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88화 (188/263)

인지도가 쭉쭉 올라가 (1)

나는 지하실에서 애들과 함께 회심의 역작인 아우라 일대기를 시청하고 있었다.

예원이를 데려오기 위해 지방에 찾아간 일, 일본에서 정이든의 동생 유리를 찾았을 때의 기쁨, 물론 그때 무대에서 떨어져 머리와 등짝을 좀 다치긴 했지만···.

그리고 담희를 오디션에서 만나고 극적으로 그녀의 건강 상태를 파악한 일, 이지령을 우연히 무대에서 보고 부친인 카이스트 교수님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한 일, 마지막으로 변장녀 리리를 스카우터로 찾아낸 일 등···.

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으음···.’

내가 손수 고른 영상을 J&J 스튜디오에 보내 주면서 잔잔하고 감동적으로 편집해 달라고 지시를 했는데 너무 잘 뽑아냈다.

갑자기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오는 것 같았다.

배경 음악도 기승전결에 맞게 너무 잘 어울렸다. 확실히 전문가의 솜씨다웠다. 그 취향 저격의 배경 음악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어제부터 몸이 고생해 정신 상태까지 약해져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나오고 말았다. 제길···.

하지만 우리 아우라 멤버들은 힘들게 모이고 연습하고 서로 격려하는 모습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자신이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소리를 지르며 아주 난리를 치는 게 아닌가?

‘이, 이것들이···. 이런 감동적인 장면에서···.’

내가 손가락으로 흘러내린 눈물을 살짝 훔치는데 담희가 나를 보며 씨익 웃는 게 아닌가?

“와하하···. 대표님 우신다.”

“어? 정말이네. 이사님. 대표님 방금 울었대요.”

“우, 울긴 누가 울었다고 그래? 졸려서 하품하다가 눈물이 조금 나온 거야. 조용히 하고 영상에 집중 안 하냐?”

내가 살짝 화를 내는 것 같으니 다시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리는 아우라 멤버들이었다.

“어떻게 저런 영상을 보고도 감동이 없냐? 너희들이 인간이냐?”

“내 모습은 창피하고 다른 애들 모습은 웃긴 걸 어떡해요.”

“김담희! 네 녀석이 제일 웃기게 나오는 거 모르냐?”

“악! 저도 안다고요! 왜 이런 걸 보여 주시는 거예요! 제발 좀 꺼 주세요···.”

담희는 얼굴이 부어 있는 예전 영상이 나오자 도저히 못 참겠는지 벌떡 일어나 스크린을 온몸으로 가렸다.

“뭐 하는 거야. 찐빵 장수가 나오는 하이라이트인데!”

예원이가 소리를 치며 담희를 잡고 끌어내리려고 했다.

‘어우···. 개판이구만.’

하아···. 이런 녀석들에게 감동을 주려 한 내가 잘못이지. 영상을 고르는 데 들어간 내 하루 치 시간은 누가 보상해 주려나···.

감동을 주려던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무산되자 나는 머리를 굴려 계획을 전면 수정하기로 했다. 어차피 망한 코너라고 판단하고 과감히 영상을 종료했다.

“응?”

스크린이 꺼지자 좋다고 영상을 찍고 있던 박 PD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손을 들어 잠시 지켜보라는 사인을 보냈다.

“크흠···. 일단 아우라 연대기에 대한 영상은 이만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더 보여 줬다가는 서로의 밑바닥만 보여 주게 될 것 같습니다.”

“큭큭큭···.”

“휴···. 다행이다.”

“그 대신! 제가 여러분께 중대 발표를 하려고 합니다.”

“중대 발표요?”

“옴마야. 드디어···.”

“까악! 어떡해. 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아우라 멤버들이 나와 유정 씨 얼굴을 보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이, 이것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자! 조용! 충격적인 발표니까 똑똑히 들으세요. 아우라가 곧 콘서트를 하게 됩니다.”

내 말을 들은 멤버들이 순간적으로 렉이 걸린 것처럼 멈칫했다.

“네?”

“콘서트요?”

“쉿···. 끝까지 들어 보세요. 정식 콘서트가 아니라 게스트로 참가하게 됩니다.”

“아아···. 난 또···.”

여기저기서 그럼 그렇지 하면서 실망스러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저 그런 아티스트가 아니라 무려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빛나는 밴드!”

우와아!!

빌보드 1위라는 이름을 꺼내자마자 아우라 멤버들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박 PD와 제작진들도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지 눈을 크게 떴다.

“바로 헬게이트(Hellgate)!!”

“······.”

갑자기 지하실에 싸늘한 정적이 감돌았다.

‘뭐지? 이 분위기는?’

“저기요? 혹시 헬게이트 몰라요? 세계적인 헤비메탈 밴드!”

“······.”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하···. 이게 바로 우리나라의 실상이야.’

‘Rock is dead’라고 울부짖던 메릴린 맨슨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모, 모를 수도 있습니다. 크흠···.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엄청 유명한 헤비메탈 밴드죠.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조만간 같이 공연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내 말을 듣고 모두 그럭저럭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TV 옆에 앉아 있던 나유정이 무선 리모컨을 들고 미튜브를 클릭해서 헬게이트의 영상을 클릭했다. 그러자 갑자기 스크린에 마스크를 쓴 괴인들이 나타나더니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그어어어어···.”

흙색의 가면을 뒤집어쓴 헬게이트의 보컬, 땅의 정령(Earth Elemental)이 그로울링 창법으로 노래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의 옆으로 시퍼런 가면을 쓴 물의 정령 기타리스트 존 리의 모습이 보였다.

스피커를 찢을 듯한 소리가 나자 모두가 귀를 막았는데 내가 재빨리 동영상을 멈춰 버렸다.

‘휴···. 하필이면 헬게이트의 가장 강력한 곡이 나올 줄이야.’

“아하하하···. 헬게이트 곡이 다 이렇진 않습니다. 부드러운 곡도 많아요.”

“······.”

“대표님. 그래도 저희가 저분들보다는 낫죠?”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저분들은 컨셉의 화신인 것 같은데요. 얼굴도 안 나오잖아요. 저런 가면을 쓰고···. 히잉···. 저 보컬이 제일 무섭게 생겼어요.”

“어허! 유리야. 말이 좀 심하다. 이 밴드가 유럽하고 미국에서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네가 몰라서 그래.”

나는 말을 하면서 박 PD에게 편집해 달라며 두 손가락으로 가위 모양을 하고 자르는 시늉을 했다.

내가 무선 리모컨으로 뒤로 쭉 당겨 보니 엄청난 수의 관객이 나타났다.

“자···. 이 미친 관중 수를 보라고!”

“우와! 사람들이 엄청 많다! 그런데 단체로 뛰고 있는데요?”

“열광적이지. 그 정도로 엄청나. 거의 20년간 활동하고 있는 초인기 밴드야.”

“어머! 드럼 치는 분이 붉은 가면이야. 불인가 봐. 가면이 불타는 거 같은데요?”

“아···. 유리야, 생각해 보니 너랑 비슷하네. 네가 불의 마법사잖아. 저 드러머는 불의 정령이야.”

“불의 정령···. 그런데 얼굴이 너무 무섭게 생겼잖아요.”

“하하···. 사, 사람이 아니니까 당연하지. 정령이잖아. 다른 말로 하면 요정!”

나도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름만 엘리멘탈이지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엔 도저히 요정처럼 보이지 않는 게 문제였다.

“헬게이트는 레전드입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나를 도와주는 한 명의 도우미가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정주빈!

그는 감격한 듯 두 손을 꼭 모으고 나에게 다가왔다.

“사실입니까? 아우라가 헬게이트와 공연을 한다고요?”

“네. 그, 그렇습니다. 뭐···.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거의 그럴 확률이···. 존 리가 엄청난 덕후라는 소리도 있고···. 에또···.”

뭐 확정은 아니지만 무산되도 이 부분만 편집해서 잘라 내면 그만이다. 이런 게 녹화 방송의 장점 아니겠는가?

“이건 대박입니다. 무조건 해야 합니다.”

정주빈의 입에서 아주 단호한 어조의 말이 튀어나왔다.

“가, 감사합니다. 한번 해 보겠습니다.”

“사실 제가 헬게이트의 오래된 팬입니다. 언제 한번 한국에 들어오나 싶었는데 드디어 내한 공연을 한다더군요. 그런데 우리 아우라가 헬게이트와 공연을?? 어쩜 이런 우연이 다 있을까요?”

“그, 그러네요.”

“대표님은 저에게 은인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드라마도 그렇고 이런 공연도 그렇고요. 아우라가 공연하면 저도 헬게이트 멤버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겠지요?”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러지. 엄청 부담스럽게 구는데?’

아무리 우리가 한 텐트에서 같이 잔 사이라지만 이런 태세 전환은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오래된 팬이라는데 어쩌랴? 안 되면 매니저라고 하고 데려가면 그만이다.

대한민국 톱배우를 매니저로 쓰는 걸그룹이라···. 생각해 보니 웃기는 일이긴 하다.

“뭐 아우라와 같이 가신다면···.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정주빈은 내 두 손을 꽉 잡고 놔주질 않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열성적인 팬이길래 이러는 걸까?

헬게이트는 마스크를 얼굴에 끼는 컨셉이 독특해서 그렇지 상당한 고학력 그룹으로, 독특한 음악적 세계관과 철학적인 가사로 유명하다.

당황스러웠지만 제작진의 얼굴을 살펴보니 좋은 장면을 찍었다고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어찌 됐건 방송 분량은 괜찮게 뽑은 것 같았다.

‘오늘 내 역할은 이제 끝이다. 휴···.’

그렇게 한숨을 돌렸는데 정작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지옥이었다.

‘윽···. 오늘도 마당에 텐트라니···.’

야 인마. 박 PD 이거 농담이지?

내가 눈을 부라리고 제작진을 쏘아봤으나 다들 내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툭툭···.

아니 누가 건방지게 내 어깨를···. 나 지금 눈에 뵈는 게 없다고!

나는 핏발이 곤두선 눈을 부릅뜨고 오른쪽을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안됐다는 듯 고개를 젓고 있는 나유정이 있었다.

턱···.

나는 내 어깨 위에 있던 그녀의 손을 덥석 쥐었다.

“체인지 좀···.”

탁···.

하지만 매정하게 내 손을 뿌리치는 나유정이었다.

“미친 소리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세요. 누굴 또 스캔들 나게 할 일 있어요?”

“스캔들 나도 내가 책임집니다.”

“호호···. 사양할게요. 수고스럽겠지만 오늘 하루만 부탁해요. 다 우리 아우라를 위해서니까···.”

“이건 내 리얼리티 쇼가 아니잖아!”

* * *

텐트 취침 이틀째···.

아침에 일어났더니 오늘은 괜찮은 것 같았다.

‘이 빌어먹을 몸뚱이 보소. 얼마나 됐다고 금세 적응을 하네.’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난 나는 자는 아우라 멤버와 유정 씨를 습격하며 진상을 피웠다. 민낯을 까발리는 시간이었는데 6명은 모두 굴욕 없는 모습이었다.

제기랄!

특히 화장을 지운 리리는 단아하고 깨끗한 의외의 얼굴을 선보여 제작진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아침밥을 먹고 인근 유적지를 방문한 후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전보다 더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유정 씨, 주빈 씨와는 예전보다 더 친밀해진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모든 촬영을 끝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나는 숙소에 아우라를 데려다주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사무실에는 이미 조 대리가 출근하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대표님.”

“수고했는지 어떻게 아셨어요?”

“안 봐도 훤하죠. 또 흑역사 만드신 거 아니시죠?”

“······.”

“···그건 그렇고 제가 어제 존 리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곧바로 답신이 왔는데요. 무조건 같이 공연을 하자고 하네요. 게스트로 써 주겠답니다.”

“음···. 소문을 들어보니 존 리가 상당한 덕후라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전 금시초문이라···.”

“네. 저도 잘은 몰라서 어제 온종일 정보를 찾아보니 정말 그런 거 같았습니다. 심지어 본인 스스로 인터뷰를 한 것도 있었습니다. 만화책도 엄청나게 봤고 소설, 영화광이라고 합니다.”

“계약 관련한 사항은 존 리만 동의를 하면 되는 건가요?”

“이런 건 거의 존 리의 의견이 100% 수용이 된다고 하네요. 어차피 이 전설적인 그룹의 탄생은 존 리의 아이디어라···. 그리고 멤버들도 존 리와 거의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정령 가면들을 쓰고 20년간 같이 콘서트를 하는 거겠죠.”

“하긴···. 그럼 조 대리님이 알아서 스케줄 조정해 주세요. 아무래도 우리 쪽에서도 준비해야 할 것 같으니 공연 전날 리허설을 하는 것부터 맞춰야겠네요.”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맡겨만 주세요.”

“믿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조직 개편 회의를 할 테니 사내 관련자들에게 공지해 주시고요.”

“네···. 드디어···.”

그렇게 아우라의 콘서트 데뷔와 리얼리티 쇼의 준비가 착착 진행돼 가고 있었다.

박 PD에게 전화가 왔는데, 촬영본 영상 편집을 해 보니 재미있는 부분이 많아 시청률이 상당히 높게 나올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후후···. 이슈 몇 개를 갈아 넣었는데···. 낮을 리가···.’

드디어 2주 후 TVM 리얼리티 4부작 ‘어색한 캠핑’이 방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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