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에서 생긴 일 (1)
내가 참가자를 보고 히죽거리고 있자 나유정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툭툭 건드렸다.
“잠시만 귀 좀···.”
그녀는 몸을 기울이며 내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뭐예요? 지금 뭐가 느껴져요? 제가 보기엔 허우대만 멀쩡하고 아무것도 준비가 안 된 것 같은데요?]
당연히 그녀의 말이 맞았다. 아직은 전혀 준비가 안 된 참가자였다.
[잘생겼고 키도 크잖아요? 그러면 됐지 뭘 바라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지금은 연기자를 뽑는 거잖아요.]
[유정 씨. 이제 그런 고정관념은 이제 버리세요. 저희가 급한 게 어디 연기자뿐입니까? 나 이사님께서 만드실 남자 아이돌도 없잖아요.]
[!!!!]
나유정은 배우 오디션이라고 해서 J&J 엔터테인먼트에서 채용할 신인 배우들을 선발하는 자리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실책을 곧바로 깨닫고 앞에 서 있는 스무 살 청년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모습이 포착됐다. 유정 씨도 심상치 않은 인재라는 걸 알아차린 것 같았다.
“41번 참가자 권태현 씨. 학교가···. 어디 보자. 어? 카네기 멜런 대학? 외국 학교네요?”
“네.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 가서 거기서 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현재는 귀국해서 형하고 같이 살고 있습니다.”
“잠깐만요. 아까 형을 따라 지원했다고 하셨죠? 형의 성함이···.”
“권진현입니다.”
“헉···.”
‘미쳤네. 미쳤어.’
채용하려고 하는 신인배우 5명 중 여자 2명과 남자 1명은 장래가 촉망되는 배우라고 했었는데 그 남자 1명의 이름이 바로 권진현이였다.
나와 나유정은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정 씨는 급기야 쿨럭거리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권진현이라···.”
권진현은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스물네 살의 연기 지망생이자 모교 후배였다. 아마도 학교에서 했던 강의에 왔다가 지원한 모양으로 집에서 놀고 있는 동생까지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음···. 부모님은 아들만 봐도 흐뭇하시겠어. 어쩜 형제가 저렇게 생겼냐.’
형이 약간 꽃미남 스타일로 생겼다면 동생은 키가 더 크고 약간의 남자다움이 더해진 스타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동생의 외모에 더 끌렸다.
‘형은 붉은색 아우라도 없고 나이가 있으니 그냥 연기만 시켜야 할 것 같고 이 친구는 아이돌을 시켜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 청년은 따로 자리를 가져야 할 것 같았다.
“음···. 아직 준비가 안 돼서 안타깝네요. 일단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연기를 봤지만 강렬한 아우라 때문에 집중이 불가능했다.
“이로써 오디션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합격자는 내일 바로 문자로 통보해 드릴 예정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심사평을 하고 오디션이 종료됐다. 나는 조아린 팀장에게 권진현, 권태현 형제를 따로 조용히 불러오게 했다.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연락을 해서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나유정이 내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궁금해 죽겠는데 왜 이야기를 안 해 주냐는 표정이었다.
“왜 그렇게 봐요? 내가 왜 그랬는지 궁금해요?”
“당연하죠. 갑자기 배우 오디션에서 아이돌을 뽑을 생각을 하니 당황스럽잖아요.”
“사람이 너무 경직돼 있으면 안 됩니다. 상황에 맞게 판단을 내려야죠. 솔직히 권태현 씨는 외모만 보면 아이돌 1티어급 아닙니까?”
“그, 그렇긴 하죠.”
“그런 인재를 연기를 못한다고 떨어트리려고 하다니···. 쯧쯧···. 딱 봐도 관리해 주면 미모가 터지는 스타일 같던데···.”
“음···.”
아무래도 실수겠지. 오후부터 연기를 쭉 지켜봤으니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참가자에게 짜증이 나는 건 당연한 상황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처럼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한 노릇이다.
“역대급 형제가 될 거 같은데요? 형은 배우로 동생은 아이돌로···. 물론 본인이 하겠다고 결정해야겠지만···.”
“혹시 아이돌로 대성할 자질이 보이는 건가요?”
“글쎄요. 정확하지 않지만, 가능성이 충분한 것 같아요.”
이지령을 통해서 알 수 있듯 이 갈색의 아우라는 슈퍼 재능을 뜻한다. 이런 사실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냥 얼렁뚱땅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똑똑···.
회의실로 두 명의 훤칠한 청년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권진현, 권태현 씨.”
그들은 살짝 당황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따로 부른 이유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조아린 팀장이 의자를 권유하자 엉거주춤 의자에 앉아 가져다주는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따로 불러서 당황하셨죠?”
“네. 조금 놀랐습니다. 혹시 합격인가요?”
형인 권진현이 조금은 조심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질문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진현 씨는 합격입니다.”
“아···.”
내 말에 형인 권진현은 아쉽다는 표정이었고 권태현은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오디션이 끝나서 그런지 동생 권태현은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태현 씨는 아쉽지 않으세요? 형만 합격했다고 한 건데요.”
“솔직히 기대도 안 했습니다. 사실 형을 따라와서 얼떨결에 지원서를 내 본 거라서요.”
“그렇군요. 혹시 왜 한국에 있는 건가요? 미국에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카네기 멜런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배우고 있는데 거기 학비가 가파르게 올라서요. 요즘 집안 형편도 어려워져서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습니다.”
“오. 그렇군요. 컴퓨터라···.”
‘음···.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공부도 잘하는구나. 학교 이름은 많이 들어 본 것 같은데···. 명문 대학교 아냐?’
그의 모습을 아래에서 위로 쓱 훑어보니 정말 공과대학생 같은 모습을 풍기고 있었다. 물론 안경에 가려져 있는 얼굴만 빼고···.
스마트 워치를 차고 노트북이 들어 있을 법한 묵직한 백팩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가방 멋있네요.”
“아! 이거요? 펀딩으로 산 가방인데 기능이 많습니다. 칼로 그어도 잘 안 찢어지고요.”
권태현은 아까 나 이사에게 면박을 당한 것도 잊은 채 자신의 가방을 보란 듯이 자랑했다.
‘얼굴하고 안 어울리는 설명 뭔데? 유럽 명품 가방을 가지고 있어야 맞는 거 아냐?’
내가 손을 들어 그의 설명을 제지했다.
“하하하···. 좋은 가방이군요. 그건 그렇고 태현 씨는 오디션에 왜 지원을 한 거죠?”
“아···. 죄송합니다. 그냥 형을 따라온 김에 추억이 될 거 같아서 경험 삼아···.”
‘추억? 호기심이 많은 스타일이군.’
“연기는 배운 적이 없는 거죠?”
“네 없습니다. 정말 그냥 형을 따라와서···.”
“노래도 배운 적 없죠?”
“노래요?”
“네.”
“노래는 그다지 불러 본 적이 없어서···.”
‘와···. 이 사람 정말 청정지체네. 그냥 외국에서 공부만 한 건가?’
생긴 것과는 다르게 덕후의 느낌이 팍팍 드는데 이런 사람이 슈퍼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흠···. 일단 진현 씨는 합격하셨으니 저희 회사를 믿고 오늘 계약하고 가시죠. 하루라도 빨리 계약해서 제대로 된 준비를 하는 게 나을 테니까요.”
“아···. 네. 그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괜찮은 작품이 생기면 바로 투입할 거니까 마음의 준비를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회의실이 좀 답답하네요. 우리는 7층 사무실로 올라갈 테니 조 팀장님이 진현 씨 계약 좀 도와주세요. 신인 표준 계약입니다. 다 끝나면 제 사무실로 모시고 오시고요.”
“네, 대표님. 알겠습니다.”
나는 권진현과 악수를 하고 권태현만 데리고 5층 회의실을 나왔다. 5층에 있는 여직원들이 나와 함께 나온 권진현, 권태현 형제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나 주목을 받는 외모네.’
특히나 동생 권태현에게는 뭔가 이국적인 느낌이 흘러서 그런지 사람들의 시선이 오래 머물곤 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올라갔다. 나와 복도를 같이 걷던 나유정이 내 옆에 붙어서 작게 중얼거렸다.
[갑자기 또 왜 7층으로 데려가요?]
[계속 5층에 있었더니 갑갑해서요. 안 그렇습니까?]
[······.]
아무래도 그녀는 뭔가 내 꿍꿍이를 눈치챈 모양인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자, 들어오세요. 태현 씨. 이곳이 제 사무실입니다.”
“와···.”
권태현은 내 사무실을 보자마자 손으로 안경을 들어 올리며 감탄하고 있었다.
“오···. 이거 허먼 밀런 의자네요. 이거 한 이백만 원쯤 하지 않나요? 이거 원목 책상 봐. 퀄리티 미쳤네요. 이건 144Hz QHD 모니터고···. 응? 아니 이건!! 통짜 알루미늄 커스텀 무접점 키보드?”
권태현은 확실히 속은 Geek(괴짜)이었다. 그는 내가 쓰고 있는 장비를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특히 내 커스텀 키보드에 꽂힌 모양!
“그거 선물로 드릴까요?”
“네? 이걸요? 왜요?”
“그냥 선물이죠. 방문 기념. 사실 다른 게 몇 개 있어서 돌려쓰고 있어요. 같은 것만 쓰면 질리잖아요.”
“아하···. 그러면 뭐. 감사히···.”
“키보드에 관심이 많은 걸 보니 컴퓨터 관련된 공부를 하는 게 맞나 보군요.”
“마, 맞습니다. 컴퓨터 사이언스 쪽이니 키보드를 많이 씁니다. 주로 코딩 작업이죠.”
“아하···. 전 작가라 글을 쓰다 보니 키보드를 좀 좋은 걸 쓰고 있어요.”
“그러시구나. 전 대표님이 왜 이런 걸 쓰시나 했네요.”
권태현은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컴퓨터로 다가가 USB를 빼서 키보드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유정 씨는 내가 하는 행동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싶겠지. 잠시만 참으시죠. 이게 다 투자입니다. 투자!’
딸깍···.
권태현의 형인 권진현이 계약을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형···. 이거 좀 봐. 사무실 죽이지?”
“어? 지, 진정해 인마···.”
권진현이 동생 권태현을 말리고 있었다.
“자, 심심한데 녹음실 구경이나 한번 가 볼까요? 노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오! 궁금합니다. 평소에도 궁금했어요.”
‘이 호기심 꾸러기 같으니라고···. 슈퍼 재능이라 보여 주는 거다.’
나는 녹음실로 권씨 형제를 안내했다. 녹음실에서는 케이와 카이시브의 하지훈과 김관중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 형. 이 시간에 웬일이야?”
“어···. 다 모여 있었네? 지훈이랑 관중이 오랜만이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요즘 내 미션 수행은 잘 하고 있는 거니?”
내 미션이란 바로 네미시스의 타이틀곡 작곡이었다.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아주 잘 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인기 그룹의 타이틀곡이라 그런지 부담감이 좀 있는 편이죠.”
김관중은 내 옆에 있는 나유정을 힐끔 쳐다보며 말을 했다.
“쉬엄쉬엄해. 혹사하면 일찍 나가떨어지니까.”
“알겠습니다. 대표님.”
“형. 그런데 이사님이랑 옆에 있는 분들은 누구야?”
“아···. 이분들은···.”
나는 프로듀서팀에 권씨 형제를 소개했다.
“난 또 뭐라고···. 견학 왔구나? 하하···. 장비라도 설명해 드릴까요?”
케이가 검은 뿔테를 쓰고 있는 권태현을 힐끔 쳐다보았다.
“거기 키 크신 분, 꼭 슈퍼맨에 나오는 클라크 켄트 같네요. 혹시 혼혈은 아니시죠?”
케이의 농담에 권태현을 쳐다보니 정말 클라크 같았다.
‘하지만 클라크는 안경을 벗으면 슈퍼맨이 되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DC 코믹스의 슈퍼맨보다는 마블링 코믹스의 아이언맨을 더 좋아합니다.”
케이는 자신의 농담이 통하지 않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장비 설명을 좀 들어 볼 수 있을까요?”
“······.”
케이는 권태현의 대답에 어쩔 수 없이 장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크크···. 쌤통이다.’
잠시 후 케이의 장황한 설명이 끝나자 혼자 장비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권태현이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동생이 좀 별나긴 합니다.”
“아우···. 괜찮아요. 전 호기심이 강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권태현은 책상에 있던 고가의 무선 헤드폰을 집어 들고 머리에 써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태현 씨. 혹시 녹음을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지 않나요?”
“녹음이요? 보고 싶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봤지 실제로는 못 봤거든요.”
“오케이. 그럼, 여기 리스트에 아는 곡 있어요?”
나는 모니터에 떠 있는 MR, 즉 instrumental 목록을 보여 줬다.
“음···. 아! 저 이 노래 알아요. 퀸 노래인데···.”
그는 리스트에서 ‘Love of my life’라는 곡을 골랐다.
“부스에 들어가서 한번 불러 볼래요? 녹음이 어떻게 되는지 들려줄게요. 자기 목소리가 녹음되면 본인이 알던 목소리가 아니라는 거 아시죠?”
“아! 그거 압니다. 본인의 목소리는 입으로 나가는 거 말고 본인의 신체 내부로도 음이 퍼지니까요. 즉 외부 공기로 전달되는 것하고 인체 내부를 통해 전달되는 음성이 섞인 거죠.”
“······.”
이쯤 되니 인내심이 강한 나도 슬슬 지치는 것 같았다.
“얼른 들어가서 불러 보세요. 반주가 나올 테니 재주껏 불러 보세요.”
내가 권태현의 등을 밀며 부스로 보내자 케이와 다른 사람들이 일제히 이게 무슨 짓인지 의아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말고 음악이나 틀어 봐. 아까 그거 있지? Love of my life 말이야.”
케이도 물어보기 귀찮은지 내 지시에 따라 음악을 준비했다. 부스 안의 권태현은 이미 헤드폰을 착용하고 마이크 앞에 정자세로 서 있었다.
케이가 마우스를 클릭하자 퀸의 ‘Love of my life’ 초반부가 잔잔히 흘러나왔다. 피아노와 기타, 하프 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고 있었다.
“Love of my life, you’ve hurt me···.”
녹음실 스피커로 권태현의 깨끗한 하이 노트 보컬이 터져 나오자 사람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