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01화 (201/263)

야구장에서 생긴 일

마운드와 홈플레이트의 거리가 상당히 멀기 때문에 시구자 대부분은 마운드 앞에서 던지는 게 일반적이었으나, 리리는 마운드 위의 투수판에서 정식으로 공을 던졌다.

슈욱···. 퍼억···.

류현준 선수와 비슷한 메커니즘을 가진 아주 매끄러운 투구 폼이었다. 리리가 풀스윙으로 던진 공이 포수의 미트에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정확히 바깥쪽으로 제구된 스트라이크였는데, 구속이 전광판에 찍히자 관중석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

마치 홈팀이 역전 홈런을 친 것 같은 열광적인 반응이었다.

“미, 미쳤다. 95km···.”

그야말로 역대급 시구였다. 폼, 구속, 로케이션···.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부터는 이 시구 영상으로 인터넷이 뜨겁게 달궈질 것 같았다.

리리는 공을 던진 후 관중석에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타자로 나섰던 이지령은 엄청난 구속에 놀라 배트도 휘두르지 못하고 그냥 멍하니 있다가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준형 씨. 왜 그래요? 리리가 던지니까 사람들이 엄청 놀라던데. 잘 던진 거예요?”

“잘 던진 게 아니라 일약 스타로 등극하는 순간입니다. 왕위 계승식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앞으로 여자 연예인 시구에서는 무조건 첫 번째로 언급될 겁니다.”

“그, 그 정도예요?”

“제가 알기론 일본에 100km가 넘는 공을 던지는 모델이 있다고 하던데, 제가 생각하기엔 그녀도 우리 리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네? 비교할 수가 없다고요? 더 빠르다면서요?”

“아···. 쉽게 설명하자면 리리의 투구 폼은 메이저리그를 호령 중인 KBO 출신의 류현준의 폼과 비슷합니다. 제구력도 확실하구요. 쉽게 칠 수 없는 공이죠.”

“그러니까 류현준 선수처럼 뛰어나다는 거죠?”

“네. 왜 야구를 안 시켰는지 의아할 정도랄까요? 물론 그러면 우리 아우라가 곤란하겠지만···.”

“뭐야. 그럼 야구 안 한 게 다행이네. 아우라에서 우리 메인 보컬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그건 인정···.”

나는 유정 씨와 치킨을 나눠 먹으며 신나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날씨가 상당히 더워서 그런지 콜라가 쭉쭉 들어갔다.

“크으···. 시원하다.”

“아우···. 아재처럼 그런 소리 좀 내지 말아요.”

“탄산 때문에 그러는데 무슨 아재입니까! 생사람 잡지 마세요.”

“30대면 이제 아재죠.”

“정신 연령은 스물다섯입니다.”

“정신 연령이 저보다 어리다구요? 뭐야···.”

“······.”

“어쨌거나 이렇게 야구장에서 먹으니까 진짜 맛있네요.”

“그렇죠? 이게 바로 야구장을 찾는 묘미입니다. 원래 치킨엔 맥주인데···. 운전을 해야 하니 아쉽군요.”

“제가 할 테니까 맥주 마실래요?”

“정말요? 그래도 되겠어요?”

“못 할 건 또 뭐예요. 저번에도 제가 운전해서 계룡까지 내려갔잖아요.”

“음···. 고민되네. 어떡하지?”

“저기요. 맥주 좀 주세요.”

내가 주저하자 그냥 쿨하게 맥주를 그냥 시켜 버리는 게 아닌가!

‘운전해 준다면 땡큐지 뭐···. 에라 모르겠다.’

맥주보이에게 시원한 맥주를 건네받고 있는데 시구를 마친 이지령과 리리가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수고했어요. 오랜만에 언니즈가 열일 하셨네요?”

“언니 고생했어. 사람들 반응 봤어? 대박이야. 이러다 우리 한국에서 인지도도 확 올라가는 거 아냐?”

“리리 언니가 엄청 고생했지. 투어 때문에 바쁜데도 이것 때문에 매일 운동했잖아.”

어린 녀석들, 그러니까 예원, 담희, 유리가 치킨을 먹으면서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얘들아 정말 고생했다. 리리야. 진짜 멋있었어. 굿!”

나는 길을 살짝 비켜 주며 리리에게 엄지 척을 날려 주었다.

“구속이랑 컨디션을 끌어 올리느라 진짜 힘들었는데 그래도 반응이 좋으니 싹 잊히네요. 대표님 말을 듣길 잘한 거 같아요.”

“그래. 내가 언제 너희한테 안 좋은 거 시키는 거 봤니? 다 너희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딱 봐도 너는 야구에 소질이 보이는데 재능 낭비할 필요가 없어요. 넌 앞으로 매년 야구장 시구 고정이다. 하하···.”

시원한 맥주와 치킨을 함께 먹으니 저절로 기분이 업되고, 안 해도 될 말을 쓸데없이 길게 하는 것 같았다.

“이 대표님? 잔소리 좀 그만하시지요?”

옆에 앉은 나 이사가 내 잔소리에 혀를 차고 있었다.

“하···. 이거야 원. 남들은 내 케어를 못 받아서 안달인데···.”

“네네···. 알겠구요. 그거 남은 맥주나 얼른 들이켜세요. 한 잔 더 시켜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치맥을 즐기며 한가롭게 야구를 즐기고 있었다.

한편 대전 하나 파이어버드는 리리의 위력투 덕분인지 초반부터 점수를 팍팍 내며 5:0으로 앞서고 있었고, 유정 씨와 아우라는 득점을 할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즐거워했다.

나는 야구 룰을 잘 모르는 유정 씨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유정 씨는 정말 야구를 하나도 모르시네요?”

“야구장도 오늘이 처음이라니까요.”

“예전에 시구는 왜 안 하셨어요?”

“글쎄요. 왜 안 했을까요? 아마 제가 야구에 대해 별로 좋은 기억이 없어서 그랬을 거예요.”

“좋은 기억이 없다고요?”

그녀는 나에게 예전에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토요일마다 아빠가 TV로 야구를 시청하곤 했는데, 그거 때문에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못 보고 점심에 아빠가 손수 끓여 준 라면만 먹으면서 옆에서 졸기만 했다는 거다.

‘어라? 내가 생각하기엔 안 좋은 기억이 아니라 추억인 거 같은데···. 뭐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거겠지.’

유정 씨와 야구 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4회가 끝나고 공수 교대가 이루어졌다.

갑자기 전광판에 ‘Kiss Time’이라는 글자가 뜨더니 1루 쪽 커플이 화면에 등장했다.

“어머··· 저런 이벤트도 해요?”

“저거 하면 선물도 주고 그러거든요. 카메라맨이 미리 봐 두고 있다가 비추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구나. 재밌겠다.”

“······??”

전광판에는 두 번째 연인이 부끄러워하더니 오히려 여자 쪽에서 얼굴색을 바꾸고 과감히 키스를 시도했다.

“응?”

갑자기 등에 소름이 주르륵 돋더니 세상이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모든 현실이 느리게 흐르는 그런 느낌이랄까? 멀리서 보이는 카메라맨이 왠지 다음 순번으로 나를 비출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서, 설마···.’

그렇게 카메라를 피하려고 궁둥이에 신호를 보내려는 그 순간!

야구장의 전광판에 나와 나유정의 얼굴이 떡하니 잡히고 말았다. 주위에 앉아 있는 아우라의 출연은 덤···.

우와아아!!

장내가 떠나가듯 커다란 함성이 울려 퍼졌다. 관중들이 나유정과 나의 얼굴을 알아본 것이다.

나유정도 처음에 흙빛이 되는 내 얼굴을 의아하게 바라보더니 전광판에 자신의 얼굴이 나오자 깜짝 놀라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엄마야···.”

그녀는 살짝 놀랐지만 이내 어떻게 할 거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원래 야구장에서는 분위기에 휩쓸려 애인이 아닌 경우에도 키스하는 예도 있었는데, 만약 커플이 키스하지 않는다면 장내 아나운서가 멘트를 하면서 적절히 다른 커플로 옮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 야구장 놈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 알아서 옮길 것이지, 절대로 카메라를 돌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관중들이 손을 들고 다 같이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키스해! 키스해!”

옆에 있는 아우라 멤버들이 더 광적으로 외치고 있는 상황!

‘제길···. 키워줘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니까? 휴···. 어쩔 수 없나? 임시로 이렇게라도 해야···.’

나는 유정 씨의 양팔을 덥석 붙잡았다. 그리고 그녀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와아아!!”

휙···.

나는 카메라를 등지며 몸을 틀어 유정 씨가 화면에서 아래로 사라지게 했다.

이른바 쌍팔년도식 드라마에 나오는 가짜 키스를 연출하는 방법이었다.

키스했는지 어땠는지 본인들만 아는 그런 자세랄까? 물론 나와 유정 씨의 입술은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았다.

야구장의 카메라맨도 내가 그 정도 연기를 보여 주자 그제야 우리를 놓아 주었다.

“괜찮아요?”

나는 내 품에 안긴 나유정을 황급히 일으켜 세웠다.

“괘, 괜찮아요. 깜짝 놀랐잖아요.”

“미안해요. 이렇게라도 안 하면 카메라를 돌리지 않을 것 같아서요.”

“······.”

내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정신 차려! 이준형! 우린 아직 소울메이트란 말이다.’

“에이···. 좋다 말았네요. 옆에 있다가 대표님 머리를 그냥 팍 누를 뻔했어요.”

옆에 있던 김담희가 맥이 빠진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담희야. 만약 그렇게 했으면 넌 지옥을 맛봤을 거야.”

나는 평소와 다르게 눈을 부라리며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우리 드라마 찍을 때, 내가 너는 특별히 신경 써서 안 씻는 캐릭터로 등장시켜 줄게.”

“으악!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죠. 우리 멋진 대표님이 왜 그러실까요?”

“노노···. 갑자기 좋은 캐릭터가 떠올랐어. 예쁜데 암내가 심한 이중적인 캐릭터야. 어때?”

“시, 싫어요. 극혐!”

“알았으면 적당히 해라. 응?”

“넵! 죄송합니다. 대표님.”

담희가 당황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대표님! 전 찬성이요. 암내 캐릭터가 너무 강렬한 거 같아요. 전 그 역할이 담희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장예원! 그게 맘에 들면 네가 하든가!”

“나는 향기 나지롱.”

“이게!”

막내 라인이면서 앙숙인 담희와 예원이가 또 한 번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냄새나면 데오도란트 쓰면 되지.”

옆에서 열심히 치킨을 먹고 있던 리리가 뜬금포로 좌중을 멈칫하게 했다.

‘어휴···. 유치하게 내가 애들하고 뭐 하는 짓이지?’

옆을 보니 유정 씨 표정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험험···. 얘들아. 너희들 5회 끝나면 저기 아래서 공연해야 하잖아. 이제 그만 먹고 준비 좀 하자.”

내 말을 들은 아우라 멤버들은 입에 묻은 기름기를 닦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자자. 힘내자. 멋지게 하고 오는 거야.”

“네! 대표님. 잘하고 올게요. 파이팅!”

5회 클리닝 타임 때 아우라의 특별 공연이 펼쳐졌다. 야구장을 찾은 팬들이 아우라의 데뷔곡 ‘Return’에 맞춰 흥겹게 춤을 췄다.

아우라는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많은 박수를 받으며 무대를 내려왔다.

“와···. 꼭 콘서트 하는 거 같다.”

“그러게. 미국에서 콘서트 하는 거랑 비슷하네.”

담희와 예원이가 별것 아니라는 표정을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헬게이트와 월드 투어를 돌다 보니 확실히 경험이 쌓인 것 같았다.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그렇게 즐거운 야구장에서의 추억을 뒤로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내가 맥주를 마셔서 계룡의 촬영장은 들르지 않기로 했다. 다시 좁은 공간에 유정 씨와 있다 보니 아까 민망했던 일이 떠올랐다.

“미안해요.”

“뭐가요?”

“···제가 운전을 해야 하는데···.”

“괜찮아요. 저도 운전하는 거 좋아하잖아요.”

그 말을 하려던 게 아닌데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유정 씨. 제가 언젠가는 정식으로···. 좀 늦은 거 같긴 하지만요.”

“준형 씨···.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우리가 괜히 소울메이트겠어요?”

유정 씨가 웃으며 하는 말이 내 걱정을 다소나마 덜어 주었다. 그녀는 나에게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날 저녁···. 두 개의 기사가 스포츠란과 연예란을 메인으로 장식했다. 하나는 시구계의 레전드로 등극한 리리의 투구 영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전 야구장에서 잡힌 나와 나유정의 쌍팔년도 키스 연기였다.

[아우라의 메인 보컬 리리 무려 95km의 광속구를 던져···.]

[아이돌 시구의 정석! 완벽한 폼, 정교한 로케이션, 그리고 파이어볼! 시구계의 끝판왕이 등장하다!]

[‘리리’ 부친은 빠던으로 유명한 이재원 선수, 어렸을 적부터 부친에게 야구 배워.]

[야구장 키스 타임에 나유정이 등장! 상대는 소울메이트 이준형 작가!]

[진짜 키스? 아니면 연기? 대전 야구장에 사랑 걸렸네.]

“어휴···. 마지막 기사 쓴 기자 누구야? 제목 센스 하곤···. 쯧쯧···.”

이수현과 정주빈의 열애설과 아우라의 시구, 그리고 나와 나유정의 야구장 키스 타임 기사들은 곧 공개될 넷플릭 시리즈 ‘나세멸’에 엄청난 홍보 효과를 가져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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