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가 된 작가님 (1)
최하나 작가가 에이전시를 고려하고 있다고? 그런 정보를 왜 나한테 이야기하는 거지? 아무래도 J&J 스토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거 아닐까?
‘에이···. 설마···.’
현재 J&J 스토리는 주목할 만한 단체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작가 집단이며 단순히 작가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작가 친화형 조직이자 매니지먼트였다.
‘일단 들어 보자.’
“에이전시 말씀입니까? 십 년 넘게 잘해 오셨으면서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음···. 이 작가도 알 거야. SBC에서 망한 ‘차원의 군주’···.”
“아···.”
최하나 작가는 재작년 ‘차원의 군주’라는 작품을 집필했다. 국내에서는 기대와 다르게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슬기로운 덕질생활’에 형편없이 밀려 흥행에 참패하고 말았다.
그녀는 그때의 실패를 언급하고 있었다.
“국내에서만 실패했지 다른 나라에서는 그럭저럭 성공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거야 배우들 덕분이지. 워낙 팬들이 많은 애들이잖아.”
“글쎄요. 그게 꼭 배우 때문은 아닌 거 같습니다. 작가님이 기존과 다르게 파격적인 주제를 다루신 것도 있었고···.”
“아니야. 문제는 아무도 그 작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거야. 전혀 흥미와 감동을 주지 못했다고 할까? 시청률이 저조해도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작품이 있지. 그런데 내 작품은 그렇게 되지도 못했어.”
그녀는 정말 고민에 빠진 표정이었다. 하긴 그전부터 슬럼프다 뭐다 하는 말이 많았었지.
“다음 작품을 시작하기 힘드네. 뭘 써야 할지 모르겠고···. 십 년간 달려온 피로가 누적된 것 같아.”
“선배님은 분명 이겨 내실 겁니다. 제가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요···.”
상 위를 쳐다보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라봤다.
“이 작가가 아니면 누가 조언할 수 있겠어? 혹시 나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난 글 쓰는 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야. 왠지 나이를 먹고 대중들의 보편적이고 메이저한 감성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 절실해 보였다. 지금껏 그 정도로 버셨으면 충분할 것도 같은데 천생 글쟁이인 것 같았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어쩌다 이야기를 들으니 이 작가 회사에 작가 매니지먼트가 있다던데? 내가 거기와 계약할 수 있을까?”
“네? 거긴 이제 걸음마 단계인 말 그대로 창작 집단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냥 작가 편의를 도와주고 교정·교열 정도를 해 주는···.”
“그런가?”
“네. 작가들도 죄다 웹소설 작가들이고···. 아···. 신춘문예 출신인 제 친구가 한 명 있긴 합니다. 그 친구는 드라마를 쓰고 있어요.”
“내가 다른 곳을 생각한다면 훨씬 좋은 조건으로 모셔 가겠다는 곳이 많아. 하지만 난 다른 건 필요 없고 후배님 의견을 듣고 싶어. 이번 작품을 보면서 그걸 느꼈지. 누가 나한테 필요한 사람인지···.”
그녀는 정확하게 나를 찍어서 원하고 있었다.
“아···. 이거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제가 뭐라고 선배님 글에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아니야. 글은 혼자 쓰는 거지만 감각은 영원하지 않잖아. 옆에서 잘 봐주는 사람도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해. 지금 내 주위에는 나에게 제대로 말을 해 줄 사람이 없어.”
나는 절실해 보이는 최하나 작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말을 해 줄 사람이 없다는 말이 얼핏 이해되기도 했다. 대가의 글을 누가 함부로 평가한다는 말인가? 그냥 읽어 보고 이상하더라도 좋다고 하는 사람들밖에 없겠지.
“저희 J&J 스토리는 성역 없는 비평을 추구합니다. 만약 그런 걸 원하신다면 듣다가 기분이 나쁘실 가능성도···.”
“그래. 내가 필요한 게 바로 그런 부분이야. 그런 새로운 감각! 요즘 웹툰, 웹소설이 속속 드라마, 영화화가 되고 있잖아. 나도 이제 그런 식으로 좀 더 발전해야 해. 후배님 회사도 소설 저작권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하려는 거 아니었어?”
“맞습니다. 장기적으로 그런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설에서 파생되는 것을 웹툰, 게임, 드라마, 영화 등으로 이어 나가는 게 저희 장기 전략입니다.”
“어떤가? 내가 그래도 드라마 바닥에서는 이름깨나 날리는 사람이지 않은가? 내 이름값만 해도 자네 회사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선배님께서 오신다면 저야 무조건 환영이죠.”
“가면 내 글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도 하고 작업도 같이할 텐가?”
그녀의 눈빛이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열정이 있다더니 정말 대가의 눈빛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무, 물론이죠. 선배님.”
“그래. 좋았어. 그럼 점심을 먹고 회사에 들러서 계약을 하도록 할까?”
“벌써요?”
“왜? 안 내켜?”
“그럴 리가요? 너무 급하게 진행하시는 거 같아서요.”
“나야 뭐 어디 묶인 곳이 없는데 무슨 상관이 있나? 그냥 마음 내키면 해 버리면 되는 거지.”
“하하···. 뭐 그럼 그리하시죠.”
최하나 작가는 여장부 같은 스타일로 일을 시원시원하게 진행했다. 나는 그녀의 행동을 보며 머릿속으로 그녀가 합류했을 때의 상황을 떠올려 보고 있었다.
‘갑자기 J&J 스토리의 무게감이 달라지는데? 일단 작가님이 쓰고 계신 작품을 한번 보고 의견을 나눈 뒤 드라마화를 해야겠지?’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웹소설 작가들의 성공적인 차기작 론칭과 웹툰 ‘천외딸’의 퀄리티 유지, 그리고 최하나 작가님의 드라마까지···. 할 일이 산적해 있는 느낌이었다.
‘후···. 하나하나씩 해결하자.’
“아···. 선배님. 일단 J&J 스토리에 합류하시는 거는 회사에 가서 계약하면 될 거 같구요. 아까 처음에 하셨던 이야기 중에 제가 무슨 강연을 해야 한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요?”
수정과를 마시고 있던 최 작가가 이제 생각났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 김명환 감독 알지? 우리 학교 동문이잖아. 나랑 같이 문창과, 연극영화과 합동 강의를 하기로 돼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하혈을 하고 입원해 버렸지 뭐야.”
김명환 감독이라면 예전에 꽤 유명한 영화감독이었고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도 했던 분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분도 우리 학교 출신이셨다는 걸 얼핏 들은 것 같았다.
“그런데 하혈이라뇨?”
“어···. 치질···. 갑자기 터졌나 보더라고···.”
“······.”
“자네도 조심해. 작가들은 항상 앉아 있고 운동을 안 하는 사람도 많다 보니 잘못하면 김명환 감독처럼 될 수도 있어.”
“그런데 그 선배님은 감독님이신데···.”
“그 양반은 작품을 직접 쓰잖아. 그래서 그래.”
“아아···.”
“학교 측에서 나한테 혹시 다른 사람 급하게 구할 수 없냐고 물어보길래 후배님한테 권하는 거야. 솔직히 우리는 다른 후배들을 만나고 이야기할 자리가 거의 없거든. 거기 가서 강의하고 이야기도 하면 기분도 좋아지고 젊어진 것 같고 아이디어도 막 샘솟아. 꼭 해 봐. 내가 추천하는 거야.”
“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보니···.”
최하나 작가는 내가 머뭇거리자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혀를 차고 있었다.
“이 작가. 지금 후배들 사이에서 제일 핫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 바로 자네야. 웹소설, 웹툰, 소설, 드라마, 영화까지 전부 하는 사람이 자신이 없다면 도대체 누가 강의를 한다고 그래?”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
“참···. 기만자네 기만자야. 너무 그러는 것도 가식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해.”
“······.”
“할 건가?”
“···네. 1시간이면 그냥 편안하게 이야기나 하다 오죠. 뭐.”
“그래, 잘 생각했어. 어렵지 않아. 오히려 후배들이 이 작가의 포스에 눌려서 우러러볼걸?”
“예? 설마요.”
“후후···. 가 보면 알 거야. 아 참! 연극영화과와도 같이하는 거라 소설뿐만 아니라 제작 관련된 이야기도 해 주면 좋을 거야.”
“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거 오늘 저녁에 준비 좀 해야겠는데요? 기껏 강의했더니 학생들이 졸거나 그러면 민망할지도 모르겠네요.”
“졸긴 누가 졸아? 그럼 그게 미친 거지. 가장 잘나가는 작가의 특강인데?”
자꾸만 추켜세워 주는 최하나 작가의 말이 살짝 부담됐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오기로 했다.
내일 가서 무슨 말을 할지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는 찰나, 최하나 작가가 갑자기 몸을 돌려 노트북을 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 작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한번 봐줄 수 있겠나?”
그녀는 노트북을 켜고 액정을 내 쪽으로 휙 돌려서 손으로 들이밀었다. 이제는 한 식구가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거침이 없는 최하나 작가였다.
“대본이네요?”
“맞아. 필이 받아서 며칠 전부터 쓰던 거야. 이 작가에게 꼭 보여 주고 싶어서 가져왔어.”
“제가 보고 이야기해 드리면 되는 건가요? 이 자리에서요?”
“지금 그럴 시간은 없겠지? 그럼 시놉시스만 읽어 봐.”
“예. 한번 볼까요?”
파일을 다시 여는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최하나 작가도 여느 작가와 마찬가지로 신작을 남에게 처음 보여 주는 것은 떨리고 흥분되는 모양이었다.
“자···. 여기 시놉시스야. 한번 읽어 봐.”
나는 그녀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노트북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하늘색 바탕 위에 검은 글자가 나타났다.
‘으응? 자, 잠시만···.’
최하나 작가의 시놉시스를 읽는 순간 머리칼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서, 설마?’
[#가제: 내 매니저는 까칠한 작가님]
[#장르: 현실감 있는 연예계물을 쓰고 싶어 하는 신비 작가 김준영, 실상을 체험하기 위해 기획사에 들어가고···. 마음이 닫힌 여배우의 로드 매니저로 첫발을 내딛는데···.]
또다시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났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노트북 화면을 소리 나게 덮어 버렸다.
탁···.
“응? 왜 벌써 닫는 거야?”
“안 됩니다.”
나는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 정도로 복잡했지만, 눈에 힘을 주고 그녀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응? 뭐, 뭐가 안 돼?”
최하나 작가는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하···. 선배님. 이거 저랑 유정 씨 이야기지 않습니까?”
“어허···.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 어쨌거나 소설은 허구란 말이지.”
“선배님. 말씀 돌리시지 말고 솔직히 이야기해 보시죠.”
“뭘 말인가?”
그녀는 아직도 시치미를 뚝 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거 때문에 우리 회사에 들어오신다고 하신 거잖습니까? 저랑 유정 씨를 가까이서 보려는 심산이시죠?”
“이 작가. 그건 오해야. 원래 에이전시에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고, 차기작은 유정이와 연락을 하다가 우연히 떠오른 아이디어야.”
‘아···. 머리야. 짜증 나네. 김시후 녀석을 겨우 돌려 놨더니 이제는 대선배인 최하나 작가까지···.’
혈압이 올라서 그런지 손으로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 나는 이런 반응이 나올지 상상도 못 했네. 오히려 좋아할 줄 알았어.”
“······.”
“유정이랑 통화하다가 예전에 후배님이 말했던 게 생각이 나서 쓴 거야.”
“···제가 그때 뭐라고 했는데요?”
“어쩌다 매니저를 하고 있냐는 내 질문에 연예계 관련 소설을 쓰다가 리얼한 현실을 파악해 보려고 입사했다는 농담을 했었지.”
‘와···. 그게 트리거가 됐다니! 웹소설 쓰다가 어찌어찌 흘러온 걸 밝히기 뭐해서 그냥 그런 식으로 농담을 한 게 나비효과가 되어 까마득한 선배인 최하나 작가가 이런 글까지 쓰게 되다니···.’
“미쳤···.”
“응? 미쳤다고? 아무리 내가 소재를 가져다 썼다지만 미쳤다는 건 좀 심한 거 같은데?”
“아니···. 그게 아니라 상황이 미친 것 같다는 겁니다. 이게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드라마를 준비하는 신춘문예 출신 친구도 작가님하고 비슷한 글을 써 와서 하는 말입니다.”
“뭐? 그게 정말이야?”
비슷한 글이 있다는 말에 나보다 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 최하나 작가였다.
“호, 혹시 그거 좀 볼 수 있겠나?”
“지금 당장은 없고···. 좀 이따 회사에 가면 작가를 직접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눈에 띄게 당황하는 최하나 작가를 보고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김시후와 최하나 작가가 공동 집필을 하면 어떨까 싶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 둘이 써 온 게 비슷하기도 하고···.’
그런데 생각해 보니 시후를 겨우겨우 설득해서 다른 노선으로 가게 했다는 게 떠올랐다.
‘하···. 이것 참 애매하네. 뭐 일단 회사에 가서 이야기를 해 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