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97화 (197/263)

나만 아는 세계멸망 (3)

‘나만 아는 세계멸망’의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고, 웹툰 ‘천외딸’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내 통장을 든든하게 하고 있었다.

거기에 아우라가 헬게이트와 월드 투어를 시작했다. 리더 존 리의 강력한 요청으로 이루어진 이 콜라보는 6개월간 12개국 18개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해외에서의 아우라의 인지도가 정말 무서울 정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신드롬급이었는데, 특히 북미와 유럽에서 거의 컬트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케이와 그의 일당들이 급히 정규 앨범을 제작한 게 콘서트와 딱 맞아떨어졌는데, 회사 직원들이 내 선견지명에 대해 또 한 번 크게 놀란 계기가 되었다.

미튜브에 이들의 기상천외한 ‘마법사와 정령들’이란 콜라보가 화제가 되며 전석을 매진시키는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그 와중 장예원은 TVM ‘어색한 캠핑’에서 보여 준 요리 솜씨를 바탕으로 외식 산업의 대가 황종원이 새롭게 선보이는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해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아이돌 중 요리 잘하는 아이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그 인기에는 황종원 씨의 칭찬도 한몫했다. 요리에 탁월한 감각이 있으며 성실하며 예쁘기까지 하다고 매번 극찬을 아끼지 않는 상황이었다.

예원이는 투어를 돌면서 방송을 출연하느라 그야말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뛰는 중이었다. 나는 그게 마음에 걸려 예원이에게 전화를 해 보기로 했다.

[여보세요? 대표님?]

“어···. 예원아. 지금 공항이니?”

[네. 출국하려고 기다리고 있어요.]

“주변에 사진 찍는 사람들 많아?”

[아까는 엄청 많았는데 지금은 안쪽으로 들어와서 괜찮아요.]

“그렇구나. 몸은 좀 어때. 어디 아프거나 한 데 없니?”

[네. 괜찮아요. 저 엄청 튼튼한 거 아시잖아요. 아우라 하면 최강 막내, 센터 장예원이죠. 오죽하면 탱커라고 불리겠어요.]

‘그건 그냥 게임 용어인데···.’

뭐 어쨌든 예원이는 혼자 몸을 쓰는 캐릭터였고 어렸을 적부터 태권도를 배운 유단자라 건강도 남달랐다.

“그래도 무리하지 마. 젊어서 아직 피곤한지 모르겠지만 피로라는 게 누적이 되는 거야.”

[네. 대표님. 명심할게요. 그런데 무슨 저희 아빠보다 걱정이 더 많으세요? 저 진짜 괜찮아요. 정말 이렇게 바쁜 게 너무 좋은 거 같아요.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응?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평소에 말하고 싶었는데 너무 바빠서 못 하고 있었어요. 대표님이 저를 찾아오지 않았다면 전 아마도···. 휴···.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전, 이 생활이 너무 좋아요. 멤버들하고도 사이가 너무 좋구요.]

“하긴···. 너흰 정말 친자매 같은 느낌이지. 보고 있으면 그냥 시간 순삭이더라.”

[아! 혹시 저희 채널 보셨어요? 조회수가 미쳤던데요?]

“응···. 그거 이야기하려고 했어. 드디어 미튜브 알고리즘에 걸렸나 봐. 순식간에 조회수가 폭증하더라.”

얼마 전부터 미튜브 아우라 채널의 조회수가 미친 듯 상승 중이었다. ‘어색한 캠핑’ 방영 후 TVM과 협의하여 미방영분과 예원이의 힐링 요리 먹방을 풀로 업로드했더니 영상당 수백만 조회수가 발생하고 있었다.

특히 예원이의 고즈넉한 요리 영상은 내 기획대로 대박이 났다. 전 연령을 망라하고 ASMR로 널리 쓰이는 모양이었다. 댓글만 봐도 알 수 있었는데···.

-이거 미쳤습니다. 플레이 눌러 놓고 가만히 있으면 치유되는 느낌이 들어요. 마치 명상하는 기분입니다.

-하루에 한 번씩 듀얼 모니터로 그냥 틀어놓는다. ASMR로 쓰기에 딱 맞음.

-우리 예원이 정말 미친 듯 예쁜데 어쩜 요리도 이렇게 잘할까. 오구오구···.

“예원이 네 영상 조회수가 특히 높더라. ASMR계의 신성이래.”

[에이···. 대표님이 컨셉을 잘 잡아 주셔서 그렇죠. 저도 영상이 그렇게 예쁘게 나갈지 몰랐어요. 옆에서 카메라 몇 대로 공들여서 찍으시고 이렇게 된 거잖아요.]

“알면 됐다. 영화처럼 편집하느라 크리에이티브 팀이 엄청 고생했어.”

[아빠도 그거 매일 보신대요.]

“그래? 아버지 몸은 좀 어떠셔? 이제 괜찮으신 거 같던데···.”

[네···. 완전 좋아지셨어요. 이제 슬슬 일도 찾아보신다고 하던데요.]

“에이···. 허리가 부러지셨는데 조심하셔야지. 그리고 너 돈도 잘 버는데 무리하시지 말라고 해.”

[헤헤···. 저 돈 많이 버나요?]

“그래. 조만간 정산할 때 봐라. 넌 미튜브 조회수가 높아서 정산에 많이 반영될 거야. 데뷔 초부터 정산을 해 주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넌 예외다.”

나는 항상 투명하고 깨끗한 정산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래야 모두가 불만 없이 회사에 충성을 다하는 법이다. 회사가 영화를 성공시키고 재정적으로 자리를 잡자 모든 게 마법처럼 쉽게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대표님. 정말이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그냥 넌 몸 건강히 활동만 잘하면 된다.”

[네···. 대표님. 그렇게 할게요. 이제 비행기 타야겠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래. 나중에 보자.”

예원이와 통화 후 가슴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딸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다른 멤버들도 슬슬 콘텐츠를 찾아 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타자를 누구로 할까?”

생각해 보니 곧 KBO 리그가 개막하는데 메인보컬 리리를 야구소녀로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리는 부친이 야구선수고 본인도 야구가 취미일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오케이! 다음 타자는 리리다.”

나는 리리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짜다가 문득 옆문을 바라보았다. 귀찮을 정도로 들락거리며 나를 귀찮게 했던 유정 씨가 요즘은 뜸한 모습이었다.

CF만 찍으며 노는 게 지쳤는지 공중파 예능의 섭외에 덥석 응하더니 그것에 맛이 들려 아주 즐겁게 촬영을 하는 것 같았다.

“하여간 기분파예요. 뭐에 하나 빠지면 연락도 없네.”

나는 살짝 푸념을 늘어놓으며 워드 프로세서를 켰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작가 아니던가. 글은 매일 써야 했다.

타닥타닥···.

기계식 키보드를 치는 소리가 사무실에 조용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아···.’

쓰다가 지우고를 반복하고 있는 상황! 요즘 들어 배가 불렀는지 쓰는 글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J&J 스토리 작가 작업실까지 왔다 갔다 했지만 영 나아지질 않았다.

‘음···. 이럴 때는 그냥 드라이브나 가자.’

나는 ‘나만 아는 세계멸망’을 촬영하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얼마 전 여주인공 이희진이 정중대를 스토킹하는 모습을 찍은 영상을 봤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남자 주인공인 정중대의 일상은 다른 사람과 아예 달랐다. 그는 부검을 마치고 대전 시내의 체육관에 들러 격투기 훈련을 했다. 실제 현역과도 스스럼없이 스파링을 뛰는 준프로 격투기 선수였다.

체육관의 관장도 그의 자질을 높게 평가해서 프로 데뷔를 추천할 정도였으니 말을 다 한 셈···. 그는 격투기 이외에도 검도도 꾸준히 수련하고 있었다.

한수지가 그 모습을 차에 숨어서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정중대는 주말에 계룡산을 누비며 리얼 서바이벌 캠핑을 하곤 했다. 한수지가 그를 따라서 몰래 등산을 하다가, 산세가 험하고 가파른 지역이 나오는 바람에 그의 종적을 놓치고 길도 없는 산속에서 조난을 당하는 장면이 나왔다.

깊은 산속에서 공포심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한수지를 높은 나무에 올라가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정중대였다. 공허한 그의 눈에서 아주 작은 호기심이 떠올랐다.

‘왜 저 사람은 나를 계속 미행하고 있는 거지? 혹시 그곳에서 보낸 요원?’

예민한 감각을 지닌 그에게 미행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정중대는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뭔가 어설퍼 보이는 모습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

막 울 것 같은 그녀 앞에 그가 불쑥 나타났다.

“엄마야! 놀래라···.”

갑작스러운 정중대의 등장에 놀라고 당황하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한수지였다. 정중대는 기계적으로 그녀의 표정을 분석하고 있었다.

‘확실히 그곳에서 보낸 사람은 아님.’

그런 판단이 서자 몸에서 긴장이 사라졌다.

“왜 나를 미행합니까?”

“미, 미행이라뇨. 그냥 드, 등산하고 있었어요.”

“길도 없는 산길을 오른다고?”

“왜, 왜요! 그냥 올라가면 산꼭대기로 가고 내려가면 마을이 나오고 그러는 거죠.”

“그래요? 그럼 가시던 길 가시든가.”

차가운 말투의 정중대는 몸을 돌려 다시 위로 걸어가고 있었다.

“자, 잠시만요. 같이 가요. 다, 다리가···. 아흑···.”

“후···. 왜 그러니까 왜 따라오느냐고요. 여기서 이러다가 밤에 멧돼지라도 만나서 잡아 먹히려고 그래요?”

“멧돼지요? 그, 그런 게 있어요?”

“그럼 없겠어요?”

공포심에 목소리가 떨려오는 한수지였다. 정주빈은 평화로운 자신의 수련을 방해하는 타인의 등장에 짜증이 솟구치는 연기를 멋지게 보여 주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어디서 굴렀는지 잔뜩 먼지가 묻은 몸을 털어 주고 발목에 압박 붕대를 감아줬다.

“내려갑시다. 따라와요.”

그렇게 그들은 산을 내려갔다. 정말 아무 말 없이···.

“정 선생님 댁에서 잠깐 쉬어가면 안 될까요?”

산 밑으로 내려가 택시를 잡아 주려고 했는데 무척이나 당돌한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진 정중대가 한숨을 내쉬었다.

“왜 미행하는지 밝힌다면···.”

“선생님 댁에서 말씀드릴게요.”

“······.”

한수지는 그렇게 정중대의 아지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육중한 아날로그식 철문을 키로 열고 성문을 지났다.

“아니···. 무슨 이런 외진 곳에 성벽 같은 걸 쌓아 놓으셨어요? 세상하고 등지시려고 담을 쳐놓으셨어요?”

“우와! 담벼락 안에 무슨 건물이 이렇게 많아요? 어라? 텃밭도 있네요?”

“와, 저 끝에 하얀색 건물이 선생님이 사시는 곳이에요? 우와! 부자시구나. 무슨 재벌집 막내 아드님이세요? 어떻게 이런 곳에 이런 거대한 건물을···.”

정중대가 갑자기 몸을 휙 돌려 인상을 썼다.

“입 좀 다물어요.”

“네?”

“입 좀 다물라고요. 시끄러우니까.”

한수지는 정중대의 직설적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지금껏 세상을 살아오면서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 어떻게 그런 말을···.”

“산속에 확 그냥 놓고 올 걸 그랬나? 되게 시끄럽네. 산짐승들이 좋아했을 텐데···.”

“뭐, 뭐라고요?”

그는 인상을 확 구기고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이···. 이···. 나쁜 놈이···.”

그 자리에서 선체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한수지. 그녀는 대전 대형병원 원장의 딸이자 지역 유지 집안의 손녀로 귀여움만 독차지하면서 큰 인물이었다. 그래서 이런 푸대접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그가 사라진 집을 쳐다보았다. 약 5층 규모의 건물이었고 1층은 통유리로 안이 비쳤지만 2층부터는 무슨 요새처럼 아무런 장식 없이 창문만 나 있는 심심한 모양이었다.

“휴···. 진정하자. 진정.”

보기만 해도 암에 걸릴 것 같았다. 웹소설에서 저런 걸 썼다가는 히전죽(히로인이 되기 전에 죽이자)을 외칠 만한 상황!

한수지는 건물로 들어서자 정중대가 보이지 않아 집안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와···. 무슨 집이 이래? 진짜 무슨 재벌집 아들인가?”

그녀는 커다란 부엌과 기다란 유럽식 테이블, 1층 도서관과 운동 시설을 구경하고 있었다.

스윽···.

“꺄악! 엄마야!”

한수지가 뒤에서 소리 없이 나타난 인영을 보고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거참 되게 시끄럽네.”

“왜, 왜···. 옷은 벗고 있는 거예요?”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샤워를 하고 웃통을 벗고 있는 정중대에게 삿대질을 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은 채 수건을 목에 걸고 부엌으로 가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마시고 있었다.

마치 옆집 개가 짖냐 하는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그러다가 할 말이 생각났는지 몸을 돌려 한수지를 노려보았다.

그의 강렬한 눈빛을 받은 한수지가 정중대의 몸을 훑어보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꿀꺽···.

“그런데 언제 갈 거예요?”

한수지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왜 미행하는지 말도 안 했는데···.’

* * *

그 촬영본을 보고 얼마나 웃기던지···. 딱 봐도 초반 몰입감을 주는 요소로 괜찮을 것 같았다. 좀비물에 착각물 그리고 약간의 로맨스 코미디를 섞은 것이다.

이제 다른 조연들의 스토리도 점검할 시간이었다. 그들은 어떤 각자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까?

현장에 도착해 보니 오늘 찍는 장면은 좀비 웨이브가 터지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촬영장에 조연 배우들도 많이 보이는데 김형탁, 이수현, 정혜성, 이건호가 차례로 등장하며 긴장감을 높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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