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가 된 작가님 (2)
나는 최하나 작가와 함께 회사에 도착했다. 우리는 곧바로 7층으로 올라가 작가 작업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누가 들어왔는지 신경도 안 쓰고 글을 쓰고 있는 작가들의 모습이 보였다.
“대표님. 오셨어요?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신교?”
성공적으로 유료화에 성공한 허귀랑 작가가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있다가 들어오는 우리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또 쟁이라도 났습니까? 쓰라는 글은 안 쓰고 게임만 하시면 돼요?”
“하이고···. 제가 성주라 어쩔 수 없네요. 쟁 끝나면 빡글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이소. 그런데 그 옆의 분은···.”
“아···. 이분으로 말씀드리자면···.”
“안녕하세요. 작가 최하나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고개를 처박고 있던 작가들이 그 소리를 듣고 갑자기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호, 혹시 드라마계의 대모···. 최하나 작가님?”
문 선생 작가가 깜짝 놀라며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이로 봤을 때 대모는 모르겠고. 이모 정도는 될 거예요.”
“우와! 대박!”
“대표님. 혹시 최 작가님도 우리 회사에 들어오신 건가요?”
“아직은 아니지만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우와···. 드라마 잘 봤습니다. 작가님! 팬입니다.”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확실히 레전드는 임팩트가 달랐다. 십 년간 톱의 위치에 있던 작가라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인물.
한동안 사무실이 시끄러웠다.
“그나저나 사무실이 쾌적하네. 사람 수도 적당하고···.”
그녀는 사무실을 둘러보며 꽤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작가들을 위해 돈 좀 들였습니다. 작가의 마음은 작가가 알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최 작가님도 여기 오시면 괴작판독기 님한테 갈굼 좀 당하시려나요? 하루 목표치를 쓰지 못한다면 가차 없는 독설을 뿜어 대시는데···.”
“괴작판독기요?”
“아하하···. 그런 게 있습니다. 그런데 김시후 작가가 보이지 않는군요? 어디 갔습니까?”
어디 대작가 앞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는 시후 얘기를 하며 급하게 말을 잘랐다.
“아까 담뱃갑을 들고 옥상으로 가는 거 같던데요.”
“아···. 그래요? 김시후 작가 오면 제 사무실로 좀 오라고 전해 줄래요?”
나는 그 말을 남기고 최하나 작가와 내 사무실로 들어갔다.
“오···. 여긴 더 좋네? 글이 팍팍 나오겠어.”
“작가님이 출근하신다면 바로 이런 식으로 만들어 드려야죠.”
“호호···. 됐어요. 나는 글이나 좀 봐주면 돼. 사실 내 작업실은 여기보다 더 잘해 놨어.”
“네. 하긴 그렇겠네요.”
그렇게 대화를 하고 있으니 문이 열리고 시후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후는 최하나 작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살짝 놀랐지만, 워낙 순문학만 하던 녀석이라 그런지 그 이상의 느낌은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시후에게 사정을 말하고 전에 썼던 글을 보여 달라고 했다. 둘은 앉은 자리에서 서로의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길게 쓴 글은 아니었기 때문에 금세 다 읽고 차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다들 읽어 보셨습니까? 어떻습니까? 비슷하죠?”
“으음···. 신춘문예 출신이라더니 확실히 문장력은 뛰어나네요.”
최하나 작가의 애매한 감상평이었다. 잘 썼다거나 재미있다는 게 아니라 문장력이 뛰어나다니···.
“너는 어떠냐? 작가님 작품 어때?”
“뭐···. 확실히 드라마를 오래 써 오셔서 그런지 캐릭터가 잘 살아 있는 것 같네요.”
우연히 같은 주제로 글을 썼고 서로의 글솜씨에는 놀랐지만, 경쟁 의식 같은 게 생긴 모양이었다.
“준형아. 그런데 갑자기 이건 무슨 경우냐? 왜 예전에 썼던 걸 보여 달라고 그러지? 저번에 네가 다시 써 보라고 해서 지금 다시 쓰고 있는데···.”
“응? 이 작가의 말을 듣고 다시 쓰고 있다고? 그거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시후는 최 작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마치 보여 줘도 되는지 물어보는 눈빛이었다.
“보여 드려···.”
잠시 후 시후가 다시 쓰고 있는 작품을 읽고 혀를 차는 최하나 작가였다.
“왜 그러시죠?”
“처음에 썼던 게 훨씬 좋은데? 소재도 그렇고···. 이건 너무 ‘사랑의 불시착륙’의 흥행 공식을 답습했는데?”
“어디가 답습인지는 모르겠네요. 전 사랑의 불시착륙을 본 적이 없습니다.”
뭔가 기 싸움으로 번질 것 같은 분위기가 되자 내가 급히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사실은 말이죠.”
나는 두 명의 작가에게 숨겨 왔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둘 다 나와 나유정을 모티브로 한 글이다 보니 그게 세상에 공개되는 게 싫었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솔직히···. 누가 보더라도 저와 유정 씨가 생각날 텐데 부담스럽긴 합니다.”
“으음···. 그게 그렇게 스트레스가 될지는 몰랐네.”
“후배님. 야구장에서 키스까지 한 사이가 뭐가 문제야?”
“그, 그건 최근 일이잖아요. 그리고 키스 아니었습니다.”
“다들 이제 궁금해하지도 않는다고! 결혼해서 애가 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걸? 이런 재미있는 소재로 드라마나 만들고 돈도 벌면 좋지. 안 그래?”
최하나 작가는 성격대로 속에 있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큭큭···.”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김시후가 웃음을 참아 가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하여간 그때 손을 떨면서 안 된다고 하는 이유가 그거였냐? 이 자식 이거 음흉하네.”
“하아···.”
제길···. 이미 버린 몸인가?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고(Go)해 버릴까? 지금 봐서는 두 명이 공동 집필해서 대본을 쓰면 좋겠는데···.
“일단···. 두 분 마음대로 하시고요. 제 생각에는 두 분이 공동으로 써 보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어떻게?”
“일단 기본적인 플롯은 최 작가님 글이 더 낫습니다. 여자 주인공의 심리도 그렇고요. 아무래도 드라마 시청자층은 여성이 많으니까요.”
최하나 작가는 내 말을 듣고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시후의 글은 남자의 심리가 잘 드러나 있고 대사라든지 문장력이 아주 뛰어나죠.”
그 말을 들은 시후가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제 생각인데요. 최 작가님 플롯에 시후가 글을 쓰는 겁니다. 최 작가님이 여주인공의 심리를 봐주는 거죠. 물론 서로 의견 충돌도 있을 거지만, 시후는 드라마를 작가님에게 배우고 작가님도 색다른 경험을 하시게 될 겁니다. 겉으로 보기엔 여리게 보여도 작품 세 개로 동시에 신춘문예를 뚫은 천재입니다.”
“음···. 내가 공동 집필이 좋게 끝나는 경우를 별로 본 적이 없긴 한데···.”
“그래도 아예 없는 케이스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최하나 작가는 다시 한번 시후의 얼굴을 천천히 뜯어보고 있었다.
“쓰읍···. 내 보조 작가들도 다 독립하고 손절한 녀석도 있어서 같이 쓸 작가가 없긴 해.”
“오! 그거 잘됐네요. 작가님. 이 기회에 제자 한 명 키우세요. 김시후! 너 인마. 얼른 제대로 인사드려라. 넌 매일 소설만 쓰느라 드라마를 잘 안 봐서 모르나 본데, 최하나 작가님 하면 우리나라에서 십 년 넘게 톱이셨던 분이야.”
“그럼 저번처럼 속이지 않을 거야? 무슨 여간첩이 나오면 좋겠다고 하면서 지금 헛고생하게 했잖아?”
“뭔 소리야. 솔직히 나는 그게 좋다고 생각해. 나 같으면 그렇게 썼을 거야. 그런데 그건 내 스타일이지 너나 최 작가님 스타일은 아니잖아. 그래서 그냥 썼던 대로 써 보라고 하는 거야.”
“······.”
“어떻습니까? 두 분?”
“뭐···. 한번 해 볼까?”
그렇게 두 명의 공동 집필이 탄생했다.
최하나×김시후, 베테랑과 순문학 천재의 만남이었다.
기본적으로 뼈대는 최하나 작가의 플롯과 대사가 쓰일 예정이었고 시후는 거기에 문장을 더하거나 좀 더 무게를 더하고 남자의 감정도 넣어서 자꾸 어긋나는 로맨틱 코미디로 살리기로 했다.
아 참···. 그리고 드라마의 제목은 처음 시후가 가져왔던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으로 결정됐다.
이미 버린 몸이라 그냥 돈이나 더 벌기로 했달까? 우리가 서로 호감이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어쩌면 더 속 편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나저나 언제 정식으로 고백을 해야 하지?’
타이밍을 놓쳐 버려서 그런지 난감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아···. 이 작가. 일단 일은 그렇게 진행하는 것으로 하고 내일 강의는 잊지 마. 한 시간 정도는 떠들어야 해. 뭐 일단 당신이 나온다고 하면 아주 난리가 나겠지만···.”
“에이···. 설마요.”
“후후···. 두고 보자고···.”
그렇게 최하나 작가는 J&J 스토리와 계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사무실에 혼자 외롭게 앉아서 내일 강의할 내용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음···. 내일 무슨 이야기를 해야 강의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요즘은 웹소설이 인기라 웹 소설 쪽으로 가닥을 잡고 강의를 해 볼까? 문예창작과라 잘 알지는 못하더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을 텐데···.’
솔직히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올 생각이었다. 대학 때 교수님도 만나고···. 생각해보니까 친한 교수님이 없네. 하긴 처음부터 웹소설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니 그럴 수밖에···.
‘그래도 아무것도 없이 말로만 하는 건 좀 그렇지?’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프레젠테이션을 켜고 강의용 PT를 만들기 시작했다.
* * *
오랜만에 방문한 모교의 교정.
9월 초라 2학기가 시작해서 그런지 학교에는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캬···. 좋을 때다. 학생들은 이 시기가 인생의 황금기라는 걸 잘 모르겠지?’
뭐···. 물론 최근에 취업난이다 뭐다 해서 어려워진 건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가장 싱그러운 젊음의 시기가 아니던가? 공부를 많이 하고 스펙을 쌓는다고 해도 역시 대학생 시기가 인생의 황금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인문대 교정 앞에서 최하나 작가와 만나 교수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한 교수님. 저 10학번 이준형이라고 합니다.
“오! 오랜만이네요. 기억이 나요. 키가 크고 활발하던 학생이었죠.”
기억하는 게 정말일까? 솔직히 믿기지 않지만, 그냥 맞장구를 쳐 주었다.
“네. 저도 교수님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계속 졸기만 했었다. 수업도 많이 제치기도 했고···.
“그나저나 급하게 강의에 응해 주셔서 고마워요. 갑자기 김 감독이 수술한다고 하길래 어쩌나 싶었는데···. 어쩌면 학생들이 더 좋아할 거 같은데요?”
“하하···. 좋아하긴요. 그냥 제 경험이나 좀 들려주고 가겠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정말 유익한 시간이 되겠네요. 최근 우리 과에서 배출한 입지전적인 인물의 강의를 듣게 되다니···.”
“어우···. 교수님 그런 말 하시면 사람들이 웃습니다.”
“아니에요. 저도 준형 씨 작품을 아주 감명 깊게 봤어요. 소설, 드라마, 영화, 심지어 연예 기획사까지···. 정말 대단하더군요.”
“과찬이십니다. 그냥 하다 보니 어쩌다 이렇게 됐네요.”
“재능과 노력의 결과입니다. 힘들더라도 꾸준히 글을 써 온 게 바로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되는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자···. 이제 강의 시간이 다 됐네요. 4학년들은 아마 이 강의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거예요. 곧 졸업반이잖아요. 다들 진로에 고민이 많습니다.”
그랬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하면 등단을 하지 않는 이상 어디 취업하기가 힘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마음을 잘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가실까요?”
우리는 한 교수를 따라 인문대 소강당으로 들어갔다. 강당에 들어가 보니 학생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었고 더러는 뒤에 서 있기까지 했다. 단상 위에는 ‘선배와의 만남’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갑자기 주목을 받으니 살짝 뻘쭘한 기분이 들었다. 학생들도 오기로 한 사람이 안 오고 다른 젊은 사람이 들어오니 의아하게 쳐다보는 중이었다.
“어?”
학생들이 하나둘씩 나를 알아봤는지 저마다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웅성웅성···.
갑자기 작은 소란이 일었다. 내 등장으로 학생들이 심하게 동요하는 모습이었다.
“아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문예창작과 한정대 교수입니다. 오늘 ‘선배와의 만남’ 행사에서 강의를 해 주기로 했던 김명환 감독님께서 일신상 문제가 생기셔서 급히 다른 선배님을 초빙했습니다. 아마도 TV에 자주 나오다 보니 아시는 분도 있을 텐데요. 최근 우리 과가 낳은 최대어라고 할 수 있겠죠. 바로 넷플릭 오리지널 시리즈 ‘나만 아는 세계멸망’을 쓰신 이준형 작가를 모셨습니다.”
대타가 나왔다는 한 교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단상 아래에서는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
응? 이건 무슨 반응이야?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함성에 깜짝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