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09화 (209/263)

거대한 재능 (2)

“정말 제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쓰신다구요?”

“그래. 노래 잘 만들었더라. 진짜 좋았어.”

“가, 감사합니다. 대표님.”

이지령은 내가 실력을 인정하자 밝은 표정으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렇게 좋아?”

“그럼요. 그냥 수록곡도 아니고 타이틀곡인데요? 솔직히 지금 잘 안 믿겨요.”

상기된 얼굴을 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지령이를 보니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곡을 만들어 낸 거야? 무슨 수학 어쩌고 했다면서?”

“아···. 맞아요. 제가 케이 프로듀서님께 6개월간 기초를 배우고 어떻게 하면 좋은 곡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분석을 해 봤어요. 최신 히트곡 500여 곡을 코드와 비트, 패턴 등을 분석해 보니 공통으로 많이 사용되는 코드들이 있더라고요.”

헐···. 통계적 분석? 넌 도대체 무슨 시도를 하는 거니? 카이스트 출신이라 다른 건가?

“그래. 그건 나도 알아. 그게 바로 머니 코드잖아. 돈이 되는 코드가 따로 있다며?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알면서도 히트곡을 못 만드는 건 이유가 있잖아. 마치 작가들이 유행하는 소재를 많이 넣더라도 글이 재미없는 것과 같은 이치지. 원리를 알아야 돼.”

그녀는 내가 지적한 것을 듣고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역시 대표님은 대단하신 거 같아요.”

“응?”

“정확해요. 그래서 제가 수학적으로 변주를 줘 봤어요. 머니 코드의 16개의 마디에서 특정 두 마디를···.”

“자, 잠깐···. 그런 거 나한테 설명을 해 봐야 아무 소용 없어. 난 작곡에 일자무식이거든. 그냥 간단히 설명해서 수학적으로 뭔가 풀어냈다는 건가?”

“비슷해요. 나중에 찾아보니 모차르트도 이런 식의 수열로 미뉴에트 악보를 만들었더라고요.”

“아···. 그래? 그건 몰랐네. 혹시 그 양반도 수학 천재였나?”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예전에 읽었던 기사가 떠올랐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은 사람이 수학적, 공간적 추론 능력이 뛰어나다는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연구 결과였다.

“어쨌거나 너는 너 나름대로 히트곡의 비밀에 한 발짝 다가갔다는 거잖아. 안 그래?”

“맞아요. 대표님.”

“그럼 그걸 케이 프로듀서에게 알려 줘.”

나는 몸을 돌려서 손가락으로 케이를 가리켰다. 그러자 케이가 손을 들고 됐다는 시늉을 했다.

“아···. 됐어. 나도 형하고 똑같이 이해 못 해. 난 그냥 필이지. 그런 걸 뭐 하러 머리 아프게 숫자로 계산하고 있어?”

“하긴···. 지령아. 케이 프로듀서도 예체능 쪽이라 그런 거 알려줘 봐야 이해 못 해.”

“킥킥···.”

“웃지 마라. 이 녀석아. 난 그런 거 없어도 세계 최정상급 프로듀서란다. 흠흠···.”

케이가 멋쩍어하면서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하여간 잘난척하기는···.”

“팩트잖아!”

“그건 프로듀서님 말씀이 맞아요. 프로듀서님은 그냥 경험과 감으로 아시는 거죠. 저같이 분석이 필요 없으세요.”

“거 봐. 이게 맞지.”

“······.”

나와 케이의 만담에 웃고 있던 지령이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대표님.”

“뭐가? 갑자기 왜 이러셔?”

“몰랐던 제 재능을 찾은 것 같아요. 다 대표님 덕분입니다.”

“작곡하는 거 말이야? 넌 뭐든지 잘하잖아. 하나도 놀랍지가 않아요.”

“그게 아니라 너무 재밌어요. 잠자는 걸 잊어먹을 정도예요. 고급 물리학도 재밌었는데 작곡하고 비교할 바가 못 돼요.”

하긴···. 뭔가에 몰입하면 저렇게 된다. 나도 괴작을 쓸 때 가끔 저렇게 미친 듯 쓰곤 했으니까.

“그래? 그럼 다행이네. 살면서 그런 걸 찾는 사람이 극히 드물거든.”

“대표님이 저희에게 하고 싶은 음악을 맡기겠다고 말하지 않으셨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거예요.”

“그, 그렇구나.”

솔직히 내가 그 말을 했는지도 기억 못 하고 있었는데 민망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나는 어쩔 줄 모르다가 주제를 살짝 돌려 놓기로 했다.

“그런데 지령이 너 얼굴이 그게 뭐야? 곡을 만드는 것도 좋은데 관리는 좀 해야 하는 거 아냐? 신인 중에 외모 하면 단연코 아우라가 원톱 아니냐.”

“아···. 이제 잠을 좀 자려고요. 저도 거울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저 조금 못생겨져도 아우라에 타격 없어요. 저는 엘프 3대장도 아닌데요. 뭐···.”

엘프 3대장···. 바로 예원, 유리, 담희를 칭하는 단어였다.

“그 3명이 비정상이야. 너도 다른 그룹에 가면 그냥 센터 감이야.”

“에이···. 그건 좀 심하셨다. 킥킥···.”

이지령이 내 뜬금없는 농담에 웃음을 터트렸다.

“넌 걔들과 달라. 이제 넌 아우라의 자체 프로듀서라고···. 여기 있는 케이와 함께 말이지.”

“그건 인정.”

옆에 있는 케이도 내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프로듀서님.”

“감사는 됐고···. 일단 네가 만든 곡을 들어 보니 수정할 곳이 좀 있거든? 그걸 중점적으로 고쳐 보자. 알았지?”

“넵!”

케이의 말에 힘차게 대답하는 그녀를 보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이 곡은 어떤 식으로 컨셉을 잡을 거야? 걸크러시 계열은 아닌 거 같은데···.”

“아···. 멤버들하고 이야기를 해서 일부러 이런 분위기를 연출하긴 했는데요. 의도한 대로 잘 나온 거 같습니다.”

“설명 좀 해 볼래?”

이지령은 멤버들과 함께 여성스럽지만 우아하고 세련되며 당당한 모습을 표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설명도 딱 정확하게 할 말만 했다. 케이와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좋은데? 요즘 대다수가 추구하는 걸크러시가 아니라 독특하네. 내 생각도 그런 스타일이 좋을 것 같아.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지. 케이야, 너는 어때?”

“딱 봐도 먼저 스타일을 정하고 곡을 만든 느낌이야. 노래가 딱 맞아떨어져. 통계적으로 분석해서 만들었다고 했는데 정말 트렌드를 잘 이해하고 만들었어.”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솔직히 나는 그 작곡하는 방식이 살짝 맘에 들진 않아. 뭐랄까···. 너무 계산적이라고 해야 하나?”

케이는 확실히 뭔가를 맘에 담아 두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지령이 작곡하는 방법에 대해 약간 부정적인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너의 방식은 존중하고 있어. 그냥 내 생각이야.”

“괜찮아요. PD님이 이해 못 하셔도 상관없어요. 저는 히트곡의 비밀을 수학적으로 푼 것일 뿐···. 원래 세상에는 그런 식으로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는 거니까요.”

‘컥···.’

허공에서 나와 케이의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말은 그야말로 현자의 독백 같은 느낌이랄까?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커흠흠···. 일단 알았어. 이제 슬슬 드라마를 찍어야 하니까 너도 준비 잘 하고···. 제작팀만 세팅되면 촬영 시작할 거야.”

“네, 대표님. 준비하고 있을게요.”

그 말을 끝으로 이지령을 숙소로 돌려보내고 다시 내 사무실로 돌아왔다.

“휴···. 갑자기 스케일이 커진 느낌이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조 팀장을 불러 아까 이야기됐던 내용을 전달해 주었다.

“대표님, 완전 대박인데요? 세계관 확장이라뇨! 안 그래도 ‘프로듀서님 저 회귀했어요’에 대한 팬들의 아쉬움이 컸었는데 진짜 잘됐네요.”

누구보다 조아린 팀장이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영화 속의 러브원과 네미시스의 팬이었던 모양.

“제가 알아서 출연 확답을 받아 오도록 하겠습니다. 저만 믿으세요. 대표님”

“아···. 예예···. 그러세요.”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의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헤헤···. 러브원과 네미시스의 컴백이라···. 후훗.”

‘조 팀장이 실성했나? 왜 저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사무실을 빠져나가려다 다시 몸을 돌렸다.

“왜, 왜요?”

“대표님. 나 이사님은 대표님이 설득하실 거죠?”

“······.”

“그건 대표님만 믿겠습니다. 그럼···.”

“어···?”

그녀는 황급히 문을 닫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적막한 사무실에서 멍하니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워드프로세서의 하늘색 화면에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후···. 유정 씨 설득은 내 몫인가? 안 한다고 하면 어쩌지?”

나는 휴대전화를 집었다 놓기를 반복하면서 할 말을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에이···. 일단 저질러 보자.’

눈을 딱 감고 나유정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준형 씨?]

전화기 너머로 살짝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고 있어요?”

[그냥 소파에서 드라마 보고 있어요.]

왠지 모르게 연두색 캐릭터 추리닝을 입고 비스듬히 누워서 드라마를 보고 있는 유정 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슨 드라마 보는데요?”

[넷플릭 오리지널 시리즈요. ‘나만 아는 세계멸망’이라고 재밌는 게 있어요.]

“에이···. 그건 벌써 다 봤잖아요.”

[또 봐도 재미있어요.]

“너무 그것만 봐도 안 됩니다. 다른 것도 보고 그러세요.”

[안 그래도 다른 거 보다가 이거 보는 거예요. 이 시간에 웬일이에요? 아! 맞다. 오늘 최 선생님하고 학교 강의 간다고 했잖아요. 그거 잘했어요?]

“네. 후배들이 너무 환대를 해 줘서 깜짝 놀랐어요.”

[당연히 그러겠죠. 참. 가만 보면 준형 씨는 자신의 위치와 영향력을 잘 모르는 거 같아요. 맨날 일만 해서 그런가?]

“흠흠···. 어쨌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전화로 말씀드리긴 좀 길고요. 혹시 저녁이나 같이 먹을래요?”

[나가기 귀찮은데···. 맛있는 거 사서 집으로 좀 가져올 수 있겠어요? 이 매니저.]

“뭐래? 자기 편할 때는 대표가 됐다가 매니저가 됐다가 하네요?”

[뭔가 조용히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에요.]

‘허 참···. 하여간 귀신이라니까?’

“알았어요. 먹고 싶은 거 톡으로 찍어 줘요. 사 갈 테니까···.”

[오케이. 알았어요. 조심히 와요.]

* * *

나는 시장에 들러 떡볶이와 튀김, 순대를 사 들고 나유정의 마포 아파트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그녀의 집 현관문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벌컥!

“떡볶이 사 왔어요? 앗싸!”

그녀는 내 손에 들린 봉지를 집어 들더니 휙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역시 내 예상대로 화장기없는 얼굴에 머리를 틀어 올리고 연두색 추리닝을 입은 상태였다.

‘쩝···. 그래도 미모는 역시···.’

나도 드디어 콩깍지가 쓰인 모양이었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천천히 들어갔다.

“오늘 스케줄 없었어요?”

“없어요. 오늘부터 푹 쉬려고요.”

“오래 쉽니다?”

“오래 쉬어도 누가 회사에 돈을 제일 많이 벌어다 줘요?”

“누구긴 누굽니까. 대표인 저 아닙니까?”

“그 사람 빼고요.”

“그 사람 빼면 당연히 톱배우 나유정 씨 아닙니까?”

“아주 잘 아시는군요. 알면 됐어요.”

그녀는 빙긋 웃으며 식탁에 떡볶이와 순대, 튀김을 깔고 접시를 가져왔다.

탁탁···.

“이리 와요. 떡볶이 같이 먹어요.”

그녀는 의자를 손으로 탁탁 내리치며 나를 불렀다. 나는 그녀의 맞은편 식탁에 앉아서 튀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녀도 떡볶이를 먹기 시작했다.

“후루룩···. 으음···. 역시 떡볶이는 역시 황 씨 아줌마네가 최고야. 튀김도 맛있죠?”

“에이···. 국물 좀 봐. 가만히 있어 봐요.”

나는 물티슈를 뽑아 그녀의 턱 주변에 묻은 떡볶이 국물을 닦아 주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잘해 줘요? 뭐 할 말 있어요?”

유정 씨가 내 눈을 바라보고 살짝 웃고 있었다.

‘어우···.’

심장이 벌렁거린다는 표현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안 된다. 이준형! 정신 차려 인마!’

“크흠···. 할 말이 있어서 보자고 했어요.”

“해 봐요. 떡볶이 사 온 수고를 생각해서 들어줄 테니까요.”

“오늘 최 작가님이랑 학교에 갔다가···.”

나는 유정 씨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강의 내용과 인재 발굴, 이지령의 작곡, 그리고 네미시스의 부활까지···. 그녀의 얼굴은 내 말을 들으며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

“유정 씨? 듣고 계십니까? 일이 그렇게 됐습니다.”

그녀는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때 정유나 역할을 하면서 생긴 짤이 아직도 인터넷에 활개를 치고 돌아다녀요. 그걸 저보고 다시 하라고요?”

“재, 재미있지 않았나요?

”뭐라고요? 그 마지막 설사약 신. 그거 준형 씨 집에서 내가 그랬다고 나 놀리는 거였잖아요. 내가 모를 줄 알아요?“

‘엥? 이게 무슨 소리야?’

“그게 무슨 소립니까? 놀리다니요?”

“아, 아니에요?”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넣은 스토리인데···.”

“아···. 그랬어요? 난 또···.”

“설마 그걸 오해한 거예요?”

“아, 아니면 됐어요.”

“그럼 귀환소녀에 네미시스로 출연하시는 거죠?”

“글쎄요? 또 이상하게 쓰면 어떻게 해요? 준형 씨가 좋아하는 더러운 신을 넣거나 내 노래를 부각시킨다거나···.”

그녀는 아직도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절대로 그런 장면을 넣지 않겠습니다. 네버!”

“그럼 다행이지만 그 짜증 나는 짤이 또 회자될 건데···. 요즘 많이 사라져서 안심했거든요.”

‘응? 아닌데···. 최근에도 내가 봤는데? 뭐 어쨌든···.’

“유정 씨가 해 달라는 거 다 해 드릴 테니 협조 좀 부탁드릴게요.”

“정말이요? 다 들어준다고요?”

그녀는 식탁 위에 손으로 꽃받침을 하고 얼굴을 올려놓았다.

“왜, 왜 그래요. 다, 다는 아니고 한 가지는 꼭 들어줄게요.”

“으흠···.”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옳거니 하는 표정으로 입꼬리를 쓱 올리고 있었다.

“그 말 무르기 없습니다.”

“남자가 돼서 한 입으로 두말은 안 합니다. 요구 사항이 뭡니까?”

“호호호···.”

“자꾸 뜸 들이지 마시고요.”

“한 가지만 해 주시면 돼요.”

“그게 뭔데요?”

“진아돌이요.”

“진아돌? 그게 뭐예요?”

“뭐긴 뭐예요. 저번에 준형 씨가 말한 거잖아요. 진아돌, 진짜 아이돌요. 남자들이 꽁냥꽁냥하는 거 질색이라면서요. 내무반에 집합시켜 놓고 남돌을 교육하면서 뽑는다는···.”

“아아···. 난 또 뭐라고···.”

‘무슨 소리인가 했네. 내가 농담으로 말한 거잖아?’

“진아돌 할 때 준형 씨의 그 사람 보는 능력 좀 빌려 줘요. 나도 제대로 된 아이돌을 제작해 보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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