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과 콘서트 (2)
아우라를 그린 일러스트를 보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어쩜 이렇게 캐릭터를 잘 살리는 걸까?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스크롤을 해서 메일의 본문까지 읽어 보았다.
[안녕하세요. 이준형 작가님. 웹소설, 웹툰 작가 최영규라고 합니다. 댓글을 보다가 깜짝 놀라서 남겨 주셨던 메일 주소로 연락을 드립니다. 본인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맞다고 보고 인사 올리겠습니다. 꾸벅···. 저는 아우라의 팬이며 1기 팬클럽 회원입니다. 제 번호는 010-××××-××××입니다. 꼭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왠지 모르지만, 그에게서 진한 ‘찐’의 냄새가 나고 있었다.
인터넷 움짤로 쓰이는 파오후까지는 아니었지만, 통통한 체형에 얼굴에 살집이 있고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던 모습이 기억났다.
‘흐음···. 왠지 아우라 때문에라도 커트해야 하는 거 아닌가? 에이··· 설마 기우겠지? 사람을 너무 외모로 평가하면 안 되는 법이야.’
나는 주저하다가 결국 휴대전화를 들어 최영규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영규 씨. 아까 댓글을 남겼던 이준형입니다.”
[으악!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최영규 작가는 흥분했는지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크흠···. 저기요?”
[아···. 넵! 저만 너무 들떠서 죄송합니다.]
“혹시 통화 가능하십니까?”
[네.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웹툰 관련해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지금 마포로 가면 될까요?]
“네?”
[저 J&J 사옥에 가 봤습니다. YN 엔터 옆이잖아요.]
진짜 찐인가 본데···.
“···진짜 아우라 팬클럽 1기 맞아요?”
[그럼요. 처음부터 좋아했습니다. 나오자마자 팬이 되었달까요? 그야말로 취향 저격···.]
“그룹의 막내는?”
[최강막내 장예원]
“멤버들의 나이를 순서대로 말해 보세요.”
[리리, 지령, 유리, 담희, 예원]
“···인정합니다.”
[그럼 회사에 놀러 가도 되나요?]
“그건 안 됩니다.”
나도 모르게 심적으로 그를 거부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게 아니라 제가 곧 나가 봐야 해서요. 시간이 없다는 뜻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네···.]
뭔가 힘 빠진 대답이 들려왔다.
“제가 작가님 그림을 보다가 느낌이 좋아 댓글까지 남기게 됐습니다. 혹시 챌린지 리그에서 웹툰 작가로 계속 활동하실 생각이신가요?”
[사실은 지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웹소설을 해야 할지 웹툰을 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제 생각엔 스토리 쪽은 아직 덜···.”
[맞습니다. 제가 그림 그리는 것은 좋아하는데 독서량이 좀 부족했습니다. 책은 안 보고 쓸데없는 공상으로 그림만 그리고···.]
최영규 작가는 자신의 문제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작가로서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연습 삼아 웹소설을 연재했는데 우연히 컨택을 받고 소설을 먼저 시작하게 된 케이스였다. 그 후 받은 선인세를 채우지 못해 출판사에서 시키는 일을 했다고 한다.
‘하필이면 레테의 최덕수 PD 같은 놈에게 걸린 게 문제였군.’
아마도 계약 시 선인세를 채우지 못하면 다음 작품까지 줘야 한다는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한 게 분명했다.
‘불안하면 컨택을 하질 말든가! 저런 독소 조항은 왜 넣는 거야?’
어찌 됐든 그는 전 출판사(매니지먼트)에 묶인 신세가 됐고 지금까지 시키는 표지 작업, 일러, 웹툰 준비를 하다가 모종의 일로 다 엎어지고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웹툰 연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인데 전화를 해서 출판사라고 연락을 하니 질색하고 잡상인 취급을 해 버린 게 분명했다.
“그래서 출판사나 매니지먼트에 반감이 있었겠군요.”
[아무래도 그렇죠. 뭔가 제대로 된 일도 못 하고 허송세월만 한 것 같습니다. 친구들은 잘나가고 있는데···.]
“일하시면서 제대로 된 연재가 불가능할 텐데요.”
[···그건 작가님 말씀이 맞습니다. 컷 수도 적고 퀄리티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내가 알기론 웹툰을 혼자 작업할 경우 거의 일주일이 걸린다고 했으니까.
“혹시 본격적으로 웹툰을 해 볼 생각은 없나요? 제 작품 중 ‘천마의 외동딸이 되었습니다’라는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 있는데요. 이걸 한번 작가님께 맡겨 보고 싶군요.”
[음···. 어···. 그게···. 뜸을 들여서 죄송합니다. 데인 적이 있다 보니···.]
“그럴 겁니다. 안 좋았던 경험도 있으셨으니 더 그러시겠죠. 일단 제 조건은 간단합니다. 제 작품을 웹툰화를 하는데 그림을 맡아 주시고요. 저와 함께 콘티 작업을 할 겁니다. 아무래도 그런 쪽이 지금은 좀 부족하시다 보니 제가 관여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시간 나면 글을 쓰는 법도 저한테 조금 배우실 수도 있고···.”
[······.]
“플랫폼과 직접 계약을 할 작정입니다. 최대한 나가는 비용을 줄일 예정이라 작품이 잘만 되면 영규 씨 몫도 꽤 될 것 같은데요? 왜요? 계약 때문에 뭐가 걸리는 거라도 있으세요?”
[아! 죄송합니다. 그게 아니라 너무 어안이 벙벙하고 이런 기회를 제가 가져도 되나 싶어서요. 아우라의 팬이기도 하지만 천외딸도 다 봤거든요.]
“아··· 다 보셨구나. 영규 씨는 확실히 그림에 재능이 있어요. 저랑 같이하시죠. 대우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저희 회사에 웹소설 작가들도 몇 명 있고 전문적으로 코치해 주는 S급 감평사도 있으니 배울 점도 많을 거고요.”
[제가 그런 능력이 될까요?]
“그럼요.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아···. 감동이···.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조만간 재능 있는 작가 집단을 정식으로 발족하려고 했거든요. 교정을 봐 주시는 분과 유통을 담당하실 분도 채용한 상황입니다. 작가 작업실도 있으니 나오시면 될 거예요.”
[그럼 언제부터 나가면 되나요?]
“일단 오늘은 스케줄 때문에 안 되고···. 하고 계신 일이나 주변 정리를 하시고 오시면 되겠네요. 일주일이면 충분할까요?”
[네. 충분합니다. 대표님.]
“네. 좋습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오실 때 연락 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최영규 씨와 통화하고 나조차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막연하게 콘텐츠 사업을 해 보려고 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셈이었다.
‘최고의 콘텐츠를 만들면 무조건 갑이 되는 르네상스 시기야. 사업이라기보다는 내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겠어.’
아무래도 나 혼자 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주변에 괜찮은 사람들이 많아야 같이 뜻을 펼칠 수 있는 법이니까···. 능력 있는 작가도 더 뽑아야 할 것 같았다.
‘고당 출판사에는 좀 미안하네. 그래도 거긴 내 덕분에 떼돈을 벌었으니 상관없으려나···.’
시계를 보니 벌써 오전 10시였다. 이제 곧 리허설을 하러 가 봐야 했다.
‘애들은 준비가 다 됐나?’
나는 사무실 문을 열고 5층으로 내려갔다.
“안녕하십니까?”
“어우···. 깜짝이야.”
5층에는 정주빈 씨가 어제와 비슷한 복장으로 출근을 해 있었다.
옆을 보니 박 PD가 씨익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악랄한 인간 보소! 진짜 신임 매니저로 컨셉을 잡고 촬영을 하려나 보네.’
“주빈 씨 오셨어요? 잠시만요.”
나는 정주빈의 귀에 손을 대고 작게 소곤거렸다.
“박 PD가 시키는 건 무시하세요. 이슈 한번 끌어 보려고 하는가 본데 갑자기 너무 이질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안 좋습니다.”
“좀 그런가요? 어색하긴 합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하죠. 뭐.”
“잘 생각하셨어요.”
나는 정주빈에게 운전을 시키려는 박 PD의 계획을 분쇄한 후 핸들을 잡았다. 오늘 헬게이트의 대기실에 접근 가능한 사람은 아우라를 제외하고 단 2명뿐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연이 열리는 곳은 송파구에 있는 올림픽 공원의 올림픽홀이었다. 나는 숙소로 이동해 아우라를 태우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어서 와라. 얘들아. 오늘 주빈 씨가 일일 매니저가 되셨다.”
“네?”
다들 정주빈의 등장이 의외였는지 깜짝 놀랐지만, 내가 사정을 설명해 주자 그제야 이해를 하는 눈치였다.
“팬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매니저처럼 하고 나가실 이유가···.”
“우리 쪽 스태프는 딱 2명만 접근 가능해서 그래. 정체를 공개하지 않다 보니 가까이 갈 수가 없거든.”
“아하···. 이제 이해했어요.”
“그나저나 지령아. 연습 좀 했니?”
“네. 많이 했어요.”
리더 이지령이 아주 담담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케이가 헬게이트와 합동 공연을 위해 새로운 레퍼토리를 만들었는데, 그 처음이 피아노 연주였던 거다.
“대표님. 우리 리더 언니 피아노 천재인가 봐요. 연습하는데 무슨 프로 연주자인 줄 알았어요.”
예원이가 놀랍다는 표정을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알고 보니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막 도장 깨고 다닌 거 아냐?”
“맞아요. 도장을 깬 건 아니지만 콩쿠르에서 1등을 한 적도 있어요.”
“뭐? 그게 사실이야?”
“네. 별것은 아니에요. 바이올린도 비슷한 수준으로 하고···.”
“허···.”
역시 천재라 다르다 이건가?
이거 내가 천재를 데려와서 다운그레이드시켜 놓은 게 아닌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리더는 다재다능을 뜻하는 짙은 브라운색 아우라의 소유자.
“대표님, 나중에 공연 보면서 놀라지 마세요. 진짜 소름 돋아요.”
옆에 있던 유리도 예원이를 거들었다. 확실히 천재적인 리더가 있어서 그런지 팀이 지령이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느낌을 받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프로듀서가 갑자기 시킨 일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뚝딱 해치워 버리는 사기캐였다.
* * *
우리는 올림픽홀에 도착해서 대기실에 짐을 풀었다. 싸 온 도시락을 먹고 있으니 스타일리스트 김규빈과 헤어 메이크업 팀이 출장을 나왔다.
그래도 한 달 이상 활동을 했다고 제법 알아서 잘 하는 멤버들이었다. 돌아가면서 헤어 메이크업을 받으며 점심을 해결했다.
반면, 정주빈은 아우라에게 생수와 음료수를 가져다주며 매니저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무대 의상을 다 갈아입고 헤어 메이크업까지 전부 완벽하게 세팅을 완료했다.
‘후···. 포스 보소. 누가 키웠는지 정말 대단한 거 같아.’
스스로 대견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심정.
“준비됐으면 이제 인사하러 가자. 영어 담당 준비됐니?”
“네!”
내 질문에 정유리와 이지령이 짧게 대답했다. 너무 든든했다. 영어 능통자가 팀에 2명이나 있으니 다행이었다. 이래서 외국인 멤버나 해외 교포 출신을 우대하는가 싶었다. 내가 직접 겪어 보니 기획사의 고충도 이해되는 거 같았다.
이제부터는 TVM의 카메라도 불허되는 시간이었다. 카메라맨들은 어쩔 수 없이 대기실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우라를 데리고 반대편에 있는 헬게이트의 대기실로 찾아갔다.
똑똑···.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스태프 몇 명과 가면을 쓰고 있는 헬게이트 멤버들이 보였다. 살짝 무서울 거라 생각했던 이미지와 너무 달랐다.
헬게이트 멤버들은 팔을 벌려 아우라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영 적응이 안 되는 정령 가면은 어쩔 수 없었지만···.
어디 보자. 불, 땅, 바람, 뇌전···. 어라? 물의 정령이 어디 갔지? 가만 보니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물의 정령 존 리가 보이지 않았다. 옆을 보니 뻣뻣하게 굳어 있는 정주빈이 눈에 띄었고 다시 고개를 돌려 보니 한 인영이 대기실 문으로 들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는 대기실로 들어오다가 나와 두 눈이 딱 마주쳤다.
깜짝 놀랐는지 급하게 손에 들고 있는 파란 마스크를 뒤집어쓰려고 했다. 너무 서둘렀는지 결국 가면을 거꾸로 쓰고 말았다.
‘큭···.’
이 존 리라는 헬게이트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는 스마트폰을 만든 파인애플의 스티브 잡과 너무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앞머리가 약간 벗겨졌는데, 흰 수염이 턱을 가리고 있었다.
나도 잠시 당황을 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고 인사를 나눴다. 고학력 밴드라던데 실물을 보니 정말 어디 공붓벌레로 유명한 공대 출신들인 것 같았다. (물론 그냥 내 추측이었다.)
“와우! 나이스 브리티시 악센트!”
헬게이트의 멤버 중 한 명이 정유리의 발음을 듣고 칭찬을 하고 있었다. 지령이도 이에 질세라 미국식 영어를 써서 아우라를 소개하고 있었다.
‘통역이 2명이라 엄청 편하군. 흐흐···.’
그렇게 훈훈하게 인사를 마치고 드디어 리허설에 돌입했다.
무대의 조명이 핀포인트로 무대 중앙에 높게 만들어진 제단을 비추고 있었다. 거기에는 화려한 블랙 앤 화이트 의상을 입은 리더가 건반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얼음 마법사 이지령은 건반에 손을 얹고 서정적인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크···. 가슴이···.’
프로듀서 케이의 심금을 울리는 서정적이면서 동양적인 멜로디···. 스크린에는 분홍색, 붉은색 꽃잎이 화려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와···. 멋있네요.”
이제야 정신을 차린 정주빈이 담담하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하이라이트는 이제부터입니다.”
별안간 음산한 EDM 음악이 흘러나오며 심장 박동 소리가 홀을 강타했다.
“오!!”
그 위로 울려 퍼지는 이지령의 미친 듯한 피아노 선율! 마치 세상이 멸망하는 듯한 느낌의 어지러운 선율이 펼쳐지고 있었다.
피아노 선율이 점점 작아지며 별안간 벼락 같은 헬게이트의 강력한 일렉 기타 사운드가 터져 나왔다.
박 PD는 그 리허설 모습과 정주빈과 공연 관계자가 놀라는 모습, 그리고 내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모습까지 모조리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아우라는 북미와 유럽에 컬트적인 인기를 구가하게 될 거야. 이제는 안심하고 드라마를 찍어도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