 아니라 입구인 강철 문에 사람 목 높이로 설치된 원반형 고속 절단기와 내성에 설치되어 있는 강철 와이어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 엄지손가락 굵기의 강철 와이어는 시위가 당겨진 것처럼 와이어 롤러에 감겨 있었다. 만약 스위치를 내리면 거의 50m 정도로 팽팽하게 당겨진 강철 와이어가 좀비들을 휩쓸어 버릴 것이다. 몸통이 그냥 두 동강 나 버리는 무시무시한 파워였다.
물론 이 무기는 한번 사용하면 회수하는 데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절체절명의 순간에 사용해야 하는 장치였다.
내성에는 곳곳에 트랩이 설치되어 있어서, 엄청난 좀비 떼가 몰려와 안에 가득 차지 않는 이상 내성 최후의 건물인 ‘화이트 하우스’까지 다가올 수 없게 설계돼 있었다.
‘그리고 저 화이트 하우스의 지하에는 러시아와 미국에서 수입한 강력한 화력 병기가 숨겨져 있어.’
촬영 중인 현장을 살펴보니 내가 써 놓은 대본이 떠올랐다. 사고는 벌써 잊히고 그 처절하고 긴박한 전투 현장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드라마 등장인물들이 절규하며 좀비를 막는 생사의 현장!
나는 슈퍼 셸터를 다시 한번 쓱 훑어보았다.
‘그래. 이곳이 바로 좀비들의 무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