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06화 (206/263)

뜬금없는 취업 설명회 (1)

갑작스러운 환호성에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최하나 작가를 봤더니,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라는 신호를 보내 줬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앞에 있는 후배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와아아···.”

호응이 상당히 커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게 오른손을 들어 환호성에 답했다.

‘허 참···. 내가 무슨 정치인도 아니고···.’

먼저 최하나 작가의 강의가 이어졌다. 그녀도 나 못지않은 환호를 받았는데 특유의 강렬한 카리스마로 청중을 휘어잡았다.

‘확실히 선배님은 말을 잘하시네. 정해진 대본이나 프레젠테이션 자료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내용이 재미있어. 듣는 나조차 흥미로웠으니 학생들한테는 얼마나 생생한 정보였을까?

그녀는 많은 박수를 받고 나에게 바통을 넘겨줬다. 막상 내 차례가 되자 떨리던 마음이 진정되고 오히려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떨 게 뭐가 있지? 이들이 보기엔 나는 그냥 성공해서 잘나가는 선배야. 나는 그에 맞는 정보를 공유해 주기만 하면 되는 거지.‘

내가 단상에 올라가 노트북의 파일을 실행하자 화면으로 자료가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후배 여러분. 오늘 선배와의 대화 자리에 김명환 감독님 대신 빵꾸를 때우러 나온 10학번 이준형입니다. 반갑습니다.”

“우와···.”

또 한 번 환호성이 쏟아졌다.

“여기 모이신 분들을 보니 제가 졸업한 문창과 후배들도 보이고 연극영화과 학생분들도 와 계시네요. 연극영화과 분들은 김명환 감독님이 오셨으면 좋았겠지만, 상관없습니다. 제가 작가이긴 하지만 제작자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경험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사실 영화도 자체 제작을 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더 광범위하게 알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와하하···.”

연극영화과의 누군가가 내 말을 듣고 맞장구를 쳐 주고 있었다.

“드라마 부문은 최 작가님께서 잘 해 주셨기 때문에 저는 소설, 그중에서도 최근 콘텐츠 사업 관련한 내용을 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제 소개를 좀 하도록 할게요.”

화면에 내 소개 페이지가 나오고 있었다.

저자: 이준형

[작품 목록]

1. 웹소설

-세상을 멸망시킬 나의 악인 → 데일리노블 장기 1위

-찢어져야 사는 헌터 → 달동네 골든베스트 (잠깐) 1위

-천마의 외동딸이 되었습니다. → 나이스 현재 1위 (레전드 페이지 등극)

-그 외 기타 창피해서 내린 작품 다수

2. 드라마

-슬기로운 덕질생활 → TVM 동 시간대 시청률 1위

-나만의 세계 → JTVC 동 시간대 시청률 1위, 최우수 작품상

-나만 아는 세계멸망 → 넷플릭 오리지널 시리즈 TOP 1

-귀환소녀 → 제작 예정

3. 영화

-프로듀서님 저 회귀했어요 → 관객 수 약 1,100만 명 동원

4. 기타

-소설: 어느 살인자의 일기 (한국, 일본 등 베스트셀러)

-웹툰: 천마의 외동딸이 되었습니다 (스토리, 콘티 작가)

-J&J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신인 걸그룹 아우라 육성)

-J&J 스튜디오 최대 주주, J&J 스토리 최대 주주

이렇게 PT로 표현을 해 보니 짧은 시간 안에 이뤄 놓은 게 많은 것 같네.

내 포트폴리오가 주르륵 나오자 학생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웅성웅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멋진 J&J 사옥 안에서 나유정과 함께 찍은 사진이 떠올랐다.

“와···. 미쳤다.”

후배 중 누군가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치고 급히 입을 다물었다.

“흠흠···. 이렇게 정리를 해 보니 뭐가 상당히 많네요. 부끄럽습니다. 제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봅니다.”

일부 학생들은 포기 상태라는 듯 허탈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제가 이런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여자친구에게 차이고 쓰던 웹소설이 혹평받고 슬럼프에 빠져 있었죠. 수중에 모아 놨던 돈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제야 학생들의 눈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내가 자신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주지시켰기 때문이다.

“솔직히 문예창작과에 들어와서 벽을 느꼈습니다. 저 스스로 친구들과 비교해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누구보다 일찍 장르 문학, 즉 웹소설 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운 좋게도 거기엔 제 글을 봐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소하지만, 꾸준히 수익을 내면서 손에서 글을 놓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만 자 이상은 꼬박꼬박 쓴 거 같습니다. 1년 365일 말이죠. 만약 약속이 있어서 하루 분량을 쓰지 못했다면 다음 날 더 쓰곤 했습니다.”

나는 내 구질구질했던 과거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연예계 관련 소설을 연재하며 욕을 많이 먹고 잠시 글을 접었습니다. 그러다 현실에서도 일을 좀 해 봐야겠다고 연예기획사 로드 매니저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만난 게 바로 지금은 월드 스타가 된 테리우스와 나유정 씨였습니다.”

“오···.”

드라마를 쓰게 된 이야기와 연달아 터진 대박에 관해 설명하고 농담까지 곁들였다.

“사실 저도 어떻게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운이 좋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꿀꺽···.

잠시 뜸을 들이고 강의를 이어갔다.

“한 가지는 잊어먹지 않고 꼭 하던 게 있었습니다. 바로 글쓰기였죠. 사생활이 거의 없는 매니저를 하면서도 틈틈이 글을 썼습니다. 그게 제가 지금껏 제일 잘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습관 하나가 저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

청중들이 숨죽이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관련 업계에 관한 끊임없는 공부가 주요했습니다.”

물론 사고로 얻은 능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건 이야기할 수 없는 사항이니 패스였고, 아무리 능력이 생겼더라도 똑바로 쓸 수 없으면 무용지물 아니던가?

지금까지 나의 삶의 태도가 그 능력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여러분도 글을 꾸준히 쓰시고 업계에 대해 공부를 계속하신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기회가 찾아올 겁니다. 용기를 잃지 마세요. 한 가지 분명한 건 제가 대학생 때 여러분들보다 더 찌질했습니다. 이건 팩트예요.”

“하하하···.”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면서 콘텐츠 업계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갔다. 웹소설, 웹툰의 폭발적인 성장세와 그에 따른 OSMU로 드라마, 영화로 이어지는 생태계를 조명했다.

아무래도 대부분이 순문학을 지향하는 문예창작과 학생들이다 보니, 관심은 있었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문 것 같았다. 하지만 본인들도 순문학을 해서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내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최소한 매일 5천 자 이상을 써야 하며, 악플 공격을 견뎌 내야 하고, 유료화를 하지 못하면 최소 1~4개월은 수입이 별로 없는 백수 상태라는 말을 하자 이쪽도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한숨을 내쉬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래도 천외딸 수익 관련한 인터넷 기사를 하나 살짝 보여 줬더니 다시 허리를 곧추세우고 내 강의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웹툰이 시작되고 다시 불이 붙기 시작한 웹소설 천외딸의 현재까지 수입은? 최소 수십억 원···.]

“우와···.”

“제 자랑이 아니라 콘텐츠 사업이 이렇게 커졌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웹툰 같은 사업 분야는 정말 세계에서 유일할 정도로 표준으로 자리를 잡았죠. 여러분들도 너무 기존 소설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글로벌하게 자신의 작품을 팔 수가 있거든요. 이미 수많은 작가가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춘문예에 등단하시고 입문하셔서 성공하신 작가님들도 있구요.”

“앞으로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질 겁니다. 정말로 르네상스 같은 시기죠. 좋은 콘텐츠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거든요. 물론 순문학은 아직이지만···. 그쪽도 조만간 변화가 올 겁니다.”

“······.”

“플랫폼 전쟁이 끝나는 순간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때까지 얼른 자리를 잡으면 됩니다. 가능성은 아주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전해 볼 만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살아있는 본보기가 있지 않습니까? 허구한 날 TV에 나와서 흑역사를 쓰고 있지만요.”

“하하하···.”

나는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후배들에게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자랑질도 은근히 재미있는데?’

“여러분도 이런 흐름이 4차 산업혁명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지금 업계에서는 IT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CPND라고 합니다. 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디바이스죠. 뭐···. 저희가 거대한 플랫폼을 따라 할 순 없으니까 일단 콘텐츠 위주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나마 우리나라가 잘하는 분야죠.”

그런 식으로 드라마와 영화 제작에 관한 에피소드가 이어졌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연극영화과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여서 그런지 모든 학생이 내 강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렇게 내가 공부한 것들과 실제 제작 환경에 관해 설명을 해 보니 나 스스로도 정리가 되고 학생들에게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 정도로 내용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수박 겉핥기 같은 내용이지만 시간 관계상 어쩔 수 없군요. 혹시 질문 있으십니까?”

최하나 작가와는 다르게 수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다.

“아, 거기 앞에 앉아 계신 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문창과 18학번 김아름이라고 합니다. 제가 나만의 세계를 너무 감명 깊게 봤고 평소에도 나유정 씨 팬인데요. 그 작품을 썼을 때 나유정 씨를 생각하고 글을 쓰신 건가요?”

갑자기 가슴이 뜨끔했다. 첫 질문이 바로 유정 씨에 대한 질문이라니···.

“험험···. 그런 건 아닙니다.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스토리를 쓴 거고 유정 씨가 연기를 잘했다고 봐야죠. 이건 비밀인데 유정 씨가 그런 피 튀기는 액션을 좋아합니다.”

“오오···.”

내가 고개를 돌려 질문했던 학생을 쳐다보니 뭔가 아쉬운 표정인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유정 씨를 위해서 그 작품을 썼길 바라는 표정이랄까?

“한 가지 사족을 붙이자면 나만의 세계는 유정 씨가 한번 써 보라고 응원을 해 줘서 탄생한 작품입니다. 그냥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스토리였거든요.”

그제야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는 순진한 후배였다.

‘유정 씨가 얼마나 나를 닦달하고 티격태격했는데···. 뭐 팬들은 연예인의 좋은 면만 보는 게 좋지. 굳이 유정 씨가 건어물녀인 걸 알 필요가 있을까?’

“감사합니다.”

“또 있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저는 연극영화과 14학번 정지훈이라고 합니다. 선배님 지금 벌려 놓으신 것도 많으시고 성과가 나온 것도 많으신데요. 지금까지 수입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엄청 많으실 것 같습니다만···.”

“하하하···.”

“되게 솔직하시네요. 그런 질문이 나올 거라는 예상은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밝히기 곤란한 내용입니다. 다만···. 세금을 정말로 무시무시하게 낸다는 것만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피눈물이 날 정도예요. 탈세해서 욕먹은 연예인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아주 조금은 이해가 가는 면이 있습니다. 아···. 오해하지 마세요. 물론 저는 세금을 아주 꼬박꼬박 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모범납세자로 표창도 받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농담을 섞어 가며 후배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들도 현재 가장 최전선에서 실무를 하고 있는 나의 경험을 들으며 좋은 자극이 됐을 것이다.

후배들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니 젊었을 적 내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잠깐.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여기가 어딘가? 한국에서 글로 이름을 날리려는, 또는 연기나 연출로 이름을 날리려는 젊은 인재들의 요람 아니던가? 그것도 1티어 학교!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던 나는 심호흡을 하고 아우라 스카우터를 가동시켰다.

‘우우웁···. 크···. 눈이···.’

선명한 여러 색깔의 기운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 작가! 괜찮아요?”

내가 손으로 눈을 가리며 고개를 숙이자 뒤에 앉아 있던 최하나 작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괜찮냐고 물어왔다.

“괘, 괜찮습니다. 잠시 현기증이 나서···.”

오랜만에 아우라를 체크했더니 나타나는 부작용이었다. 좀 자주 써야 했는데 말이다.

“최근 너무 바빠서 그런 거 같은데 좀 쉬지 그래.”

“예···. 작가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교수님?”

“네. 말씀하세요.”

내가 한정대 교수를 바라보자 그가 나를 바라보며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제가 강의 끝나고 취업 설명회를 좀 하려고 하는데 가능하시겠습니까?”

“네? 취업 설명회요?”

“예전에는 기업에서 나와서 그런 행사를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그, 그건 경영경제대학이나 공과대학 쪽···.”

“뭐···. 어쨌든 가능한가요? 저희 회사에서 최근에 인재를 뽑고 있습니다. 작가도 그렇고 제작 파트도 그렇고요.”

“가, 가능합니다. 물론이죠.”

‘오케이···. 아직 학생이라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회사의 인재 부족은 당장 해결되지 않겠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봐야지.’

오늘 이 기회를 가져다준 최하나 작가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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