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98화 (198/263)

나만 아는 세계멸망 (4)

나는 촬영 중인 김호진 감독에게 다가가기 전에 기획팀 조아린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더니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조아린입니다.]

“조 팀장님. 제작 발표회 장소를 잡고 슬슬 홍보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드라마 ‘나세멸’ 말씀이시죠?]

“이제는 그렇게 부릅니까? 맞아요.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요?”

[강남에서 하시죠. 코엑스에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정은 어떻게 할까요?]

“넷플릭 이민영 총괄 디렉터와 상의를 했는데요. 촬영이 무리 없이 흘러가고 있으니 7월 말로 잡으면 될 거 같습니다. 그때까지는 무조건 끝내야죠.”

[알겠습니다. 대표님. 장소를 잡고 언론에 홍보 기사를 쭉 돌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만···. 저 지금 촬영장에 내려왔거든요.”

[네. 대표님. 수고하세요.]

현장에서 진짜 리얼한 좀비 분장을 한 수십 명의 사람을 보니 나조차 긴장되기 시작했다.

“후···. 떨리네.”

엄청난 자금이 들어간 프로젝트였으니 아무리 나라도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려 7시즌짜리 대작 아니던가···. 1시즌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못한다면 3시즌 이후의 제작이 불투명해지고 J&J 스튜디오의 명성도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조연 배우들의 스토리도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여야 해.’

* * *

감독의 지휘 아래 촬영장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인이 떨어지자 배우들의 연기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면서 재빨리 집으로 숨어들고 괴이한 소리를 내는 좀비들이 어슬렁거리며 거리로 하나둘씩 나오고 있었다. 세트장에는 좀비 웨이브가 터지기 일보 직전의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계룡대에 근무하면서 대전 인근에 사는 군인 부부인 이현우(정혜성)와 최소윤(이수현)은 퇴근 시간에 맞춰 발생한 좀비 웨이브에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남편이 공사장에서 주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어떻게든 길을 뚫고 집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여보! 이쪽이에요!”

쉬익! 퍼억!

좀비 한 마리가 그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머리가 터지며 땅바닥으로 풀썩 처박혔다.

“허억! 허억!”

이현우 대위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디서 굴렀는지 이미 옷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고 얼굴에도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골목에서 살짝 나온 배를 움켜쥐고 남편이 뚫어 놓은 길을 달리는 한 여인이 있었다.

“헉헉···. 제, 젠장···. 하필이면 이럴 때···.”

그녀의 실루엣을 보면 임신 5개월은 넘은 듯한 모습으로 입에 단내가 나도록 뛰고 있었는데 건강을 위한 조깅이 아니라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빠, 빨리 집으로 들어가요. 뒤에 괴물들이 쫓아와요.”

이현우는 최소윤을 부축하며 자기들이 사는 101동 1층으로 뛰어 들어갔다.

급하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자 문이 열렸는데, 열리자마자 그 안에 있던 피투성이가 된 좀비 한 마리가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이 개 같은!”

이현우 대위는 워커 발로 좀비를 다시 엘리베이터 안쪽으로 밀어내며 쇠파이프를 정확하게 휘둘렀다.

“퍽! 퍽! 퍽!”

좀비의 두개골과 뇌수가 튀어 올랐다.

“빠, 빨리 문 닫아요.”

삐삐 삑.

밖에서 우르르 몰려드는 좀비들을 간발의 차로 따돌렸다.

“후우···. 하아···.”

이현우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사람의 피와 살만을 갈구하는 좀비들의 허연 눈동자를 보자 모골이 송연하고 치가 떨렸다.

“괜찮아요?”

“괜, 괜찮아.”

이현우가 존댓말을 하며 자신의 부인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카메라가 비추고 있는 곳은 최소윤의 어깨로, 견장에 소령을 뜻하는 계급 표시가 있었고, 그것으로 연상연하의 커플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물론 연상의 아내 역할을 맡은 이수현이 젊어 보이긴 했지만 이제 갓 30대에 들어선 정혜성과 나이 차가 나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컷! 굿입니다.”

“후···.”

김호진 감독의 사인에 이수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무서운데요? 무슨 좀비들이 이렇게 빨라?”

“영상으로 보면 더 무서울걸요? 좀비 연기를 하시는 분들을 피지컬이 되시는 분들 위주로 뽑아서 그래요.”

“무슨 미식축구 선수들 같은데요?”

“대표님이 직접 선발하셨어요.”

김호진 감독이 옆에 있는 나를 슬쩍 쳐다보며 말을 했다. 나는 좀비 영화에서 좀비가 어설프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좀비 역할을 할 배우들도 웃돈을 주고 선발했다. 물론 스카우터 능력으로 연기력이 괜찮은 단역 배우들을 골라서 뽑은 것이다.

바로 그렇게 탄생한 것이 50인의 좀비 결사대였다.

그들은 무서운 좀비 연기로 배우들을 압박하며 좀 더 현실감 있는 연기가 가능하도록 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분들이야말로 우리 드라마를 빛내 주시는 분들이죠. 좀비 역할을 하기 위해 고된 분장도 참아 가며 연기를 해 주시니까요.”

나는 담담하게 배우들의 노고를 위로했다.

그다음은 논산 대장간의 장인인 김형탁 차례였다. 연산 시장에서 대를 이어 오며 농기구를 만들어 온 기술자였다. 연장의 품질이 아주 뛰어나 방송에도 자주 나온 가게였다.

김형탁은 그 대장간의 동생으로 주로 농기구를 제작하는 40대 기술자인 남영진 역을 맡았는데 괴팍한 장인의 역할도 무리 없이 소화하고 있었다.

그는 밖이 소란스러워지자 가게의 문을 닫아 놓고 자신이 만들었던 특이한 무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듯 현재 밖을 돌아다니는 괴물들을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게 만든 무기였다.

마테체와 앞부분에 도끼날이 달린 묵직한 쇠몽둥이였는데 마치 좀비의 목과 머리를 날리기 위해 고안된 듯한 모양이었다.

얼마 전 한 사내가 큰돈을 주며 불법으로 주문한 것으로, 1차분 수량은 맞춰서 배달을 완료했고 2차분을 만들고 있었다.

‘설마 이런 사태를 예견한 건 아니겠지?’

그는 이 무기를 주문한 사내를 떠올리며 그 무기를 집어 들었다. 텅 빈 눈을 하고 있던 미남자. 왠지 이 무기를 들면 무시무시한 괴물 한 마리 정도는 처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묵직한 도끼날 메이스를 든 그가 심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선 시장에 돌아다니는 괴물들을 처리해야 했으니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제길···. 살 수 있으려나? 장가도 못 가 보고 뒈지는 건가?”

무기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게 혼잣말을 하던 그때···. 갑자기 굉음을 내며 가게의 문짝이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남영진이 허겁지겁 밖을 내다보니 그의 시야에 군용 장갑차처럼 보이는 SUV 한 대가 들어왔다.

벌컥 문이 열리며 한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그 무기를 주문했던 의문의 남자였다.

“타요. 나머지 무기는 얼른 가져오시고···.”

그는 무심한 눈길로 달려오는 좀비들을 가볍게 처리하고 있었다. 무뚝뚝한 남자였지만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서 영진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와···. 연기 좋다. 정주빈 씨도 잘하지만 역시 형탁이 형이야. 왠지 모르지만, 외골수 같은 덕후의 느낌을 진짜 잘 살린단 말이야?’

그다음으로 내가 주의 깊게 본 것은 이건호가 맡은 열혈 초보 형사 이진웅 역할이었다. 그는 좀비로 둘러싸인 아파트에서 옆집 남매를 보호하며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이 형사 역은 정의감에 불타는 신입이라는 설정이었는데, 이희진이 맡은 캐릭터와 함께 극에 생동감을 불어 넣을 캐릭터였다. 군인 부부와 더불어 극을 이끌어 가는 주요 캐릭터 중의 한 명이었다.

“으아앙···. 엄마···.”

“우, 울지 마. 얘들아. 곧 부모님 오실 거야.”

이진웅이 남매들을 달래고 있었지만, 밖의 좀비들이 우는 소리를 들을까 초조한 표정이었다.

그러다 그는 갑자기 문자 한 통을 받게 되었다. 아직 통신망이 살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그 내용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오후 5시에 그쪽으로 갈 테니 내려올 준비를 할 것!]

이 메시지는 한참 밀려 있다가 도착한 것 같았는데 발신자가 다름 아닌 국과수의 사이코 부검의였다. 이진웅은 그와 항상 트러블이 있었다.

“응? 뭐야 이 미친 새끼! 여길 온다고? 왜?”

“으앙···.”

“미, 미안···. 욕해서 미안···. 울지 마. 얘들아.”

결국, 정중대는 정말 5시에 그를 구하기 위해 불도저 같은 SUV를 몰고 다른 자동차들을 밀치며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이진웅은 애들을 데리고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다. 정중대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탈출에 성공한 그는 돌보고 있던 애들을 차에 태우려는데···.

“안 돼. 너만 간다.”

“뭐요? 정 선생님! 지금 미쳤어요? 애들부터 데려가야···.”

애들을 태우지 못하게 하자 열이 받은 이진웅이 정중대를 밀치려 했다. 하지만 정중대는 싸움의 고수였고 이진웅이 어떻게 해 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그냥 발에 걸려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파란 하늘을 바라보게 된 그의 시야에 정중대의 무심한 얼굴이 비쳤다.

“물리면 끝장이야.”

“뭐라고요?”

“물리면 끝이라고···. 미안하지만, 저 애들 이미 가망이 없어.”

그가 애들을 돌아보니 이미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허연 눈동자를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할까?”

정중대는 차고 있던 논산 대장간표 도끼날 메이스를 꺼내 들었다.

“크흐흐흑···.”

이건호가 땅을 내려치며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고 있었다.

“으아아!! 이 시팔!”

퍽! 퍽!

깔끔한 두 방이었다. 어린애라고 해서 자비란 없었다. 정중대는 이미 좀비화가 진행된 사람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어서 가자. 산 사람은 살아야지.”

* * *

그렇게 그들은 대전과 인근 지역을 돌며 사람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술집에서 만난 의상 디자이너, 슈퍼 셸터를 지어 준 건축가 부부, 정중대가 자주 가는 솜씨 좋은 식당 주인인 게이 독신남, 자신의 차를 개조해 준 대전의 특수 카센터 주인, 평소에 좋게 보고 있던 국과수의 동료 연구원 가족, 그리고 자신의 경작지를 소작해 주는 50대 후반의 농부 가족을 구출해서 벙커로 데려온다.

데려온 가족까지 합하니 거의 3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계룡시의 깊은 곳에 위치한 슈퍼 셸터를 보고 적지 않게 놀라는 중이었다.

이들은 평상시 정중대가 눈여겨보던 사람들로, 소규모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 선별해서 그런지 각자의 직업이 모두 달랐다.

농사(축산) 담당, 기계(차량) 전문가, 의사(본인), 치안 담당인 군인 부부와 경찰, 요리사, 건설업 종사자, 교육을 담당할 과학자, 의상 디자이너, 대장장이···.

이들은 슈퍼 셸터에 모여 혼란스러운 밤을 맞이했다. 그들은 이 사태에 관해서 격렬한 토론을 했고, 정중대는 필요한 대답만 해 줄 뿐 그들이 현실을 받아들일 때까지 말을 아끼고 있었다.

격한 논의가 오가고 자연스럽게 대표가 된 국과수 법공학부의 과학자였던 동료가 정중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 선생···.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어째서 이런 곳이 존재하는 건지···.”

정중대는 모여 있는 그들 앞에 섰다. 두꺼운 롱코트를 입고 있는 그에게 강렬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이곳은 제 개인 소유지입니다. 외부의 침입을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고, 소규모 공동체가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각종 생필품과 재생 에너지를 이용하여···.”

그가 대략적인 정보를 구성원들에게 소개를 해 주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뭡니까?”

“저기···. 총각···. 아무래도 밖에 누가 온 거 같은데···. 저기 모니터에 자꾸 누가 어른거리는구먼.”

정중대는 50대 농부의 말을 듣고 감시용 모니터 앞으로 다가갔다. 화면을 보니 한 여자가 철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치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법의조사관이자 자신의 스토커였던 한수지였다.

“무, 문 좀 열어 주세요. 제발요. 정 선생님! 문 좀!”

첫 번째로 등장한 불청객이었다. 그의 얼굴이 단번에 찌푸려졌다.

“음···. 어떻게 살아서 여기까지 왔지?”

정중대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가 건물 밖으로 나가며 긴 촬영이 종료됐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 * *

서울의 J&J 스튜디오 편집실.

김호진 감독과 촬영본을 돌려보는데 영상이 너무 잘 나온 것 같았다. 우리는 흐뭇한 표정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있었다.

“작가님. 이건 무조건 성공합니다. 작가님 작품 중에서 제일 재미있어요.”

“에이. 띄워 주시기는···. 감독님도 이제 대가가 되셨는데요. 천만 감독에 넷플릭 오리지널 시리즈 감독 아니십니까? 어쩜 그렇게 멋진 장면을 효율적으로 잘 뽑아내세요?”

“하하···. 작가님도 저 그만 띄워 주세요.”

“띄워 주긴요. 사실인데요.”

“편집까지 잘해서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켜 보겠습니다.”

“하하···. 감독님만 믿겠습니다.”

“아무렴요!”

자신감이 넘치는 그의 말을 듣고 적지 않게 안심이 됐다.

이렇게 ‘나만 아는 세계멸망’의 공개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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