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10화 (210/263)

그렇게 합시다 (1)

“아···. 남자 아이돌 이야기구나. 그거라면 도와드릴게요. 단···.”

“단?”

“바쁜 거 끝나고 합시다. 지금 할 게 너무 많잖아요. ‘나세멸’은 아직 2시즌 촬영 중이지만 곧 3, 4시즌도 찍어야 하고···.”

“그건 1년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었어요? 그렇게는 못 기다려요.”

응? 이건 너무 단호한 태도인데?

“아이돌을 향한 유정 씨의 강한 의지는 알겠지만, 물리적으로 가능하지가 않잖아요.”

“지금 또 놀리는 거죠?”

유정 씨가 나를 보며 눈을 흘기고 있었다.

“놀리는 거 아닙니다. 제가 걸그룹을 제작해서 포문을 열었으니 당연히 나 이사님도 하고 싶은 거 하셔야죠.”

“아무튼, 그런 식이면 1년···. 아니 2년 후에나 가능하다는 건데 그건 안 돼요.”

“······.”

우리는 계속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를 동시에 두 편을 찍어야 할 테고 아우라의 활동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웹툰 콘티도 계속 짜야 하고, 김시후, 최하나 작가의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이라는 드라마도 감수해야 했다.

‘그 드라마는 내 검열이 필요해. 가만 놔뒀다가는 대본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후···.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어쩔 수 없이 하나씩 꼼꼼히 처리해 나갈 필요가 있었다.

‘이 사태를 어쩌지?’

유정 씨의 태도가 너무 단호했다.

‘유정 씨는 4시즌에서 최악의 생체 병기로 나와야 하는데 시간이 없···.’

살짝 답답한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급히 자세를 고쳐잡고 나유정을 바라보았다.

“유정 씨···.”

내가 농담조가 아닌 무게를 잡자 그녀도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말씀하세요.”

“그럼 이렇게 하시죠. 유정 씨가 남자 아이돌을 제작할 때 제가 무조건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 겁니다. 다만, 별도의 제작2팀이 꾸려지면 귀환소녀를 촬영해야 하니 그때 되면 좀 바빠질 겁니다. 남자 아이돌은 그걸 찍고 나서 준비하는 거 어떻습니까?”

“그때 되면 ‘나세멸’ 4시즌을 촬영해야 하는 타이밍 아니에요?”

“아니요. 그것보다는 전에 끝날 겁니다. 약간 공백기가 있을 건데 그때 아이돌을 빨리 뽑는 겁니다.”

“으음···. 그러면 초반에 팬들이 생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잖아요. 혹시 뮤직넷하고 이야기를 해서 쇼로 만들거나 하면 안 될지···. 아이돌 메이커를 진아돌 버전으로 공개하는 거죠.”

“그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CA의 입김이 너무 많이 들어가요. 다른 건 해 줘도 아이돌 오디션은 공짜로 안 될 겁니다. 매니지먼트를 인피니트 드림즈에서 하자고 할지도 몰라요. 슈퍼노바 동생 그룹들이 아직 테리우스에게 많이 밀리고 있어서 더 조바심을 낼 겁니다.”

내 말을 들은 나유정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럼 절대 안 되죠. 제가 만들 프로젝트인데···.”

“뮤직넷의 파워는 절대적입니다. 하지만 절대 공짜가 아니라는 게 문제죠. 우리 아우라도 처음부터 단독으로 성장시켰기 때문에 온전히 우리가 관리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랬기 때문에 드라마 귀환소녀만 이기훈 전무와 TVM에서 방영하기로 협의하고 리얼리티 4부작을 얻어 낸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는 J&J의 지분까지 넘보던 사람이다. 능력 있고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이지만 사업에는 영원한 아군도 적도 없는 법이다.

‘내가 빈틈을 보이는 순간 물어뜯을지도 몰라.’

“그럼 저희가 알아서 하는 게 낫겠군요. 하아···. 뭔가 아이돌 메이커처럼 이슈가 단번에 집중되고 노출이 오래 되는 게 필요한데···.”

그녀는 머리가 복잡한지 트레이닝복의 지퍼를 목까지 끌어 올리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후후···. 쉬운 게 없죠?”

내가 살짝 웃으며 말하자 그녀가 얼굴을 내 쪽으로 쭉 들이밀었다.

“어라? 뭐 있구나? 내 이럴 줄 알았어! 대표님! 얼른 말해 봐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그녀는 정말 귀신같았다. 내 표정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챈 것이다.

“어우···. 왜 이렇게 붙어요. 부담스럽게···.”

“얼른 대표님의 능력을 보여 주세요. 그 정확하고 현명한 해결책을요! 어서요!”

“아···. 참나···. 내가 무슨 솔로몬 왕도 아니고···.”

“아···. 빨리!!”

“아, 알았어요. 조용히 좀 해 봐요.”

그녀의 뜨거운 눈동자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남돌 제작에 대한 그녀의 남다른(?)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음···. 그냥 방금 생각난 건데요. ‘귀환소녀’ 1시즌을 찍으면 ‘나세멸’은 2시즌을 방영할 거고 그와 동시에 3시즌 촬영을 시작할 겁니다. 여기서 약간 시간이 있잖아요? 아···. 물론 3시즌 말미에 유정 씨가 살짝 등장하긴 하지만···. 어쨌든, 시간이 좀 있습니다. 그때 미튜브에서 진아돌 콘텐츠를 하는 겁니다.”

“그건 일정이잖아요. 홍보가 생명인데···.”

“끝까지 들어 보세요. 이렇게 하는 겁니다. 자질이 뛰어난 인재들을 뽑아 놓고 ‘나세멸’ 4시즌을 찍을 때 유정 씨랑 함께 출연시키도록 하죠.”

“네? 그게 무슨···. 4시즌 대본은 확정됐잖아요.”

“바꾸면 되죠. 제가 작가잖아요. 제작사 대표이기도 하고···.”

내 쿨한 대답에 유정 씨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입으로 파리 들어갑니다.”

“합···. 어, 어떤 식으로 출연해요?”

“4시즌의 주요 인물이자 유정 씨가 연기할 중간보스 ‘사신(死神) 레이첼’ 있잖아요. 거기 레이첼을 따라다니는 4천왕으로 출연시킬 겁니다. 코퍼레이션의 유전공학으로 탄생한 생체 병기의 완성이라 일컬어지는 레이첼을 보좌하는 미완성인 개체죠. 레이첼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가디언 엔젤입니다.”

“헉···.”

나유정은 깜짝 놀랐는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어때요? 이 정도면 되지 않겠어요? 방송을 안 탔지만 ‘나세멸’을 등에 업고···. 아니 유정 씨의 버프를 받고 순식간에 점프할 수 있는 거죠. 4천왕이라는 컨셉도 생기는 거고···.”

“와···.”

“왜 그래요?”

“아, 아니···. 너무 좋은 해결책이라 황당해서···. 설마 지금 그냥 떠올린 거예요?”

“네. 뭐 문제 있어요?”

“아, 아니에요. 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뭔지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왜 저래?’

마치 실성···. 아니 몰입한 사람처럼 자기 생각에 빠져든 것 같았다. 그러다가 다시 몸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좋은 것 같아요. 절대복종하는 4천왕 가디언 엔젤이라니···.”

그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내 의견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절대복종은 너무 심했나? 내가 너무 유정 씨 판타지를 채워 준 거 아냐?’

그 생각을 하니 살짝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4천왕을 정상적으로 출연시키지 않으면 되지 뭐. 보이그룹 외모에 무슨 짓을 하긴 해야겠네. 얼굴에 문신을 넣거나 눈을 흰자만 나오게 한다거나···.’

“험험···. 이제 됐습니까?”

“네. 만족스럽네요.”

“그렇게 좋습니까?”

“나 또 놀리려고 하는 거죠?”

“그게 아니라 표정이 그렇잖아요. 지금 입이 귀에 걸렸어요”

“엑?”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턱을 잡았다.

“혼날래요?”

나유정의 냥냥펀치가 내 가슴팍으로 날아들었다.

“아니···. 좋은 의견을 내도 돌아오는 건 주먹뿐이네. 슬프다.”

“아, 아무튼 귀환소녀에는 출연하는 거로 할게요. 이걸로 다 정리하는 거예요.”

“그러시죠. 윈윈으로 잘 해결된 것 같네요. 그런데 제가 약간 손해를 본 것 같기도 하고···.”

“뭘 또 요구하시려고···.”

눈치가 귀신같은 유정 씨가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불리하게 계약을 한 거 같잖아요. 프로젝트 하나를 그냥 띄워 주는 건데···. 게다가 드라마 대본도 수정해야 하고···. 하아···. 죽겠네.”

“마, 말해 보세요. 제가 뭐 해 드리면 돼요?”

유정 씨도 자신에게 너무 유리하게 협상이 진행된 것 같다는 걸 느낀 모양이다.

“네미시스의 정유나 말인데요.”

내가 정유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바짝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나유정이었다.

“정유나요?”

“네···. 영화의 임팩트를 이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죠?”

“장트러블 정유나 캐릭터를 이어 갔으면···.”

“싫어요!”

“끝까지 들어 보세요. 그게 부담스러우면 그냥 배가 아픈 정도로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설사약이 든 음료수를 마시고 탈이 난 후 신경성으로 도진 거죠.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꾸 배가 아픈 캐릭터입니다.”

“그럼 화장실은 안 가는 거예요?”

“그건 빼 드릴 수 있습니다.”

“하···.”

나유정은 고민이 되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때요?”

“저기요. 준형 씨. 준형 씨는 왜 그런 걸 좋아해요?”

“좋아한다기보단 캐릭터가 강해지니까···.”

“거짓말하지 말아요. 좋아하는 거 다 알아요.”

그녀는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히는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캐릭터의 임팩트를 생각한다면 음치와 더불어 꼭 들어가야 하는 설정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양보하기 힘든 면이 있었다.

“그렇다면 저도 ‘가디언 엔젤’에게 임팩트 있는 설정을 부여하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나의 말에 나유정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가디언 엔젤들이 파괴될 때···. 레이첼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거로 써 줄게요. ‘나만의 세계’에서 혜성 씨가 죽으며 전국의 여성들의 심금을 울린 것처럼 말이죠.”

“악···. 미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후후···. 이 정도면 되겠지? 그렇게 하면 신인치고는 엄청난 인지도를 확보하는 거지.’

내 말을 들은 유정 씨의 반응이 아주 신선하기 그지없었다. 아마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유정 씨! 죄송하지만 벗어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전 당신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하하.

“별로예요? 에이, 그러면 뭐 어쩔 수 없지. 모든 건 그냥 없던 일로 하시죠.”

나는 쿨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몸을 돌렸다.

턱···.

나유정의 손이 내 오른쪽 어깨를 잡았다.

“뭡니까?”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합시다. 그거. 제가 쿨하게 받아들이죠. 뭐. 어차피 버린 몸···.”

‘큭큭···. 역시···.’

“흠흠···. 그럼 그럴까요? 저도 이상한 별명을 얻기 싫으니 그냥 배만 아프다는 설정만 추가하겠습니다.”

“맘대로 하세요. 그나저나 바뀐 대본은 언제까지 줄 거예요?”

“허어···.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 재촉부터 하시네. 쩝···.”

“일주일 안으로 가능하지 않다면 저도 이거 없던 거로 하겠습니다.”

“후후···. 웃기는군요.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두고 보세요.”

“예스!”

그녀는 주먹을 움켜쥐고 기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게 그렇게 좋습니까?”

“좋아요. 모든 게 아주 이상적으로 풀렸어요. 대본만 잘 나오면, 히히···.”

‘쯧쯧···. 아직 멤버 한 명도 없으면서 김칫국부터 들이켜시네.’

“유정 씨. 저희가 남자 아이돌 연습생이 한 명도 없다는 거 모르십니까? 기뻐하시는 게 너무 이른 거 같은데요?”

“아···. 그렇죠.”

현실을 깨닫자 다시 얼굴이 시무룩해지는 나유정이었다.

“그, 그럼 지금부터라도 정식으로 공고를 해서···.”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응? 또 뭐 있어요?”

“DJ. Nec 알죠?”

“DJ. Nec이라면 병춘 씨요?”

“기억하시는구나. 아 참···. 테리우스 곡 정할 때 그때 같이 있었으니 잘 아시겠네요.”

“알죠. 얼굴도 특이하게 생겼잖아요. 아. 이런 말 하면 좀 실례인가요?”

“아니···. 뭐 그게 사실이라···. 꼭 네크로맨서처럼 생겼잖아요. 저번에 놀러 왔는데 돈을 벌어도 똑같이 생겼어요.”

“······.”

“아···. 그건 그렇고 DJ. Nec이 프리랜서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다가 곧 우리 프로듀서 본부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잘됐네요. 그분도 능력이 괜찮다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요. 능력도 좋고···. 일단 인성이 검증됐죠.”

“그런데 갑자기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예요?”

“아···. 며칠 전 병춘이한테 전화가 왔는데 자기가 합류하면서 아는 아까운 연습생 한 명을 데려온다고 하더라고요.”

“네? 연습생이요?”

“네. 인피니티 드림즈에서 남자 아이돌을 준비하던 연습생이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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