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00화 (200/263)

넷플릭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 발표회 (2)

“이수현 씨와 정주빈 씨 두 분은 정확히 어떤 관계이신가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반찬을 그렇게 격주로 가져다준다는 것 자체가 살짝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서울과 강원도를 왕복하고 계시는 거 아닙니까?”

강기남 기자의 질문에 MC와 배우 그리고 다른 기자들까지 이수현의 입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물어보기에 적합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가 그동안 써 온 저질 기사들로 봤을 때 충분히 나올 법한 무례한 질문이기도 했다.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린 내가 MC 박주선에게 손으로 커트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니 그 제스처를 이해한 박주선이 마이크를 들고 급히 강기남 기자를 제지했다.

“기자님. 죄송합니다. 이곳은 ‘나만 아는 세계멸망’ 제작 발표회입니다. 관련 없는 질문은 삼가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사람들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거리고 있었다.

“저기요. 잠시만요. 제 질문이 드라마와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두 분 모두 이 드라마에 배우로 출연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음침하게 생긴 강기남 기자는 손가락으로 안경을 밀어 올리며 MC의 말에 날카롭게 응수했다.

‘제길···. 의외로 설득력 있어.’

나도 모르게 강 기자의 질문이 전혀 엉뚱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시금 모든 사람의 눈이 이수현을 향하고 있었다. 아까만 해도 똑 부러지게 말을 하던 그녀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진 것 같았다.

‘어? 수현 씨! 거기서 얼굴을 붉히시면 안 되는데···.’

“저, 그, 그게···.”

‘어라? 말까지 더듬으시고···.’

갑자기 옆에 있던 정주빈이 급히 대타 요원으로 출격했다.

“제가 대신 말씀드리겠습니다. 수현 씨는 고인이 된 제 아내의 절친이었습니다. 은둔 생활을 하는 제가 안타까운 나머지 저에게 반찬을 가져다주는 게 습관이 돼서···.”

‘어허···. 그 해명이 더 이상한데···. 에라 나도 모르겠다. 저번에 방송에서 그런 말을 할 때부터 왠지 이런 사달이 나겠구나 싶었는데 여지없었다. 하필이면 하이에나 강기남에게 걸리다니!’

다다 다닥다닥···. 다다다닥···.

기자들의 키보드 소리가 단상 위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이수현은 얼굴이 벌게져 고개를 숙이고 테이블만 쳐다보는지라 더욱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수습이 안 되는 것 같아 나라도 나서야 할 듯싶었다.

나는 정주빈에게 손짓을 해서 마이크를 달라고 했다.

“음···. 제가 캐스팅을 하려고 주빈 씨를 찾아갔을 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 있죠? 거기 나오시는 분인 줄 알았어요.”

“하하하···.”

“사실입니다. 정말 그 모습을 보셨어야 해요. 그때 저도 많이 놀랐었고 친분이 있는 수현 씨가 그것 때문에 걱정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정말로 반찬이라도 안 가져다주면 뒷산에 올라가 사냥으로 끼니를 해결하실 것 같았거든요. 살짝 과장해서요···.”

“하하하···.”

내 개드립에 기자들도 웃겼는지 실소를 터트리는 모습이었다.

“주빈 씨. 안 그렇습니까? 제 말이 잘못됐습니까?”

“···인, 인정합니다. 사실 좀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정주빈도 당황한 얼굴로 내 말에 수긍하는 눈치였다. 본인도 뭔가 수현 씨의 이상한 점을 느낀 모양인지 자꾸만 그녀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고 있었다.

‘이제 이상하다고 느꼈겠지.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2주에 한 번씩 직접 방문을 하다니···.’

내 앞가림도 못 하는 주제에 남 일에 참견하는 게 우습긴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공식 석상 아니던가? 무탈하게 제작 발표회가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 그럼 이것으로 모든 순서를 마치고 간단한 사진 촬영이 있겠습니다.”

MC 박주선이 급히 마무리 멘트를 하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렇게 제작 발표회가 끝나자 관련 기사들이 온라인에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한국형 좀비 아포칼립스 ‘나만 아는 세계멸망’ 다음 주 넷플릭 오리지널 시리즈 1시즌 대공개!]

[‘나만 아는 세계멸망’의 김호진 감독 “이번 작품으로 제 역량을 보여 드리겠다!”]

[넷플릭 측 ‘한국형 좀비 아포칼립스로 차원이 다른 몰입감을 선사할 것!’]

[이준형 작가 ‘배우 이희진의 연기력은 원래 문제없어···.’ 문제가 있다면 해당 작품이···.]

[넷플릭 신작 제작 발표회 ‘나세멸’의 주인공 정주빈 ‘나와 비슷한 주인공을 보게 될 것!’]

[핑크빛 기류? 정주빈, 이수현 서로 ‘2주마다 만나는 사이?’]

[TVM 어색한 캠핑에서 정주빈과 이수현의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과연 그 진실은?]

그날 저녁 온라인 포털 사이트에는 정주빈과 이수현의 열애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실시간 화제를 점령하고 있었다. 더구나 제작 발표회에서 얼굴을 붉힌 이수현의 사진 때문에 사람들의 입에 더욱 오르내리고 있었다.

원래라면 잠깐 뜨고 말았을 신규 드라마에 대한 제작 발표회 소식이 이번 이슈로 끊임없이 인터넷에 회자되었고, 이로써 ‘나세멸’은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다음 날 나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서 관련 이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출근했어요?”

나유정이 옆문을 밀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나 이사님. 이렇게 일찍 어쩐 일이십니까? 요즘 예능 촬영하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신 거 같던데요.”

“한창 바쁘다가 한가하다가 그러는 거죠. 지난주에 녹화 다 끝나서 이번 주는 이제 좀 한가해졌어요. 혹시 연락 못 해서 삐졌어요?”

“거참···. 제가 어린애도 아니고···. 그런 거 아닙니다.”

나유정은 굳은 내 얼굴을 보며 가볍게 웃고 있었다.

“수현 언니 기사 봤어요? 정말 사람들이 궁금해하도록 사진하고 제목을 교묘히 올렸던데요.”

“······.”

그녀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호기심이 일었는지 가까이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준형 씨는 다 알고 있죠?”

“뭘요?”

“뭐긴 뭐예요. 수현 언니와 주빈 씨 사이 말이에요.”

“제가 아는 한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건 뭔가 썸씽이 있다는 거네. 호호···.”

“두 분이 알아서 하도록 놔둡시다.”

“수현이 언니가 주빈 씨 짝사랑하는 거 아니에요?”

“어허···. 그냥 모른 척하자니까요.”

“맞네···. 안 그래도 저번에 캠핑 간다고 하니까 계속 귀찮게 이것저것 물어보던데···.”

“······.”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기분이 좋은 것 같아 그냥 놔두기로 했다.

똑똑···.

누군가가 내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조아린 팀장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이사님.”

“아! 조 팀장님, 오랜만이네요.”

둘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지 서로 웃으며 안부 인사를 묻고 있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아이돌 덕후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지 잘 통하는 것 같았다. 물론 유정 씨가 그런 사실을 공개한 적 없었지만, 은연중 선수끼리는 통하는 것 아니겠는가?

“조 팀장님, 아침부터 무슨 일이시죠?”

“아···. 네. 오늘 아우라의 프로야구 시구가 있습니다.”

“아 참···. 그게 오늘이었지? 애들은 준비가 다 됐나요?”

“네. 안 그래도 매니저에게 연락해 보니 잔뜩 기대에 차 있다고 합니다.”

마침 아우라는 일본 공연을 마친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어서 시구 일정과 딱 맞아떨어졌다. 하나 파이어버드 구단 관계자들이 관련 영상을 봤는지 오늘 시구자로 메인 보컬인 리리를 선정했다.

리리는 현재 파이어버드 코치로 일하고 있는 이재원 선수의 딸로, 구단에서도 이런 사항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혹시 야구장에 제 자리도 있을까요?”

나와 조아린 팀장이 이야기하고 있으니 유정 씨가 슬쩍 끼어들었다.

“왜요? 야구 보고 싶어요?”

“한 번도 경기장에 가 본 적이 없어서···.”

“아···.”

나유정은 실제 야구 경기 관람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구단에서 자리를 넉넉하게 내줘서 두 분이 가셔도 큰 무리가 없을 겁니다.”

“예? 저도요?”

“뭐예요. 그럼 저 혼자만 보내려고 했어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이것저것 일이 좀 있으니까···.”

“다음 주에 드라마 공개되는데 뭐 바쁠 게 있어요.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야구나 보러 가요.”

그녀의 말에 내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음···. 뭐 어차피 경기장이 대전이니까 야구를 보고 잠깐 촬영장에 들러도 되겠네.’

이미 오늘부터 2시즌 제작에 돌입한 상태였다. 사전에 1시즌의 준수한 퀄리티를 확인한 넷플릭 관계자들이 2시즌도 최대한 빨리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나유정과 함께 아우라의 시구가 있을 대전의 하나 파이어버드 구장으로 향했다.

아우라는 밴으로 움직이고 나와 나유정은 따로 유정 씨 차로 움직였다. 그녀는 대전으로 가는 내내 이수현과 정주빈의 관계에 대해서 캐묻고 있었다.

“그러니까 수현이 언니가 주빈 씨를 짝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는 거죠?”

“하···. 진짜 비밀로 해야 합니다. 저도 확실치가 않아요. 그냥 그런 눈치였어요.”

나는 유정 씨의 등쌀에 못 이겨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살짝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우리가 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수현이 언니 혹시 결혼 전부터 주빈 씨를 좋아한 거 아냐? 와···. 이거 완전 드라마네요. 그 뭐더라? 노래 제목도 있는데···.”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앗! 맞아요. 그거다. 잠시만요.”

“뭐 하는 거예요.”

갑자기 차 스피커에서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좀 로맨틱하네요. 수현이 언니가 그런 아픔이 있었다니···.”

‘어휴···. 신났네! 신났어. 누가 라이벌 아니랄까 봐···.’

나유정과 이수현은 다소 이상한 관계였다. 드라마를 찍으며 친해졌지만, 연기에 있어서는 은근한 라이벌 관계였다. 특히 여우주연상을 이수현이 수상하면서 뭔가 복잡한 관계가 형성된 것 같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남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관계랄까?

* * *

야구장에 도착한 우리는 미리 와서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하고 있는 리리를 찾아갔다. 리리의 옆에는 중년 남성 한 분이 묵묵히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아버지인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이준형이라고 합니다. 리리 아버님 되시죠? 이재원 선수···.”

“아! 대표님. 처음 뵙겠습니다. 리리 아빠 되는 사람입니다.”

“예전에 TV에서 많이 봤습니다. 특히 그 빠던은 정말 예술이었죠.”

“하하···. 부끄럽습니다. 제가 소싯적에 참 못 할 짓 많이 했나 보네요. 다들 그 이야기만 하시니···.”

리리의 부친은 확실히 운동선수다웠다. 이제는 나이를 먹어 예전 같진 않지만 건장한 체격에 어깨가 다부졌다.

“리리가 아버님을 닮아서 키도 크고 운동 신경이 좋은 거 같네요.”

“감사합니다.”

쉬익···. 퍽···.

쉬익···. 퍽···.

“와우! 나이스!”

“구속 미쳤는데? 이 정도면 역대급 아냐?.”

리리의 공을 받아 주는 백업 포수가 상당히 놀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리리는 시구가 확정되고 나서 내 지시에 따라 근력 운동을 많이 했는데, 그 결과로 구속이 올라가고 포수의 미트에 공이 박히는 소리조차 심상치 않았다.

‘오···. 리리가 구속을 많이 끌어 올린 것 같은데···.’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리리의 부친이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아들이 없어서 억지로 시키긴 했는데 하다 보니 흥미가 생긴 것 같습니다. 자질도 있는 거 같고요. 허허···.”

“저건 타고난 겁니다. 같은 멤버인 담희는 죽어도 안 될걸요?”

“대표님! 저 음해하지 마세요.”

‘아차! 담희는 귀도 참 밝지.’

김담희는 멀리서도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구속을 안 재 봐서 모르지만, 훈련 안 한 성인 남자보다 빠를 것 같은데요?”

“하하···. 아마도요?”

“리리의 시구 덕분에 아우라가 크게 주목받을 것 같습니다.”

시타는 대전의 딸로 유명해진 리더 이지령이 맡을 예정이었다. 우리는 시구와 시타를 할 두 명을 남겨 두고 관중석으로 이동했다.

“와! 뷰가 진짜 시원해요.”

“엥? 날씨는 무지 더운데···.”

“가슴이 탁 트인다는 말이에요.”

유정 씨의 말이 맞긴 맞았다. 오랜만에 야구장에 오니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나유정도 기분이 좋은지 계속 업된 상태로 아우라 멤버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래. 저게 유정 씨의 본모습이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오른쪽에 착석하자 곧바로 유정 씨가 내 옆에 서둘러 앉았다.

“뭡니까. 왜 이렇게 붙어요?”

“야구 규칙을 하나도 몰라요. 설명 좀 해 주세요.”

“크흠···. 뭐 그 정도야 해 드려야죠.”

그렇게 음료수와 먹을 것을 준비해서 야구 관람 준비를 마치자 장내 아나운서가 시구자를 소개했다.

“오늘 시구로 나설 분은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신인 걸그룹 아우라의 메인 보컬 리리 양입니다. 큰 박수로 맞아 주시기 바랍니다.”

와와!!

“참고로 리리 양은 우리 하나 파이어버드의 전설 이재원 코치의 따님이라고 합니다.”

우와아아!!

이재원 코치의 딸이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에 관객석이 술렁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야구 모자를 쓴 리리가 하나 파이어버드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올랐고, 리더 이지령도 헬멧을 쓰고 타석에 들어섰다.

리리는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심판의 신호에 따라 왼쪽 무릎을 키킹하며 와인드업 자세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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