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합시다 (2)
“인피니티 드림즈라면···.”
“네. 빅샷 엔터와 CA 미디어가 합작해서 세운 기획사죠. 현재 테리우스가 소속되어 있기도 하고요.”
“그건 알고 있어요. 그게 아니라 어째서 거기 있던 연습생이 굳이 우리 회사로 온다는 건지···. 그게 믿기질 않아서요.”
“글쎄요? 그런 문제는 깊게 생각해 보질 않아서···.”
나유정의 질문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그냥 머리만 긁적였다.
“가만 보면 준형 씨는 차별이 너무 심한 거 같아요.”
“엥? 제가요?”
“여자 아이돌은 그렇게 공들여서 좋은 아이들을 뽑아 놓고 병춘 씨가 연습생을 데려온다고 해도 관심이 하나도 없잖아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제 눈엔 다 보여요. 보이그룹은 준형 씨 관심 밖의 사항이란 걸요.”
“에엑···. 그건 절대 아닙니다. 남자 아이돌이 얼마나 돈을 잘 버는지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압니다. 명색이 제가 테리우스의 전 매니저 아닙니까?”
나는 강하게 변명했지만,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가슴이 뜨끔했다.
‘솔직히 관심이 적은 건 사실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예 없는 건 아니야. 그냥 관심이 덜 가는 것일 뿐···.’
“진실이 어쨌든 간에 제가 이제부터 신경을 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꼭 성공하도록 도와줄 테니 마음 푹 놓고 계세요.”
“정말이죠?”
“믿으세요. 믿는 자에게 뭐다? 남돌이 생긴다 이겁니다. 드라마에서 레이첼을 죽음으로 지키는 4명의 가디언 엔젤입니다.”
“탕탕!”
내가 자신감을 내비치며 손으로 식탁을 내리치자 그녀의 눈에서 불신의 눈빛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를 죽음으로 지키는 가디언이라···.”
나유정은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내가 한 말을 되뇌고 있었다.
‘저기요. 유정 씨를 지키는 게 아니라 드라마 속 레이첼을 지키는 건데요? 뭐 엎어치나 매치나 상관없나? 일단 일이 잘 해결됐으니···.’
“그럼, 일은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만 믿으세요. 매의 눈으로 인재들을 쏙쏙 골라드릴 테니까요.”
“알았어요. 믿을게요. 아니 믿어요. 제가 직접 옆에서 본 게 있으니···.”
나는 그렇게 나유정과의 거래를 성사시켰다. 비록 아직 계획에 없던···. 아주 후순위로 매겨 놓았던 남자 아이돌을 제작하게 됐지만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좋은 연습생들을 어떻게 끌어모으죠?”
“그건 차차 생각해 봅시다. 일단 병춘이가 데려온다는 연습생이나 보고 계획을 짜 보자고요. 제가 언제 오는지 나중에 알려 드릴게요.”
“알았어요. 꼭 연락 주세요.”
* * *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컴퓨터를 부팅시켰다.
우선 달달한 라떼 한잔을 내린 후 상쾌한 머리로 후배들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속독으로 읽되 분석 모드를 가동했다. 웹소설 작가가 순문학까지 감평을 한다는 게 우습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드라마를 쭉 써서 그런지 몰라도 나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확실히 회사 이름을 고려한 것인지 극본이 많군.’
그리고 순문학보다는 의외로 웹소설이 많았다. 모르는 척했지만 몰래 쓰고 있는 작가들이 꽤 되는 모양. 하지만 확실히 대부분이 여성향이었다.
‘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수작이 많아. 웹소설 감성만 좀 더 익힌다면 승산이 충분하다.’
오후 늦게까지 글을 다 읽고 드라마 작가로 4명, 웹소설 작가로 5명을 추려냈다. 가져왔던 지원서를 대조해 보니 확실히 대부분 아우라를 가지고 있던 인재들이었다. 물론 글은 좋은데 아우라가 없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웹소설 작가 5명 중 2명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는데, 확실히 웹소설은 재능과는 크게 연관이 없는 것 같았다. 많은 인풋을 통해 웹소설만의 감성을 체득하고 꾸준히 책 열 권 정도(?)를 쓸 수 있는 성실함을 가지고 있다면 가능성이 충분했다.
‘어떻게 보면 더 공평한 시장이야. 재능에만 휘둘리지 않으니까.’
나는 J&J 작가로 합격한 후배들에게 축하의 메일을 간단하게 써서 보내고 조만간 회사로 방문할 것을 통보했다.
드라마 부문의 4명 중 2명은 아주 자질이 뛰어난 것 같아 최하나 작가에게 붙여서 노하우를 배우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준비되면 바로 써먹을 수 있게 말이다.
‘음···. 좋아. 아주 좋아. 내 생각과는 달리 능력이 있는 후배들이 많구나.’
심사를 마치고 나자 상당히 뿌듯했다. 기지개를 한 번 켜고 창문을 쳐다보았다.
‘벌써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네.’
똑똑···.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대표님. 정광현 고문님 오셨습니다.”
조아린 팀장이 J&J 스튜디오의 정광현 고문을 데리고 왔다. 그는 바로 J&J 스튜디오의 전신인 사과 스튜디오의 전 대표였다.
“오! 고문님, 어서 오세요. 오늘부터 출근하셨어요? 몸은 건강하시죠?”
평범한 인상에 많이 늙어 보이던 그의 얼굴에 이제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정광현입니다. 몸은 이제 거의 회복된 상태고요. 정식 출근은 내일부터입니다. 오늘은 그냥 근처에서 후배들을 좀 만날 일이 있어서요.”
“얼른 출근하셔서 도움을 주셔야죠. 저희 스튜디오 인원들이 아주 정신이 없습니다.”
“하하···. 바쁜 게 좋은 겁니다. 일이 없는 것보다 무서운 게 없어요. 저는 막판에 돈 때문에 고생하느라 건강도 잃고···. 어후···.”
“그래도 일하시는 게 좋으시죠?”
“그렇긴 하더군요. 아내가 보험 회사 판매왕이면 뭐 합니까? 집에 있으니까 눈치가 보여서 정말···.”
“아무튼, 잘 오셨습니다. 이제 체계 좀 잘 잡아 주세요.”
나와 그는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재 업계와 넷플릭 오리지널 신작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거 보고 진짜 깜짝 놀랐어요. 작가와 감독의 역량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오랜만에 깨달았습니다.”
“아이고···. 우리 고문님이 또 듣기 좋은 말을 해 주시네요. 그렇게 안 해 주셔도 됩니다.”
“사실인데요. 뭘···.”
“크흠···. 감사합니다. 그런데 요즘 큰일입니다. 사람이 부족합니다. 특히 제작팀이요.”
거듭된 칭찬이 민망한 나머지 대화의 주제를 바꿔 버렸다.
“제작팀이 부족합니까? 추가로 작품을 하셔야 하는 건가요?”
“네. 하나를 더 시작할 수도 있고요. 두 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정 고문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 줬다. 힘들여서 초빙한 엄태민 감독이 제작팀이 부족해서 놀고 있다는 말도 해 줬다.
“엄태민 감독을 초빙했다고요? 그 양반 연출은 정말 잘하는 감독인데···. 어쨌거나 문제는 제작 인력이군요. 외주를 해도 될 텐데 뭔가 사정이 있나 보군요.”
역시 경험이 많은 정광현 대표가 회사의 사정을 단번에 파악한 모양이었다.
“맞습니다. 그 드라마는 꼭 내부 인원으로 제작을 하려고 합니다.”
“흐음···.”
정광현 고문이 뭔가 생각이 났는지 잠시 입을 다물었다.
“······.”
“대표님. 제가 방금 누굴 만나고 왔는지 아십니까?”
“네? 누군데요?”
“드림 픽처스라고···. 거기 후배 녀석들인데요. 거기 대표가 이상한 사업에 손을 대는 바람에 지금 월급이 밀려 있다고 하더군요.”
“네? 드림 픽처스라면···. 예전 ‘별의 연인’을 만든 유명한 제작사 아닙니까?”
“네. 거기 맞아요. 그래서 후배들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더군요. 제가 최근에 비슷한 일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사과 스튜디오가 저 때문에 그렇게 된 건 아니지만요. 똑같이 월급도 밀리고 그랬으니까요.”
이게 웬 떡이란 말인가? 갑자기 그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어졌다. 잘하면 그냥 별다른 노력 없이 제작 2팀을 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만둔다는 이야기는 없던가요?”
“왜요? 영입하시게요?”
정광현 고문이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꽁으로 대표를 한 건 아닌 모양으로 눈치가 아주 빠른 사람이었다.
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테이블 위에 놓인 차를 홀짝였다.
“고문님은 아직 출근을 안 하셔서 모르시겠지만, 곧 제작 파트에 대한 채용을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실이었다. 재능 있는 후배들을 채용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럼 잘됐네요. 가서 보니 단체로 때려치울 생각을 하고 있던데요.”
“흠···. 그거 안타깝군요. 혹시 생각이 있다면 이번 채용에 지원해도 된다고 정보를 주셔도 되겠네요.”
“아···.”
정광현 고문은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내가 덥석 물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급하다고 아무나 막 받을 순 없었다. 아마도 인수 의향을 드러내면 전부 채용을 조건으로 접촉을 해 올 수도 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조직 구성을 그런 식으로 할 순 없으니까 이런 말은 무조건 조심해야 했다.
“하긴···. 제가 봐도 그런 식으로 영입하는 건 아니긴 합니다. 일단 제가 우리 회사에서 채용이 곧 있을 거라는 소식을 전해 줘야겠네요.”
“네. 그러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정광현 고문은 그 후로 나와 대화를 좀 더 나누고 돌아갔다.
‘철저히 능력을 보고 뽑아야지. 일단 면접에서 이상한 사람들은 거른다. 좀 늦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어. 대충하다가 소탐대실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해 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 * *
오늘은 오전에 제작 파트 면접이 있고, 오후에는 배우 오디션이 있을 예정이었다. 제작 파트 면접은 내 주제로 실무진과 함께 진행됐다. 오랜만에 기능성 렌즈를 꼈더니 눈이 불편했다. 그래도 눈뽕을 당하는 걸 방지해 주니 아주 유용한 아이템이었다.
면접을 해 보니 의외로 비경력자(대학생)들의 아우라가 훨씬 강했다.
‘오케이. 후배들은 다 뽑아야겠네. 아우라가 부족한 사람은 있어도 다들 열정이 넘쳐 보여.’
일단은 제작 1팀과 2팀에 배치해 실무를 가르쳐야 할 것 같았다. 그다음은 경력자 면접이었다. 의외로 채용 소식이 잘 퍼졌는지 많은 사람이 면접을 보러 왔다.
경력자의 경우 철저히 아우라를 보고 뽑았다. 어차피 인성 같은 건 겉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럴 바엔 차라리 능력 위주로 뽑는 게 속 편했다.
J&J 스튜디오는 그런 식으로 상당한 인력을 충원할 수 있게 되었다.
의외의 하이라이트는 배우 오디션이었다. 능력 있는 배우들이 대거 오디션을 보러 온 것이다.
‘어우···. 우리 회사 인기가 왜 이렇게 좋은 거야?’
인터넷에 공개 오디션에 대한 정보를 올렸더니 꽤 많은 사람이 지원했다. J&J는 웬만하면 드라마에 자기 배우를 쓴다는 게 소문이 나면서 덩달아 인기가 높아진 것이다.
유정 씨와 함께 심사했는데 외모와 아우라, 그리고 면접 태도를 감안해 지금까지 다섯 명의 배우를 발굴했다.
남자 세 명, 여자 두 명이었는데 특히 남자 한 명과 여자 배우 두 명은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였다. 오전부터 계속 면접을 봤더니 이제 체력이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와···. 이거 힘드네. 이틀에 나눠서 할 걸 그랬나?’
나는 뻣뻣해진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근육을 풀어 주었다.
“자 마지막 조 들어오세요.”
드디어 마지막 조가 들어와서 자기소개를 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으음···.’
다섯 명 중에 유독 한 명의 외모가 튀었는데 연기는 아예 초보인 것 같았다.
“그만···. 후···. 저기요.”
옆에 있던 나 이사님께서 열이 좀 받으신 것 같았다.
“뭡니까? 준비도 안 하고 오셨어요?”
“아···. 죄송합니다. 연기를 해 본 적이 없어서요.”
그 말을 들은 나 이사님은 더 짜증이 나시는지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하아···. 현장 오디션이라 그런가? 얼굴만 믿고 오디션에 온 거예요?”
“죄송합니다.”
‘어우, 무서워라. 처음에는 되게 호감을 보였던 것 같은데 연기를 못하니 그냥 가차 없네.’
나 이사님은 첫인상과 다르게 기대를 접었는지 마이크를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마치 홍콩 배우처럼 이목구비가 훤칠하게 생긴 이 젊은이는 주눅이 들었는지 곧바로 얼굴이 어두워졌다.
“자···. 다음···.”
“이사님. 잠시만요.”
황급히 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41번 참가자분은 대학교 1학년이시네요? 연기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까?”
“네? 네네.”
“여긴 왜 오신 거예요?”
“아···. 그건···.”
우물쭈물하고 있는 그는 꽤 매력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금만 관리를 받으면 외모가 확 피어날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말해 보세요. 어차피 떨어졌다고 생각하시고요.”
“아···. 네···. 그게 형을 따라왔다가 우연히 지원했습니다.”
“응?”
그랬구만? 어쩐지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다 했다. 하지만 어떡하니. 넌 합격이란다.
현재 내 눈에는 41번 참가자의 뿜어 대는 엄청난 갈색의 광채가 보였다.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미친 수준···.
‘아이돌로 따진다면 노래도 잘하는데 비주얼 센터인 멤버야. 그리고 창조적인 능력까지···. 흐흐···. 진짜 뜬금없네 이거···. 어떻게 이런 보물이 여기에 나왔지?’
옆에서 미간을 좁히고 있던 유정 씨가 나를 보며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내가 사람들이 못 보는 그런 걸 찾아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본 뒤 이빨을 보이면서 씩 웃었다.
‘유정 씨, 대박입니다. 우린 지금 유정 씨의 진아돌에 참가시킬 첫 번째 멤버를 발견했다고요. 그것도 주먹만 한 다이아몬드네요.’
하지만 나와 달리 유정 씨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중에 보면 알 겁니다. 이 청년은 제가 슈퍼 패스를 쓰겠습니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