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과 콘서트 (1)
나는 어렸을 적부터 만화책을 엄청나게 본 사람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림 그리는 연습을 많이 했었는데 나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만 깨달았다.
초등학교 때 얇은 종이를 만화책에 대고 그려 보기도 하고, 노트 한 귀퉁이에 연습도 많이 했지만, 같은 반에 있는 친구를 보고 그냥 접고 말았다. 그 녀석은 연습을 별로 하지 않았지만 그림을 잘 그렸고, 나는 사람마다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물론 요즘엔 재능이 없더라도 노력을 한다면 나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결국 스스로 판단해서 소설 쪽으로 진로를 잡은 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림체 같은 것에 상당히 민감해서 독특한 스타일이면 꼭 기억을 하는 편이었다.
“진짜 보면 볼수록 매력 있네.”
캐릭터마다 힘이 느껴졌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랄까?
‘응? 뭐야···. 이제 딱 두 편 올라왔네?’
이제 챌린지 리그에서 자유 연재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챌린지 리그는 업로드가 자유로워 수많은 웹툰 지망생들이 이용하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엄청난 수의 작품이 매일 업로드되는데, 딱 맞춰서 내 눈에 띈 건 정말 운명의 장난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케이. 요주의 체크다. 일단 고당 출판사 대표님을 만나 보고 결정을 해야겠어.’
* * *
고당 출판사의 김 대표가 회사에 방문했다.
“회사가 엄청 좋은데요? 확실히 연예기획사라 다르군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생각해 보니 처음 방문하시는 거군요.”
나는 고당의 김 대표와 악수를 하고 회의실로 직행했다.
“요즘 계속 1위네요? 며칠 있다가 내려갈 줄 알았는데···.”
“저희 직원들도 엄청나게 놀라고 있습니다. 다운로드 수가 미쳤습니다.”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잘나가고 있다고 하니 기분은 좋네요. 웹툰화 때문에 오신 거죠?”
“네. 계약서도 일단 만들어 왔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그는 가방에 들어 있던 계약서를 꺼내 나에게 들이밀었다. 나는 계약서를 받아 들고 개봉을 하지 않은 채 탁자에 그냥 내려놓은 뒤 계약서 위에 손을 얹었다.
“일단···. 계약은 웹툰 작가를 보고 나서 결정할 겁니다.”
“물론 그러셔야죠. 저희가 확보한 작가 후보들도 정리해서 가져왔습니다.”
“보시죠.”
김 대표는 다른 자료를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작가들이 그린 포트폴리오가 들어 있었다.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그림체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왜 그러세요? 마음에 안 드세요?”
탁···.
나는 그림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네.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실력 있는 작가님들인데요?”
“죄다 순정만화 스타일, 여성향이잖아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로맨스 판타지라면 응당···.”
“고정관념입니다.”
“네?”
김 대표는 내 의외의 반응에 완전 허를 찔린 듯한 모습이었다.
‘충격을 주려고 한 건 아닌데···.’
“잠시만요.”
나는 아까 보던 나이스 챌린지 리그의 작품을 보여 주었다.
“전 이런 그림체가 좋습니다.”
“헉···. 이건 너무···.”
“왜요? 너무 남성향이라고요?”
“솔직히 좀 그렇습니다.”
내가 보여준 그 그림은 확실히 유명한 만화인 버서크의 초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거친 스타일이었다.
“여캐는 예쁘게 잘 그리지 않나요? 개성 있고 눈에 확 들어오는데요?”
“그래도 명색이 로맨스인데···.”
김 대표는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 양반아. 내 다른 작품도 다 맡기고 싶으니까 그렇죠. 천외딸은 그냥 워밍업이라고요···.’
“지금 보시기엔 거친 면이 있지만, 잠재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이 디테일한 터치를 한번 보세요.”
“음···. 웹툰치곤 세밀하긴 하네요. 그래도 너무 출판 만화 스타일인데···.”
“전 이 작가로 하고 싶습니다. 최근 챌린지 리그에 연재를 시작했던데 어떻게 안 될까요? 아직 초반이라 컨택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나요? 어차피 베스트 리그에 못 가면 수익 내기도 힘들잖아요.”
“그렇긴 합니다.”
“그럼 한번 알아봐 주세요. 소설도 잘나가는데 굳이 맘에도 들지 않는 그림으로 진행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아···. 네···.”
그는 뭔가 실망한 눈치였다. 아무래도 내가 계약할 생각이 없다고 판단하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웹툰으로 돈을 어마어마하게 번다는 소리를 들었겠지. 그래도 내 소설만으로도 수익이 상당할 건데···. 거의 출판사 몇 년 치 수익 아냐?’
“작가에게 연락해 보겠습니다. 꼭 인맥을 동원해서라도 찾아보겠습니다.”
“그냥 댓글 다시면 될 건데요?”
“······.”
나는 김 대표와 함께 회의실을 나왔다.
“그럼 조심히 가시고요. 제가 식사라도 대접해 드려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처음으로 회사에 찾아오셨는데 말이죠.”
“오늘 일이 있으시다면서요. 바쁘신데 일 보셔야죠.”
인사를 하며 헤어지려고 하는데 저 멀리에서 조아린 대리가 누군가를 데리고 나타났다.
“어? 안녕하세요?”
“헛!”
우리 앞으로 걸어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정주빈이었다. 검은 바지에 멋진 흰색 셔츠를 입고, 마치 보디가드나 되는 것처럼 나타난 것이다.
“저, 정주빈 씨?”
옆에 있던 고당 김 대표가 정주빈을 보고 깜짝 놀란 것 같았다.
“누구신지···.”
“아···. 제 작품 관리해 주는 회사 대표님이십니다. 오늘 일이 있어서 찾아오셨어요.”
나는 정주빈에게 김 대표를 소개한 후 회의실로 그를 안내했다.
“아니···. 오늘은 말도 없이 어쩐 일이세요? 리허설은 내일인데···.”
커피를 두 잔 내려서 한 잔은 내 앞에 두고 한 잔은 그에게 건넸다.
“당연히 내일은 일찍 와야죠. 오늘은 그냥 지나가다가 들렀습니다. 얼마 전 서울에 집도 다시 마련하고 지금은 인테리어 중이거든요.”
“그렇군요. 옷이 멋지신데요? 방송에도 그냥 편안하게 나오셨던 분이 갑자기 왜 셔츠 차림이신지···.”
“저 매니저잖아요. 아우리 매니저.”
“컥···.”
나는 커피를 마시다가 살짝 뿜어 버렸다.
“저, 정말이세요? 굳이 이렇게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이건 너무 오버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오히려 작가님이 뭘 모르시는군요. 헬게이트는 접근자를 철저히 통제합니다.”
“······??”
“얼굴이 공개된 밴드가 아니기 때문에 정체를 꼭꼭 숨기려고 합니다. 어떤 곳에서도 주변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습니다.”
“아···. 그건 몰랐네요.”
“접근 가능한 사람은 아마도 아우라 멤버들과 회사 관계자 1~2명 정도 예상합니다.”
“네? 그 정도로 통제한다고요?”
“좀 심하죠? 그렇게 통제를 해서 그런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실물 유출이 안 됐습니다.”
“대단하네요. 어찌 보면 고난의 길을 걷고 계신 분들이시네요. 웬만하면 그냥 얼굴을 까도 될 텐데···.”
“그 정도로 철저한 그룹입니다. 정말로요.”
“아···. 네···.”
나는 헬게이트의 팬이 아니었기 때문에 약간 심드렁한 느낌이었다. 즐거워하는 그의 얼굴을 보고 뭐라고 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는가?
“문제는···. 내일 촬영할 리얼리티 쇼 4부에 이런 모습으로 나가도 되냐는 겁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가 신인 걸그룹의 매니저라···. 저희는 솔직히 환영합니다만···.”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상관 없습니다.”
“그래도 이미지가 있는데요.”
“저는 그런 이미지를 깨야 합니다. 제가 언제까지 미남 배우라는 타이틀을 고수해야 할까요?”
“······.”
솔직히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마흔이 넘었지만 내 눈에는 아직도 서른 초반 정도로 보이는 미남자였다.
‘부럽네. 그래도 내가 키는 더 크잖아.’
나는 쓸데없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내일 리허설 때 보시죠.”
“알겠습니다. 콘서트장에서 뵙겠습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요즘 매니저는 그렇게 입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냥 편하게 입고 다니죠.”
“알고 있습니다. 그냥 설정 한번 해 본 겁니다. 워낙 다들 임팩트가 있는 캐릭터들이라···. 묻힐 것 같아서요.”
아! 아무래도 아우라, 헬게이트가 같이 있다 보니 아무리 정주빈이라도 그들 사이에서는 애매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걸 본능적으로 알아채다니···. 역시 톱스타는 감각부터 다른 것 같았다.
“그,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정주빈은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띠고 천천히 지라에서 일어났다.
“내일 보시죠.”
그렇게 정주빈은 돌아갔고, 나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웹툰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미 그 작품은 챌린지 리그 대문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웹툰 지망생만 수십만 명이라더니 정말 많은 작품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너무 마음에 드는 그림체였다. 모니터를 보고 있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나도 모르게 1화로 들어가 댓글을 남기고 말았다.
* * *
다음 날.
고당 출판사 김 대표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작가님. 어제부터 저희가 컨택을 해 보고 있는데요. 진행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연락은 해 보셨나요?”
“네. 수소문 끝에 연락처를 알아내서 통화도 했습니다만···. 부정적이더군요.”
음···. 부정적이라고? 이건 생각하지 못했다.
“혹시 제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셨나요?”
“이야기도 못 꺼냈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어디냐고 물어보더니 회사 이름을 들어 보고 바로 끊어 버리더군요. 그 후로 몇 번이나 다른 번호로 통화를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표님이 직접 하셨어요?”
“네. 당연하죠. 작가님 작품은 제가 신경 쓰고 있습니다. 교정, 교열이나 매일 플랫폼에 올리는 것까진 못하지만요.”
음···. 왠지 더 불안한데 이거?
하긴 고당 출판사의 장르 파트는 나 말고는 괜찮은 작품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래도 전문가가 없다 보니 흥행 가능성이 없는 작품에 무리수를 던지는 것 같았다.
“그렇군요. 의외네요.”
“맞습니다. 오랜만에 무슨 잡상인 취급을 받았네요.”
아! 맞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그는 얼마 전 최덕수 PD에게 볼모로 잡혀 레테 사무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마도 그 기억이 생각나서 출판사라면 학을 떼었는지도 모른다.
‘최덕수 PD 밑에서 제대로 된 취급을 당했을 리가 없지.’
“작가님. 그럴 게 아니라 저번 제가 보여 드린 작가 중 제일 괜찮은···.”
“아닙니다. 일단 웹툰은 보류하는 거로 하시죠.”
“네?”
“솔직히 지금도 계속 1위인데 굳이 급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2차 저작권 계약을 한 적도 없을 텐데요?”
“아···. 그렇긴 합니다만···. 해외 시장도 생각하시는 게···.”
“생각난 김에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만약 웹툰화를 진행한다면 어떤 식으로 수익 배분이 이루어집니까?”
“수익 배분 말씀이십니까? 플랫폼, 에이전시, 작가, 원작자 이렇게요?”
나는 김 대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뭔가 주저하는 듯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웹툰 쪽은 웹소설과는 다르게 약간 복잡하기도 하고 계약도 천차만별이라는 걸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저도 그건 대충 알고 있습니다.”
“일단 천외딸 같은 대박 작품은 월 1억이 넘는 매출을 올린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1억 미만이면 작가가 많이 가져가는 편이고요. 1억이 넘는 작품은 반을 플랫폼, 반을 나머지가 가져갑니다. 세금하고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과표 구간 같은 거죠. 거기서 저희는 외주를 줄 작정이기 때문에 회당 약 150~200만 원을 준다고 가정했을 때 월 800~900만 원 정도를 지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웹툰 작가 수준이 높다 보니 꽤 괜찮은 편이죠.”
“······.”
“업계 통상 원작자에게는 10%를 주지만 저희는 작가님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약 15~20%를 지급할 예정으로···.”
“그만하셔도 됩니다. 그 외에 고당이 다 가져가는군요?”
“아직 작가와 계약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확실하진 않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고···.”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제지했다.
“일단 사정은 알겠습니다. 지금은 내키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김 대표는 내 단호한 어조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다른 작품을 한번 추진해 보시죠.”
“어···. 음···.”
미팅은 그렇게 소득 없이 끝이 났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아까 들었던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었다. 정작 원작자가 가져가는 몫은 크지 않았다. 더군다나 기획 작품인 경우 월급제로 운영되는 곳도 있고···.
‘물론 다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 워낙 보는 사람이 많다 보니 그렇게 해도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있고, 분업화로 노동 강도가 내려간다는 것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작가인데 그런 사업을 한다는 게 조금 모순이긴 했다. 일단 드라마 제작과 연예인 매니지먼트에 집중하는 게 나아 보였다.
‘그냥 소소하게 작가 집단을 운영하는 게 낫겠어.’
웹툰은 플랫폼과 작가가 직계약을 하는 게 나을 듯했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휴대전화로 메일 알람이 떴다.
개인적인 메일만 받는 계정이기 때문에 자주 울리지 않는 알람이었다.
웹브라우저를 켜고 메일로 들어갔다.
“어?”
나는 메일 제목을 보고 슬쩍 미소를 지었다. 웹툰 댓글에 내가 이메일 주소를 달아 놨는데 작가가 그걸 확인한 모양이었다.
[최영규: 안녕하세요. 이준형 작가님. 댓글 보고 연락드립니다. 정말 작가님 맞으신가요? ㅠㅠ]
마우스로 제목을 클릭하니 아우라의 초 고퀄리티 일러스트레이션이 떡하니 떠올랐다.
“우와! 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